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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아라임(Sharaim),키르베트 케야파(Khirbet Qeiyafa)

성지순례/이스라엘

by baesungsoo 2014. 3. 12.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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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아라임(Sharaim),키르베트 케야파(Khirbet Qeiyafa)          (출처- http://blog.naver.com/paul3377/186491900)

 

◉ 위치: 예루살렘 서남쪽 32km.

케야파에서 서쪽 2km에 아세가(Azekah)가 위치함.

케야파에서 남동쪽 2.5km에 소고(Socoh)가 위치함.

케야파에서 북동쪽 2.5km에 야르뭇(Tell Jarmuth)가 위치함.

케야파에서 서쪽 12km에 가드(Gath, Tell es Safi)가 위치함.

10-9 B.C.에 가드는 30헥타르 였다.

◉ 11세기 말-10세기 초 B.C.에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갈등이 심한 상태였다. 블레셋의 성읍인 가드에 대응할 만한 성읍의 건축이 필요하였으므로 케야파가 건설되었을 것이다.

 

사아라임(Sharaim),키르베트 케야파(Khirbet Qeiyafa)              (출처- http://blog.naver.com/paul3377/186491900)

 

사아라임(Sharaim),키르베트 케야파(Khirbet Qeiyafa)         (출처- http://blog.naver.com/paul3377/186491900)

 

사아라임(Sharaim),키르베트 케야파(Khirbet Qeiyafa)          (출처- http://blog.naver.com/paul3377/186491900)

 

※ 고대 이스라엘 국가의 출범시기

1. 최대주의자(Maximalist): 벤자민 마자르, Y. 아하로니

출애굽을 사실로 받아들이며, 다윗과 솔로몬은 실존 인물이고, 1000 B.C.에 통일 왕국을 이루었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한 중앙 집권적 통치가 이루어 졌다고 주장한다.

2. 최소주의자(Minimalist): 이스라엘 핑켈슈타인, Herzog

출애굽 사건을 부인하며, 다윗과 솔로몬은 중앙 집권적인 통일 왕국의 왕이 아니라 작은 부족의 족장 정도라고 주장한다.(성경의 많은 부분을 허위 역사로 본다.) 고대 이스라엘의 통일 왕국의 출범 시기를 920 B.C.라고 주장한다.

3. 극최소주의자(Ultra Minimalist): 샤론, 고대 이스라엘 국가의 출범 시기를 900 B.C.라고 주장한다. 

※ 저연대법을 주장하며, 다윗과 솔로몬을 하나의 부족장 정도였다고 주장하던 최소주의자들의 이론이, 키르베트 케야파에서 10세기 B.C.의 거대한 성읍이 발굴되면서, 다윗이 통일 왕국의 중앙 집권적 권력을 가졌다는 것이 입증됨으로 인하여 설 자리를 잃게 되었고, 반면에 성경의 다윗과 솔로몬의 내용이 사실임이 증명되었다.

 

Aerial photograph of Khirbet Qeiyafa at the end of the 2012 excavation season. (출처- ttp://blog.naver.com/paul3377/186491900) 

 

샤아라임(Sharaim),키르베트 케야파(Khirbet Qeiyafa)

◉ “Khirbet Qeiyafa”는 아랍어로 정확한 의미는 모른다. 지역의 베드윈들은 “Khirbet Daoud(David‘s ruin:다윗의 폐허)”라고 부른다.

   현대의 히브리 이름은 “Elah Fortress(엘라 요새)”라고 부른다.

◉ 성경의 샤아라임(히:two gates)으로 동일시된다(수15:36; 삼상17:52). 면적이 3-4배가 더 큰 라기쉬나 므깃도에도 성문이 하나만 존재하는데, 키르베트 케야파에는 서쪽과 남쪽에 두 개의 성문이 발굴되었다.

◉ 샤아라임, 야르뭇, 아둘람, 소고, 아세가, 소라, 에스다올 등은 유다 지파에 속한 성읍이다(수15장).

◉ 유적 연대: 10세기 초 B.C.(다윗 왕 시대) 연대측정방법:

1. 지층분석(층위학)

2. 토기 분석(토기 연대 측정법)

3. 올리브 씨앗(two burned olive pits)에 대한 탄소 14 연대 측정(옥스포드 대학에 의뢰함) 측정 결과: 1000-975 B.C.

    또는 1000-969 B.C. 성경의 다윗 통치 시기(1000-965 B.C.)와 정확히 일치한다. 솔로몬 통치 시기는 965-930 B.C. 이다.

◉ Khirbet Qeiyafa는 1000-960 B.C.에 약 20년 간만 잠깐 존재했다가 사라졌다.

◉ 면적: 2.3hectare(헥타르). ◉ 현재 남아있는 성벽 높이: 2-3m.

◉ 성벽 길이: 700m ◉ 성벽 폭: 4m(Casemate Wall) --- 전체의 성벽에 방이 있는 구조. ◉ 요새에 사용된 돌: 총 200,000ton.

  이렇게 큰 성읍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부족장의 힘으로는 부족하며, 통일 왕국의 중앙 집권적 권력을 가진 왕만이 건축할 수 있다 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 남쪽 성문의 서쪽에는 3-5톤 정도 되는 큰 돌을 기초석으로 사용하였다. 이렇게 큰 돌들은 성벽 중간 중간에서도 기초석으로 사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축조 기간: 약 10년.

◉ 성벽안의 거주민: 약 500-600명(발굴자: Yosef Garfinkel 교수).

◉ 유대인들은 돼지와 개는 부정한 동물이므로 먹지 않았는데, 케야파에서는 돼지 뼈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반면에 블렛셋 성읍인 가드에서는 66개(전체 뼈의 8.2%)의 돼지 뼈가 출토되었다. 양과 염소의 뼈가 가장 많이 출토되었으며, 케야파에서는 48개(전체의 뼈 중에 47.5%)가 출토되었고, 라기쉬에서는 1113개(전체의 뼈 중에 75%)가 출토되었다.

◉ 케야파 중앙 꼭대기에 있는 직사각형 빌딩(37×45m)는 하나의 요새이다. 이곳에는 bedrock을 잘라서 만든 고대 물저장고가 있는데 20세기에 시멘트로 막았다. 

 

케야파에서 가장 중요한 문자를 기록한 오스트라콘       (출처- http://blog.naver.com/paul3377/186491900)

 

케야파에서 가장 중요한 문자를 기록한 오스트라콘        (출처- http://blog.naver.com/paul3377/186491900)

히브리어(or proto-canaanite)로 기록된 토기 파편(Ostracon) 발굴(2008년), 현존하는 가장 긴 문장(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다.)

BC 11-10세기에 이미 유다에서 문자가 사용되고 있었다. 게젤 카렌다(BC 10세기)보다 더 오래된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라는 논쟁이 있다. 에밀 푸에크는, 4열이 통일된 군주(사울)의 취임식을 언급한다고 믿는다. 

 

# Emile Puech's(Ecole Biblique의 교수, 유명한 금석학자)의  키르베트 케야파의 오스트라콘 비문 해석

1열, Do not oppress, and serve God ... despoiled him/her

억압하지말라, 그리고 하나님을 섬겨라 ... / 그녀로부터 탈취하였다.

2, The judge and the widow wept; he had the power

재판과 과부는 울었다; 그는 힘을 가졌다.

3, Over the resident alien and the child, he eliminated them together

외국에 거주자와 아이위에, 그는 함께 그들을 몰아내었다.

4, The men and the chiefs/officers have established a king

남자들과 우두머리들은 한 왕을 확립하였다.

5, He marked 60 ?servants among the communities/ habitations/ generations

그는 공동체원들 / 거주민들 / 자손들 사이에 60 ?〕종들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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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ifa UniversityGershon Galil 교수의 해석

1, you shall not do [it], but worship (the god) [El]

너는 [그것을] 하지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배하라

2, Judge the sla[ve] and the wid[ow] / Judge the orph[an]

그 종과 그 과부 / 그 고아를 재판하라

3, [and] the stranger. [Pl]ead for the infant / plead for the po[or and]

그리고 그 낯선사람. 그 유아를 위하여 변호하라 / 그 가난한 사람을 변호하라

4, the widow. Rehabilitate [the poor] at the hands of the king

그 과부. 왕의 손들에 그 가난한 사람을 회복시키라

5, Protect the po[or and] the slave / [supp]ort the stranger.

가난한 자와 노예를 보호하라 / 외부인을 대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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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성문 외부에서 촬영함                     (출처- http://blog.naver.com/paul3377/186491900)

 

서쪽 성문(사방 구조의 성문) 내부에서 촬영함               (출처- http://blog.naver.com/paul3377/186491900)

 

큰 돌로 축조된 서쪽 성벽                 (출처- http://blog.naver.com/paul3377/186491900)

 

길이 2m, 높이 1m의 큰 기초돌, 서쪽 성벽                (출처- http://blog.naver.com/paul3377/186491900

 

동쪽 성벽(좌측은 헬라시대의 성벽, 우측은 철기 시대의 성벽)          (출처- http://blog.naver.com/paul3377/186491900)

 

좌측에 3-5톤 되는 큰 돌을 사용해서 축조한 남쪽 성문            (출처- http://blog.naver.com/paul3377/186491900)

 

케야파에서 촬영한 엘라 골짜기와 소고(중앙의 노란색 언덕)         (출처- http://blog.naver.com/paul3377/186491900)


(출처-http://biblia.co.il/1724-2/)


성서의 역사는 숭고합니다. 그러나 그 유고한 역사에 비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서의 역사를 증명해 줄만한 증거들은 턱없이 모자랍니다. 1947년 이전까지 인류가 가지고 있었던 가장 오래된 성서의 사본은 10세기 초반에 티베리아스에서 기록된 알렙포 사본이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 땅 티베리아스에서 기록되었지만, 시리아의 알렙포에 있는 유대인 회당에 보관되었다고 하여서, 붙여진 이름이 알렙포 사본이지요. 그런데, 이 사본은 1947년 시리아 지역의 반 유대주의자들의 폭동에 의해서 화재로 일부가 손상됩니다.

이 도시를 발굴하던 중, 도시의 성문 주변에서 가로 세로 약 15센티미터인 깨어진 토기가 발견이 되었습니다. 자랑스럽게도 이 토기를 발견한 사람이 히브리대학교에서 고고학을 전공하는 한국인 학생입니다. 이 토기가 우리가 읽는 성경 본문의 역사를 뒤바꾸어 놓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발견 된 이 토기의 글자를 좀 더 명확하게 구성한 다음 롤스톤(Rollston)과 쀼에쉬(Puech)와 같은 고대 언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분석했습니다. 이 토기에 기록된 글자는 기원전 10세기의 것이며, 기록된 고대 알파벳으로 기록된 문장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을(를)] 하지말라. 그리고 [….을(를)] 섬기라
2. 노예와 과부를 재판하라 고아 (*-*)를 재판하라
3. *와 나그네를*. 어린 아기를 위해 변호하라. 가난한 사람과 (**-**)를 변호하라.
4. **과부**. 왕의 손에서 [구제 받아 마땅한 사람들을] 구제하라.
5. 가난한 사람[과] 노예를 보호하라. 나그네을 도우라.

신명기에서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 과부, 고아, 나그네에 대한 공정한 재판(신 10:17-19)과 노예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을 보호하고자하는 법령들(신 16:10-15)의 원형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기록 시기가 위에서 말한대로 11-10세기로 생각되니, 현재까지 성서 학자들이 말하는 신명기의 기록 시기보다 신명기가 소중하게 생각하였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보호의 거룩한 말씀의 역사가 적게는 300년, 길게는 800년 끌어 올리는 셈이 된 것입니다. 당연하지만, 증명할 수 없었던 성경 본문의 역사를 증거하는 돌판을 보니,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출처-http://biblia.co.il/1724-2/)

알렙포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매우 안타까운 사건이기는 하지만, 이 즈음에 사해 바다 북쪽 해안가에 있는 쿰란이라는 지역의 11개의 동굴들에서 성경이 기록된 두루마리들과 파피루스들이 대거로 출토되는데, 이 두루마리들은 성경의 역사를 알렙포 사본보다 1,000여년 앞당겼습니다. 에스더서를 제외한 모든 구약성경이 다 발견된 쿰란의 두루마리들은 기원전 2세기를 전후해서 기록된 것들이었기 때문이지요. 모세가 대략 기원전 13세기에 처음으로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다고 한다면, 알레포 사본은 모세의 시대와 대략 2,300년의 시간적인 간극이 있었지만, 쿰란에서 발견된 사본들 덕분에 모세와의 시간 차가 1,000여년으로 좁혀진 것입니다. 쿰란에서 발견된 두루마리들을 근거로 학자들 사이에는 성경의 기록 역사를 대략 기원전 13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 사이로 보고 치열한 논쟁들을 벌이고 있습니다. 성경 자체에 근거를 두는 학자들은 성경 기록의 역사를 기원전 13세기나 그 바로 직후를, 좀 더 비평적인 학자들은 기원전 5세기부터 3세기 사이가 성경이 기록된 시기라고 추정합니다. (출처-http://biblia.co.il/1724-2/)


(출처-http://biblia.co.il/1724-2/)

2008년에 히브리대학교 가핀켈(Garfinkel) 교수가 다윗과 골리앗의 전장(삼상 17)이었던 엘라 골짜기의 한 언덕을 발굴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도시는 수 세기에 걸쳐서 마을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텔”(Tel)이라고 불리는 작은 인공 언덕의 형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언덕의 도시는 아주 독특하게 단 한 시대에만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고, 곧 버려졌습니다. 텔이 아닌 것이지요. 그곳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연구하면서 알게된 것은 그 마을이 있었던 시기가 기원전 11세기 후반에서 10세기 중반(1050-970BCE: 성경에서 사울-다윗의 시대)으로 아마 삼상 17:52에 나오는 “사아라임”(뜻. 두 개의 문)일 것이라는 것이예요.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4미터 두께의 성벽의 길이가 약 700미터에 달하고, 5톤 무게의 거석이 도시 성벽을 이루는 마름돌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아서 아마도 전쟁을 대비한 전진 기지의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10킬로미터 떨어져 블레셋의 도시이자 골리앗의 도시인 가드가 있으니 말이지요. 아마 골리앗의 군대를 맞선 사울이 이끄는 이스라엘의 군대가 진을 꾸렸다면, 바로 이 곳이 아니었을까요? 확실하게 대답을 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사실이 이 도시의 발굴 이야기 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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