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부산 오륜대 한국 순교자 기념관 (부산 금정구 부곡3동)

성지순례/한국 성지(카톨릭,기타)

by baesungsoo 2013. 3. 27. 16:45

본문

오륜대 한국 순교자 박물관     (출처- cafe.daum.net/chjungbang/OG6t/45 )

 

부산 오륜대에 자리 잡은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에서는 조선말기 한국 순교자들의 유물과 교회사 자료들이 한국순교복자수녀회의 수녀들에 의해 수집, 정리, 전시, 보존되고 있다. 해방 직후인 성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 되던 해(1946년 4월 21일)에 황해도 개성본당의 주임신부인 방유룡(안드레아) 신부는 윤병현(안드레아), 홍은순(라우렌시오) 두 수녀와 함께 '복음 선포와 순교자 현양'을 목적으로 ‘한국순교복자수녀회’를 창설하게 된다. 본 수도회에서는 설립 취지대로 순교자들의 얼을 기리고 후손 대대로 순교의 신앙을 물려주기 위하여, 본회 수녀들을 전국 방방곡곡으로 파견하여 전교와 함께 사라져가던 순교자의 유물과 교회사자료, 박해시대의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민속자료들도 함께 수집하거나 기증받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자료들을 보다 안전하게 보관하고 전시하기 위하여 기념관 설립을 계획한다. 그런데, 서울교구에서 먼저 병인박해(1866년) 10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1968년에 절두산 순교기념관과 성당을 건립하자, 한국순교복자수녀회는 서울과 가장 멀리 떨어진 부산지역 내에 순교자기념관을 세우기로 결정한 후 당시 부산교구장 최재선 주교의 협조로 1982년 이곳(금정구 부곡3동)에 오륜대 한국순교자기념관을 개관하고 수집한 자료들을 전시하여 순교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생활상을 느껴볼 수 있게 하였다. 순종비 순정효왕후와 의왕비 김덕수 마리아님께서 기증해 주신 궁중유물, 대원군의 친필 등 왕실의 유물들과 김인순(누갈다)님께서 기증해 주신 조선시대 생활상을 알 수 있는 많은 민속품 등도 함께 소장하고 있어 조선 말기와 개화기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연 혁

1969. 6. 13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오륜대 수도원 설립(부산 순교자 100주년 기념) 오륜대 분원 ‘겨자당’ 축성식

1973. 3. 12 ‘대건당’ 건축 기공식

1974. 3. 13 공동창립자 마뗄 윤병현 · 쁘로마뗄 홍은순 수녀 오륜대 분원에 정주

1975. 8. 2 순교자 성당 제대 뒷벽에 한국 순교성인 유해 26위 안치

1976. 9. 30 오륜대 한국순교자기념관 기공식

1977. 7. 20 순교자 성당 축성식

1977. 9. 19 명장동에 있던 부산 순교자 묘소 이장

(1868년 6월 수영장대 8위 순교자 : 순교자 이정식 요한, 이삼근 베드로, 이관복 프란치스코, 박조이 마리아, 양재현 마르티노, 차장득 프란치스코, 이월주 프란치스코, 옥소사 바르바라)

1977. 9.1~30 골조만 세워진 기둥에 성 김대건 신부 일대기 성화 사진 전시

1981. 2. 14 오륜대 한국순교자기념관 완공

1981. 10. 5 오륜대 한국순교자기념관 축성식 척화비 복제, 라파엘호 모형 제작, 십자가의 길, 묵주기도의 길, 성모동굴 조성

1982. 9. 25 오륜대 한국순교자기념관 개관식 1·2층 한국천주교회사 전시실, 3층 민속품 전시실

 

1985.5.6~30 103위 한국순교성인 시성 기념물·애국지사 안중근 도마 · 일본에서 순교한 한국 순교자 전시코너 개설

 

1988. 7. 15 88올림픽 기념 국립박물관 특별전에 민속품 16점 출품(국립박물관 도록 ‘한국의 미’ 에 출품 민속품 게재)

1988.10. 3 성체성년 기념으로 제구·제의 등 전례 코너 개설

1989. 4. 10 농기구장 전시실 개설

1989. 6. 17 옛날 항아리와 장독대 개설

1989. 7. 31 김인순(누갈다) 기증 민속품 전시실·신정희 도자기 전시 코너 개설

1992. 3.~6. 미국 뉴욕 IBM Gallery 전시를 위해 민속품 10점 국립중앙박물관에 대여

1994. 5. 18 다산정 건축

1996. 4. 13 성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최양업 신부 탄생175주년 기념비 건립

1996. 9. 15 최양업 신부 동상 건립

1997. 9. 26 개관 15주년 행사(서울 세실 합창단 공연)

1997.10. 2 제주교구 100주년 행사에 성 김대건, 최양업 신부 일대기 순교화 및 형구 전시회

2000. 2. 4 2000년 대희년 기념비 제막식

2000. 5. 16 현대 순교자 김선영 신부·조선족 유물 저시 코너 개설

2000.9. 1 대희년·성 김대건 신부, 최양업 신부 특별전시실 개설

2001. 9. 10 미국 뉴저지에서 순교자 현양 전시회

2003. 1. 7 이문근 신부 관련 자료 전시

2003. 9 동정부부 순교자 이 누갈다 · 유 요한 성화전

2004. 9 시복시성을 기다리는 윤지충과 동료 순교자 124위 중 “초대 교회의 증거자와 순교자”성화전

2005. 9 성 김대건 신부 일대기 성화전

2006. 9 성 김대건 신부 순교 160주년 기념 한국 순교자들의 성화전 - 시복에서 시성까지(1925년~1984년)

2007. 9 1. 박해기에 쓰여진 조선 교우들의 서한 10점 , 자료제공 : 부산교구 전수홍(안드레아) 신부

2. 시복시성을 기다리는 124명 중 1791년부터 1801년 4월에 순교한 순교자 성화전(24점)

3. 부산교구 시복시성 신청자 3명 성화전 김범우(토마스) · 이정식(요한) · 양재현(마르티노)

2008. 9 1. 시성시복을 기다리는 순교자들(“하느님의 종 124위”)

2. 박해기에 쓰여진 조선 교우들의 서한

2009. 3. 2 부산시에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으로 박물관 등록       (글 출처- http://oryundaemuseum.com/htm/info2.htm)

 

오륜대 한국 순교자 박물관     (출처- cafe.daum.net/chjungbang/OG6t/45 )

 

오륜대 한국 순교자 박물관     (출처- cafe.daum.net/chjungbang/OG6t/45 )

 

오륜대 한국 순교자 박물관     (출처- cafe.daum.net/chjungbang/OG6t/45 )

오륜대 한국 순교자 박물관               (출처- mokdong.or.kr/technote6/)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은 우리나라에 가톨릭이 들어와 뿌리내리기까지 박해받고 순교하신 선조들의 순교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 한국순교복자수녀회에서 설립하여 무료로 운영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 가톨릭박물관으로, 1982년 9월 25일 박물관이 개관하였다. 본 박물관은 조선후기 가톨릭 순교자들이 남긴 교회 관련 유물뿐만 아니라 다양한 민속품과 지역 주민들은 쉽게 접할 수 없는 귀중한 조선후기 궁중유물들도 소장, 전시하고 있다. 또한 매년 가정의 달 5월과 결실의 계절 9월에 다양한 주제로 특별전을 준비하여, 일반 대중들에게 문화 다양성의 시대에 새로운 가톨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초·중·고 학생들에게는 우리나라의 역사교육과 함께 주5일제 수업 이후 ‘토요문화학교’ 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2012년 박물관 개관 30주년을 기념하여,『皇家의 氣品』- 天主敎와 皇家의 만남을 준비하였다. 이번에 준비한 특별전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1898)과 그 후손인 고종(高宗, 1852~1919)황제의 아드님 의왕(義王, 1877~1955)과 의왕비(義王妃 1878~1964), 순종(純宗, 1874~1923)황제의 비인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 1894∼1966)가 사용한 궁중유물을 중심으로 전시 하였다. 전시하는 유물 중 대표적 유물인 의왕(義王, 1877~1955년)의 원유관(遠遊冠)은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가 된 후, 의왕이 왕으로 책봉될 때(1900년) 착용한 것으로,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관모(冠帽)이다. 그 외에도 순정효황후 당의唐衣당의를 비롯하여 대원군 친묵 등 여러 가지 품격 높은 궁중유물이다. 흥선대원군은 조선말 가톨릭을 박해한 대표적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아내인 부대부인 민씨(府大婦 人 民氏, 1818~1897)와 손자인 의왕과 의왕비도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글 출처- http://museumnews.kr/)

 

 

성녀 김효주 아녜스와 김효임 골룸바상              (출처- cafe.daum.net/chjungbang/OG6t/45 )

 

박물관 전시물      (출처-blog.daum.net/ytw0901/18238207 )

 

박물관 전시물      (출처-blog.daum.net/ytw0901/18238207 )

 

박물관 전시물      (출처-blog.daum.net/ytw0901/18238207 )

 

박물관 전시물      (출처-blog.daum.net/ytw0901/18238207 )

 

박물관 전시물      (출처-blog.daum.net/ytw0901/18238207 )

 

박물관 전시물      (출처-blog.daum.net/ytw0901/18238207 )

 

박물관 전시물      (출처-blog.daum.net/ytw0901/18238207 )

 

오륜대 한국 순교자 박물관 척사비     (출처- cafe.daum.net/chjungbang/OG6t/45 ) 

 

오륜대 순교자 성당            (출처- cafe.daum.net/chjungbang/OG6t/45 )

 

오륜대 순교자 성당                  (출처- cafe.daum.net/chjungbang/OG6t/45 ) 

 

성당 내부 우측에 있는 파티마 성모 상         (출처- mokdong.or.kr/technote6/

 

순교자 성당과 기념비   (출처- http://blog.daum.net/shadha) 

 

김대건 신부의 탄생과 순교 기념비와 103위 성인 시성 기념비

 

오륜대 한국 순교자 박물관     (출처- cafe.daum.net/chjungbang/OG6t/45 )

 

오륜대 한국 순교자 박물관     (출처- cafe.daum.net/chjungbang/OG6t/45 )

 

오륜대 한국 순교자 박물관     (출처- cafe.daum.net/chjungbang/OG6t/45 )

 

오륜대 한국 순교자 박물관     (출처- cafe.daum.net/chjungbang/OG6t/45 )

 

김대건 신부상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read.asp)

 

김대건 신부상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read.asp)

 

김대건 신부의 말씀       (출처- http://blog.naver.com/susannadj) 

 

리델 주교, 다블뤼 주교, 최양업 신부 기념비              (출처- mokdong.or.kr/technote6/)  

 

최양업 신부 상

 

최양업 신부 상

 

라파엘 호                    (출처- mokdong.or.kr/technote6/)  

 

십자가의 길

 

십자가 14처 처

 

십자가의 길, 성 요셉상            (출처- mokdong.or.kr/technote6/)   

 

순교자 묘소                    (출처- mokdong.or.kr/technote6/)            

 

성당을 왼편에 끼고 돌아가면 십자가의 길과 로사리오의 길이 나타나고 그 위쪽으로 동래 출신 8명의 순교자 무덤이 깨끗하게 정돈돼 있다. 80여 세의 노구로 사형의 험한 꼴을 당한 이정식(요한), 그의 아들 이관복(프란치스코), 이관복의 처 박소사(마리아)등 일가를 포함한 8명의 순교자는 병인박해의 서슬 아래 1868년 6월 부산 수영 장대(水營將臺: 현 부산 광안동 수영 중학교 뒤)에서 군문 효수(軍門梟首)의 극형을 받았다. 이들 8명 중 이정식의 가족 4명의 무덤이 본시 부산 동래구 명장동 산 96번지 가르멜 수녀원 뒷산 등에 묻혀 있었다가 1977년 9월 19일 현재의 한국 순교자 기념관 뒷동산으로 이장되었고 다만 나머지 4명의 무덤은 아직 찾지 못해 기념비만을 세워 두었다.

 

순교자 이정식 요한 (1794-1868년)  


이정식(李廷植) 요한은 경상도 동래 북문 밖에 살던 사람이었다. 그는 젊었을 때 무과에 급제한 뒤 동래의 장교가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활 쏘는 법을 가르친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나이 60세 때 교리를 배워 천주교에 입교한 뒤로는 첩을 내보내고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다. 요한은 이후 가족들을 열심히 권면하여 입교시켰으며, 누구보다 수계에 열심이었다. 화려한 의복을 피하고, 항상 검소한 음식을 먹었으며, 애긍에 힘쓰면서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노력하였다. 또 작은 방을 만들어 십자고상과 상본을 걸고 묵상과 교리 공부에 열중하였다. 이러한 열심 때문에 요한은 입교한 지 얼마 안되어 회장으로 임명되었고, 그는 언제나 자신의 본분을 다하였다. 그러던 중 1866년에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가족들과 함께 기장과 경주로 피신하였다가 다시 울산 수박골로 피신하여 교우들과 함께 생활하였다. 1868년 이정식 요한 회장은 동래 교우들의 문초 과정에서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자 동래 포졸들은 그가 사는 곳을 수소문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는 그의 거주지를 찾아내 그곳에 있던 교우들을 모두 체포하였다. 그때 요한의 아들 이관복(프란치스코)과 조카 이삼근(베드로)은 요한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스스로 포졸들 앞으로 나와 자수하였다. 이내 동래로 압송된 요한 회장은 그곳에서 대자 양재현(마르티노)을 만나 서로 위로하며 신앙을 굳게 지키자고 다짐하였다. 그리고 천주교의 우두머리로 지목되어 문초를 받게 되자, 요한은 천주교 신자임을 분명히 하고는 많은 교우들을 가르쳤다는 것도 시인하였다. 그러나 교우들이 사는 곳만은 절대로 입밖에 내지 않았다. 또 형벌을 받으며 배교를 강요당하였지만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다. 요한과 동료들은 문초와 형벌을 받은 뒤 47일 동안 옥에 갇혀 있으면서 고통을 당해야만 하였다. 그러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신앙을 버리고 석방된 사람은 없었다. 동래 관장은 마침내 사형을 결정하였다. 그런 다음 옥에 있는 신자들을 끌어내 군대 지휘소가 있는 장대(將臺)로 압송하였다. 이때 사형을 맡은 군사들이 부자를 한날에 죽이는 것을 꺼려하자, 동래 관장은 동시에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령하였다. 요한은 참수형을 당하기에 앞서 삼종 기도를 바치고 십자 성호를 그은 다음에 칼을 받았으니, 그때가 1868년 여름으로, 당시 그의 나이는 75세였다. 순교 후 그의 시신은 가족들에 의해 거두어져 사형장 인근에 안장되었다. 

 

순교자 묘소                (출처- cafe.daum.net/chjungbang/OG6t/45 )

 

오륜대 한국 순교자 박물관     (출처- cafe.daum.net/chjungbang/OG6t/45 ) 

 

오륜대 한국 순교자 박물관     (출처- cafe.daum.net/chjungbang/OG6t/45 )

 

오륜대 한국 순교자 박물관     (출처- cafe.daum.net/chjungbang/OG6t/45 )

 

약도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