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초기 선교사 기념비
청주 초기 선교사 기념비
청주 초기 선교사 기념비
민노아, 부례선 선교사 기념비
프레드릭 S. 밀러(민노아) 선교사는 186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출생하여, 피츠버그대학과 유니언 신학교를 졸업한 후 1892년 11월 15일 부인과 함께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한국에 왔다. 1893년 서울에서 예수교학당(경신학교) 책임자가 되어 교명을 민로아 학당으로 고치고 자신의 교육 방침대로 발전시켰다. 안창호선생을 길러내는 등 기독교 교육에 힘썼다. 1895년 연동교회의 기초를 마련하였으며, 청주지역에서 44년간 선교활동을 하였다. 1902년에는 장로회·감리회의 연합찬송가 제정을 위한‘통합공의회 찬송가위원회’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05년에는 찬송가 307장 ‘공중 나는 새를 보라’를 작곡하였다. 이밖에도 94, 294, 379 516장 등이 현재 찬송가에 실려 있다. 1911년에는 조선예수교장로회 경기·충청 노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894년 밀러는 현재의 양화진 묘역 주변에 언더우드 선교사, 에비슨 선교사 등과 공동으로 별장용지를 구입하여 각기 방갈로를 짓고 여름철에는 이곳에서 지낸 일이 있어 양화진과는 관계가 깊은 인물이다. 첫 부인 안나 밀러가 별세한 후 F. S. 밀러는 1904년 제3대 정동여학당장 도티와 재혼하였으며, 1931년 도티와 사별한 뒤 딘과 다시 재혼하였다. 그는 충북지역에 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사역하던 중 1936년 은퇴하여, 개인적인 선교여행을 하였으며, 1937년 별세하여, 양화진에 묻혔다.
민노아 선교사, 청주제일교회 설립자이다.
민노아, 부례선 선교사 부부 후면
민노아, 부례선 선교사 기념비 옆면
1984.9.14. 한국 기독교선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대한 예수교 장로회 충북노회에서 세웠다.
그렉 선교사
그렉 선교사
고부례 선교사 기념비
고부례 선교사 기념비
민노아 선교사 묘비
민노아 선교사 묘비
민노아 선교사 묘비
<선교사 양관>
1호 양관 소열도 선교사 기념관, 뒷쪽 기와집 (출처- http://blog.daum.net/haeyunkang/13152351)
청주에서 18년 동안 소열도 선교사가 거주했던 곳이다. 일반에게 매각되어 6개 양관 중 유일하게 민간인 소유인 집이다.
2호 양관 부례선 선교사 기념 성경학교
1932년에 지어진 건물로 그의 친지, 교우들이 부례선 선교사를 기념하여 세운 것이다. 부례선 선교사는 농촌 선교와 봉사로 사역 하던 중 1926년 장티푸스로 순직 하였다. 현재는 충북노회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선교사들이 사용하던 성경 , 부례선 선교사 이후 30여명의 선교사들이 성경을 가르쳤다.
선교사들이 사용하던 성경
선교사들이 사용하던 성경
선교사들이 사용하던 주물 난로 (출처- http://blog.daum.net/haeyunkang/13152351)
3호 양관 민노아 기념관
3호 양관 민노아 기념관
3호 양관 민노아 기념관
1911년 지은 건물로 지하1층, 지상2층 건물이다. 붉은 벽돌에 전통 한옥 지붕으로 기와를 덮었다. 이 건물은 충북 최초의 선교사 민노아
선교사 가족이 거주하던 집이다.
3호 양관 민노아 기념관, 현재 신학사로 서용하고 있다.
3호 양관 민노아 기념관 옆면
3호 양관 민노아 기념관 뒷면
3호 양관 민노아 기념관 뒷면
3호 양관 민노아 기념관 측면
3호 양관 민노아 기념관 창문
4호 양관 포사이드 기념관
4호 양관 포사이드 기념관
4호 양관 포사이드 기념관
이 건물은 1906년 양관 가운데 처음으로 완성되었다. 붉은 벽돌, 아치식 창문, 전통 기와 지붕이다. 처마 장식과 주추도 한국 전통식으로 하여 서양식과 조화 되었다. 내부는 온돌 대신 스팀 난방과 벽난로 시설이 되어있다. 실내 화장실도 있다. 이 집은 주로 독신 선교사나 초임 선교사들이 거주 하였다. 미국 시카고의 포사이드 부부가 주택 건축을 위해 3천불을 보내 주었다. 특별히 이 양관은 옛 순교자들이 갇혔던 형무소에서 가져온 화강석을 초석으로 하여 지었다.
4호 양관 포사이드 기념관
4호 양관 포사이드 기념관
4호 양관 포사이드 기념관
4호 양관 포사이드 기념관 측면
4호 양관 포사이드 기념관 옆면 창문
4호 양관 포사이드 기념관 뒷면
4호 양관 포사이드 기념관 , 옛 순교자들이 갇혔던 형무소에서 가져온 화강석을 초석으로 하여 지었다.
5호 양관 노두의 기념관
1911년 지은 건물로 본래 성경학교로 사용하고자 지은것이다. 미국 켄터키 주 위치타에 살던 매클렁 부부가 일찍 세상을 떠난 두 아들을 기념하기 위해 8백불을 희사하여 지었다. 이 건물은 소민병원에 근무하던 의사와 간호사 등 선교부의 가족들이 사택으로 사용 하였다. 특히 노의사라 불리던 노두의 소민병원 원장이 1937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반대하여 선교사들이 모두 강제 출국 당할 때까지 살았던 건물이기도 하다.
5호 양관 노두의 기념관
5호 양관 노두의 기념관
5호 양관 노두의 기념관
5호 양관 노두의 기념관 내부
5호 양관 노두의 기념관, 현재 일신여고 교목실로 사용되고 있다.
선교사들이 사용했던 우물
선교사들이 사용했던 우물, 뒤에 민노아 기념관이 보인다.
양관이 자리잡고 있는 일신여자중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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