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Bosnia and Herzegovina]
남부 유럽 발칸반도 서부에 있는 나라이다. 1908년 오스트리아에 병합된 뒤 1914년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Sarajevo)에서 오스트리아의 황태자가 암살되어 제1차 세계대전의 발화점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공화국을 구성하는 공화국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1992년 3월 분리 독립하였다. 보스니아는 북부에, 헤르체고비나는 남부에 위치하며 국토 전체가 강한 지진대에 속한다. 북쪽과 서쪽으로는 크로아티아, 동쪽으로는 세르비아, 동남쪽으로는 몬테네그로와 국경을 접하며, 남쪽으로 아드리아 해안에 면하는 해안선의 길이가 20km에 지나지 않고 항구다운 항구가 없어 내륙국과 다를 바 없다. 1990년 탈냉전 이후 문화·종교적 차이로 인한 민족갈등이 폭발하여, 이슬람교도·세르비아인·크로아티아인 간 내전이 인종청소로 이어져 국제사회의 개입으로 1995년 12월 데이턴(Dayton) 평화협정을 체결하였다. 이 협정으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연방(이슬람계-크로아티아계 연방)과 스르프스카공화국(Republika Srpska:세르비아계 공화국)의 1국가 2체제를 수립하고 각각 입법부와 대통령을 두는 복잡한 정치체계를 갖게 되었다. 행정구역은 2개의 최고 행정구(first-order administrative division)와 1개의 국제관리구(internationally supervised district)로 이루어져 있다.
메주고리예 (출처- http://blog.daum.net/hismoker/71)
시내라고 해 보아야 한 300미터 정도의 길이 전부 이다. 이곳에서 성모의 발현이 없었더라면 세상에 알려질 아무런 이유가 없는, 한적한 농촌으로 남아 있었을 곳이다. 그러나 81년 성모 발현이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메주고리예 성당 (출처- http://blog.daum.net/hismoker/71)
메주고리예 성당 (출처- http://blog.daum.net/mysook777/18097432)
메주고리예 성당 (출처- http://blog.daum.net/mysook777/18097432)
메주고리예 성당 (출처- http://blog.daum.net/hismoker/71)
메주고리예 성당 (출처- http://blog.daum.net/mysook777/18097432)
메주고리예 성당 (출처- http://blog.daum.net/mysook777/18097432)
메주고리예 성당 (출처- http://blog.daum.net/mysook777/18097432)
메주고리예 성 야고보 성당 (출처- http://blog.daum.net/mysook777/18097432)
메주고리예 성 야고보 성당 제대 (출처- http://blog.daum.net/mysook777/18097432)
메주고리예 성 야고보 성당 성모상 (출처- http://blog.daum.net/mysook777/18097432)
메주고리예 성모발현
첫 날, 1981년 6월 24일 수요일
유고슬라비아의 중부 산악 지역에 자리한 메쥬고례는 아드리아해에서 자동차로 1시간 이상 달려야 도착하는, 크로아티아계 주민이 400여 가구 정도밖에 살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다. 오후 5시경이었다. 이 마을뿐 아니라 온 세상을 놀라게 할, 더 나아가 어쩌면 인류의 운명이 달려있을지도 모를 엄청난 사건이 이 조그마한 산골 마을에서 일어났다. 마치 64년전 포르투갈의 이름없던 파티마에서 그랬던 것처럼. 16세의 Mirjana Dragicevic와 15세의 Ivanka Ivankovic는 절친한 친구 사이로 이반카의 집이 있는 Bijakovici를 나서서 포장되지 않은 길을 걷고 있었다. 이반카가 우연히 포드브르도 산의 언덕을 쳐다 보았을 때 그녀로부터 약 200미터 떨어진 곳의 땅 위에 떠있는 듯이 밝게 빛나는 형태의 여인을 보게 되었다. "미르야나, 저기 보아! 성모님이셔!" 놀란 나머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이반카가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미르야나는 쳐다보지도 않으며 묵살하였다. "웃기지 마. 성모님이 우리같은 사람들에게 왜 나타나시니?" 하며 집쪽으로 곧장 가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척 흥분되었던 이반카는 분명히 자기가 무언가를 보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13세의 Milka Palovic의 집에 다 왔을 때 밀카는 양들을 몰고 오고 있었다. 아직도 조금 전에 보았던 모습이 좀처럼 잊혀지지 않던 이반카는 두 사람에게 보았던 내용을 상기시키며 혹시 아직도 그 부인이 그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며 다시 가보자고 했다. 세 사람이 그곳에 다시 가보자 놀랍게도 앞서의 그 부인이 여전히 그곳에 서있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는 세 사람 모두 볼 수 있었다. 또 다른 친구인 17세의 Vicka Ivankovic가 친구들을 찾으러 나서서 그녀들을 발견하곤 달려왔다. 세 사람이 비카에게 성모님을 보았다고 이야기를 하자 비카는 그녀들이 있을 법하지도 않은 일로 자기를 놀려댄다고 생각하며, 언덕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달아나 버렸다. 하지만 친구들의 이야기하는 태도가 너무 진지했으며 호기심도 발동하여 혹시나 하는 기분으로 다시 가보기로 하였다. 가는 길에 마침 길가에서 사과를 줍고 있던 16세의 Ivan Dragicevic와 20세의 Ivan Ivankovic를 만나서 이들과 같이 가게 되었다. 비카 일행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나이 어린 이반은 언덕 위에 서있는 밝은 빛의 윤곽을 가진 여인의 놀라운 모습에 도망을 가버렸고 나이가 많은 이반은 함께 지켜 보았다. 이반은 나중에 그곳에서 뭔가 '매우 흰' 물체를 보았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비카는 다른 누구보다도 나타난 형태를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그 물체는 밝은 은빛 겉옷에 진한 밤색 머리, 하얀 얼굴을 한 여인이었다고 하였다. 동일 장소에서 같은 시각에 나타난 모습을 보고서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던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지 흰 물체로만 인식했던 사람이 있었던 것도 첫날의 특징이었고 이는 향후 볼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구분의 시작이었다. 그 다음 날부터의 발현에선 나이가 많은 이반과 마리야의 누이인 밀카는 더 이상 발현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이번에 그들이 본 부인은 팔에 어린 아기를 안고 있었으며 그들을 향해 손짓을 하며 언덕 가까이 오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두려워서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몇몇 어린이들은 울기 시작했으며 다른 어린이들은 기도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황혼이 질 때까지 그곳에 있었으며 이윽고 연한 안개가 깔리기 시작하였다. 집으로 돌아와서 그들이 본 사건을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하자 그들은 어른들로부터 핀잔과 꾸중만 들었으며, 부모들은 그들의 자식들이 엉뚱한 이야기로 동네 사람들로부터 놀림을 받을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비카의 누이는 "아마 비행접시를 보았나 보지." 하며 놀려대었다.
2일째, 1981년 6월 25일 목요일
여느 날처럼 담배 농장에서 일을 마친 그들은 어제 발현을 목격했던 포드브르도에 가보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이반카가 제안하길 일단 그곳으로 가보아서 혹시 다시 그 부인을 만나면 더없이 좋은 것이고 만약 만나지 못하면 어제 어른들로부터 야단도 맞았으니 더 이상 그런 일을 입 밖에 내지도 말자고 하였다. 모두들 그 의견에 동의하고 가보기로 하였다. 이반카, 미르야나, 비카와 이반이 포드브르도 산쪽으로 가는 길에 밀카를 데리고 가려고 밀카의 집에 갔지만 밀카는 그녀의 어머니가 더 이상 황당한 일에 밀카가 개입하는 것을 막고자 멀리 데리고 가버려서 집에 없었다. 집을 지키고 있던 마리야로부터 밀카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넷은 밀카 대신에 마리야에게 같이 가자고 종용하여 마리야가 그들과 같이 가게 되었고, 마침 집에 같이 있던 마리야의 조카 Jakov Colo도 데리고 가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앞으로 진행될 발현에 참여하게 되는 6명의 어린이들이 모두 발현 장소로 향하였다. 오후 6시경이었다. 이반카가 앞장을 섰고 미르야나와 비카가 그 뒤를 따라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갔다. 이날은 마을 사람들이 발현의 진위를 알아보고자 어린이들을 따라갔다. 이날도 발현을 처음 목격한 사람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이반카였다. "저기 봐! 성모님이시다!" 이반카가 소리쳤다. 그들이 산 기슭의 길에서 산 쪽을 쳐다 보았을 때 발현한 물체는 어제보다 좀 더 윗쪽에 있었다. 포드브르도 산으로 가는 높은 언덕에서 발현한 물체가 그들을 향해 그쪽으로 오라며 손짓을 하였다. 그리고는 정말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날카로운 바위와 가시덤불로 뒤덮인, 언덕으로 올라가는 가파르고 험난한 길을 무서운 속도로 어린이들이 질주하며 올라갔던 것이다.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이 이들을 뒤쫓아가려고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이 순간을 비카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였다. "우리는 엄청나게 빨리 언덕으로 올라갔습니다. 땅 위를 걷는 것같지 않았습니다. 길을 내려다 보지도 않고 곧장 그분이 계신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마치 공중에서 우리를 잡아끄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불과 5분만에 올라 갔지요. 가시에 찔릴까봐 염려 했는데 나중에 살펴보니 전혀 상처가 없었더군요." 어린이들이 발현 장소에 도착하자 또 한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들은 순식간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야콥같은 경우는 내동댕이쳐지듯 가시 덤불에 무릎을 꿇게 되어, 크게 상처를 입었을까 걱정스러웠지만 나중에 보았을 때는 전혀 상처 하나 없었다. 비카등 4명은 발현을 어제 목격했었기 때문에 발현 장소에 처음 오게 된 마리야와 야콥에게 무언가가 보이는지 물어 보았다. 비카는 조금씩 또렷해지는 흰 물체를 볼 수 있다고 했으며 이윽고 다른 4명처럼 완전히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야콥도 성모님이 보인다고 소리쳤다. 6명이 목격한 발현자의 모습은 19세 정도의 젊은 여인이었으며 너무 아름다워서 지상에선 그보다도 더 아름다운 것은 없을 정도였다. 그 여인은 연한 푸른 색의 부드럽고 친절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이반카가 두달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근황이 궁금하여 여쭈어보자 성모님께선 이반카의 어머니는 천국에서 잘 지내고 있으니 더 이상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을 시켰다. 미르야나는 전날에 있었던 발현을 목격한 어린이들이 집과 마을에서 얼마나 곤란을 당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말하였다. 모두들 미친 아이 취급을 당하고 있으며 천상의 방문자께서 사람들을 확신시켜 줄 멋진 표징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하였다. 성모님께선 미소로만 답하였다. 어쨌든 어린이들은 마을 사람들을 설득할 좋은 표징은 얻은 셈이었다. 어린이들이 날카롭고 뾰족한 바위가 널려있고 가시덤불로 뒤덮인 험한 산길을, 그 길에 익숙한 어른들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무서운 속도로 달리고 바위와 덤불 위에 내팽개쳐지듯 무릎을 꿇렸어도 상처 하나 입지 않았으니 이를 본 마을 사람들에겐 충분한 표징이 되었을 것이다. 이날의 발현을 목격한 어린이들은 전날과 같이 두려워했지만 두 번째의 경험이기에 두려움은 덜했다. 우는 어린이도 있었지만 조그맣게 흐느꼈으며 기도도 조그마한 소리로 하였다. 미르야나의 할머니께선 천상의 방문자가 혹시 정말로 성모님이실지 모른다는 생각에 미르야나에게 하늘에서 온 방문자를 만나게 되면 그 앞에서 주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7번 하라고 신신당부하였었다. 이 기도는 성모님의 7가지의 슬픔을 표현하는 전통적인 기도였다. 어린이들이 이 기도를 바치기 시작하자 천상의 방문자는 어린이들과 같이 기도를 하였으되 성모송은 같이 하지 않고, 성모송은 천상의 방문자를 매우 기쁘게 하는 것이니 어린이들에게 계속하라고 하였다. 아마 자신에 대해 바치는 기도이기에 직접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이 되었다. 그리고 사도신경도 바치라고 하였다. 발현은 15분 가량 지속되었다. 발현이 끝날 때는 "주님의 평화안으로" 라는 인사말과 함께 공중으로 사라져버렸다. 이날의 발현 현상은 첫날과는 다른 특이한 현상을 보여주었다. 거의 대부분의 성모 발현의 역사에서 나타났던 발현 전의 밝은 섬광이 이날은 3번씩 나타났었다는 사실이다. 이 빛은 목격자들뿐만 아니라 포드브르도 산의 발현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과 우연히 그 산을 쳐다보았던 마을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또 다른 특이 현상은 둘째 날부터는 발현이 선택적인 사람들에게만 목격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일반 사람들은 물론 첫 발현을 보았던 밀카와 나이 많은 이반도 이날부터는 발현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또 전날 발현을 보았던 4명의 어린이들은 그렇지 않았지만 마리야와 야콥은 처음에는 불분명한 물체로 인식하다가 차츰 또렷하게 보였다고 하는 점이다. 발현 현상에 비상한 관심을 가졌던 어린이들과 이웃에 사는 Marinko Ivankovici는 너무 늦게 오는 바람에 산에서 내려 오는 어린이들을 맞이하는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온 이반카는 할머니를 만나자마자 울면서 돌아가신 어머니가 하늘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성모님으로부터 들었다고 전했다. 계속 흐느끼는 이반카를 달래며 마린코는 어린이들이 이야기하는 내용들로 보아 단순히 어린이들이 지어내거나 장난삼아 하는 사건이 아닌, 매우 범상하지 못한 종교적 문제라 판단하고 신부에게 알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어린이들의 보호자가 마땅히 없었기 때문에 마린코는 처음부터 이 특이한 현상에 어린이들의 보호자로서 자임하고 나섰다. 목격자들인 6명중 4명의 어린이들이 부모가 집에 없거나 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반카의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멀리 독일로 일자리를 구하러 떠나 있었다. 비카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로 독일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야콥의 아버지는 보스니아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거의 집에 오지 않았다. 미르야나의 경우엔 방학 중에 할머니의 집에 머무르고 있었으므로 부모님은 멀리 사라예보에 있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어린이들은 마린코를 정신적 보호자로 여기며 의지했고, 마린코 역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를 꼼꼼히 기록으로 남겨 놓아 후에 발현의 신빙성을 규명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게 되었다. 이날 Jozo Zovko신부는 자그레브에 있었고 보좌 신부인 Zrinko Cuvalo신부가 교회에 있었기에 마린코는 이틀에 걸쳐 일어난, 앞으로 큰 파장을 몰고 올지도 모를 사건에 대해 즈린코 신부에게 상세히 보고하였다. 이야기를 듣고 즈린코신부는 섣부른 결론을 유보하였다. 집이나 마을에선 여전히 그들을 놀려댔지만 어제보다는 훨씬 덜하였다. 하루가 더 지나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발현 현장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누구도 해낼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한 어린이들을 보고서 주민들은 이들 어린이들이 정신병자도 아니며 거짓 사실을 만들고 있지 않다는 것과 그에 따라 이해할 수 없는 신비 현상이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시작하였다.
레오뽈드 만다치 성인상 (출처- http://blog.daum.net/mysook777/18097432)
야외제대 (출처- http://blog.daum.net/hismoker/71)
야외 제대 (출처- http://blog.daum.net/mysook777/18097432)
각 나라별 고해성사실 (출처- http://blog.daum.net/mysook777/18097432)
다른 고백소와의 큰 차이는 고백소 마다 고백을 할 수있는 언어가 표시 되어 있. 가장 널리 사용 되는 언어는 아무래도 동구권의 순례객이 많아서인지 스라부계의 언어이다. 물론 영어, 불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는 기본이다.
야외 십자고상 (출처- http://blog.daum.net/mysook777/18097432)
(출처- http://blog.daum.net/hismoker/71)
(출처- http://blog.daum.net/hismoker/71)
(출처- http://blog.daum.net/hismoker/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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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blog.daum.net/hismoker/71)
발현산 성모상 (출처- http://blog.daum.net/hismoker/71)
3일째, 1981년 6월 26일 금요일
어린이들과 마린코는 발현 시간이 다가오자 포드브르도 기슭으로 같이 가기로 하였다. 그곳에서 이들은 ?마을뿐만 아니라 넓은 지역에 걸쳐 3번의 밝은 빛이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곧 이어 발현한 성모님을 보고 어린이들이 소리쳤다. "성모님이 오셨다!" 이날의 발현은 앞서의 발현 때보다 윗쪽에서 이루어졌다. 어린이들은 즉시 성모님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반과 야콥은 마린코를 앞서서 달려갔으며 네 명의 소녀가 그 뒤를 따랐다. 어린이들이 발현 장소에 도달하여 무릎을 꿇었을 때 마린코가 어린이들에게 성모님이 오셨는지 물어 보았다. "성모님이 구름 위에 서 계십니다."하고 어린이들이 답했다. 이날도 마리야의 누이인 밀카도 발현 장소에 왔었지만 어제부터는 더 이상 발현을 볼 수가 없었다. 보다 정확한 신분을 알고 싶어서 비카는 준비해두었던 성수를 발현자에게 향해 뿌렸다. "성모님이시라면 우리와 함께 머물러 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가주세요!" 하고 말하자 천상의 방문자는 아름다운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미르야나가 일 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안부를 묻자 성모님께선 "잘 지내고 있다." 고 했으며 이반카가 그녀의 어머니가 병원에서 돌아가실 때 가족들이 한 사람도 없어 유언을 남기지 못했던 것을 상기하며, 자식들에게 전할 말이라도 있는지 여쭈어 보자 "할머니 말씀 잘 들어라. 연세가 많으셔서 일을 못하시니 잘 보살펴 드려야 한다." 고 답하였다. 이반카는 "이곳에 왜 오셨는지요? 그리고 무엇을 원하십니까?" 하고 질문하였다. 이에 성모님께선 모여든 많은 사람을 하나씩 살펴 보면서 "이곳은 믿는 사람이 많아서 내가 왔단다. 나는 여러분들과 같이 있으며 모두를 회개하고 화해시키고 싶다." 고 답하였다. 발현은 30분간 지속되었다. 이 날은 너무 더웠기 때문에 10분쯤 지났을 때 무릎을 꿇고 있던 어린이들에게 일어나라 하였다. 어린이들을 생각하는 성모님의 자상한 모성애가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어린이들이 앞으로도 나타나실 것인지를 묻자 그렇다는 대답과 "주님의 평화 안으로!"라는 작별 인사를 하며 사라졌다. 이날 발현 현장에 모여든 사람은 3 천여명이 족히 되어 보였다. 산을 내려 와서 마을까지 가는 길의 중간쯤에서 마리야가 갑자기 왼쪽으로 돌아서서 무릎을 꿇고 소리쳤다. "성모님이 계셔!" 마리야는 예수님의 상이 없는,평범한 그러나 일곱개 빛의 무지개로 된 십자가를 보았고 그 앞에서 울고 계시는 성모님을 보았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으며 다른 어린이들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본 후 "평화, 평화, 평화. 서로 화해하여라." 했으며 또 한 번의 "주님의 평화 안으로" 라는 인사말을 남긴 후 사라졌다. 이때의 유럽의 정세는 어떠한 전쟁의 징후도 없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성모님께서 말씀하신 평화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지를 몰랐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난 후 그곳에선 기억하기에도 끔찍한, 인종청소라고 불리었던 유고슬라비아의 참혹한 내전이 발발하였다.
4일째, 1981년 6월 27일 토요일
성 야고보 성당의 요조 신부는 자그레브에서의 피정을 마치고 프란치스코회의 Viktor Kosir신부와 함께 메쥬고례로 돌아가는 길에 모친이 입원해 있던 모스타에 있는 병원을 들렀다가 마침 다친 손을 치료하기 위해 와 있던 마린코의 부인으로부터 며칠동안 메쥬고례에서 일어난 사건을 전해 들었다. 요조 신부가 급히 서둘러 메쥬고례의 교회에 도착하자 즈린코 보좌 신부가 그간의 일을 보고하였고 전날 어린이들이 교회에서 진술한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도 들려주었다. 요조 신부는 외부로부터 어린이들 중의 한 사람이 마약을 가져왔다는 소문에(미르야나는 사라예보에서 살고 있었으며 방학을 이용하여 할머니가 계시는 메쥬고례에 와 있던 참이었다.) 이들이 약물에 의한 환각 현상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어린이들이 교회로 불려왔고 요조 신부는 여러가지 질문을 하고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경청하였다. 즈린코 신부는 어린이들을 엄하게 심문하였다. 이들의 장난기 어린 소동이 마을, 교회, 신앙에까지 해를 끼칠 큰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중대 사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린이들을 동석시켜서 심문하고 때로는 분리하여 심문하는 등 강한 불신감과 함께 서로 상반되는 진술을 얻어내려고 무진 애를 썼다. 또 프란치스코회의 빅토르 신부는 어린이들이 악령에 사로잡혀 이런 소동을 벌이는 것으로 판단하고 악령을 몰아내는 의식을 하려고까지 했지만 나머지 두 신부가 어린이들이 설령 거짓말을 했다 하더라도 악령이 들린 것은 아니니 하지 말자는 간곡한 부탁에 그만 두기도 하였다. 세 신부들은 그들의 어깨에 부과된 책임의 막중함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일에 신중을 기하였다. 3일간 일어났던 발현에 대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서 드디어 메쥬고례 지역을 관할하는 시트룩의 지방 행정관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비교적 개화되고 진보적인 공산주의 노선을 걷는 유고슬라비아였지만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적인 유물사관만은 다른 공산 국가와 하등 다를 것이 없었다. 단지 지정된 날짜와 시간에 교회에서 행하는 종교 행사는 관용을 베풀어 왔지만, 이번 사건처럼 수 천명이 산기슭에 몰려드는 사안에 대해선 문제가 전혀 달랐다. 지방 관리들은 오후에 여섯 어린이를 소환하였다. 그리고 신체검사와 정신 질환 검사를 해보았지만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이상이 없는 극히 정상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발현 시간이 다가오자 택시를 타고 서둘러 포드브르도 산으로 향할 수 있었다. 관리들은 요조 신부를 불러 사람들이 더 이상 모이지 못하게 할 것과 그에 대한 책임이 요조 신부에게 있다고 주지시켰다. 요조 신부도 자신의 부재 중에 일어났던 사건에 관리들 못지않게 관심을 갖고 주시하고 있다며 그들을 안심시켰으나 사실 규명을 위해 어린이들을 만난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이날 발현에 앞서 마린코와 이웃인 Mate는 발현의 신빙성을 조사하는 방법으로 어린이들을 두 편으로 구분하였다. 한 편에는 이반카, 미르야나와 비카가 속해 있었고 다른 편에는 마리야와 야콥, 이반이 속했다(이반은 늦게 시트룩에서 출발하였기에 실제로는 속하지 않았음). 이들 두 편은 서로 다른 위치에서 발현을 기다리도록 되어있었다. 마리야와 야콥은 산 밑에서 발현을 기다리고 있었고 이반카가 속한 편은 산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산 아래 마리야쪽에는 즈린코 신부, 마테 등 여러 사람이 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발현에 앞선 그 빛이 번쩍였으며 발현이 시작되었다. 산 위의 성모님께서 산 밑의 마리야와 야콥에게 올라 오라며 손짓을 하였다. 그러자 마리야는 상상할 수 없는 무서운 속도로 산 위를 향해 달려서 올라갔다. 다른 사람들이 이를 보고 따라 가볼려고 달려보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모두가 마리야의 달리는 속도에 경악하고 말았다. 나중에 마리야가 회상하길 당시에 그녀의 눈에는 주변의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고 오직 성모님만 보였으며 성모님이 그녀를 산위로 끌어올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였다. 마리야는 성모님이 이전에 발현했던 장소보다 18m정도 위쪽에서 손을 맞잡고 서있었다. 그리고는 "저도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성모님께서 저를 이곳에 데려 오시고는 사라져버리셨습니다." 하였다. 워낙 사람이 밀집되어 한치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여서 마테는 이전의 발현 장소에 서 있는 이반카, 미르야나, 비카에게 갔다. 마테가 마리야에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자 어린이들은 마리야에게 가서 노래와 기도를 하였다. 어린이들은 성모님께서 다시 오시리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으며 얼마 후, 과연 그들의 생각대로, 모든 사람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빛이 번쩍인 다음 성모님께서 나타나셨다. 사람들의 눈에는 성모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어린이들 주변으로 모여 들었다. 심하게 사람들이 밀어대는 통에 예기치 않던 일이 벌어졌다. 성모님께서 쓰고 있던, 땅위로 늘어진 베일이 사람들의 발에 밟히게 된 것이었다. 어린이들이 이를 보고 기겁을 하고 사람들에게 뒤로 물러나 달라고 애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순간 성모님께서 사라지셨다. 곧 다시 나타나셨지만 사람들이 워낙 거세게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이번엔 한 소년이 또 베일을 밟아버렸다. 성모님께서 또 사라지셨다가 3번째로 나타나셨다. 급기야 마린코와 마테가 사람들을 동원하여 발현 장소를 보호하고 나서야 사태가 진정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성모 발현의 역사에서 없었던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비카가 성모님께 많은 사람들이 있는 이곳에서 성모님이 정말로 계시다는 것을 입증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나를 보지 못하는 사람도 나를 보는 것처럼 믿어야 한다."는 말씀만 했다. 이반카가 하늘에서 오신 방문자의 정확한 신분을 다시 묻자, "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이다." 라고 답했다. 교구의 신부들이나 수사들에게 어떠한 메시지가 있느냐고 질문하자 "그들은 강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주님의 평화 안으로" 라는 작별 인사없이 사라졌기 때문에 어린이들은 오랫동안 다시 나타나시기를 기다렸다. 끝내 더 이상의 발현이 이루어지지 않자 어린이들은 산을 내려와야만 했었다. 마을로 오는 중간쯤에서 또 나타나신 성모님을 보고 어린이들이 "저기 나타나셨다!" 하며 소리를 쳤다. 마린코등이 급히 어린이들을 에워싸서 보호해주었다. 성모님께선 어린이들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의 천사들이여! 여러분들은 나의 귀여운 천사들이에요." 라며 인사를 한 후 내일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나타나실 것을 약속하고 "주님의 평화 안으로" 라는 작별 인사후 사라졌다. 이날 경찰에 소환되어 심문을 받는등의 고생을 했던 어린이들을 염려하고 위로하고자 해서였는지 성모님께선 이들을 천사라는 호칭으로 격려해 주는 자상한 면을 보여 주었다. 이날 이반은 그의 부모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발현 장소에 가지 않았지만 마을 밖에서 걷고 있던 중 성모님을 만나게 되었다. 성모님께선 이반에게 평화롭게 지내고 용기를 잃지 말라며 미소를 지으시고 사라졌다.
5일째, 1981년 6월 28일 일요일
요조 신부는 포드브르도 산 언덕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었다. 그는 전통적인 신앙을 준수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이야기를 하였지만 사람들은 도대체 들을려고 하지를 않았다. 이날은 매우 화창했으며 만 오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메쥬고례의 비야코비치 마을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인근 8km내의 여러 마을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6시가 지나자 어린이들은 포드브르도 산으로 떠났다. 마리야와 야콥은 빅토르 신부와 어제도 같이 갔었던 즈린코 신부와 함께 갔다. 갑자기 마리야가 "보세요, 보세요, 보세요!" 하며 야콥과 함께 엄청난 속도로 마치 날아가듯 달려 올라갔었다. 발현은 6시 30분에 일어났다. 어린이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모님 "나에 대한 믿음과 공경을 바란다." 어린이들 "성모님 우리 신부님들에 대해 무엇을 바라십니까?" 성모님 "그들은 굳게 믿어야 한다." 어린이들 "성모님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교회에 나타나시면 안됩니까?" 성모님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이 복되다." 어린이들 "성모님, 또 오시는 것입니까?" 어린이들 "오신다고 하셨어. 같은 장소에 오신다는 것이지. 오신다고 하셨어."
(어린이들은 성모님께서 머리를 끄덕이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어린이들 "성모님, 기도와 노래중 어떤 것을 우리가 하면 좋을까요?" 성모님 "둘다 모두 좋다. 노래와 기도." 어린이들 "성모님 여기에 모인 사람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모님(모여든 사람들을 바라 보시며) "보지 않고도 믿는 것이지" 어린이들 "사라지셨어! 없어지셨어!" 비카 "우리 기도를 하자.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안하시고 가셨어." 어린이들 "다시 오셨어! 우리 성가를 부르자." (마리야는 '성모님, 성모님, 성모님은 너무 아름다우십니다.'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성모님 "나의 천사들! 나의 귀여운 천사들!" 어린이들 "성모님, 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성모님 "나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나를 보고 있는 여섯 어린이들처럼 믿기를 바란다." 어린이들 "성모님, 저희가 거짓말장이가 아니고 장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줄만한 표징을 남겨주지 않겠습니까?'' 성모님 "주님의 평화 안으로." 어린이들 "가버리셨어. 한줄기 빛도 따라 가버렸어. 이미 떠나셨어요." (어린이들은 널리 알려진 크로아티아 성가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발현이 끝나고 즈린코 신부는 발현의 신빙성을 따져보기 위하여 어린이들을 심문하였다. 신빙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한 즈린코 신부는 발현에 대한 강한 믿음을 점차 갖기 시작하였다.
6일째, 1981년 6월 29일 월요일
시트룩에선 당국자들의 비상회의가 소집되었다. 그들은 여러가지 기적적인 치유 현상의 보고도 접하고 있었다. 신체 부자유한 어린이가 걷기 시작했고 장님이 시력을 회복했으며 많은 질환자들이 치료되었다는 황당하고 있을 법하지도 않는 보고들 뿐이었다. 만약 이런 소문들이 계속 퍼져 나간다면 그 지역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은 눈으로 보듯 뻔한 일이었다. 어린이들은 시트룩의 관리들에게 또 다시 소환되었다. 정신 질환괴 신체적 이상 유무를 한 번 더 검사받기 위해서였다. 당국의 관리들은 제발 어린들이 환각 증세나 미쳤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담당 의사는 이들로부터 어떠한 이상 증세도 발견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어린이들이 메쥬고례에 다시 돌아 온 것은 늦은 오후였다. 그들은 서둘러서 포드브르도산에 올라갔고 6시 19분쯤에 노래와 기도를 시작하였다. 어제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며 이들도 어린이들과 함께 기도와 노래를 불렀다. 어린이들로부터 3미터 떨어진 곳에 빅토르 신부가 있었고 처음으로 프란치스코회의 Tomislav Vlasic신부가 왔었다. 발현은 6시 26분 경에 시작되었다. 어린이들은 아침부터 정부 관리들에게 불리어 가서 조사와 검사를 받은 것이 마음에 걸리었다. 이 일로 인해 처벌을 받을까 두려워서 어린이들은 이에 대해 자기들이 잘 견디어 낼 수 있을지 성모님께 여쭈어 보았다. 성모님께선 이들의 마음을 달래고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하여 "여러분들은 잘 견딜 것이다. 나의 천사들이여!" 라며 정답게 답해 주었다. 또 어린이들은 2년 6개월된 벙어리에 걷지도 못하는 다니엘이라는 어린이의 치유를 간곡히 부탁했다. 다음은 Grgo Korzina라는 사람이 녹음한 내용이다. 어린이들 "성모님, 어린 다니엘은 말할 수 있을까요? 모든 사람이 믿을 수 있도록 기적을 만들어 주세요. 이 사람들은 성모님을 무척 사랑하고 있습니다. 성모님, 기적을 하나 이루어 주세요. 성모님이 그를 쳐다 보십니다. 성모님, 한 말씀 해 주세요." 그르고 코지나 "성모님이 아직도 소년을 바라보고 계시니?" 어린이들 "성모님께서 말 못하는 다니엘을 보고 계십니다. 성모님 말씀좀 해주세요. 간청합니다. 제발 말씀좀 해주세요. 우리가 이렇게 바랍니다. 말씀좀 해주세요, 성모님." 성모님 "그의 부모가 다니엘이 반드시 낫는다는 믿음을 가져야 하지. 주님의 평화 안으로." 어린이들이 소리쳤다. "성모님이 가셨다. 봐! 빛이야." 발현이 끝난 후 어린 다니엘이 말을 하고 걸을 수 있게 된 것은 부모와 함께 집으로 가는 도중이었다. 메쥬고례 발현의 특징 중 하나가 목격자들을 포함한 사람들과 성모님과의 접촉이었다. 이날 정부 관리들은 발현의 신빙성을 따져보기 위하여 Glaumuzina라는 여의사를 파견하였다. 이 사람은 스스로 무신론자라고 자처하면서 발현 현상을 엄밀하게 조사하겠다고 하였다. 발현이 진행되는 동안 그녀는 어린이들에게 자기가 직접 발현한 성모님을 만져 보겠노라고 하였다. 어린이들이 이를 성모님에게 전하자 "유다처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 와서 만져 보게 하여라."고 했다. 그 의사가 성모님을 만지자 성모님은 사라지셨다. 그리고 그녀가 말하길 성모님의 옷에 그녀의 손이 닿는 순간 전기적 충격을 느꼈다고 했다. 신부와 목격자들인 어린이들과의 대담에서 "성모님을 만져 보았느냐?"는 질문에 이반카는 "녜" 라고 대답했고 야콥과 이반은 "성모님의 옷을 만져 보았습니다." 라는 대답을, 마리야는 "저는 성모님의 옷을 손바닥으로 만져볼 수 있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미르야나는 어린이들이 성모님으로부터 따뜻한 모성애를 받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처음에는 접근 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지금은 같이 있으면 모든 것을 도와주는 어머니같은 느낌을 주신다." 고 했다. 비카도 성모님과 접촉을 했는데 좀더 구체적이고 신비스러운 증언을 했다.그녀는 "저는 성모님의 옷을 만져 보았는데 마치 금속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라고 증언했다.
어린이들이 본 성모님의 모습은 일반적인 세상에서 보는 사람들의 모습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옷의 질감은 무척 생경했다고 전한다.
7일째, 1981년 6월 30일 화요일
오후 2시에 시트룩에서 지방 당국의 실무자인 두 여자가 어린이들을 보기 위하여 비야코비치에 왔다. 이들의 생각으로는 발현이라는 황당무계한 사건을 중지시키는 가장 최선의 방법중의 하나가, 사건의 당사자인 어린이들을 현장에서 멀리 격리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고 이를 통해 소동이 중단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두 여자는 어린이들에게 포드브르도 산 이외의 곳에서도 성모님이 발현하는지 궁금하다며 이를 확인하기 위해 멀리 떠나보자고 하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들의 의도는 앞서 이야기한 그대로였다. 이반을 제외한 5명의 어린이들이 강제로 차에 실려 시트룩을 거쳐 여러 마을을 돌았다. 두 여인은 발현 시간 때까지 시간을 벌고 있었던 것이다. 정작 발현 시간에 이들 어린이들이 매일 해괴한 일이 일어난다는 그 장소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더 이상 일은 안생길테고 그렇게 되면 그 소동은 잠잠해질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이들이 Cerno라는 마을로 가는 길에 접어들었을 때는 벌써 발현이 시작되었을 시간이었다. 두 관리의 계획이 맞아떨어지는, 그들에게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같은 시간에 포드브르도 산에는 날이 갈수록 소문이 퍼져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어 영문도 모른 채 성모 마리아 발현이라는 희대의 대사건을 현장에서 보게 된다는 설레임 속에서 어린이들과 성모님의 발현을 숨을 죽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체르노에 도착할 때 쯤 어린이들은 두 여자에게 간곡히 내려달라고 부탁하였다. 처음에는 이들도 거절하였지만 어린이들이 애원하는 바람에 그리고 포드브르도 산에서 수 km 떨어졌으니 무슨 일이야 생기겠느냐는 안도의 마음에서 청을 들어 주기로 하였다. 그들이 내린 곳은 인가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이미 발현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이들은 하던대로 기도를 시작하였다. 이때 포드브르도 산의 발현 장소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 빛이 어린이들을 향하여 다가오는 것이 목격되었다. 이반카가 두 여자에게 "저 빛이 보입니까?" 하고 물어보자 두 사람은 보인다고 대답했다. 어린이들은 무릎을 꿇고 성가를 불렀고 성모님께서 이들에게 나타났다. 성모님과의 대화 중에 어린이들은 오늘의 문제가 발현 장소때문에 일어난 것이라 생각하고 성모님께서 괜찮으시다면 포드브르도 산이 아닌 교회에 나타나시면 어떻겠느냐고 여쭈었다. 성모님께선 그 제의를 듣고 잠시 망설인 후 "그렇게 하겠다. 나의 천사들아." 하였다. 그리고 한동안 어린이들을 바라보았다. 어린이들이 표징을 남겨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성모님께선 아무 말없이 조용히 움직이며 "주님의 평화 안으로.' 라는 인사말과 함께 사라졌다. 그와 함께 어린이들은 포드브르도 산에서 번쩍이는 빛을 보았다. 두 번씩이나 빛을 목격한 두 관리는 놀란 나머지 어린이들을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다음날 이들은 그 직책을 그만 두었으며 ?나중엔 멀리 이사를 가버렸다. 어린이들이 메쥬고례에 도착한 것은 6시와 7시 사이였다. 그들을 기다리던 요조 신부는 어린이들에게 그가 미리 부탁했던 성모님께 드리는 질문을 했었느냐고 물어 보았다. 어린이들은 두 관리로부터 빠져나오느라 질문을 잊어버렸다고 답하였다. 요조 신부가 가지고 있는 발현에 대한 의문점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었다. 당국의 입장도 확고부동하였다. 알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 때문에 통제할 수 없는 엄청난 군중들이 몰려드는 것을 방치할 수가 없었다. 만약에 어린이들이 바보같은 짓을 계속하고 싶다면 그들이 믿는 교회 안에서나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날이 갈수록 상황이 악화되어 사람들은 일이 끝나면 집으로 가지 않고 걷고 또 걸어서 포드브르도 산 언덕으로 몰려들었다. 지역 전체가 마비상태였다. 당국은 명확한 지침을 내렸다. 만약 어린이들이 명에 따르지 않는다면 가족들이 어렵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공산 국가에선 당국이 일자리를 좌지우지 하였기 때문에 어린이들은 그 말이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날 밤 어린이들과 그 가족들은 마음 아픈 소식을 들었다. 10시쯤 비야코비치 마을에 도착했을 때 좋은 이웃이었고 그들의 절대적 후원자였던 마린코가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로 붙들려갔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마린코가 이 사건을 뒤에서 조종했거나 조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언해주기 위하여 이들은 경찰서를 찾아가기로 하였다.
8일째, 1981년 7월 1일 수요일
발현이 시작된지 일주일째에 접어들자 당국자들의 마음은 초조해기 시작했다. 의도했던 바대로 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수습할 수 없는 상태로 가고 있다는 생각에 그들은 지금 일어나는 엉터리 같은 사건을 완전히 중단시키지 않으면 안된다고 마음들을 고쳐먹었다. 이들은 어린이들을 구금하기 위하여 경찰 병력을 메쥬고례 마을로 급파하였다. 어린이들에게는 길고 긴 악몽같은 하루가 시작된 것이었다. 주민들은 들판에서든, 마을에서든, 교회에서든 어린이들을 보게 되면 반드시 경찰에 신고하여야만 되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경찰이 잡으러 이들이 있는 장소에 가면 놓치기가 일쑤였다. 어린이들은 그동안 해왔던 숨바꼭질 놀이의 덕분인지 용케도 경찰의 눈을 피하여 잘들 도망을 다녔다. 이들은 계속 움직여 가며, 포도 나무 사이에서 바짝 숙여가면서 쫓아오는 경찰들을 따돌렸다. 하지만 도망가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결국 이들은 교회쪽으로 쫓기게 되었다. 이때 성당에선 요조 신부가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 앞에는 성서와 성무일과서가 놓여 있었으며 성당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나중에 요조 신부가 말하는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인 그래서 발현의 전환점이 되는 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요조 신부가 기도하는 동안 "나가서 어린이들을 보호하여라." 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너무도 뚜렷이 들리는 메시지에 신부는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으며 그 길로 북쪽으로 나있는 성당 중앙 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성당 모퉁이에서 그는 사력을 다해 달려오는 어린이들을 볼 수 있었다. "신부님, 우릴 도와 주세요. 제발 도와 주세요" 어린이들은 신부 주위를 에워싸며 눈물을 글썽였다. 요조 신부는 서둘러서 어린이들을 사제관으로 데리고 가서 빈 방을 찾아 어린이들을 숨긴 후 문을 잠그어 버렸다. 얼마 후 세 명의 경찰관이 들이닥쳤다. 경찰관들도 숨을 헐떡이며, "어린이들 보았지요?" 하고 물어왔다. "예." 하고는 대답했지만 더 이상 어린이들의 행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자 그들은 기다리지 못하고 어린이들이 살고 있던 마을인 비야코비치 마을로 달려가 버렸다. 시야에서 멀리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요조 신부는 사제관의 어린이들에게 가서 그들을 진정시킨 후 먹을 것을 가져다 주었다. 이후 요조 신부는 부모의 동의 없이는 미성년자를 심문할 수 없다는 현행법을 들먹여 경찰의 어린이들에 대한 심문을 중단하는데 성공했다. 요조 신부의 조언을 받아들여 부모들이 자녀들에 대한 경찰의 심문에 반대했기 때문에 심문은 즉각 중단되었던 것이다. 발현 보고를 접하고 가장 냉정하게 사태를 관망하던 사람이 요조 신부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 냉정했던 요조 신부도 놀라운 메시지를 받은 순간부터 모든 의심이 순식간에 눈녹듯 사라지고 이후부터는 앞장서 어린이들을 보호하는 입장으로 바뀌게 되어버렸다. 결국 요조 신부는 그해 8월에 성당을 폐쇄하지 않았고 우스꽝스러운 현상을 막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18개월 간의 강제 노동에 처해지게 되었다. 요조 신부는 6시에 미사를 봉헌해야겠다는 생각을 먹게 되었다. 발현을 기다리며 산에 모여든 수 천 명의 사람들에게 교회에서 미사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퍼졌고 요조 신부는 5시에 즈린코 보좌 신부에게 사람들로 하여금 로사리오 기도를 하도록 요청했다. 처음으로 로사리오기도가 바쳐졌다. 교회 안에는 사람들로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발현을 기념한 첫 미사가 요조 신부에 의해 봉헌되었다. 발현에 회의적이었던 요조 신부가 봉헌하는 미사는 발현의 극적인 전환점이었다. 그는 강론에서 "우리 교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 간청합니다." 라고 했으며 사람들에게 기도와 단식을 요청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수동적인 방관자가 아니었으며 전 세계의 수천만의 사람들의 삶의 형태를 바꿀만한 대사건에 기꺼이 동참하고 있었다. 15단의 로사리오가 바쳐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저녁에는 3시간이 넘도록 성당에 머물렀다. 메쥬고례의 회개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미사는 매일 정례화되어 진행되었고, 발현은 포드브르도 산이 아닌 교회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1981년 8월 18일 화요일
이 마을에 기쁜 일만이 계속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8월 18일 요조 신부가 선동죄로 체포되어 붙들려 갔다 (강론에서 일부 반정부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내용도 있었다). 이는 당국으로선 발현을 끝장내 보려는 필사적인 시도였고 희망이었다. 요조 신부는 모든 것을 예측한 듯 경찰이 왔을 때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조 신부도 교구민들도 예측못했던 불상사가 생겨버렸다. 경찰들은 마치 분풀이라도 하는 듯 성당을 이잡듯이 뒤지며 성물을 흩뜨려놓고 부셔버렸다. 그리고 교회는 폐쇄되었다. 그러나 성당 종이 울리자 교회 안은 다시 사람들로 가득 차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성당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명령을 도전적으로 무시하였다. 그들은 교회 안의 황폐화된 모습을 보고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즈린코 신부가 제단으로 나서며, 비록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요조 신부가 체포되었다고 알렸다. 그는 감정에 북바쳐서 신자들에게 말했다. "지금은 저의 일생 중 가장 어려운 순간입니다." 교회 안은 흐느끼는 소리로 가득찼다. 미사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입당 성가를 불렀고 목이 메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기도도 마찬가지였다. 주의 기도를 하는 동안 즈린코 신부는 그들에게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듯이" 라는 귀절을 여러번 반복하게 하였다.
미사가 끝난 후 전통적인 기도인 7번의 주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어린이들이 이끌면서 진행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어린이들이 기도를 중단하고 제단 옆 방으로 들어갔다. 즈린코 신부가 교구민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성모님께서 어린이들을 불렀습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옆방으로 눈과 귀가 쏠렸다. 이윽고 야콥이 다른 어린이들과 함께 나와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옆 방에서 성모님께서 저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저희들 보고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저희가 행복하기를 바라시고, 저희 얼굴에 기쁨이 가득하기를 바라신답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 요조 신부님을 보호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잠시의 긴장 후에 환호가 터져나왔다. 커다란 기쁨과 함께 그들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기도는 곧 끝났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떠날 줄을 몰랐다.
발현산 성모상 (출처- http://blog.daum.net/hismoker/71)
발현산 성모상 (출처- http://blog.daum.net/hismoker/71)
발현산 십자고상 (출처- http://blog.daum.net/hismoker/71)
발현산 십자고상 (출처- http://blog.daum.net/hismoker/71)
발현산 (출처- http://blog.daum.net/hismoker/71)
발현산 (출처- http://blog.daum.net/hismoker/71)
발현산 (출처- http://blog.daum.net/hismoker/71)
발현산 (출처- http://blog.daum.net/hismoker/71)
발현산 (출처- http://blog.daum.net/hismoker/71)
빛의 신비(Luminous Mysterious) (출처- http://blog.daum.net/hismoker/71)
예수가 일생중에 체험한 다섯가지 신비를 말하는데이를 모자이크으로 처리 하였다.
1. 요르단강에서 세례
2. 가나에서의 첫번 기적
3. 하느님 나라의 선포
4. 거룩하게 변모
5. 성체성사를 세우심 입니다.
빛의 신비(Luminous Mysterious), 2. 가나에서의 첫번 기적 (출처- http://blog.daum.net/hismoker/71)
빛의 신비(Luminous Mysterious) (출처- http://blog.daum.net/hismoker/71)
빛의 신비, 1. 요르단강에서 세례
빛의 신비, 1. 요르단강에서 세례
빛의 신비,
빛의 신비, 2. 가나에서의 첫번 기적
빛의 신비, 3. 하느님 나라의 선포
빛의 신비, 3. 하느님 나라의 선포
빛의 신비, 4. 거룩하게 변모
빛의 신비, 4. 거룩하게 변모
빛의 신비, 5. 성체성사를 세우심
빛의 신비, 5. 성체성사를 세우심
순례자
이곳의 순례객은 세계 각국에서 각종 형태로 온다. 철도와 항공편이 닿지 않으므로 버스를 이용 하여 단체로 오는 것은 기본이고 마이크로 버스를 이용한 친지, 가족 단위의 순례객도 상당히 많다. 또 오는 목적도 개인적인 순례 행사 부터 이곳에서 열리는 청소년 축제 참석 까지 다양하다.
순례자
순례자
십자가의 길 (출처- http://weekly.encyber.com)
박씻기기 (출처- http://blog.daum.net/hismoker/71)
박씻기기 (출처- http://blog.daum.net/hismoker/71)
예수님 박씻기기 (출처- http://blog.daum.net/hismoker/71)
메주고리예 그림엽서
메주고리예 그림엽서
메주고리예 그림엽서
메주고리예 성당 성모발현에 대한 바티칸의 입장
1. 바티칸 대변인, 요아퀸 나바로-발스(Joaquin Navarro-Valls) 박사는 1996년 8월 21일 바티칸의 가톨릭 신문지상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여러분들은 사람들이 메주고리예에 가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가서는 안 된다는 발표를 하지 안았으니,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가도 상관이 없습니다.” 이를 발표한 그날 뒤늦게 다시 바티칸 신문지는! 추가로 발표하기를: “천주교 신자들이 어디에 갈 때에는 그들은 영적 지도와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평신도들이 마련한 메주고리예 순례단체를 사제들이 동반하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 나바로-발스 박사는, “그 후 메주고리예에 대한 바티칸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고 언급하였으며, “교회나 바티칸이 메주고리예 방문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 한 적이 있느냐”, 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런 적이 없다” 고 명백히 밝혔다. (가톨릭 신문지, CNS New Release 1996/8/21 발표)
메주고리예에 관한 바티칸의 입장
2. 1998년 1월 1일 프랑스 세인트-데니스 교구장 길버트 오브리(Gilbert Aubry) 몬시뇰이 교황청 신앙교리성 비서 타르치시오 베르토네(Tarcisio Bertone) 대주교 (랏징거 Ratzinger 추기경 회장)에게 서신으로 메주고리예에 관한 문의사항들을 보냈는데 이에 대해 1998년 5월 26일 바티칸의 신앙교리성이 보낸 응답 전문을 아래에 소개한다. (이 문서는 공식 계통을 통하여 프랑스의 전 주교에게 전달되었음) CONGREGATION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 , Pr. No 154/81-06419 , 신앙 교리성(교황청의 상임위원회)
길버트 몬시뇰님 안녕하십니까? 귀하께서는 1998년 1월 1일 소위 말하는 메주고리예의 발현과 사적인 순례 그리고 그곳을 찾는 신자들을 위한 사목에 관하여 또 모스타 교구 주교의 입장에 관하여 몇 가지 질문을 제출하셨습니다. 이 건에 대하여, 저는 귀하께서 문의하신 질문 하나 하나에 회답을 드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황청에서는 일반적으로 초자연적 신빙성에 관해서 보통 직접적인 해석이나 판결을 유보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핵심만을 간추려 말씀드리겠습니다:
1. 그 발현의 신빙성에 관해서 바티칸은 1991년 4월 10일 전 유고슬라비아 주교님들이 채택한 자다 선언문(Declaration of Zadar, Yugoslavia)을 따릅니다. 그 선언문의 내용은 “지금까지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우리는 초자연적인 발현과 계시 등이 있다는 것에 대하여 아직 확인을 못하고 있습니다.”
2. 그 후, 유고 연방국이 다른 여러 독립국가들로 분리되었음으로, 지금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주교회의가 궁극적으로 이 문제를 재조사해야하고 또 필요에 따라 새로운 선언문을 발표해야 할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3. 다음으로 자니치 주교님의 후임인 페리치 주교님이 전 유고슬라비아 주교회의 사무총장에게 보낸 서신을 보면, 메주고리예에 관한 발현과 계시에 대해서 “초자연성은 확립되어있지 않다.” 그리고 “초자연적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것이 확립되었다.!" 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모스타의 주교로서 개인 의견으로 받아드려야 할 것이며, 그분은 그곳 지방의 주교로서 그렇게 말할 권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분 개인의 의견이며 또 앞으로도 그렇게 취급되어야 할 것입니다.
4. 끝으로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메주고리예 순례활동에 관해서, 교황청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이 입증된 것이 아니고 또 아직도 교회 당국에 의해 조사가 필요하다는 조건하에서 순례를 허락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바입니다. 저는 귀하께서 교황청에 제출하신 문의사항들 중에서 적어도 주요한 질문에 한해서는 제가 드린 것이 만족한 답변이 되기를 바랍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요제프 랏징거(Ratzinger) 추기경, 차관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Tarcisio Bertone) 대주교 드림
위 편지내용에 대하여 크리스토퍼 숀본 추기경님이 1998년 7월 18일 루르드에서 하신 해설
숀본 추기경님은 비엔나의 대주교이며, 교황님과 교황실의 1998년 사순절 피정을 맡았으며 『가톨릭 교회의 교리서』의 대표 저자이다. 몬시뇰 길버트 오브리Gilbert Aubry) 교구장에게 보낸 베르토네(Bertone) 대주교님의 회답편지는 메주고리예에 관하여 지금까지 교회가 지켜온 공식 입장을 뚜렷이 나타내고 있다. 즉 교회는 고의로 그 문제를 미결로 남겨두고 있다는 점이며, “초자연적인 성격은 아직 확정되지 않고 있다” 라고 한 것은 전 유고슬로비아 주교회의가 1991년 자다 선언에서 사용한 말이다. 초자연적인 성격이 충분히 확증되었다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메주고리예의 발현이 초자연적인 현상임을 부인하거나 도외시하지도 않고 있다. 특이한 현상들이 발현 또는 다른 방법으로 일어나고 있는 동안에는 교황청은 이에 대해 명확한 발표를 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적 성장과 좋은 열매를 도와주며, 어디에서나 눈에 보이는 위험에서 메주고리예와 순례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실로 우리 목자들의 사명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루르드에서 일어난 최초의 은총이 불행한 사건들로 손상되지 않도록 주선을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메주고리예도 그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주고리예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분명하고도 좋은 열매를 혹시 생길지 모르는 불행한 사건에서 보호하도록 주교님들이 앞장서서 메주고리예를 보호하는 것이 지금도 또 앞으로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라고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하인들에게 일러주신 성모님의 그 말씀은 2천년의 역사를 통해 성모님께서 줄기차게 말씀하여오신 그 요지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성모님은 우리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도록 도와주시며 또 성모님께서는 온 마음을 다하고 모든 힘을 다하여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도록 원하고 계십니다. 메주고리예로 인하여 감화를 받은 저는 이것을 모든 기도단체들이 추구하기를 바라며, 또 우리 교구청과 교회에게 도 이를 원하는 바입니다. 저 자신은 아직도 메주고리예에 다녀오지 않았습니다만, 다녀온 여러 친지들과 만나본 사람들을 통하여 많은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곳에 다녀온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서 좋은 열매를 봅니다. 만일 그런 열매가 있는 것을 부정한다면,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열매는 확실하며 분명히 보입니다. 그리고 저는 메주고리예에 다녀온 많은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 교구와 다른 여러 곳에서 회개의 은총, 초자연적인 현상을 받아드리는 신앙생활의 은총, 성소와 치유의 은총, 성사를 재발견하는 은총, 그리고 고해성사의 은총 등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은총은 우리를 절대 잘못 인도하지 않습니다. 제가 주교로서 이러한 도의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바로 이 좋은 열매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만일 우리가 맺은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판단한다면, 저는 그 나무가 매우 좋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태 7: 17-18] (글- http://blog.naver.com/hyirny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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