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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주름 치프테 미나넬리 사원 (터키)

타종교신전/이슬람교사원

by baesungsoo 2006. 7. 1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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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주름 치프테 미나넬리 사원* 사진출처  http://www.turkeypa.com

 

에르주룸(Erzurum)


1. 에르주룸의 유래와 역사

① 도시의 유래

  비잔틴 황제 테오도시우스(Theodosius the Younger)가 에르주룸에 성을 쌓고 그 도시를 ‘테오도시오폴리스(Theodosiopolis)’ 라고 불렀다. 이 성은 아르젠(Arzen-rum, 로마인들의 아르젠이라는 뜻)이라 불려졌다.

  ② 도시의 역사

   622년에 이 도시에 살고 있던 아르메니아 인들에게 그리스 정교로 개종하라고 압력을 주던 평의회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압력은 성공하지 못했다. 비잔틴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5세는 개종을 하지 않는 지역 사람들을 트레이스로 추방하기도 했으나, 이러한 방법으로도 아르메니아인들의 그리스 정교로의 개종을 성공시킬 수가 없었다.

  이 도시는 아랍인들과 아르메니아인인 바그라티데스와 아바시드스의 지배를 받은 후 1049년에 셀축 터키에 의해 정복되었고 이때 이 도시의 이름이 ‘아르즈 엘 룸’으로 변경되었다.

  비잔틴 제국이 무너지면서 에르주룸은 1517년에 오스만 터키인들이 새 주인이 되었다. 오스만 터키인들은 이 지역을 고수하기 위해 러시아와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다. 1829년에는 러시아에게 빼앗겼다가 약 50년 후인 1878년에 재탈환하였다. 또 제1차 대전에서는 러시아 군대가 이곳을 재점령했으나, 1918년 이후 터키 영토에 귀속 되었다.

  제1차 대전이 발생하기 이전까지 에르주룸은 아르메니아인들의 주요 거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쿠르드인들이 이주해 살고 있다. 쿠르드인들의 인구는 알 수 없지만, 일시적으로 이주해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겨울철이 지나면, 동부지역에 살고 있는 쿠르드인들은 일자리를 찾아 에르주룸으로 이동해 온다. 쿠르드인들은 주로 펀득(일종의 개금 같은 것)을 수확하기도 하고 기타 농사를 위한 일손을 돕는다. 수확이 끝나는 겨울이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


2. 에르주룸의 지역적 특성

  ① 농산물의 집산지

  에르주룸은 올투강(Oltu Cayi), 아라스강(Aras Nehri), 유프라테스강(Fieat Nehri)의 상류 발원지이며 1900m의 고원지대에 위치한다. 이 지역은 부근 하곡 평야에서 산출되는 농산물의 집산지로서 여기에서 생산되는 주요작물은 호밀, 보리, 밀 등이다. 주요산업으로는 제혁, 가죽제품 제조, 육류 포장 및 농산품 유통을 들 수 있다.

  ② 혹한의 기온

  이 곳의 기온은 겨울이면 한국의 겨울보다 더 춥다. 무려 섭씨 -40도를 오르내린다. 겨울과 봄에 혹독한 찬바람이 몰아치며 겨울이 끝나는 법이 없어 터키에서 가장 추운 도시에 속한다. 또한 일 년의 절반은 눈으로 쌓여있는 지역도 많다. 그래서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훌륭한 스키 활주로가 있어서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은 이곳을 선호한다.

  ③ 위험과 위엄의 도시

  이 도시는 1939년과 1983년에 두 차례의 지진이 발생한 위험한 도시인 동시에, 거대한 팔란도켄 산맥 주변의 장엄한 자연환경은 이 도시의 위엄을 마음껏 과시하고 있다. 이 도시를 관광하는 관광객은 자연 경관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④ 군사적, 정치적 주요 도시

    에르주룸 시는 해발 1,853미터 높이에 위치한 도시로서 인구는 300,000명 정도이며 지리적으로 터키 북서부의 아르메니안 고원에 위치해 있어서 이란과 러시아로 가는 철도 분기점으로 군사상 요지이다. 그래서 19-20세기에 러시아가 세 차례나 점령하기도 했었다. 1919년에 터키의 7월 의회가 처음으로 열린 정치적으로 중요한 도시이기도 하다.


3. 주요 유적들

  에르주룸은 끊임없는 전쟁과 파괴의 역사 속에서도 감탄할 만큼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는 역사적인 건물들이 산재해 있는 야외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두 차례의 지진으로 기독교 유적은 남김없이 파괴되었기에 현존하는 예술품들은 모두 이슬람교 계통의 것이다.

  이 곳에는 세 군데의 큠베트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이 곳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적 건축물로 터키 정복 이후 1세기 동안 이 곳을 다스렸던 봉건 군주 에미르 살툭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① 회교 대사원

  회교 대사원은 1179년 에미르 살툭의 손자가 건축한 것이다. 이 도시에 있는 건축물들 중 백미는 치프테 미나렐리 마드라사으로서 시바스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셀주크 왕조의 술탄 알래딘 케이쿠바트 2세 때 지어진 것이다.

  ② 야쿠티예 신학교

  14세기 일한 올자이토 (ILHAN OLCAYT0)와 몽고 총독에 의해 지어진 야쿠티예 신학교를 꼽을 수가 있다. 이 학교는 외부 장식과 석공예술로 유명하다.

  ③ 그 외의 사원들

  오스만 사람들은 이 도시를 재건하고 재정비하여 1563년 우아한 랄라 파샤 회교사원의 건설에 기여했다. 또한 알라틴 케이쿠바드 통치 때 건축이 시작되어 그의 사후에 완성된 쌍둥이 첨탑이 있는 치프테 미나렐리 사원이 있으며, 하투니예 신학교와 그 옆에 있는 무덤, 알라딘 케이휴스레브에 의해 지어진 7개의 본당과 2개의 돔이 있는 울루 자미(커다란 사원), 등이 있다.

  ④ 에르주룸 박물관

  에르주룸 박물관에는 에미르 술탄의 무덤과 천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출처-   http://holyland.mar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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