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비에토 [Orvieto] (출처- http://cafe.daum.net/bpguide/FbqL/6880)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 지방 테르니 주에 있는 도시이다. 이 시는 농업 중심지이며 백포도주, 특히 응회암 낭떠러지에서 익힌, 너무 달지 않으면서도 맛이 좋은 전통 포도주와 최근에 개발한 담백한 포도주로 유명하다. 연철·도자기·레이스 등의 수공업이 이루어지며, 철도와 도로를 통해 로마와 피렌체(아레초 경유)와 연결된다. 인구 22,761(1984). (글 출처- 다음 백과, 브리테니커)
오르비에토 대성당 (출처- http://cafe.daum.net/bpguide/54JT/192)
팔리아 강과 키아나 강의 합류지점에서 195m 북쪽에 있는 고립된 암반지대 위에 자리잡고 있다. 에트루리아인들의 도시였다가 뒤에 로마의 도시가 되었다. 로마 시대 말기에는 우릅스베투스라고 불렸는데, 이탈리아식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롬바르디아 공작령의 중심지였으며, 12세기에 자치행정구가 되기 전에는 토스카나 백작령의 중심지였다. 민중 봉기와 이웃 도시들과의 분쟁을 많이 겪은 뒤 1448년 교황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곳에 있는 고딕 양식의 대성당은 이탈리아에서 매우 유명한 것으로 1263년 시 바로 남서쪽에 있는 볼세나의 한 성직자가 자신이 축성하던 호스티아(성찬식의 빵)에 핏방울이 나타나는 것을 목격한 기적을 기념하기 위해서 1290년에 세우기 시작했다. 코르포랄레 교회당의 은으로 만든 큰 성골함에는 볼세나에서 가져온 성체포(아마로 만든 제단 덮개보)가 들어 있다. 이 대성당의 서쪽 정면은 화려하게 다색장식으로 조각된 대리석 건축물이며, 3개의 박공벽으로 구분된 사이사이에 작은 뾰족탑들이 세워져 있다. 내부는 수많은 중세시대의 조각가들과 화가들의 작품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데, 특히 루카 시뇨렐리와 프라 안젤리코가 누오바 예배당에 그려넣은 프레스코가 유명하다. 또한 16세기의 여러 조각품들로 장식되어 있는 이 대성당은 1580년에 완공되었다. 13세기의 아름다운 건축물로는 주교관저, 포폴로 궁전, 파피 궁전 등이 있다. 이중 파피 궁전의 일부는 시민박물관으로 이용되어 미술작품들과 볼시니라고 하는 인근 에트루리아인들의 고분에서 발굴된 고대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이밖에도 산안드레아 교회(11~12세기), 산도메니코 교회(1233~64), 공원으로 쓰이는 옛 요새(1364),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산패트리티우스 샘(1527~40) 등 유명한 유물들이 있다. 1970년대에 침강과 산사태가 잇따라 발생하자 도시에 있는 건축물들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대대적인 토목공사가 시행되었다. (글 출처- 다음 백과, 브리테니커)
오르비에토 대성당 (출처- http://cafe.naver.com/firenze/2060113)
오르비에토 대성당 (출처- http://cafe.daum.net/bpguide/54JT/192)
오르비에토 대성당 (출처- http://cafe.daum.net/bpguide/FbqL/6880)
오르비에토 대성당 (출처- http://cafe.daum.net/bpguide/54JT/192)
오르비에토 대성당 (출처- http://cafe.naver.com/firenze/1953540)
오르비에토 대성당 (출처- http://cafe.naver.com/firenze/1953540)
오르비에토 대성당 (출처- http://cafe.daum.net/bpguide/54JT/192)
오르비에토 대성당 (출처- http://cafe.daum.net/bpguide/54JT/192)
오르비에토 대성당 (출처- http://cafe.daum.net/bpguide/54JT/192)
오르비에토 대성당 (출처- http://cafe.daum.net/bpguide/54JT/192)
오르비에토 대성당
오르비에토 대성당
오르비에토 대성당 (출처- http://cafe.daum.net/bpguide/54JT/192)
오르비에토 대성당 (출처- http://cafe.daum.net/bpguide/54JT/192)
오르비에토 대성당 (출처- http://cafe.daum.net/bpguide/54JT/192)
오르비에토 대성당 (출처- http://cafe.daum.net/bpguide/54JT/192)
오르비에토 대성당 (출처- http://cafe.daum.net/bpguide/54JT/192)
흰색과 검정색의 대리석으로 1290년부터 300년에 걸쳐 지어졌다. 부벽 이나 첨탑 등이 없었다면 손색없는 완전 현대식 건물로 보인다.
오르비에토 대성당 (출처- http://cafe.daum.net/bpguide/54JT/192)
오르비에토 대성당 (출처- http://cafe.daum.net/bpguide/54JT/192)
토스카나의 루카 시뇨렐리가 그린 프레스코화 “최후의 심판”이 인상적이고 천장에 안젤리코가 그린 그리스도상도 볼만하다.
오르비에토 대성당 (출처- http://cafe.daum.net/bpguide/54JT/192)
오르비에토 대성당 (출처- http://cafe.daum.net/bpguide/54JT/192)
오르비에토 대성당
오르비에토 대성당
오르비에토 대성당 (출처- http://cafe.daum.net/bpguide/54JT/192)
오르비에토 대성당
성체보 (출처- http://www.standrewkimchicago.org/xe/35698)
서기 1263년 독일인 사제, 프라그의 베드로(Peter of Prague) 신부는 로마로 순례가던 도중 볼세나(Bolsena)에서 묵게 되었다. 그는 경건한 사제로 알려져 있었으나, 축성된 면병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계신다는 것을 믿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그가 순교자 성녀 크리스티나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당에서 미사 성제를 거행하고 있었는데, 성체 축성을 하자 마자 축성된 면병으로부터 피가 흐르기 시작하여 신부의 손가락들을 적시고, 제대와 성체포(聖體布) 위로 흘러내렸다. 신부는 몹시 당황하여서 처음에는 피를 감추려고 했으나, 곧 미사를 중단하고, 마침 교황 우르바노 4세께서 머물고 계시던 이웃 도시 오르비에또(Orvieto)로 인도해 달라고 하였다. 교황은 신부의 보고를 듣고 나서 즉시 이 일을 조사하도록 성직자들을 파견하셨다. 모든 사실이 밝혀졌을 때 교황께서는 그 교구의 주교에게 그 성체와 피묻은 성체포를 오르비에또로 모셔오도록 명하셨다. 추기경들과 대주교들, 그리고 그 밖의 고위 성직자들 앞에서성체를 모셔오는 행렬을 맞으셨으며 성체와 성체포를 대성당안으로 모셨다. 이 기적이 있은지 1년이 지난 1264년 8월에 교황 우르바노 4세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기도문과 함께 그리스도 성체성혈 축일(the Feast of Corpus Christi)을 설정하셨다. 성체 축일 설정의 700주년이었던 1964년 8월에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기적의 성체포가 모셔져 있는 오르비에또의 대성당에서 미사 성제를 거행하셨다.
성체보 (출처- http://www.standrewkimchicago.org/xe/35698)
성체에 대한 의심을 갖고 있던 프라하의 피에트로 신부가 볼세냐의 성 크리스티나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던중, 면병에서 피가 흘려내려 성체보까지 적시는 기적이 일어났던 그 성체보인데 오랜세월이 지난 지금도 거므스름한 핏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볼세냐의 기적의 성체보를 잘 담아 오르비에또까지 옮겨온 함
오르비에토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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