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놀데 <오순절> (출처- http://blog.daum.net/lee_ys)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1∼4).
19세기 인상파 이후 화가들은 가능한 한 태양 빛에서 그대로 표현되는 원색을 즐겨 사용하였다. 이유는 중간색은 고상하기는 하지만 정열적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에밀 놀데(Emil Nolde 1867∼1956)는 표현주의의 선구자인 반 고흐, 뭉크, 고갱 등의 그림에 깊이 공감하면서 자신의 열정을 거침없이 화폭에 옮겨 놓았다. 특히 그는 성경의 이야기 속에서 뜨거운 환희와 열정을 원색을 통하여 마음껏 표현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가 <오순절>이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성도들은 성령이 아니고서는 체험할 수 없는 뜨거움을 체험했다. 물론 그것은 내재적 뜨거움이요,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의 준비된 뜨거움이었다. 모인 성도들의 얼굴을 보자. 황금색에 가까운 노란색 얼굴은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닌 황홀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노란색과 대비되는 강렬한 원색의 옷이다. 그들 앞에 놓인 테이블은 알 수 없는 신비한 빛을 발하고 있으며 꼭꼭 붙어 앉아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사탄이 틈탈 수 없는 믿음의 화합과 소망이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그들의 머리 위에는 방금 임재한 성령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사실 그것은 성령이 내재적으로 임재한 표현이다. 그 증거가 그들의 얼굴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림을 다시 보자. 어느덧 그들은 이전의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 머리 위에 타오르고 있는 불꽃은 마치 사람 형상의 양초 위에 불이 붙여진 모습이다. 놀데 자신도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탈리아나 독일의 르네상스 시대에 달콤한 분위기의 성경 이야기를 그렸던 사람들은 내적으로 타오르는 나의 그림과는 전혀 어울릴 수 없는 사람들이다”
에밀 놀데 <오순절> (그림, 글 출처- http://chohamuseum.net/11)
십자가에 못박힘(Crucifixion), 1912, Oil on canvas, 220.5 x 193.5 cm, Nolde-Stiftung Seebull, ⓒ Emil Nolde
우선 위 그림을 보면,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쓰여있는 죄패가 십자가의 정 중앙에 붙어있고, 못박히신 예수가 그 십자가의 가운데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양 옆으로는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듯 함께 매달려 있습니다. 화가가 마치 가까이에서 망원렌즈로 확대해 찍은 사진을 그림으로 옮기기라도 한 것처럼, 화폭 가득 주인공들을 여백없이 꽉 채워 배치하였습니다. 이렇게 답답한 구도를 보여줌으로써 화가는 제 삼자의 입장에서 그림을 바라보던 관객을 화폭 안에 함께 서 있는 주인공으로 끌여들였고,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림 안의 상황을 주관적인 고통으로 받아들입니다. 아래 왼 편으로는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마태 27 : 56)를 비롯하여 세 여인은 체념한 듯, 비탄에 빠진 일그러진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또 아래 오른 편으로는 총독의 군병 둘이 벗겨진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갖기 위해 동전이나 주사위같은 것을 던져 제비뽑기를 하는 모습도 보이며, 그 뒤 두 명은 서서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네 군병들은 제비 뽑는 것에 재미를 붙인 듯, 예수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어보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가운데에 두고 대칭으로, 그들의 할 일을 하고 있는 군병들의 사뭇 진지한 표정과 왼 쪽 세 여인의 표정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이로써 위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그 당시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전체적인 구성과 표현방법을 살펴보면, 화폭을 가득 채우고 있는 10명이나 되는 주인공과 사물들을 만화처럼 단순화화여 밑그림을 그리고 스케치하듯 가는 선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주인공들의 색채와 명암도 세분화하지 않고 단순하게 최소화하여 가볍게 묘사하였습니다. 한편, 주인공들의 색채는 무척 강렬하고 눈부십니다. 반면에 뒷 배경이 되는 하늘이나 산 언덕은 어두운 빛과 색채로 과감하게 생략함으로써 주인공들을 강조하였고, 당시의 분위기에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예수의 고통스런 표정보다 더 큰 슬픔에 동참하도록 만듭니다. 이와 같이, 놀데는 예수도 인간이었음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런 화가의 의도가 실감나게 느껴지는 그림입니다. 그래서 성스러운 그림 앞에 선 객관적인 관객이 아닌 주관적인 느낌에 동참하고 맙니다. 또한 이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당시의 현장에 함께 있는 듯,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순간적인 착각에 빠져들고 맙니다. 놀데는 표현주의자다운 주관적인 화면을 구성하였으며,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무게감있는 그림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점은 그가 루오(Georges Rouault, 프랑스, 1871-1958), 고갱(Paul Gauguin, 프랑스, 1848-1903)과 더불어 현대 회화사에서 손꼽히는 종교화가로 평가받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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