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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 (군산시 내초도동)

성지순례/한국 성지(개신교)

by baesungsoo 2013. 1. 28.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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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  (군산시 내초동) , 방문 촬영, 2009년

 

여명기 조선땅에 들어와 신식학교(배재학교 이화학당)를 세우고, 교회(정동교회)를 지어 어린 양들을 돌보다 해상사고로 1902년 고군산열도 어청도에서 희생된 아펜젤러 선교사를 기리는 추모비나 예배처소는 없었다. 아펜젤러 선교사를 파견한 감리교는 헤이그 밀사사건을 일으킨 이준 열사를 포함한 수많은 민족지사를 배출한 교단으로 일제 치하 민족운동에도 적지않은 힘을 실어주었는 데도 우리는 무심하였다. 아펜젤러 선교사 순교 105주년을 맞이하여, 전북 군산시 내초동에 아펜젤러 선교사 순교 기념교회를 세웠다.

 

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         (출처- http://blog.daum.net/psp727/7714498)

  

 

 

 

 

 

 

 

 

 

 

 

 

 

 

 

 

 

 

 

 

 

 

 

 

 

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  (군산시 내초동)          (출처- http://blog.daum.net/psp727/7714498)








 


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  (군산시 내초동)          (출처- http://blog.daum.net/psp727/7714498) 

 

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  (군산시 내초동)          (출처- http://blog.daum.net/psp727/7714498)

 

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  (군산시 내초동)          (출처- http://blog.daum.net/psp727/7714498)

 

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  (군산시 내초동)          (출처- http://blog.daum.net/psp727/7714498)

 

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  (군산시 내초동)          (출처- http://blog.daum.net/psp727/7714498)

 

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  (군산시 내초동)          (출처- http://blog.daum.net/psp727/7714498)

 

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  (군산시 내초동)          (출처- http://blog.daum.net/psp727/7714498)

 

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  (군산시 내초동)          (출처- http://blog.daum.net/psp727/7714498)

 

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  (군산시 내초동)          (출처- http://blog.daum.net/psp727/7714498)

 

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  (군산시 내초동)          (출처- http://blog.daum.net/psp727/7714498)

 

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  (군산시 내초동)          (출처- http://blog.daum.net/psp727/7714498)

 

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  (군산시 내초동)          (출처- http://blog.daum.net/psp727/7714498)

 

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  (군산시 내초동)          (출처- http://blog.daum.net/psp727/7714498)



















































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  (군산시 내초동)          (출처- http://blog.daum.net/psp727/7714498)

 

◈아펜젤러 선교사가 숨진 해상성지


새만금 방조제 한쪽에 자리잡은 아펜젤러 기념교회는  아펜젤러 선교사의 순수한 영혼을 항해하는 배 모습으로 교회를 건축했다. 교회 2층 아펜젤러 선교사 기념관에 올라보면 저 멀리 아펜젤러 선교사가 숨진 어청도 앞바다가 보인다. 어청도 앞바다는 2년 전 2005년 6월11일 감리교단에 의해 해상 성지로 선포되었다.


◈감리교의 뿌리가 순교한 어청도 앞바다


그동안 아펜젤러 선교사가 조난당한 군산 앞바다를 찾아오는 순례객들은 꾸준하게 있었다. 아펜젤러 선교사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현장에는 아무런 안내판도, 기념물도 없었다. 장로교 통합 합동교파 다음으로 국내 3대 교단을 형성하고 있는 감리교를 국내에 첫 도입한 아펜젤러 선교사가 숨진 ‘해상성지’는 1백 년간의 고독에 묻혀 있었다. 도시의 대형교회들은 저마다 외형적인 성장이라는 허울에 빠져 본질을 잊고 있을 때, 군산 내초도(지금은 육지로 바뀌어 내초동) 바닷가 한 작은 교회에서 기도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타국에서 이방인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 일보다 더 위대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스도를 모르고,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던 개화기 조선을 위하여 헌신하다가 군산 앞바다에서 순교한 아펜젤러 선교사의 숭고한 넋을 후세들에게 전하도록 기념관을 세우겠습니다.”


◈선교사의 죽음 헛되이 할 수 없어


과거 내초교회로 불리던 온누리교회 임춘희 목사와 신도들은 아펜젤러 선교사가 숨진 곳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교회이기에 이런 사명감을 느꼈다. 우선 기념관이라도 지으려고 했다. 그런데, 선한 일을 열정을 갖고 추진하려는데 하나님이 동참하심일까? 군산지방 감리교단에서 아펜젤러 선교사 순교기념교회 추진위를 구성하며 일부 재정지원도 있었지만, 거의 전부 온누리 교인들의 헌금이 놀라운 힘을 발휘, 애당초 기념관을 세우려던 소박한 구상이 순교기념교회 헌당으로까지 커졌다.


◈겨자씨만한 보은의 마음이 큰 열매 맺어


환경운동을 하는 담임목사의 지향에 맞춰, 교회는 친환경적으로 지어졌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과 교회 곳곳에 예배당과 기도실, 수련시설, 기념관, 영사시설까지 갖췄다. 아펜젤러 선교사가 숨진 배를 찾기 위한 작업은 다각도로 진행되었다. 미국 샌디에이고 해군기지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고, 학자들도 여러 갈래로 검증에 나섰다. 그러나 아직 아펜젤러 선교사가 타고 있던 조난배와 유해 탐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물론 비용부담이 큰 탓이다. 지금 서울 마포구 양화진에 있는 선교사 묘역은 가묘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출신 젊은 신학생이던 아펜젤러 선교사는 지금 조선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해 날마다 영적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는 한 목사님의 설교에 감화를 받아서 자발적으로 조선행을 택하였다. 1885년 4월 5일 제물포(현재의 인천)를 통해 조선에 입국한 아펜젤러 선교사는 입국 초기에 선교활동이 자유롭지 못할 때는 교육사업에 주력하여 왕실의 큰 신뢰를 받았다. 어느 정도 선교활동이 보장되자, 전도여행을 자주 떠났던 아펜젤러 선교사는 1888년 한해만 무려 1천830마일이나 지방을 찾아다녔다. 1889년 8월에는 대구를 거쳐 부산을 방문한 것으로 그의 일기에 나오지만, 정확히 대구의 어디에서 묵었고,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  (군산시 내초동)          (출처- http://blog.daum.net/psp727/7714498)

 

◈성서번역자대회에 참가하려다 조난당해


고종으로부터 교명을 하사받아 배재학교를 세우기도 한 아펜젤러 선교사는 한글성서편찬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실제로 당시 마태오 복음, 마르코복음, 고린도 전후서를 번역한 장본인이다. ‘저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고, 섬기러 왔습니다.’ 서울 양화진 선교사 묘역 아펜젤러 선교사가묘의 추모비에 서있는 이 글처럼, 아펜젤러 선교사는 죽음의 철창을 산산이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께서 이 나라 백성들을 옭아맨 결박을 끊고, 조선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복된 삶과 자유를 허락하라고 기도하였다. 아펜젤러 선교사가 복음의 꿈을 접고, 급히 하나님 나라로 들게 된 것은 사고사 때문이었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한국어조수(조한규), 친지의 부탁을 받은 이화학당 여학생과 함께 목포에서 열린 성서번역자대회에 참석하러 배를 타고 가다가 다른 배와 해상 충돌 당하였다. 조난당한 배에서 살아남은 광산업자 보울비에 따르면 아펜젤러 선교사는 충분히 탈출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배 아래칸 3등 선실에 있던 한국인 조수와 이화학당 여학생을 구하려고 아래로 내려갔다가 참변을 당했다고 쓰고 있다. 혼자만의 탈출 대신, 조선인 친구를 구하려다 희생된 아펜젤러 선교사야말로 친구를 위하여 내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일은 없다고 한 요한복음의 말씀을 실천한 인물이다.


◈이름없는 바닷가 교회가 이룬 기적


아펜젤러 선교사가 숨진 해상성지는 방치되고 있었다. ‘한국을 자유와 그리스도의 빛으로’ 덮고 싶었던 아펜젤러 선교사의 순수한 꿈이 일백여 년 만에 교회로 다시 피어난 것은 은총이었다. 고군산열도에 속한 내초도의 한 이름없는 교회(온누리교회)가 기적을 만든 것이다. 아펜젤러 선교사일가는 한국을 위한 봉사를 대물림한 집안이다. 아들 헨리 다지 아펜젤러는 14세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죽음을 접하고, 한때 하나님을 원망하며 방황하던 시절까지 겪었다. 그러나 고통 뒤에 더 큰 기쁨을 누리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인가? 철이든 헨리 다지 아펜젤러 2세는 아버지가 그토록 사랑하던 조선사람, 매일같이 영적 장례식을 치르는 조선인들을 위한 헌신의 바다에 뛰어들었다. 조선을 위한 헌신의 자세를 물려받았다. 헨리다지 아펜젤러는 아버지가 세운 배재중고교의 교장으로 자신의 삶 전부를 우리 민족을 위해 내놓았고, 아펜젤러 선교사의 첫 딸로 한국에서 태어난 첫 서양아기인 엘리스 또한 감리교 선교사로 한국땅을 밟은 뒤, 이화학당을 맡아 헌신한 후, 1950년 이대에서 설교하다가 강단에서 순교하였다. 바다에 수장된 아펜젤러 선교사와 신병 치료차 건너간 미국에서 숨졌지만 조선땅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그 유해가 이장되어온 헨리 다지 아펜젤러, 그리고 강단에서 숨진 아펜젤러의 선교사맏딸 엘리사의 죽음, 잊어서는 안되리라. (글·최미화기자, 사진·정우용기자, 200706)

(출처- http://blog.daum.net/ledk1007) 

 

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  (군산시 내초동)          (출처- http://blog.daum.net/psp727/7714498)

 

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  (군산시 내초동)          (출처- http://blog.daum.net/psp727/7714498)

 

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  (군산시 내초동)          (출처- http://blog.daum.net/psp727/7714498)

 

아펜젤러 순교 기념교회  (군산시 내초동)          (출처- http://blog.daum.net/psp727/7714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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