아유타야 사원 유적지 (출처- http://blog.naver.com/ynlee40)
타이 남부 프라나콘시아유타야주(州)의 주도. 위치 타이 남부 프라나콘시아유타야주 인구 약 6만 4000명(1992) 정식명칭은 프라나콘시아유타야(Phra Nakhon Si Ayutthaya)이다. 방콕 북쪽 64km 지점, 차오프라야강 하류에 전개된 삼각주 위에 발달해 있다. 타이족의 남하에 따라 1350년 건설되어 약 400년 동안 아유타야왕조의 역대 수도로 번영하다가 1767년 미얀마의 침입으로 파괴되었다. 시가지에는 많은 운하망이 종횡으로 통하여 수상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다. 부근 일대는 벼농사 중심지대이며 제재·담배제조·죽세공 등도 활발하다. 방콕과는 철도와 고속도로로 연결되며 쌀의 거래가 활발하다. 강대한 제국의 정치·문화 중심지로서 전성기에는 왕궁 3곳, 사원 375개, 요새 29개, 대문이 94개에 이르렀으나, 미얀마군의 침입과 18세기에 방콕으로 수도가 옮겨지면서 일부 유적만 남아 있다. 1374년 도성의 중심사원으로 창건된 왓 마하탓은 여러 양식이 융합된 아유타야양식의 선구적인 건축물이다. 이곳의 지하제실에서는 15세기의 채색벽화와 금으로 된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아유타야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적인 유적지로 지정된 곳으로, 1767년 버어마에 의해 침동받기 전까지 417년간에 태국(당시에는 사이암)의 수도였다. 태국인들이 남쪽으로 이주한 후 우통왕 King U-Thong에 의해 1350년에 세워진 도시이다. 33대에 걸친 왕들이 기거했으며, 태국인들과 서양인들간의 처음으로 접촉이 이루어진 곳이기도 하다. 그 이후 차오프라야 강이 사이암만에서부터 이 도시까지 배가 다닐 수 있는 항로가 되었다. 최초의 방문한 외국인들은 포르투갈 상인들과 선교사들이었고 이후 인도의 주된 무역항이 되었다.
아유타야 사원
아유타야 사원
아유타야 사원 유적지
침략한 미얀마군대에 의해 파괴된 것인데, 이 부처상은 오랜 세월동안 나무뿌리가 감싸 안아서 이런 모습이 되었다한다.
아유타야 사원 유적지
15세기에 건립된 왓 라차부라나에는 벽돌로 탑을 가늘고 높게 쌓아올린 프라프랑양식의 탑당이 있다.
아유타야 사원 유적지
아유타야 왓 프라시산펫 사원 (출처- http://blog.naver.com/ynlee40)
1500년에 라마티보디 2세에 의해 총량 171kg이나 되는 황금으로 덮인 높이 16m의 부처입상이 만들어졌지만 1767년 아유타야가 함락당했을 � 미얀마군이 이 황금을 손에 넣기위해 불을 질렀기 때문에 불상과 사찰 모두 파괴되었다. 남겨진 실론양식의 체디는 아유타야 왕조 중기에 세워진 것으로써 아유타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왓 프라시산펫 사원
왓 프라시산펫 사원
왓 프라시산펫 사원
왓 프라시산펫 사원
동·서·중앙에 있는 3기의 스투파는 역대 군주의 유골을 안치하기 위한 납골당으로서 1492년과 1532년에 세워졌다. 1991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왓 프라시산펫 사원
15세기 말 왕궁 부지 안에 세워진 왓 프라시산펫은 아유타야 사원 건축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1499년에 지은 긴 불당에는 높이 16m의 황금불상이 안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아유타야 왓짜오 프라야타이 사원 (출처- http://blog.naver.com/ynlee40)
별칭은 왓짜오 프라야타이, 애칭으로는 왓야이라 불리는 이 사원은 초대왕인 우통(라마티보디 1세)이 1357년 실론(스리랑카)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승려들의 명상수업을 돕기 위해 세웠다. 실론 양식으로 지어진 중앙의 체디(높이 72m)는 1592년 나레수안 왕이 미얀마와의 전쟁때 코끼리를 타고 맨손으로 미얀마의 왕자를 죽여 승리르 거둔 뒤 쌓은 것으로 반대편에 미얀마가 세운 푸카오통 체디를 능가하려는 왕의 의지가 담겨져 있다.
왓짜오 프라야타이 사원
원내에는 밀랍인형과 함께 당시 미얀마와의 전쟁 모습이 그림으로 그려져 벽 위에 걸려 있다.
왓짜오 프라야타이 사원
본당 앞쪽에는 석고를 덧입힌 큰 와불상이 있고, 옆의 못에는 정자도 있으므로 더위를 식힐 수 있다.
왓짜오 프라야타이 사원
본당 뒤편의 사각형 경내에는 체디를 중심으로 줄지어 늘어선 수십 개의 좌불상들이 둘러싸고 있다
왓짜오 프라야타이 사원 좌불상
왓짜오 프라야타이 사원 좌불상
왓짜오 프라야타이 사원, 체디의 중간부분까지 계단이 놓여져 있으므로 올라가 볼 수가 있다.
왓짜오 프라야타이 사원
왓짜오 프라야타이 사원
왓짜오 프라야타이 사원
왓짜오 프라야타이 사원
왓짜오 프라야타이 사원
왓 프라마하탓 사원
왓 프라마하탓 사원 (출처- http://blog.naver.com/ynlee40)
태국어로 "왓wat"은 절(寺)을 뜻한다. 왓프라마하탓은 나페수안과 치꾼이 만나는 사거리에 있으며 도로 건너편에 위치한 왓랏부라나와 나란히 있다. 1384년 나레수안 왕에 의해 세워진 이사원은 아유타야의 프랑 가운데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이다. 가운데의 프랑은 높이가 50m에 달했으나 지금은 형태가 심하게 파괴되었고 주변에는 토대만 남은 예배당과 마치 두부를 잘라놓은 듯한 석불상 조각들이 아무렇게나 널려있다. 근처의 남쪽 벽돌 위에 조각조각 남아있는 여러가지 아름다운 문양의 회벽토는 관심있게 살펴볼 만하다. 1956년 예술부에서 파괴된 유적을 재건했을 � 이 곳에서 금불상 몇 점과 금, 루비, 수정으로 만든 장식품들이 들어있는 상자를 발견하였다. 이것들은 지금 방콕의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목이 잘린 부처를 보며, 역사의 무자비함을 느낀 곳이었다
왓 프라마하탓 사원, 이곳 돌부처들은 한결같이 머리가 짤렸다.
왓 프라마하탓 사원
왓 프라마하탓 사원
왓 프라마하탓 사원
왓 프라마하탓 사원
왓 프라마하탓 사원
왓 프라마하탓 사원
아유타야 방파인 여름궁전 (출처- http://blog.naver.com/ynlee40)
방파인은 아유타야 지역내에 있는 것으로 방콕에서 북쪽으로 6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프라삿통 왕이 17세기 중엽 아유타야의 왕에 즉위했을 때, 그는 춤폰 니카야람 사원(Chumphon Nikayaram Temple)과 별궁 하나를 길이 400m, 폭 40m의 호수 한복판에 지었다. 그는 춤폰 니카야람 사원(Chumphon Nikayaram Temple)과 별궁 하나를 길이 400m, 폭 40m의 호수 한복판에 지었다.
아유타야 방파인 여름궁전
아유타야 방파인 여름궁전, 이 두 건물은 오늘날까지도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 별궁은 이태리와 그리스를 거쳐 멀리 빅토리아식에서 고대 중국의 건축 양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축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별궁은 이태리와 그리스를 거쳐 멀리 빅토리아식에서 고대 중국의 건축 양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축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
옷입고 누워있는 불상
남방의 불교(스리랑카, 타이)
스리랑카, 미얀마, 타이 등 동남아시아에 전파된 불교를 남방불교라 한다. 이 지역으로 불교를 전파하는 기지가 된 곳은 스리랑카이며 BC 3세기 중엽, 아소카왕의 왕자 마힌다(Mahinda)가 파견되어 상좌부 불교를 전한 것이 효시가 된다. 이 불교는 팔리어(語) 경전을 믿기 때문에 팔리불교라고도 한다. 5세기에는 불음(佛音)이 인도로부터 건너와 팔리어 경전의 주석(注釋)을 집대성함으로써 상좌부 불교의 기초가 굳어지고 활기를 띠게 되었다. 미얀마와 타이에는 이 스리랑카의 상좌부 불교가 전해졌다. 5세기에 미얀마로 건너간 상좌부 불교는 그 후 밀교[大乘]로 바뀌었다가 11세기 파간조(朝)의 전(全)국토통일과 함께 재흥되었고, 후에 본가인 스리랑카불교가 쇠퇴하자 상좌부 불교가 스리랑카로 역수입되었다. 한편 타이에는 8세기 무렵에 밀교가 전해져 번창하다가 후에 미얀마로부터 상좌부 불교가 진출하였고, 13세기 말에는 스리랑카의 상좌부 불교가 전해져, 그 후 왕조의 보호 밑에 발전하여 지금은 이 지역 제1의 불교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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