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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르드 성당 (Notre Dame de Lourdes)

성지순례/서유럽(프랑스)

by baesungsoo 2013. 8. 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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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르드 지도

 

프랑스 남부, 피레네산 기슭에 있는 인구 약 1만 7,000명의 마을이다. 1858년 2월 11일, 이곳 가브 강가에 있는 동굴에 성모 마리아가 발현하셨다. 벨라뎃다 수비르라는 한 가냘픈, 그러나 마음씨 곱고 효성스러우며 신앙심 깊은 소녀 앞에 비길 데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11일부터, 14일, 18일, 19일, 20일, 21일, 23일등 발현은 계속되었으며, 열 한 번 째 발현 때 이곳에 성당을 세우라는 말씀이 있었다. 25일에는 발현하신 자리에 샘이 솟았는데, 28일에 눈병을 앓던 남자가 그 샘물로 눈을 씻자, 당장에 깨끗이 나았다. 7월16일에 열여덟번째의 마지막 발현이 있었는데, 샘물이 잇달아 기적을 나타냈다.

 

루르드 성당           (출처- http://blog.naver.com/lylyly7/150093718923)

 

루르드 성당        (출처- http://cafe.daum.net/Coreansanctus) 

 

프랑스 남서부 피레네 산맥에 있는 작은 마을 루르드에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것은 교황 비오 9세(재위 1846~1878년)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를 선포한지 4년째 되던 해인 1858년이었다. 성모 마리아는 그해 2월11일부터 7월16일까지 18번에 걸쳐 루르드 마사비에르 동굴에서 소녀 벨라뎃다 수비루에게 발현했다. 성모 마리아는 후광이 빛나고 흰 옷에 하얀 베일과 파란 색 허리띠를 두르고 양 발 위에는 노란 장미가 있는 모습으로 벨라뎃다에게 "나는 원죄없는 잉태이다"(Immaculata Counceptio)고 스스로 밝혀 교황이 1854년 선포한 '원죄없으신 잉태'교리가 참된 것임을 증명해줬다. 성모 마리아는 또 벨라뎃다를 통해 교회와 세상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샘물의 원천을 파게 해 그 물을 마시고 씻도록 했다. 아울러 자신이 발현한 장소에 성당을 지을 것을 당부했다. 교회는 루르드 성모 발현 4년 후인 1862년 1월18일 이를 공식 인정했고, 1891년에는 성모 마리아가 루르드에 처음으로 발현한 2월11일을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로 선포했다.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동굴에는 1864년 4월4일 프랑스 리용 출신 조각가 파비슈가 제작한 루르드의 성모상을 안치하고 축성했다. 대부분의 신자 가정에 모셔져 있는 루르드 성모상 원형이다. 성모 발현 동굴 위에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대성전'을 건립, 1876년 축성했다. 종탑 높이만 지상 70m가 되는 대성전 입구 중앙에는 왕관을 쓴 루르드 성모상이 있다.루르드를 순례하는 순례자들은 매일 밤 성모 발현 동굴을 출발해 성지 일대를 돌아 대성전 입구까지 촛불 행렬을 하며 묵주기도를 바친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는 1876년 대성전을 축성할 당시 제6대 조선교구장 리델 주교가 루르드 성모께 한국 교회를 봉헌한 석판이 안치돼 있다. 리델 주교와 리샤르ㆍ블랑 신부 이름으로 봉헌한 이 석판에는 "조선 반도의 선교사들이 바다에서 심한 풍랑으로 고생하던 중 원죄 없으신 동정 마리아의 도우심으로 구원되었음을 기념하여 서약에 따라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루르드 대성전에 이 석판을 설치한다"는 내용이 쓰여져 있다.  성모 발현 동굴 맞은편에는 환자들을 위한 요양 병원이 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자원 봉사자들은 이 병원 환자들을 매일 휠체어나 들것으로 이동시켜 루르드 샘물로 몸을 씻어 주고, 전례에 참례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병자의 완치 모두를 기적이라고 할 수 없지만, 1882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루르드 의료조사사무소는 최초 55년 동안 기적이라고 일컬어질만한 '치유 사건'이 4445건이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교회는 교황 비오 10세(재위 1903~1914년) 지시에 따라 치유 사실에 대한 의학 및 종교적 판단과 함께 교회법에 맞는 형태로 정리하고, 각종 검사와 실험을 통해 4천여건이 넘는 치유사건 가운데 1858~1862년의 8건, 1907~1913년의 33건을 기적으로 공식 인정했다. 또 1946~1970년의 24건과 1987~1999년 1건을 추가해 현재까지 총 66건을 공식 치유 기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특별히 루르드는 성모 사랑이 유난한 한국 신자들이 로마, 이스라엘과 함께 가장 선호하는 성지다. 한국 신자들을 포함, 세계적으로 한해 400여만명의 신자들이 루르드를 찾는다. 루르드 성지에 대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루르드 성모님은 우리의 영혼과 육신의 건강을 돌봐주심으로써 구원의 희망을 안겨주는 자애로우신 어머니"라며 "루르드 성지가 순례자들에게 제시하는 메시지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출처- 세포 [원문보기

 

광장 루르드 성모상               (출처- http://blog.naver.com/lylyly7/150093718923)

 

로사리오 성당(앞), 무염시태 대성당(뒤),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마사비엘 동굴은 오른쪽 아래에 있다.

 

로사리오 성당(앞), 무염시태 대성당(뒤)

 

 루르드 광장                   (출처- http://blog.naver.com/lylyly7/150093718923)

 

로사리오 성당(앞), 무염시태 대성당(뒤)             (출처- http://blog.naver.com/lylyly7/150093718923)

 

로사리오 성당(앞), 무염시태 대성당(뒤) 

 

신 비잔틴 양식으로 지어진 이 성당은 성모님 발현 후 30년이 훨씬 지난 뒤에 완성되었는데, 항상 묵주를 손에 들고 벨라뎃다에게 나타나신 동정 성모님을 위해 특별히 로사리오 대성당(매괴의 대성당)으로 봉헌된 곳이다. 이 성당은 1901년 묵주의 15현의를 뜻하는 작은 15개의 성당들로 둘러싸여 있다. 이 성당에서 성모님 신비에 대해 묵상기도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성당 내부는 아무런 지주나 기둥이 없이 건축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인 물고기 또는 밀알 모양으로 설계되었다.

 

로사리오 성당

 

로사리오 성당

 

로사리오 성당        (출처- http://cafe.daum.net/Coreansanctus)

 

로사리오 성당

 

로사리오성당 내부                  (출처- http://blog.naver.com/lylyly7/150093718923)

 

성당내부

 

성당내부

 

성당내부

 

내부

 

내부, 환희의 신비1단: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심을 묵상합시다 .묵주기도 모자이크화

 

내부, 환희의 신비 2단: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찾아보심을 묵상합시다, 묵주기도 모자이크화

 

내부, 영광의 신비4단:예수님께서 마리아를 하늘에 불러올리심을 묵상합시다.묵주기도모자이크화

 

내부

 

로사리오성당 내부 모자이크화                 (출처- http://blog.naver.com/lylyly7/150093718923)

 

파이프오르간

 

로사리오 성당

 

로사리오 성당

 

로사리오 성당

 

로사리오 성당

 

로사리오 성당

 

로사리오 성당 

 

로사리오 성당 

 

루르드 대성당 앞에 있는 벽화


1981년7월 제42차 국제성체대회가 루르드에서 개회되었음(1989년 44차 대회는 우리나라에서 개회)  가운데: 성체운동의 수호성인 성파스칼 바이런(축일:5월17일) 오른쪽: 예수성명 IHS 신심의 시에나의 성베르나르디노(축일:5월20일) 왼쪽: 복자 둔스 스코투스(1265-1308)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의 수호자이며,1991년 7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었다.  

 

로사리오 성당 

 

로사리오 성당 

 

로사리오성당

 

<원죄 없이 잉태된 자의 성당, 로사리오성당 뒤>

 

대성당(무염시태 성당)          (출처- http://weekly.encyber.com)

 

무염시태는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라는 뜻이다. 여기에 성당을 짓도록 하라"고 하신 성모님의 요청에 의해 지어진 것이며, 성당 제대는 성모님 발현 장소의 바로 위쪽에 위치하고 있다. 성당 양쪽의 유리창은 발현 당시부터 1876년 루르드 성모상의 역사까지를 보여 주고 있으며 또 좀 더 위쪽 유리창에는 세상 태초부터 교황 비오 9세가 성모무염시태 신비를 정식 교의(믿을 교리)로 발표하기까지의 역사를 표현하고 있다. 1862년 처음으로 구상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대성전은 13세기 고딕 양식 설계로 이루어졌는데, 1871년에 낙성되고 1876년에 축성되었다. 고딕양식의 종루는 그 높이가 지상 70m에 이르며, 금색이 칠해진 중심부는 성모마리아가 벨라뎃다에게 원죄 없는 잉태를 알려 준 말씀이 문자로 새겨져 있다. 입구 중앙에는 왕관을 쓴 루드르의 성모상이 있으며, 성당 후면 부에는 여러 개의 소성당이 있다. 성당의 회중석과 중심부에는 성모마리아의 일생이, 소성당에는 루드르에서의 발현?순례?벨라뎃다의 일생이 그려진 스테인드 글래스가 있다. (출처- http://www.paxkorea.co.kr)

 

원죄 없이 잉태된 자의 성당, 고딕양식의 종루로 그 높이가 지상 70m 

 

원죄 없이 잉태된 자의 성당(1,2층)

 

원죄 없이 잉태된 자의 성당 입구

 

원죄 없이 잉태된 자의 성당

 

원죄 없이 잉태된 자의 성당 지하예배당            (출처- http://blog.naver.com/lylyly7/150093718923)

 

원죄 없이 잉태된 자의 성당 내부                  (출처- http://blog.naver.com/lylyly7/150093718923)

 

원죄 없이 잉태된 자의 성당 내부 

 

원죄 없이 잉태된 자의 성당 내부 

 

원죄 없이 잉태된 자의 성당 내부 

 

원죄 없이 잉태된 자의 성당 내부 제대

 

원죄 없이 잉태된 자의 성당 내부 성수대

 

성당 후면 부에는 여러 개의 소성당이 있다. 성당의 회중석과 중심부에는 성모마리아의 일생이, 소성당에는 루드르에서의 발현?순례?벨라뎃다의 일생이 그려진 스테인드 글래스가 있다.

 

 

 

 

 

 

성모님께서 발현 하신 마사비엘 동굴


동정 성모께서 1858년 2월 11일 부터 7월 16일 사이에 벨라뎃다 수비루에게 18번 나타나셨던 곳이다. 1864년 4월 4일에 축성된 이 성모상은 마씨비에유 동굴에 발현 시와 같은 모습으로 안치되어 있다. 성모상 밑에는 감실이 있어, 성체를 모셔 놓았고, 제대 왼편 동굴 안에 자물쇠로 잠겨진 돌판 아래에는 1858년 2월 아홉 번째 발현 당시의 성모님의 말씀 에 따라 벨라뎃다가 땅을 파헤쳤을 때 솟아올랐던 샘이 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성모님께서는 피레네 말로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자"라고 말씀하시면서 벨라뎃다에게 자신의 신분을 알려주셨다. 제대 왼쪽 동굴 안편에 자물쇠로 잠겨진 돌판아래에는 1858년 2월 25일 9번째 발현당시에 성모님의 말씀에 따라 벨라뎃다가 땅을 파헤쳤을 때 솟아 올랐던 샘이 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성모님께서 피레네 발로 "나는 원죄없이 잉태된 자"라고 말씀하시면서 벨라뎃다에게 자신의 신분을 알려주셨다. 

 

성모님 발현동굴  

 

성모님 발현동굴             (출처- http://blog.naver.com/lylyly7/150093718923)

      

루르드의 성모상                  (출처- http://cafe.daum.net/Coreansanctus)


1858년 2월 11일 이후 프랑스 루르드(Lourdes)에서 16∼18번 발현한 성모님의 모습을 재현한 것으로 각 가정에 모셔둔 소형 성모상과 성당 마당 한쪽에 설치된 성모동굴의 성모상은 대부분 이것이다. 머릿수건과 옷은 모두 흰색이고, 푸른색 허리띠를 두르고 있으며, 묵주를 오른쪽 팔에 걸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발등에는 장미송이가 놓여있다. 성모동굴은 1858년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루르드의  마사비엘 동굴을 재현한 것으로, 당시 성모님은 14세 된  소녀 베르나데트(1844∼1879)에게 나타나 “나는 원죄없이 잉태된 자”로 이름을 밝히고는 회개와 보속의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성모 형상은 베르나데트의 증언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이후 노틀담 자매수녀회에 입회한 가난한 방앗간 집 맏딸 베르나데트는 1933년에 시성되었다. 한국에 루르드 성모상이 많이 보급된 이유는 한국에 가장 먼저 진출한 파리 외방전교회의 영향 때문이다.

(글 출처- http://blog.empas.com/sks466)

 

루르드의 성모상

 

광장 

 

광장 

 

미카엘 경당에서의 미사 봉헌

 

 성 비오10세 지하성당 - 3만명이 수용가능하다고 함,  가운데 벨라뎃다 성녀

 

지하성당 (사진- 블로그 > 디카로 사진을)

 

루르드의 동굴 성당

 

촛불봉헌때의 왕관을 쓰신 성모님 모습 

 

루르드 성모상 

 

성수를 뜨는 곳               (출처- http://blog.naver.com/lylyly7/150093718923)

 

성녀 베르나데타(축일:4월16일)의 생가 정면의 모습.

 

성녀 벨라뎃다의 생가에서( 성녀께서 쓰시던 6단 묵주- 가정을 위한 기도 1단이 더 있었다고 한다)

 

 

<성모출현과 보고과정 그림>      (출처- http://cafe.daum.net/Coreansanctus)

 

 

 

  

 

 

 

 

 

 

목욕장          (출처- http://cafe.daum.net/Coreansanctus)

 

목욕장

 

목욕장

 

목욕장          [출처] [이상한 옴니버스] 성모마리아 발현지 루르드 기적의 샘에 대한 진실|작성자 메데아

 

성모마리아의 발현지 루르드 기적의 샘에 대한 진실

(출처- http://blog.naver.com/medeiason/120125479011)

(원 출처- 이상한 옴니버스, 성모마리아의 발현지 루르드 기적의 샘에 대한 진실

 

1. 우선 루르드의 샘으로 병이 완치되었다고 자기신고를 한 사람의 수는 1862년 이래 6,700명에 이르지만, 교회로부터 정식으로 '기적'으로 인정된 사례는 아쉽게도 66건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66건은 현재까지의 기간으로 나눌 시 약 2년에 1건 미만 꼴이며, 시대와 함께 의학이 발전을 이룬 근래 들어선 10년에 1건 이하로 그 수가 줄어들었습니다. (1960년부터 현재까지의 50년간 인정된 사례는 4건에 불과합니다) 이것을 현재 연간 600만 명의 순례자와 관광객 중 샘물의 기적을 바라는 사람의 수를 10명 중 1명으로 계산했을 때, 60만X149년=약 9000만 명 중 66건이며 이는 지금까지 약 136만 명 중 1명꼴로 기적을 체험했다는 수치가 나오게 됩니다. 또, 비교적 의학과 과학이 발달한 근래인 50년 동안의 사례를 분석해보면 60만X50년=3000만 명이므로 약 750만 명 중 한 명이 기적을 체험했다는 분석이 나오게 됩니다. 물론 이는 기적을 바라는 사람의 분포를 10%로 측정했을 때로, 경우에 따라 기적을 체험하는 확률이 더욱 낮아질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확률이 낮아진다면 사실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라는 말도 약간은 민망해질 정도입니다. 물론 이렇게 낮은 확률을 보이게 된 데에는 현명한 교회측이 '이때까지 받아 온 의료의 효과와 자연 회복 등 과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현상을 넘은 치유인지, 그 치유가 지속적인 효과를 가져오는지 증명해야 한다'라는 매우 엄격한 기준을 마련한 탓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이러한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한 66건의 사례는 정말 기적으로 봐도 무방할 수 있지만, 100% 루르드 샘의 효과로 병이 치유된 것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으며 실제 마음가짐과 생활습관이나 식습관의 변화 덕분에 불치병이 치료된 경우를 확률로 따지면 오히려 이러한 기적보다도 높은 확률을 보여줄 것이라는 회의론자들의 주장도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참고로 국내의 한 방송을 통해서도 알려진 베르나데트와 기적의 샘 이야기에선 샘물에 어마어마한 양의 게르마늄이 포함되어 이른바 게르마늄 광천수로 표현된 적이 있지만, 실제로 그 양은 많지 않았으며 산소, 질소, 탄산 석회, 마그네시아, 극소량의 탄산철, 알칼리성 탄산염 또는 규산염, 칼륨과 나트륨의 염화물, 극소량의 칼륨과 소다의 황산염, 극소량의 암모니아, 극소량의 요오드 등의 성분을 함유한 본질상 매우 깨끗한 수질로 조사되었습니다)

2. 베르나데트가 보았던 성모마리아와 그녀의 사후 일어난 기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사실, 베르나데트는 그 누구에게도 성모마리아를 보았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녀는 단지 자신이 본 여인을 '흰 귀부인'이라 표현했으며, 루르드의 기적의 샘에 대해서도 그녀는 단 한 번도 '기적의 샘'이라고 말한 적이 없었으며 여인을 성모마리아로, 샘을 기적의 샘으로 부른 것은 그녀의 주위로 모이던 군중과 후에 그녀를 인정해 성녀로 추앙하게 되는 교회측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가난한 소작농의 딸이 '무원죄의 잉태'라는 어려운 교회용어를 알 리가 없으므로 이런 말을 한 여인의 정체는 성모마리아다라고 주장했던 당시 교회 조사위원회 측의 의견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하지만, 제정된 지 4년이 넘은 교회용어를 일자무식으로 보이는 소녀가 알 리가 없다는 고정관념은 마치 '코팅리 요정사진'을 옹호했던 코난 도일의 발언과 비슷해 보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상한 옴니버스 밝혀진 요정사진의 진실과 번외단편인 코팅리 요정사진의 나머지 진실을 참조하시길) 그리고 베르나데트는 한 번도 자신에게 보이는 여인이 성모마리아라고 한 적이 없으며, 그 여인을 비롯해 그녀 자신도 '기적의 샘', '병이 낫는다' 라는 말을 한적도 없거니와 오히려 기적을 기대하고 샘으로 모여둔 대중들과 교회측의 희망에 의해 루르드의 샘은 기적의 샘으로 불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 당시 천식을 앓고 있던 베르나데트는 기적의 샘에는 눈도 주지 않은 체 천식치료를 위해 이웃마을의 온천장을 다녔으며 샘의 기적에 대해 묻는 사람에게 '그 이야기에 사실은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하기에 이릅니다. 

3. 마지막으로 부패하지 않고 지금까지도 생전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는 그녀의 시신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요?

 

일반에 공개된 베르나데트의 관과 그녀의 시신

 

처음 행해졌던 발굴에서 무덤의 높은 습도 때문에 그녀와 함께 매장된 십자가와 로사리오는 색이 변색하고 부식되었지만, 그녀의 옷을 축축이 적셔놓을 정도의 습도와 알맞은 환경 덕분에 시신의 부패를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하지만, 1925년부터 네베에 있는 생 길다 수도원 교회에 안치하기 위해 두 번째로 무덤을 발굴했을 때 검게 변색한 그녀의 얼굴과 움푹 패인 눈, 그리고 진행된 부패로 일반에 공개하기에 부적절하다고 생각한 교회측이 그녀의 내장 일부를 없애고 사진을 기초로 생전의 얼굴을 흉내 내 정교하게 만든 '마스크'를 얼굴 위에 덮은 체 일반에 공개하게 됩니다. 결국, 성녀 베르나데트의 부패하지 않는 시신은 교회에 안치되어 일반에 공개되며 사람들에게 기적의 감동을 보이며 신앙심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맙니다.

 

가까이서 찍은 그녀의 시신

 

이야기의 끝에서 우리는 한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본 환영이(아니면 그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대중에 의해 성모마리아로 불리게 되었고, 자신이 만든 샘이(실제 조사결과 베르나데트가 팠던 진흙 근처의 바위 자체가 이미 샘물의 원천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기적의 샘으로 불리며 병마에 지친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각지에서 온 환자들이 기적을 바라며 샘물을 마시고 몸을 씻는 것을 보며 그녀가 얼마나 괴로워했을지를. 그녀가 꽃다운 나이에 평생을 수도원에서 살기로 결심했던 것은 속세의 관심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나 어떠한 심적인 변화보다는, 이러한 일이 자신으로 말미암아 생겼다고 자책하며 적어도 자신 혼자만이라도 기적을 바라며 루르드의 샘을 찾는 많은 환자를 위해 평생을 기도하겠다는 생각에서 내린 결정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이후 샘에서 일어났다는 기적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던 그녀는 병마 때문에 괴로워할 때에도 기적의 샘을 찾지 않고 평생을 기도하며 살지만, 너무나 안타깝게 지금도 기적을 믿는 사람들을 위해 땅 위로 나와 계속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출처] [이상한 옴니버스] 성모마리아 발현지 루르드 기적의 샘에 대한 진실|작성자 메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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