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관 (왕림성당 옆 수원 카톨릭 대학 내에 위치해 있으며 에서 사용, 관리하고 있다)
1902년 뮈텔 주교에 의해 2대 본당신부 알릭스(J. Alix, 韓若瑟) 신부 사제관이 축성 복원 되었다.
2대 본당신부 알릭스(J. Alix, 韓若瑟) 신부 사제관
사제관
사제관
초대 앙드레(J. Andre, 安學古) 신부 묘비(우), 3대 본당신부인 르 각(C. Le Gac, 郭元良) 신부 묘비(좌)
초대 앙드레(J. Andre, 安學古) 신부 묘비(우), 3대 본당신부인 르 각(C. Le Gac, 郭元良) 신부 묘비(좌)
초대 앙드레(J. Andre, 安學古) 신부 묘비(우), 3대 본당신부인 르 각(C. Le Gac, 郭元良) 신부 묘비(좌)
초대 앙드레(J. Andre, 安學古) 신부 묘비
1888년 7월 앙드레(J. Andre, 安學古) 신부가 초대 본당신부로 부임하여 한수(漢水) 이남 경기도 최초의 본당이 되었다. 이듬해에 앙드레 신부는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초가성당을 지었다. 관할지역은 수원군(현 화성군), 용인군, 안성군, 평택군 등 네 군에 공소는 24개, 신자총수 1,790명에 달하였다. 1889년 6월 앙드레 신부는 ‘덕곡(德谷) 김익제(金益濟) 사건’으로 고발당하여 서울 주교관에 소환되었다가 돌아와 이듬해에 별세하였다.
초대 앙드레(J. Andre, 安學古) 신부 묘비
3대 본당신부인 르 각(C. Le Gac, 郭元良) 묘비
3대 본당신부인 르 각(C. Le Gac, 郭元良) 신부는 3년간 열심히 전교하다가 1914년 장티푸스에 걸려 별세하여 초대 앙드레 신부와 같이 왕림리 공동묘지에 묻혔다.
3대 본당신부인 르 각(C. Le Gac, 郭元良) 묘비
사제관 측면
사제관 측면
사제관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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