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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비스 순례성당 (슈타인가덴)

성지순례/서유럽(독일)

by baesungsoo 2013. 1. 8.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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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 순례 교회 ( Pilgrimage Church of Wies )


1983년에 지정된 세계문화유산이다. 건축가 도미니쿠스 침머만의 작품으로 바바리안 로코코 양식의 걸작품이다. “채찍을 맞은 예수”에게 바쳐진 비스의 순례 성당은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바이에른 시골 마을의 목가적인 풍경에 동화되어 있다. 화려한 내부와는 대조적으로 외관은 소박하다.(출처- 블로그 >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유럽)

 

비스의 순례성당  (출처- http://www.nagne21.net/)


1730년에 비스 마을에서 가까운 슈타인가덴 수도원의 두 수도자는 성금요일의 행렬을 위해 ‘채찍을 맞은 예수’의 목조상을 만들었다. 성금요일의 행사가 끝나자 ‘채찍을 맞은 예수’의 채색 조각상은 슈타인가덴에 있는 한 여관의 다락방에 버려졌다. 예수상의 상처가 너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어, 이를 본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슈타인가덴 근교 마을인 비스에 사는 농부의 아내인 마리아 로리가 이 조각상을 발견하고 자기 침실로 가져왔다. 그리고 1738년 6월 14일, 예수상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비스의 기적’이 일어났다. 마리아는 이 사건을 보고하기 위해 슈타인가덴 수도원을 찾아갔지만, 수도원 쪽에서는 이 이야기를 비밀로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비스의 ‘채찍을 맞은 예수’상의 기적에 관한 소문은 눈깜짝할 사이에 퍼졌다. 마리아 로리의 집은 바야흐로 ‘비스의 우리 주’의 집이 되어, 순례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멋대로 순례를 시작한 것에 화가 난 아우구스부르크의 주교는 사건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조사단을 파견했다. 조사단은 기적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신앙심을 고취하기 위한 은총의 표현으로서 받아들였으며, ‘본질적으로는 순례를 촉진시켜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윽고 유럽 각지의 순례자들이 이 조용한 마을로 몰려오자, 슈타인가덴의 프레몽트레회 대수도원 원장 히아친트 가스너는 이미 밝혀진 사실과 신자들의 압력 앞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1740년에 슈타인가덴 남동쪽 5km 지점에 있는 비스 마을의 언덕 위에 작은 예배당과 예수상을 위한 목조 건물이 만들어졌다. 레히 강과 아머 강, 그리고 알프스 산맥으로 둘러싸인 이 일대는 이윽고 ‘사제가 사는 한 귀퉁이’로 불리게 되었으며, 비교적 좁은 지역에 독일의 어느 곳보다 교회와 수도원이 많이 지어졌다. 슈타인가덴의 수도원과 비스 마을은 예수 조각상이 사람들의 관심을 끈 덕분에 경제적으로 윤택해졌다. 당시에는 수도원이 순례자들을 맞아 큰 수입을 얻는 경우는 흔한 일이었다. 현재까지도 비스의 수입원은 마을을 찾는 순례자들이다. 신도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자, 프레몽트레회는 좀더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큰 성당을 짓기로 했다. 그리고 1746년 7월 10일에 초석을 놓았다. 새로운 성당에는 ‘채찍을 맞은 예수의 순례 성당’이라는 이름이 줕여졌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는 ‘비스’ 또는 ‘비스 성당’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성당 내부

 

프레몽트레회는 란츠베르크에 살고 있는 도미니쿠스 침머만에게 새 성당 건설을 의뢰했다. 침머만은 독일 남부에 수많은 수도원을 건설한 저명한 건축가로서, 비스 성당은 그의 최고 작품이다. 도미니쿠스의 형이자 프레스코 화가인 요한 밥티스트 침머만도 비스 성당 건설에 참가했다. 그리하여 침머만 형제는 건물과 장식이 한데 어우러져 풍부한 공간을 빚어내는 최고 걸작을 완성했다. 초석을 놓은 지 3년째인 1749년 8월 31일에는 ‘채찍을 맞은 예수’상을 안치한 내진이, 1754년에는 성당이 완성되었으며, 1757년에 성당 내부에 오르간이 놓임으로써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순례자를 수용하기 위한 성당은 폭 25m, 길이 29m의 타원형 신랑과 장방형 내진을 이루어져 있다. 신랑에는 기둥 8쌍이 벽을 따라 늘어서 타원형 주랑을 이루고 있다. 이 주랑을 통과하는 빛은 흰 벽과 기둥에 부딪혀 굴절된다. 쌍을 이룬 기둥의 장식은 위로 갈수록 화려해진다. 정교한 장식으로 이루어진 기둥머리 위에는 예수가 ‘산상 설교’에서 설교한 8가지 ‘행복’이 장식적인 테두리 속에 그려져 있다. 그 위쪽에는 조개껍데기 모양의 호화로운 로코코 장식이 천장화를 둘러싸고 있다. 그 중 난간이 있는 아름다운 발코니 같은 장식도 있다. 가장 위쪽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둥근 천장으로 덮여, 성당의 내부 공간이 영원을 향해 열려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천장화

 

보는 이를 천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듯한 천장화는 요한 밥티스트 침머만의 걸작으로서, 1753~54년에 제작되었다. 이 그림의 주제는 신의 자비와 예수의 속죄를 통해 얻은 세계 평화이다. 신랑의 천장을 장식한 프레스코화는 ‘예수의 재림’을 표현하고 있다. 중앙에 걸린 무지개 위에 앉아 있는 구세주는 하느님이 인간을 용서하였음을 알리고 있으며, 천사들은 죽음에 대한 승리를 상징하는 십자가를 안고 있다. 비어 있는 왕좌는 지금은 용서가 지배하고 있으며, 아직 최후의 심판의 날이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왕좌 반대쪽에는 닫혀진 ‘천국의 문’이 그려져 있고, 그 문 위에는 ‘이제 시간이 없다.’라는 비문이 적혀 있다. 문 밑에는 쓰려져 있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문의 앞면 왼쪽에는 [요한묵시록]을 상징하는 천사가 있다.

 

 

건축 공간이 분명히 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당의 천장이 무한한 공간으로 열려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와 같이 웅대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침머만의 재능에 기인한 것이다. 그는 확신에 넘치는 회화 기법으로 천장의 프레스코화에서 물리적 공간의 한계를 깨뜨리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비스 성당은 1985~1991년에 세심하게 복원되었다. 성당의 소유자인 바이에른 주가 이 작업에 소비한 비용은 1050만 마르크가 넘었다. 덕분에 성당은 건설 당시의 색채를 거의 완벽하게 되찾았다. 바이에른에 있는 로코코 양식의 성당 대부분이 오랜 세월에 걸쳐 덧칠과 개축이 이루어져 변형된데 비해, 비스 성당은 지금도 건설 당시의 모습 그대로 빛나고 있다. 이 성당을 찾는 순례자와 예술 애호가들은 해마다 100만 명이 넘는다. 성당 전체의 밝은 인상은 방문자들에게 천국의 단편을 보여주며, 중앙 제단의 벽감에 보관되어 있는 ‘채찍을 맞은 예수’ 조각상은 지금도 1730년 당시와 다름없이 영원한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가시밭길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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