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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마하보디 사원 (보드가야)

타종교신전/불교사원

by baesungsoo 2006. 3. 13.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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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보디 사원     (이하 사진출처- http://cafe.daum.net/people4050 )

 

마하보디 사원은 부처님께서 '위없는 깨달음'[무상정각(無上正覺)] 을 증득하신 자리 위에 세운 높이 52m에 달하는 피라미드 형 사원이다. 밑 부분 한 면의 길이는 27m로,  밑바닥의 넓이만 200여평이 된다. 부처 성도 후 약 250년이 지난 기원전 250년 경 이곳을 찾은 아쇼카왕이 보리수나무 옆에 가람을 세우고, 부처가 앉았던 바로 그 자리에 금강좌를 조성하였다. 아쇼카왕의 보드가야 방문은 산치(Sanchi)대탑 동문에도 양각되어 기념되고 있으나, 현재 이곳에는 아쇼카왕 당시의 흔적을 전하는 유물은 없다. 기원전 2세기경에 조성된 바르후트(Barhut)의 난간 기둥에는 마하보디사 경내에 코끼리머리 장식의 아쇼카왕 석주가 분명하게 묘사돼 있지만, 7세기경에 이곳을 다녀간 현장의 순례기록에는 아쇼카왕 석주에 대한 언급이 없다. 짐작컨대 5세기 이전에 이미 유실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마하보디사는 아쇼카왕이 세웠던 사원 터 위에 다시 조성한 것이다. 사원은 인도에서 불교가 쇠퇴하게 된 후에는 스리랑카나 중국의 순례자에 의해 그 명맥을 겨우 유지하였다고 한다. 12세기에는 미얀마의 왕과 네팔의 왕에 의하여 대대적으로 보수되고 몇 개의 사원 건물도 새로이 지을 수 있었다. 12세기 중엽(1158)에 회교도의 침입으로 사원 주변의 많은 것들이 잿더미로 변했는데, 유독 마하보디 사원만 불타지 않고 남게 되었다. 그 연유로는 당시 불자들이 흙을 파다가 사원 건물 전체를 흙 속에 파묻었다고 한다. 한 번 생각해 보시라. 높이 52m에 달하는 9층 건물을 흙으로 덮기 위해 그들이 기울였을 노력과 정성스러움이 얼마만한 크기인가를. 그 뒤 이곳은 자라나는 나무들로 정글이 되었으나 19세기 말에 커닝햄에 의하여 발굴하여 현재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는데, 법현, 현장 두 분 스님의 기록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전한다. 5세기 초에 법현 스님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현재의 마하보디 사원 건물은 없었던 것 같다. 법현 스님의 <불국기>에는 "부처님이 듣도한 곳에는 3개의 승원이 있고 모두 승려들이 살고 있다."라고만 언급되어 있을 뿐 마하보디 사원 건물에 대한 언급은 없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00년 후쯤에 이곳에 당도한 현장 스님은 마하보디 사원을 목격했었나 보다. "보리수 동쪽에 정사가 잇다. 160 -170척(약 50 -60m), 아래 기단 넓이는 20여보이다. 푸른 기와로 쌓았는데, 석회가 칠해져 있다. 여러 층으로 되어 있는 감실에는 각기 금불상이 들어 있다." 현장 스님이 묘사한 내용은 현재의 마하보디 사원과 비슷하게 여겨진다. 따라서 현재의 마하보디 사원은 5세기에서 7세기 사이에 건립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이 시기는 굽타 왕조 때로서 불교 문화가 융성했던 때이기도 하다. 한 때에는 부다가야 지역의 패권을 쥐고 있던 힌두교 신자에 의해 힌두교 사원으로 되었다. 1885년에는 <동방의 빛>이라는 책을 통하여 부처님의 삶과 가르침을 알린 에드윈 아놀드에 의하여 마하보디 사원의 실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1891년 스리랑카의 고승인 아나가리카 담마팔라가  부다가야에 도착하여 성지를 보존하고 불교를 인도에 전파하는 것을 자신의 수행 목적으로 삼아  선포하였다. 이를 계기로 1893년 미국에서 열렸던 세계종교회의에 참여하는 등의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 인도의 국부인 마하트마 간디 선생, 시인 타고르 등이 가세하여 당시의 인도 수상 네루에 의해서 힌두교 측에 마하보디 사원과 그 일대를 불교인들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이후로는 관리위원회가 결성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마하보디 사원

 

마하보디 사원

 

대탑 탑돌이

 

최초의 마하보디 사원 모습. 바르후트(왼편)와 산치 대탑(오른편)의 조각

(출전:인도불적답사기. 불교시대사. 윤호진 지음)     출처 : 푸른 숲에 사는 솔바람처럼 

 

대탑 외벽 감실의 불상들     (출처 : 여련화 불착수)

 

마하보디 대탑의 감실과 불상들        

 

마하보디 대탑의 감실과 불상들        (출처 : 푸른 숲에 사는 솔바람처럼)

 

대탑 불상        (출처- http://cafe.daum.net/people4050 )

 

대탑 불상     (출처 : 추억 되새김질... )

 

불상의 아래에 보면 금박이 부분부분 있는데 무슨 금박지 같은거에서 떼어내서 이렇게 벽면에 바르는 것이다

 

사원 내부 본존불상      (출처- http://cafe.daum.net/people4050 )

 

6평쯤 되어 보이는 법당에는 서쪽 벽면에 약 1m쯤의 불단을 마련하여 부처님을 한 분 모셨다. 원래 사원에 모셨던 불상은 회교도의 인도 침략 때에 파괴되었다고 한다.  637년 경 이곳을 방문했던 현장 스님의 기록에 의하면 법당에서 친견했던 불상의 높이가 11자 5치(3.5m)였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현재의 불상 보다는 훨씬 컸었나 보다. 현재 아름다운 불상은  마한트의 힌두 사원에 버려져 있었던 것을 모셔왔다고 한다.  불상의 높이는 약 1.8m이며 9-10세기 팔라 왕조 시대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불상은 검은 돌로 만들었으나,  불멸 2500년 대제(大祭) 때에 미얀마의 한 불자의 시주로 개금을 했다고 한다. 안내서에는 모든 마군(魔軍)을 항복받고 성도(成道)를 이루시던 때의 부처님의 모습을 나타낸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맺고 있다고 되어 있으나, 황금빛 가사를 덮어두어 알 수가 없다. 이 본존불은 13세기의 작품이다.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키는 형상은 부처가 성도를 이루려 하실 때 악마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음을 증명코자 손으로 땅을 가리키자 땅에서 지신이 나와 그 증인이 되어 준 것을 상징한 것이다

 

본존불상

 

본존불상     (출처-    출처 : 여련화 불착수

 

설법하는 부처 모조품    (출처-  http://cafe.naver.com/zzop)  

 

설법하는 부처 진본 (사르나트 박물관)  

 

마야당 불상      (출처 : 여련화 불착수

 

사원 불단 문양     

 

사원 불단 문양     

 

감실 불상. 아래쪽의 좌우 협시보살상 

 

아쇼카 왕 석주      (출처 : 여련화 불착수)

 

즉위한 후 두 번 이곳 보드가야를 찾은 아쇼카대왕은 금강좌사원과  보리수주변의 돌담을 치고 석주를 세우게 된다. 이 석주의 꼭대기에는 코끼리머리상이 얹어있었다고 하는데, 무칠린다 용왕못 앞에 있는 석주를 아쇼카석주라 부르고는 있지만 그 사실성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금강보좌       (이하 사진출처- http://cafe.daum.net/people4050 )

 

금박 

 

보리수 

 

이 보리수는 부처님 당시의 보리수는 아니다. 그때의 보리수는 1876년에 거대한 폭풍우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죽어 버렸다. 그곳에 다시 보리수를 심기로 하고 부다가야 보리수의 직계 자손이 되는 스리랑카의 아누라다푸라의 보리수 묘목을 가져 왔다. 지금으로부터 2350여년 전에 아쇼카 대왕의 공주였던 상가밋타 비구니가  역시 아쇼카 대왕의 왕자인 오빠 마힌다 비구를 따라 스리랑카에 전법을 떠날 때 부다가야의 보리수 나무 묘목을 가져다 심었다. 이렇게 스리랑카에 옮겨 심었던 보리수 나무가 없었더라면 보리수의 맥이 끊길 뻔 했다. 현재의 보리수 나무는 원래 보리수 나무의 손자뻘이 되는 나무이다. 수령은 약 100년쯤 되었고, 높이는 약 25 - 30m이다. 보리수 나무 아래에는 금강보좌(金剛寶座)가 있겠으나 어두운 데다 조명 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서 알아볼 수가 없다 

 

보리수

 

  

보리수 참배

 

보리수 참배, 왼쪽에는 봉헌탑이 있다     (출처 : 푸른 숲에 사는 솔바람처럼)

 

왼쪽 봉헌탑    

 

불족석(佛足石)             (출처- http://cafe.daum.net/people4050 )

 

부처가 정각을 이루시고 첫발을 내딘 곳에 부처의 발자국이 새겨졌다

 

불족적       (출처 : 푸른 숲에 사는 솔바람처럼)

 

마하보디 사원 북쪽에 있는 경행처의 열여덟 연꽃 가운데 하나

 

설법 모습, 뒤에 있는 나무가 보리수이다        (출처 : 추억 되새김질... )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 나무 아래서 카르마파의 법문을 듣는 스님들 

 

티베트 불교 4대 종파 중 하나인 카규파의 수장인 카르마파. 달라이 라마에 이은 티베트 불교의 큰 스님이다.

 

부처 진신사리 친견 모습,   (출처 : 환희와 기쁨속으로)

 

부처 진신사리 친견 모습

 

사원 내 티벳 불자들의 수행        (출처 : 여련화 불착수)

 

사원은 항상 전 세계에서 모여든 순례자들로 가득하다. 마하보디 사원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단연 티벳인들이 많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마치 마하보디 사원이 그네들의 성지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어쩌면 그들의 활기찬 움직임과 깊은 신앙심이 마하보디 사원을 하나의 고대 불교 유적이 아닌 현실 속에 살아 숨쉬는 불교 성지로 만들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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