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ef of Mithra (100-200 after J-C), the Old Persian god of the sun, sacrificing the bull - in the Louvre-Lens
(출처-http://en.wikipedia.org/wiki/Mitra)
미트라교의 태양신이다. 조로아스터 이전에(BC 6세기나 그 이전) 이란인은 다신교를 믿었으며 미트라는 신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신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계약과 상호간의 의무의 신으로 히타이트인과 미탄니인 사이의 조약을 담고 있는 설형문자판에서 서약의 신으로 나타난다. 더욱이 인도의 몇몇 베다 문서에는 신 미트라(Mitra, 미트라의 인도식 표기)가 '친구'와 '계약'으로 묘사된다. 미트라란 단어는 계약과 상호간의 의무가 친구를 만들기 때문에 양자 모두를 의미하는 뜻으로 번역되었다. 미트라는 중재자로 불렸다. 또한 미트라는 태양의 신이며 만물을 품은 빛나는 빛의 신이어서 맹세의 대상이었고 그리스인과 로마인은 미트라를 태양신으로 간주했으며, 왕들의 신이기도 했을 것이다. 왕과 왕의 전사 사이의 쌍무(雙務) 신이자 전쟁신이었으며, 왕이 보증하는 정의의 신이기도 하여 사람들이 정의와 계약을 준수할 때는 언제든지 미트라를 경배했다. 가장 중요한 미트라 의식은 황소를 제물로 바치는 것이다. 이 의식의 기원이 조로아스터교 이전이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나 조로아스터는 황소의 희생제물을 비난했기에 그 의식은 고대 이란의 우상숭배의 일부였던 것 같다. 이러한 추론은 미트라가 흰 황소나 달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소마라는 이름을 가진 신의 희생에 마지못해 참여하곤 했다는 내용의 인도 문서에 의해 확인되었다. 로마의 기념비들에 따르면, 미트라는 나중에 달로 변형되는 흰 황소를 마지못해 제물로 바친다. 미트라에게 바쳐진 신전과 봉헌물은 로마와 오스티아에서, 군사적 변경을 따라서는 영국, 라인·도나우·유프라테스 강에 수없이 많이 있다. 평화로운 지역에서는 봉헌물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데 봉헌자가 있다면 지방의 통치자나 제국의 공직자였다. 로마 세계는 몇 세대 안 가서 페르시아의 이 신에게 완전히 동화되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로마의 도시와 종교를 부활시켜려고 했을 때 미트라를 잊지 않았다. 307년 카르눈툼(빈 근처의 도나우 강가에 있음)의 봉헌식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와 그의 동료들은 제국의 보호자(fautori imperii sui)인 미트라에게 제단을 봉헌했다. 그러나 312년 콘스탄티누스는 십자가를 기치로 밀비아교(橋) 전투에서 이겼다. 미트라 의식을 즉각 공식적으로 금지시키지 않았으나 호의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예배가 갑자기 쇠퇴했다. 미트라에 대한 헌신이 357년과 387년 사이에 다시 나타난 것은 사실이나 단지 로마에서뿐이었다. 사람들은 곧 미트라에 대한 헌신을 그만두었고 제국이 미트라교도에 대해 . 로마 시의 오래된 이방인 귀족 출신의 봉헌자들이 콘스탄티노플의 그리스도교 황제를 공공연히 반대했지만 미트라는 여러 이방신 중 하나로 격하되었고 그 신비의식은 점차로 사라졌다. 로마인 반대자들이 패배했을 때, 이방신의 예배도 모두 금지되었다.
미트라
Mithras-Helios, in Phrygian cap with solar rays, with Antiochus I of Commagene.
(Mt Nemrut, 1st century BC (출처-http://en.wikipedia.org/wiki/Mitra)
미트라신 황소 희생의식 벽화, 2세기 말 (출처- http://www.ryujbartfresco.com/b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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