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누라다푸라는 스리랑카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깊은 도시다. 게다가 도시 전체가 거대한 불교유적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곳곳에 크 고 작은 탑과 사원들이 무수히 산재해 있다. 아누라다푸라는 밀림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기 원전 4세기 경에 건설된 이 고대 도시는 남인도의 쵸라 왕조에 의해 멸망당하 기 전까지 1,400여 년 동안 싱하리 왕조의 수도로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곳이다. 아누라다푸라 최대의 전성기는 두투가마니 왕이 통치하던 기원전 167년부터 137년까지 30년. 현재 아누라다푸라 곳곳에 산재해 있는 불교 유적들의 대부분은 바로 이 시기에 세워졌다. 하지만 불교문화를 바탕으로 태평성대를 누리던 아누라다푸라는 10세기 이후로 수백 년 동안이나 밀림 속에 파묻혀 있었다. 수도를 근처의 폴론나루와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후 1800년대 초에 이르러 영국의 한 젊은 관리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면서 아누라다푸라는 세상 사람들에게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발굴작업이 시작된 것은 이로부터 100여 년 후인 1912년. 2,000여 년 전의 옛 도시가 제 모습을 찾게 되면서 아누 라다푸라는 다시 불교의 중심지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루완웰리 세야 대탑(大塔) Ruwanweli
Seya Dagoba
루완웰리 세야 대탑(大塔) Ruwanweli
Seya Dagoba
아누라다푸라의 도착을 알리는 것이 바로 이 탑이다. 루완웰리 세야 대탑은 유적지구 중심부에 세워진 희고 거대한 탑이다. 스리 마하 보리수에서 이 탑에 이르는 길은 가로등이 있는 아름다운 석조(石造) 보도로 이어진다. 스리 마하 보리수의 돌문을 나와 이 석조 보도를 걷기 시작하면 우선 오른쪽에 로하 파사다 Loha Pasada라 불리는 돌기둥들이 있다. 로하 파사다를 지나 그 끝에 우뚝 선 루완웰리 세야 대탑을 향해 걷는다. 이 탑은 수많은 코끼리 조각에 둘러 싸여 있는데, 하얗고 엄청나게 크다. 바블 세이프라 불리는 만두 모양의 탑으로 높이는 110m 정도의 높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55m이다. 기원전 2세기의 도투레무누 왕 시대에 건설하기 시작했으나 왕은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사다 팃사 왕자가 아버지의 뜻을 이어 완성시켰다. 도투게무누 왕은 남인도에서 침략해 온 타밀 군을 물리친 것으로 유명하다. 여러 차례의 전쟁이 있었는데, 도투게무누 왕 말년에 남인도의 엘라라 왕이 싸움을 걸어왔다. 이때 사다 팃사 왕자는 선두에 서서 싸우기를 원했으나 아들을 염려한 왕은 허락하지 않았다. 뒷날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 왕자는 이 탑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두게 된 아버지를 위해 대나무와 천을 이용해 하루밤 사이에 탑이 완성된 모습을 만들어 죽기 직전의 아버지에게 보여드렸다고 한다. 위대한 왕 도투게무누, 그의 모습은 정문 왼쪽에 있는 조각을 통해 알 수 있다.
대보리사 대탑과 보리수
붓다가야 대보리사 대탑과 보리수 사이에는 약 2m정도 간격이 있고, 사이에 직사각형의 반석이 놓여있다. 부처님이 앉은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금강좌(金剛座)인데, 보리수와 함께 부처님 성도의 상징물이다. 금강좌 옆의 보리수가 싯다르타가 그 밑에서 깨달음을 얻은 나무, 바로 보리수다. 정식 이름은 ‘아자팔라 니그로다 나무(Ajapala nigrodha tree)’ 또는 ‘반얀 나무(Banyan tree)’로, 현재의 보리수가 물론 부처님 당시의 나무는 아니다. 부처님 당시 그 나무는 몇 번이나 수난을 받아 생과 사를 되풀이하다 1876년 쓰러졌다. 저간의 사정을 알게 된 영국 출신의 고고학자 알렉산더 커닝햄은 그 자리에 다시 보리수를 살리기 위해, 붓다가야 보리수의 직계자손인 스리랑카 아누라다푸라의 보리수 묘목을 가져다 심었다. 스리랑카의 보리수는 아소카왕의 딸이었던 상가미타 비구니스님이 약 2350여 년 전, 오빠 마힌다스님과 함께 붓다가야 대보리사의 보리수를 가져 가 키운 나무였다. 때문에 지금의 보리수는 부처님이 정각을 이룰 당시 나무의 손자에 해당된다. 나무의 나이는 약 100여년, 키는 약 30m 정도다. 이런 역사적 사실도 중요하지만, 불교도들이 보리수에 주목하는 이유는 부처님과 관련해서다. 부처님 입적 이후 1세기경 불상이 탄생되기 전까지, 보리수는 법륜.불족적 등과 함께 부처님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간주됐다. 산치대탑 조각이나 부처님 일생을 새긴 작품 등에는 부처님이 있어야 될 자리에 보리수가 서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보리수는 바로 부처님을, 아니 깨달음을 대신 했던 것이다. 지금도 보리수 열매로 염주를 만들어 수행하며, 보리수 잎을 모시는 신도들이 많다. 보리수가 성스런 나무임에는 틀림없다. 보리수를 볼 때마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떠올리고,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각고의 정진을 한 부처님을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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