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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즐레 성당 (Basilique Sainte-Marie-Madeleine de Vézelay)

성지순례/서유럽(프랑스)

by baesungsoo 2013. 8. 2.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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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즐레 성당과 언덕 ( Vezelay Church and Hill )               (이하 출처-http://kr.blog.yahoo.com/lee1004gg) 

 

1979년에 지정된 세계문화유산이다.  베즐레 언덕은 1146년 제2차 십자군원정 때 성 베르나르드가 원정의 당위성을 역설했고 또한 1190년 제3차 원정 때에는 영국왕 리처드와 프랑스왕 필립이 회맹을 하였던 역사적 장소이다.   성지 예루살렘을 이교도의 손에서 되찾기 위해 12세기에 기사들로 이루어진 십자군을 소집한 곳이 베즐레였고,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순례자들도 이 곳 베즐레의 생트마들렌 성당을 기점으로 삼았다. 1147년의 부활절  전날 밤에 수만 명의 병사가 모여들었다. 당시 생트마들렌 성당은 건설 중이어서 기사들은 생트크루아 예배당 주위를 에워쌌다. 언덕 아래에서 몇 천 명이 “하느님께서 바라고 계신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이 날 탁월한 웅변가인 클레르보의 수도원장 베르나르두스가 베즐레에서 십자군을 소집하고 열변을 토해 기사들을 성지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성지는 이보다 반세기 전에 한 번 되찾기는 했지만, 다시 군사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 제2차 십자군은 결국 소아시아를 넘지 못했고, 1187년에 성지는 당시 술탄이었던 살라딘의 수중에 떨어지고 말았다. 1189년 프랑스의 필리프 2세와 영국 리처드 1세,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1세의 호소에 따라 제3차 십자군이 또다시 베즐레에 집결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1세가 사고로 목숨을 잃고, 영국과 프랑스 국내에 내분이 일어나 성지 회복은 또 실패했다. 그 뒤 베네치아 상인의 농간으로 약탈을 일삼은 십자군과,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 소년 십자군을 거치면서 한때 성지를 회복하기도 했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1270년에 프랑스 왕 루이 9세의 지휘 아래 출발한 십자군이 실패한 것을 마지막으로 십자군 운동은 성지를 잃어버린 채 역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성령이 머무는 언덕’으로 불리면서 영혼의 안식처가 되어 온 베즐레 언덕의 역사는 860년에 시작된다. 그 해에 비엔 백작 지라르 드 루시용이 중세에 가장 공경받던 성유물 가운데 하나인 막달레나(성녀 마들렌, 막달라 마리아)의 성해(聖骸)를 베즐레로 옮기고, 오툉에 있는 생마르탱 수도원의 수사들과 함께 언덕 기슭에 새로운 수도원을 세웠다. 이 수도원은 얼마 뒤 노르만족의 침략을 받아 파괴되었다. 875년에 베네딕투스회 수사들이 보다 안전한 언덕 꼭대기에 있는 성채 곁에 수도원 땅을 정했다. 그리고 11세기에 막달레나의 오빠인 성라자로(이들 오누이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에 그리스도교를 퍼뜨렸다고 한다.)에 대한 신앙이 높아지자 베즐레의 수도원은 막달레나의 성해를 모시겠다는 뜻을 명확히 밝혔다. 막달레나는 죄많은 여인이었는데, 회개하고 예수의 충실한 신봉자가 되었다. 예수를 따라 팔레스타인을 돌았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끝까지 지켜 보았다. 나중에 유대인에 의해 바다로 쫓겨나, 돛도 노도 없는 쪽배로 고생하던 끝에 간신히 론 강 하류에 다다랐다. 이런 옛 이야기가 부르고뉴 지방 북부까지 퍼졌고, 그 성해를 묻은 베즐레에는 순례자가 모여 들기 시작했다. 수도원을 에워싸듯 인구가 1만 명이나 되는 도시가 생겼고, 환전상과 여관, 헌납용 양초와 기념 표지를 만드는 가게가 즐지어 들어섰다. 당시 프랑스 각지에서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순례의 길은 몇 갈래나 되었지만, 베즐레는 그 가운데 중요한 경유지로 발전한다. 막달레나의 성해를 참배한 뒤 사람들은 멀리 서쪽 끝 콤포스텔라로 떠나는 것이다. 이리하여 베즐레는 막달레나와 산티아고(성야고보)의 순례자들 덕분에 점차 번화하고 활기찬 곳이 되었다. 13세기에 베즐레의 성해가 가짜라는 소문이 퍼졌다. 그러자 순례자들은 프로방스 지방의 맹막시망라생트봄으로 모여들었다. 교황이 그 곳에 성해를 진짜라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십자군의 거점이었던 베즐레의 정치적 영향력은 대단해, 프랑스 왕 루이 9세는 의논 끝에 베즐레의 성해를 진짜로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 뒤 1339~1453년에 벌어진 백년 전쟁으로 베즐레의 쇠퇴가 앞당겨졌고, 1538년에 수도원은 폐쇄되었다.  

 

베즐레 성당과 언덕                   (출처- http://cafe.daum.net/BulgaeDaenggyeon/omZb/304

 

베즐레 성당                        (출처- http://cafe.daum.net/BulgaeDaenggyeon/omZb/304

 

베즐레 성당                   (출처- http://cafe.daum.net/BulgaeDaenggyeon/omZb/304

 

베즐레 성당                    (출처- http://cafe.daum.net/BulgaeDaenggyeon/omZb/304)  

 

베즐레 성당과 언덕

 

베즐레 성당

 

베즐레 성당                    (출처- http://cafe.daum.net/BulgaeDaenggyeon/omZb/304

 

베즐레 성당                  (출처- http://cafe.daum.net/BulgaeDaenggyeon/omZb/304

 

베즐레 성당                    (출처- http://cafe.daum.net/BulgaeDaenggyeon/omZb/304

 

베즐레 성당                 (출처- http://cafe.daum.net/BulgaeDaenggyeon/omZb/304

 

베즐레 성당                    (출처- http://cafe.daum.net/BulgaeDaenggyeon/omZb/304

 

베즐레 성당

 

 ‘성령이 머무는 언덕’ 위에 남아 있는 12세기 수도원적 교회로 로마네스크풍의 걸작인  베즐레의 생트마들렌 성당은 중세 때는 많은 순례자가 이 언덕에 올라 막달레나의 성해를 참배했다. 막달라 마리아의 성해(聖骸)를 간직하고 있는 성스러운 땅이요, 엄청나게 많은 순례자를 끌어들인 언덕 위의 마을 베즐레는 그 옛날 중세에는 세계의 중심이었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기에 베즐레에 있는 수도원은 철저하게 파괴되었지만, 생트마들렌 성당은 거의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았다.  생트마들렌 성당은 19세기에 복원하려고 일부 손을 대었지만, 지금도 전성기 로마네스크의 당당한 모습이 남아 있다.

 

정문         (출처- http://blog.daum.net/kiregina/62)

 

베즐레 성당                   (출처- http://cafe.daum.net/BulgaeDaenggyeon/omZb/304

 

베즐레 성당              (출처- http://cafe.daum.net/BulgaeDaenggyeon/omZb/304

 

베즐레 성당                  (출처- http://cafe.daum.net/BulgaeDaenggyeon/omZb/304

 

정문         (출처- http://blog.daum.net/kiregina/62)

 

정문         (출처- http://blog.daum.net/kiregina/62)

 

로마네스크의 꽃, 기둥머리 조각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베즐레의 생트마들렌 성당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 성당은 대단히 크고 넓으며, 노트르담 대성당과 마찬가지로 터키의 커다란 목욕탕을 연상시킨다.” “성당을 구성하는 것은 흰 색과 적록색 석재로, 마치 그리스도교도를 위해 지은 모스크 같다.” 확실히 이 성당의 아치는 흰 색과 적록색 돌을 교대로 사용해 지었고, 안에는 이슬람풍의 이국적인 분위기가 흐른다. 건설에 관여한 석공이 이슬람 세계를 잘 알았고, 모스크 건축 기술과 동방적인 장식 감각을 발휘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로마네스크 성당을 이슬람교 모스크의 변형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원래 다른 색을 교대로 배치하는 것은 고대 로마의 유적에도 보이는 것으로, 로마네스크 성당 건축은 그것들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생트마들렌 성당의 신랑(身廊) 원주(圓柱)에는 모두 100개의 기둥머리에 로마네스크 조각을 새겨 놓았다. 그 가운데는 사자나 코끼리 같은 동물과, 가지와 잎이 풍성한 식물을 주제로 한 것이 있어, 성당 안에 싱싱한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그리고 성서 이야기를 새긴 기둥머리 조각도 로마네스크 예술의 진수를 보여 준다.  

 

로마네스크의 꽃, 기둥머리 조각                (출처- http://cafe.daum.net/BulgaeDaenggyeon/omZb/304)

 

남측 문 

 

현관랑의 남측도아 상부조각


[신약성서]에 나오는 일련의 이야기, 즉 ‘수태고지’ ‘방문’에서 ‘그리스도의 탄생’ ‘동방박사 세 사람의 예배’까지를 표현. 

 

베즐레 성당

 

베즐레 성당

 

베즐레 성당

 

베즐레 성당

 

베즐레 성당 

 

성당의 현관랑 중앙문, 사도에게 사명을 내리는 그리스도’를

 

성당 현관랑에 있는 조각 또한 프랑스 로마네스크 양식의 걸작이다. 중세에 많은 순례자가 북적거렸을 이 곳에서는 신랑 입구의 커다란 팀파눔에 있는 ‘사도에게 사명을 내리는 그리스도’가 특히 눈길을 끈다. 그리스도와 사도 외에도 유대인, 아랍인, 로마인, 동방 사람, 아르메니아인 등이 보인다. 이처럼 다채로운 인물 표현은 외국 땅에서 십자군 병사들을 맞는 ‘부실한’ 이교도를 상기시킨다. 이 현관랑은 성당이 붕괴 위기에 처했던 19세기에 저명한 건축가 비올레 르 뒤크에 의해 복구되었고, 이로써 중세의 유산이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다. 

 

성당의 현관랑 중앙문                 (출처- http://cafe.daum.net/BulgaeDaenggyeon/omZb/304)

 

성당의 현관랑 중앙문, 사도에게 사명을 내리는 그리스도’를              (출처- http://cafe.daum.net/BulgaeDaenggyeon/omZb/304)

(출처- http://cafe.daum.net/BulgaeDaenggyeon/omZb/304

 

회랑 내 열주 기둥머리 조각

 

회랑 내 열주 기둥머리 조각, 우의적 주제를 표현

 

회랑 내 열주 기둥머리 조각

 

아래는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서 따온 이야기로, 독수리로 변한 주피터가 소년 가니메데스를 유괴하는 장면

 

베즐레성당 남쪽 복도의 기둥머리 조각

 

 ‘호색과 절망’을 나타낸 것으로, 음욕을 범한 악령이 그 벌로 괴로워하면서 죽어가는 장면 

 

베즐레성당 남쪽 복도의 기둥머리 조각, 우의적 주제인 ‘신비의 깔대기’

 

‘신비의 깔대기’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지키고 실천하기 위해 그리스도 자신이 희생되어야 했다는 사실을 우의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회랑 내 열주 기둥머리 조각

 

회랑 내 열주 기둥머리 조각         (출처- http://cafe.daum.net/BulgaeDaenggyeon/omZb/304)

 

회랑 내 열주 기둥머리 조각               (출처- http://cafe.daum.net/BulgaeDaenggyeon/omZb/304)

 

회랑 내 열주 기둥머리 조각         (출처- http://cafe.daum.net/BulgaeDaenggyeon/omZb/304)

 

성당내부            (출처- http://cafe.daum.net/BulgaeDaenggyeon/omZb/304)

 

제대               (출처- http://cafe.daum.net/BulgaeDaenggyeon/omZb/304)

 

제대                (출처- http://cafe.daum.net/BulgaeDaenggyeon/omZb/304)

 

내부                (출처- http://cafe.daum.net/BulgaeDaenggyeon/omZb/304)

 

내부                     (출처- http://cafe.daum.net/BulgaeDaenggyeon/omZb/304)

 

내부                        (출처- http://cafe.daum.net/BulgaeDaenggyeon/omZb/304)

 

수도원 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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