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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곡성지 홍유한 묘 (경북 봉화군 봉성면 우곡리 15-1)

성지순례/한국 성지(카톨릭,기타)

by baesungsoo 2013. 1. 27.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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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곡성지            (이하 글, 사진 출처- http://info.catholic.or.kr/)


한국 교회 창립 이전부터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스스로 그 가르침을 고요한 가운데 실천한 홍유한 선생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홍유한 선생은 1726년 충남 예산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뛰어난 자질을 발휘했던 그는 이미 8,9세에 사서삼경(四書三經)과 백가제서(百家諸書)에 통달하여 신동이라는 평판을 얻었다. 그의 나이 16세때인 1742년 그는 실학자 성호 이익의 문하에 들게 된다. 이익 선생이 "천주실의(天主實義)"와 "칠극(七克)" 등 서학을 연구할 때 홍유한은 유학이나 불교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오묘함이 천주학의 가르침 안에 숨어 있음을 누구보다도 먼저 간파했다. 이에 그는 그 가르침을 몸소 실천할 것을 결심하고 1757년 고향인 예산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고요한 가운데 참 진리에 따라 살았던 그는 1775년 더 깊은 믿음을 위해 경상도 소백산 밑 경북 영주군 단산면 구구리라는 곳을 찾아 들어갔다. 7일마다 하루를 주일로 정하고 기도와 묵상으로 매일을 거룩히 지내는 동시에 육욕을 금해 30세 이후에는 정절의 덕을 실천했다. 고행과 절식, 기도와 묵상으로 만년을 보낸 그는 1785년 1월 30일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비록 그는 세례를 받고 교적에 오른 공식적인 천주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들어 얻은 진리에의 깨달음을 실제 삶속에서 실천함 경건함 인물이었다. 그가 만년에 이르러 10년간 살았던 구구리에는 그의 자취가 서려 있는 유택지가 있고 이곳에는 정종 4년 홍유한의 조부(祖父)인 홍중명이 임금에게 하사받은 효자문이 가보로 내려오며 권일신과 주고받았던 홍유한의 친필 서찰들이 보존돼 있기도 한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우곡성지 

 

성지 안내문

 

성지 안내도  

 

성지 입구 십자가와 홍유한 동상

 

작품 설명 

 

십자가와 홍유한 동상

 

십자고상  

 

수계생활에 전념한 농은 홍유한


우곡 성지는 한국 최초의 수덕자인 농은 홍유한(1726-1785) 선생이 묻히신 유서 깊은 곳이다. 농은 선생은 풍산 홍씨 양반 가문으로 정조 임금의 외가(혜경궁 홍씨의 친정) 집안이다. 농은 선생은 당시 학문과 문벌이 높은 집안에 태어났으나, 과거를 보아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16세 때부터 유명한 실학자 성호 이익 선생의 문하에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그러다가 1750년경부터 성호 이익 선생의 제자들과 함께 <천주실의>, <칠극> 등 서학을 연구할 때 그는 다른 제자들보다 깨달은 바가 남달리 커서 1757년경에는 서울의 살림을 정리하고서 충청도 예산으로 내려가서 <칠극>에 의한 천주교 수계생활을 18년 동안 혼자 하였다. 1775년에는 옛날부터 학문의 고장인 소백산 아래에 있는 경상도 땅 순흥고을 구고리(영주신 단산면 구구리)로 와서 10년 동안 수계생활을 더욱 철저히 하다가 60세인 1785년 1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축일표(祝日表)도 없고 기도책도 없이 7일마다 축일(주일)이 온다는 것만 알고 매달 7일, 14일, 21일, 28일에는 경건하게 쉬고 이런 날에는 속세의 모든 일을 물리치고 기도에 전념하였다. 또 금육일(대재, 소재)을 몰랐으므로 언제나 가장 좋은 음식은 먹지 않는 것으로 규칙을 삼았다. 이렇게 열심히 수덕을 하는 동안에 정조 임금께서 두 번이나 스승으로 궁중에 모시려고 했으나 사양하였다. 그러다가 1785년 1월 30일(음) 60세 나이로 세상을 떠나서 그해 4월에 이곳 봉화군 봉성면 문수산 산록에 있는 우곡에 안장했다. 한편 그의 집안 후손 중에는 교회 창립의 주역인 순교자 권철신 암브로시오 집안과 칠촌 조카인 순교자 홍낙민 루가, 홍재영과 이소사(홍낙민의 아들과 며느리), 103위 성인에 포함된 홍병주 베드로와 홍영주 바오로 등 7명의 순교자가 있다. [출처 : 안동교구 홈페이지]

 

농은 홍유한 동상

 

 

<농은 홍유한 묘>

 

홍유한 묘                (출처- http://info.catholic.or.kr/)

 

홍유한 묘  

 

홍유한 묘   

 

 홍유한 묘  

 

홍유한 묘  십자고상

 

홍유한 묘  십자고상 

 

홍유한 묘  

 

홍유한 묘비

 

 

<홍유한 후손 순교자묘> 

 

홍유한 후손 순교자묘              (출처- http://info.catholic.or.kr/)  


안동교구 우곡 성지 입구 피정집 맞은편에 있는 홍유한 후손 순교자묘 모습이다. 한국교회 최초의 수덕자인 농은 홍유한 선생은 이곳에서 수계생활에 전념하였고, 그분의 뜻을 이어받아 신앙을 증거하다 순교한 후손은 13위에 이룬다. 안동교구에서는 선조 순교자들을 현양하고자 하는 후손들의 뜻을 수용해 교구설정 40주년을 맞아 2009년에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13위 후손 순교자들의 순교터에서 흙을 담아 홍유한 선생의 묘가 있는 산 아래에 가묘를 조성하고 현양비를 세웠다. 13위 후손 순교자는 신유박해 때 순교한 홍정호, 홍낙민, 강완숙, 홍필주, 홍낙임(5명), 기해박해 때 순교한 홍재영, 심조이, 홍아기, 정소사, 성 홍병주, 성 홍영주(6명), 그리고 병인박해 때 순교한 홍봉주, 홍 베드로(2명) 이다.

 

홍유한 후손 순교자묘  

 

홍유한 후손 순교자묘  

 

홍유한 후손 순교자묘     

 

홍유한 후손 순교자 현양비

 

홍유한 후손 순교자 현양비

 

홍유한 후손 순교자 현양비 

 

홍유한 후손 순교자묘의 제대

 

홍유한 후손 순교자묘의 제대

 

 

 

 

 

 

 

 

 

 

 

 

 

 

<십자가의 길>

 

우곡 성지의 십자가의 길             (출처- http://info.catholic.or.kr/)


한국교회 최초의 수덕자인 농은 홍유한 선생 후손 순교자 가묘에서부터 시작해서 산 위에 있는 홍유한 선생 묘소까지는 십자가의 길 15처가 조성되어 있다. 

 

 

  

 

 

 

 

 

 

 

 

  

 

 

 

 

 

<우곡성지 사제관, 피정의 집, 청소년 수련관> 

 

피정의 집 

 

 피정의 집 

 

피정의 집  

 

사제관

 

사제관

 

청소년 수련원

 

청소년 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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