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청리 형방 고려궁지 (아래 글, 사진 출처- http://info.catholic.or.kr/)
인천교구 강화 성당 바로 위쪽에(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있는 강화고려궁지(江華高麗宮址) 사적 제133호 고려의 궁궐터이다. 1232년(고려 고종 19년) 몽골군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하여 왕도를 강화로 옮긴 후 1270년(원종 11년) 화의를 맺고 개성(開城)으로 환도할 때까지 39년 동안의 왕궁터다. 이 자리에는 당시의 건물 기단(基壇)과 3단으로 된 돌계단이 남아 있었으나 후에 강화 유수부(江華留守府) 건물이 세워졌으며, 1976년에는 3문의 출입문을 세우고, 돌담을 돌려 국방 유적으로 정화하였다. 고려 궁정의 건물로는 본궁인 연경궁(延慶宮)을 비롯하여 많은 궁들이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없어졌다. 고려궁지는 고려가 몽고의 침략에 항전하던 39년 동안의 궁궐터다. 고려 궁지는 고려 고종 19년(1232년) 6월에 최우(崔瑀, ?~1249)가 왕에게 추천하여 강화로 도읍을 옮긴 후 궁궐과 관청 건물을 세우기 시작하여 고종 21년(1234년)에 완성한 궁이며 이 궁에는 본궁인 연경궁을 비롯하여 14개의 작은 궁궐 건물들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고려 원종(元宗, 재위:1259~1274) 11년(1270년)에 개성으로 환도한 후 대부분 무너지거나 불타 없어졌다.
관청리 형방 고려궁지
관청리 형방 고려궁지
관청리 형방 고려궁지
관청리 형방 고려궁지
관청리 형방 고려궁지
관청리 형방 고려궁지
관청리 형방 고려궁지
관청리 형방 고려궁지 내부
관청리 형방 고려궁지 내부
관청리 형방 고려궁지 내부
고려궁지 강화동종 (아래 사진 출처- http://info.catholic.or.kr/)
강화동종
강화동종
고려궁지 외규장각 (아래 사진 출처- http://info.catholic.or.kr/)
외규장각
외규장각
외규장각
외규장각 내부
외규장각 내부
외규장각 내부
<강화유수부 동헌>
강화유수부 안내판 (아래 글 사진 출처- http://info.catholic.or.kr/)
강화유수부 동헌
궁궐터내에는 강화유수부 동헌은 1627년(인조 5)에 인조가 강화로 피신했다가 돌아온 뒤 설치한 것으로 조선시대 관아로 천주교 박해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동헌과 형방에서 천주교인들에 대한 극심한 고문이 자행됐다고 한다. 1638년(인조 16)에 유수(留守) 김신국이 개수하였고, 1769년(영조 45)에 유수 황경원이 현윤관(顯允觀)이라 명명하였다. 현재는 명위헌(明威軒)과 이관당(以寬堂)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당호(堂號)는 송나라 미남궁체(米南宮體)를 잘 쓰는 당시(영조)의 명필이며 학자였던 윤순(尹淳:1680∼1741)의 필적이다. 건물규모는 정면 8칸, 측면 3칸, 건평 24칸이고 구조는 익공계(翼工系)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었다. 궁궐터에는 이외에도 보물 제11호인 강화 동종, 경기도 유형 문화재 26호인 강화유수부이방청(江華留守府吏房廳) 이 자리 잡고 있다. 교우들을 끌어내다가 참수했다는 처형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또 일부 주민들이 그 위치를 증언하기도 하지만 아직 정확한 고증에 의해 확인되지는 않았다. 형방은 강화 성당 뒤쪽으로 추정된다. 강화는 굽히지 않는 신앙의 현장이자 역사의 교육장이기도 하다. 현재 알려진 순교자로는 1868년, 프랑스 선교사를 입국시키는 데에 협력한 최인서(崔仁瑞, 요한), 장치선 회장과 천주교인으로 최인서와 함께 있다가 잡혀 서울 포청에서 옥살이를 하다 강화 병영지 진무영(鎭武營)으로 호송되어 효수(梟首, 죄인의 목을 베어 높이 메달아 두는 형벌) 당한 박 서방(박순집의 형), 조 서방, 그리고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국 군함에 다녀왔다는 죄로 박상손(朴尙孫), 우윤집(禹允集), 최순복(崔順福) 등이 이곳 갑곶 나루터, 일명 막구터에서 목을 베어 말뚝에 올려놓아 천주교를 경계하도록 하였다. 1866년에는 성연순(일명 전순)과 원윤철(元允哲, 1787~1866, 베드로/요한)이 양화도(절두산)에서, 1870년에는 권 바오로가 통진에서 순교하였다.
강화유수부 동헌
강화유수부 동헌 외부
강화유수부 동헌 외부
강화유수부 동헌 외부
강화유수부 동헌 외부
강화유수부 동헌 내부
강화유수부 동헌 내부
강화유수부 이방청 (아래 사진 출처- http://info.catholic.or.kr/)
강화유수부 이방청
강화유수부 이방청
강화유수부 이방청
강화유수부 이방청
강화유수부 이방청
강화유수부 이방청
강화유수부 이방청
강화 역사유적지
강화는 역사적 흔적이 많은 곳이다. 약 2만 년 전 구석기 시대의 유물을 비롯해 단군 신화의 유적, 팔만대장경 및 금속 활자와 고려자기 등을 꽃피웠던 곳이 바로 강화이다. 조선 시대에는 정묘호란(1627년), 병자호란(1636년), 병인양요(1866년)와 신미양요(1871년), 운양호 사건(1875년), 강화도 조약(1876년 2월) 등 역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강화를 배경으로 이루어졌다. 수려한 자연 경관과 아울러 보물, 사적, 천연 기념물 등 모두 88점의 문화재들은 강화를 찾는 순례객들에게 신앙 교육뿐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 교육에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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