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잔의 성모(러시아어: Казанская Богоматерь), 66.0×55.0㎝, egg tempera on wood, 2010
러시아 카잔의 수호성인으로서 성모 마리아를 그린 러시아 정교회의 가장 거룩한 성화상(이콘) 가운데 하나이다. 가톨릭교회에서도 카잔의 성모상의 모사품들을 제작하여 공경하고 있다. 카잔의 성모상은 수세기 동안 러시아의 수호자로 공경을 받아왔으며,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두 곳에 소재하고 있는 카잔 주교좌 성당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정교회 성당들이 카잔의 성모에게 봉헌되어 그를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다. 이 이콘은 호디기트리아(Hodigitria), 즉 '길의 인도자 성모' 이콘의 변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모의 머리는 아기 예수 방향으로 숙여져 있다. 예수는 오른손으로 축복을 하고 있으며, 왼손은 겉옷에 가리워 보이지 않는다. 왼쪽에는 이사야 예언자이고 오른쪽에는 성녀 가타리나를 그렸다. 이 성화에 대한 역사는 16세기에 시작되었다. 1579년 이반 대제가 통치하고 있던 러시아의 도시 카잔이 가공할 화재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 도시는 모스크바에서 500마일 거리에 있는 볼가강 유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화재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삶을 다시 영위하고자 노력하게 되었고 그들과 더불어 한 군인과 그의 가족들도 있었다. 사건은 그 군인의 8살난 딸 마트로나가 집밖에서 놀고 있을 때 발생했다. 바로 성모님의 환시를 본 것이다. 성모님은 어린 마트로나에게 불에 탄 그녀 부모의 집을 찾아 돌더미 속에서 한 성화를 찾아내도록 명하셨다. 마트로나가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엄마는 그 같은 일을 깨끗이 잊어버리라고 하는 것이었다. 성모님은 세 번이나 당신 요청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고자 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세 번째 요청하셨을 때 분노를 터뜨리시며 성모님은 어린 소녀에게 선언하시는 것이었다. “만약 네게 내가 전한 메시지를 공포하지 않으면 나는 다른 도시에 나타나겠다. 그리고 이곳은 어두운 불행이 닥쳐올 것이다.” 즉각적으로 행동이 개시되었다. 마을에서 덕망있는 대표 한사람과 성직자가 나섰던 것이다. 성모님께서 지적해 주신 장소에서 마트로나는 정말 오래된 천으로 온통 감싸여진 숨은 보물을 찾아내게 되었다. 그것은 분명 대단히 오래된 성화였다. 그러나 그림물감은 달궈져 벌겋게 되었으며 찬란한 빛이 전체틀에서 비쳐나왔다. 기적적 성화를 찾아냈다는 말이 불길보다 빨리 퍼져 나갔다. 그리하여 다른 지역에 사는 수천의 사람들이 카잔대교구의 대주교를 모시고 위대한 애국적 사제이며 후에 모스크바 총대주교가 된 에르모겐 신부가 주임으로 있는 가장 가까운 성당을 향해 엄숙한 행진을 하였다. 기적들이 풍부했고 이 모든 성스러운 위로의 행렬이 계속되는 중이었으나 평화적인 상태가 우세한 것이 아니었다. 러시아 역사에서 이 어려운 시기는 모스크바의 압도적인 힘에 의해 점령당한 잘 알려진 “수난의 시기”라고 부른다. 폴란드와 스웨덴이 양대 침략자였으며, 약탈자의 무리들은 강탈을 자행하고 재산을 불태우고 양민들을 붙잡아갔다. 총대주교 에르모겐은 자신의 생명을 바쳐 침략자들을 몰아내었다. 1611년이 되자 미닌과 포야르시키 왕자 같은 이들이 대권을 잡게 되었다. 그러나 궁극적 승리는 카잔의 성화에 묘사된 것처럼 마리아와 아들 예수께 기도함으로써 얻어진 것이다. 러시아군대는 내부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이질적인 요소가 많았다. 이 사실 역시 거룩한 성화에 대한 수많은 기도를 통해 극복될 수 있었다. 그 때 모스크바는 아직 적의 수중에 있었으나 집중적인 3일 기도와 단식이 있은 후 러시아군은 사랑하는 그의 도시를 탈환했고, 적을 섬멸했던 것이다. 그 결과 1611년 11월 2일 거대한 환희의 행렬이 카잔의 성모성화를 엄숙히 호위하여 새로운 자유의 도시 모스크바로 행진해 들어갔다. 포야르스키 왕자는 성화를 성모봉헌성당 안에 모셨다. 그 성화는 카잔의 성모성당이 건립되어 축성될 때까지 그 장소에 안치돼 있었다. 19세기 러시아는 또 다시 커다란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다. 차이코브스키의 “1812 서곡”에서 무엇이 일어났었나의 힌트를 주고 있다. 나폴레옹과 그 군대들이 모스크바 바로 코앞에 집결해 있었다. 카잔의 성모님이 보호해 주심으로 인해 러시아의 위난에서 나폴레옹의 결정적인 패배로 역전된 것이다. 오늘날 러시아인들은 카잔의 마돈나를 추앙하여 대성당을 건립함으로서 그들의 감사하는 마음을 나타내 보였다. 그 성당은 30년에 걸쳐 지어졌으며, 1917년까지 사람들의 신심을 위한 한 성지로 남게 되었다. 1917년 신성 러시아 제국(국민들은 자기 나라를 항상 이렇게 불렀다)은 갑작스럽게 방향전환을 해 버렸다. 볼셰비키는 권력과 무력을 탈취하여 전국을 무신론 공산주의 상태로 몰고갔다. 레닌은 카잔의 성모성화를 모셔 놓은 멋진 대성당을 증오했다. 성당이 위치하고 있는 붉은 광장은 모든 영광된 러시아의 역사와 성모님의 도움,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로우심과의 굳은 유대를 되살려 주고 있다. 그래서 질투심에 가득찬 레닌은 카잔의 성모성당을 파괴하기 위해 한가지 민중의식을 창안해 냈다. 대성당이 성벽파괴용 망치에 의해 부서져 나갈 때 레닌은 이렇게 외쳐댔다. “너희들의 하느님은 지금 어디 있느냐?” 외견상으로는 전적으로 레닌의 승리였다. 그러나 과연 그랬을까? 러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카잔의 성모성당이 서 있는 붉은 광장거리의 헛된 음모를 알고 있다. 그 곳에 다른 건물들을 들이려는 거듭된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항상 건축을 저지하는 알수 없는 방해가 있다. 비록 러시아의 자유화를 위한 시기가 아직 이르지 않았을지라도 성모님께서는 결국에 가서 당신이 한번 옹호해 주셨던 하느님의 ‘성전’카잔의 성모성당터에 대해 승리하고 계신 것이다. 성당이 파괴되기 전 카잔의 성화가 어떻게 안전하게 대성당에서 옮겨졌는지는 아무도 무르고 있다. 거의 동시에 카잔의 성모성화는 일종의 “순례성모”혹은 “순회하는 성화”가 되었던 것이다. 처음에 그 성화는 전혀 관심밖에 있었다. 그러다가 암시장에 나타났는데 한 아프리카 백만장자가 그림을 보고 탄복하여 성화를 매입하여 영국에 있는 파르레이 성으로 보냈다. 거기서 왕비 제니아가 카잔의 성화가 진품임을 알아보았다. 비록 공산주의자들은 부인했으나 전문가의 감정을 통해 성화의 정체가 모든 의구심을 누르고 확실히 입증되었다. 그때즈음 일의 방향이 흥미롭게 전환되었다. 귀중한 보물성화의 오래된 역사속 무대에 새로운 장이 펼져진 것이다. 1963년 전세계 파티마성모사도직(푸른군대)은 포르투갈에 있는 파티마 국제센터에 커다란 비잔틱식 성당을 건립했다. 왜? 푸른군대는 성모님께서 파티마 어린이들에게 하신 말씀의 실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회개할 것이고… 나의 티없는 성심은 승리할 것이다.” 푸른군대는 우리 세계의 상황이“악한”러시아인과 “선한”미국인들 간의 문제가 아님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동서 간에 사랑과 평화로 함께 맺어져야만 하는 문제인 것이다. 파티마의 비잔틴 성당은 동서간의 이러한 결속을 가져오도록 하는 시발점의 하나인 것이다. 이러한 목적으로 푸른군대는 1970년에 처음 성화를 파르레이 성에 보관한 사람의 딸로부터 귀중한 보물 카잔의 성모 성화를 되사들여 즉시 파티마 국제센터의 비잔틴 성당 안에 보존토록 했다.푸른군대가 카잔의 성모 성화에 상당한 댓가를 치루고 되찾았음에도 불구하고 푸른군대 회원들은 그 성화를 그들의 영적 재화로 생각지 않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러시아의 해방자며 수호자”의 수탁자로서 생각하고 있다. “러시아 성모”가 공식적으로 기독교 신앙으로 돌아설 때 푸른군대는 역사적이고 유명한 성모성화를 그의 국민들에게 되돌려 줄 것이다. 막시밀리안 꼴베 성인은 언젠가는 성모상이 크레믈린궁 꼭대기 붉은 별 자리에 들어설 것을 확신하며 말한 바 있다. 그때 정의와 평화가 난무할 것이고 “러시아의 해방자며 수호자”가 티 없으신 성심의 승리를 증명해 줄 것이며, 예수께서 영원히 우리의 왕이 되실 것이다.
(출처- 마리 에밀리 수녀, 1985년 Soul지에서, 오, 나의 어머니시여 / 마리아 영성에 관한 강의 참고 자료집(1) [출처] 카잔의 성모|작성자 바다의 별
카잔의 성모 이콘
'카잔의 성모'로 알려진 16세기의 작은 이콘 성화를 놓고 러시아와 로마에서 작은 소란이 일고 있다. 1597년 러시아 연방의 타타르스탄 공화국의 수도인 카잔에 신비스럽게 나타난 이 성화는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통해 많은 기적들이 일어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그런데 1904년 이 이콘 성화는 카잔 주교좌성당에서 도난을 당했고 현재는 바티칸의 교황 숙소에 걸려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해 10월 이 성화가 정교회의 종교적 유산이기 때문에 러시아 정교회의 알렉세이 2세 총대주교를 통해 돌려주겠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생기면서 사정이 복잡해졌다. 카잔의 성모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일면서 러시아의 예술 전문가들이 성화의 진품 여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나탈리아 쿠그레에바라는 한 전문가는 지난 1월말 바티칸으로부터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볼 때 이 성화는 16세기의 진품이 아니라 18세기 초기나 중기에 제작된 복제품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카잔 시의 한 당국자는 지난 2년 동안 수집한 자료를 통해 이 성화가 진품임을 확인한다고 다시 주장하고 나서 작품의 진위 여부가 러시아와 로마에서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카잔의 성모 이콘
카잔 성당,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카잔성당은 러시아가 프랑스 나폴레온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바벨 1세 황제의 명령에 의해 10년간의 공사 끝에 1811년 완공하였다. 이 성당은 건축가 바로니킨이 로마 바티칸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과 비슷하게 만들라는 황제의 뜻에 따라 지어졌는데, 푸른색 청동으로 만든 거대한 돔 지붕과 94개의 코린트 양식의 기둥이 반원형의 회랑을 이루고 서있는 멋진 건물이다. 폭정을 펼친 것으로 유명해 뇌제(雷帝)라고 불리는 이반 4세 황제가 타르족과의 전투와 17세기 초 폴란드가 침입했을 때 성모상의 도움으로 승리할 수 있었는데, 이런 이유로 19세기 초 나폴레온의 침공시에도 이 성모상을 들고 전투에 참가하여 승리하였다. 나폴레온을 몰락의 길로 몰아넣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는 프랑스까지 진격하여, 여러 성을 함락시키며 나폴레온 깃발과 성들의 열쇠를 빼앗아 왔다는 데, 지금도 성당 안에는 107개의 프랑스 깃발이 전시되어 있다. 이 성당에 있는 카잔 성모대상은 1579년 볼가 강변의 카잔 마을에 사는 9세 소녀의 꿈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일러준 대로 찾아가 그곳에 있던 성모대상을 가져와 이콘으로 장식하면서 카잔성당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 성당 앞에는 쿠드조프와 바르클레 드 톨리의 동상이 서 있는데, 이 성당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지었기 때문이다.
카잔 성당,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카잔 성당,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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