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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마리아 과달루페의 왕립 수도원 (스페인 과달루페)

성지순례/남유럽(스페인)

by baesungsoo 2013. 8. 2.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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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에서 가장 오래된 무데하르 양식의 회랑은 1389~1405년에 건설되었다. 1908년 이루 수도원에는 프란체스코 수도회 수사들이 살고 있다

 

 

 

수르바란의 회화 8점이 걸려 있는 수도원의 성구실 

 

 

 

수도원 정면 입구에 있는 문의 세부. 얇은 청동판에 성모의 생애를 말해 주는 장면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산타마리아 과달루페의 왕립 수도원 ( Royal Monastery of Santa Maria de Guadalupe )


1993년에 지정된 세계문화유산이다. 400년 동안 스페인 종교 건축의 뛰어난 모범사례이며 1492년의 중요한 두가지 사건 - 가톨릭 왕들의 이베리아 반도 정복과 크리스토퍼 콜롬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도착 - 을 상징화한 것이다. 수도원 내에는 유명한 성모마리아 상이 신대륙의 그리스도화의 강력한 상징으로 세워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성모 조각상은 전도사인 성루카가 직접 만든 것으로, 이슬람교도에게 쫓기던 그리스도교도가 과달루페 강 근처에 묻었다고 하는데, 바로 이 전설이 산타마리아 데 과달루페 왕립 수도원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중세에 히에로니무수회 수사들이 ‘에스파냐의 바티칸’이라고 부른 그들의 수도원 본부에는 명성이 자자한 의과대학교를 비롯해 엄청난 장서를 보유한 도서관, 나아가 카스티야 왕국의 왕자들이 교육을 받던 학교가 있었다. 깊고 깊은 산 속에 있는 이 성지는 에스파냐어권 여러 나라의 수호 성인이기도 한 갈색 피부의 성모 덕분에, 순례지로서 오늘날까지 사람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아 왔다.  전설에 따르면, 한 양치기가 과달루페 강 근처에서 목각 성모상을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이 성모상은 성루카가 직접 새긴 것으로, 이슬람군에게 쫓기던 그리스도교도가 714년에 묻었다는 조각상을 양치기가 우연히 발견한 것은 1320년이었는데, 이 이야기는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순례를 위해 건립한 초기 예배당은 나중에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11세 때 성당으로 개축되었다. 1492년의 신대륙 발견, 그리고 그 후에 무어인을 그라나다에서 완전히 쫓아낸 사건처럼 이 수도원만큼 에스파냐의 운명을 좌우한 획기적인 사건과 깊이 연루된 수도원도 없다. 일찍이 히에로니무스회의 본부였던 이 수도원은 중세에는 ‘에스파냐의 바티칸’이란 소리까지 들었으며, 이베리아 반도에서 중요한 문화담당자였다. 산타마리아 수도원에는 이슬람 전통의 영향을 받은 의학 학교뿐만 아니라 깔끔하게 정리된 도서관, 카스티야 왕국의 왕자들한테 궁중 관례 따위를 가르치던 왕립 숙박소 시설도 있었다. 이 성모상 덕택에 수도원은 눈깜짝할 사이에 성모 마리아 숭배의 본산이 되었다. 크리스토발 콜론(영어명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이 과달루페의 성모에게 카리브 해에 있는 섬 하나를 바친 뒤부터 지금까지 과달루페는 신세계 그리스도교 교화의 상징이었다. 즉 에스파냐 식민지, 특히 에스파냐령 아메리카의 수호 성인이기도 한 과달루페의 성모 숭배를 퍼뜨릴 목적으로, 수많은 정복자들이 출항했다.의15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수도원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그 사이에 다양한 건축 양식이 도입되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수도원에는 훌륭한 동질성이 유지되어 왔다. 산타마리아 수도원은 똑같은 히에로니무스 수도회가 관리 운영한 엘에스코리알 수도원과 달리 단계적으로 지었으며, 4세기에 걸친 건축 기술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수도원은 아름다운 산악 경치로 둘러싸인 곳에 있어 방비가 튼튼했으며, 중앙부에는 성당이 있다. 고딕 양식의 이 성당에는 청동 양각을 새겨 놓은 문이 있다. 또한 묘석과 멋진 장식을 새긴 제단, 그 가운데에서도 엘 그레코(본명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의 아들 호르헤 마누엘 테오토코풀로스가 제작한 유명한 제단 뒤 장식벽, 추리게라 양식의 성가대석 등이 볼 만하다. 성구실 안에는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이 1638~1639년에 그린 히에로니무스회 수사들의 생활상을 보여 주는 일련의 그림들로 꾸며 놓았다. 전형적인 무데하르 양식의 회랑에 둘러싸인 안뜰 한가운데에 있는 소예배당에는 에스파냐 르네상스 건축의 대표 장식인 플라테레스코 양식을 사용했다. 성모를 모신 성당과 붙어 있는 호화찬란한 바로크 양식의 대기실과 떡갈나무로 만든 수수하고 작은 성모 조각상은 참으로 대조적이다. 지금도 수많은 신도가 성모상 뒤쪽에 있는 원형 부조에 입맞춤하려고 몰려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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