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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맛 (Hamath)

성지순례/이란,시리아,요르단 등

by baesungsoo 2014. 1. 1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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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맛 (Hamath)


하맛(Hamath, 삿 3:3)은 오늘날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쿠스(다메섹)에서 북쪽으로 214㎞ 지점에 있는 오론테스 강변의 나흐르 엘 아시(Nahr el Asi)이다.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선이다. 이곳은 다메섹, 두로, 시돈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슥 9:2). 그 남경(南境)은 이스라엘의 이상적 경계의 북경과 접하고 있었다(민 13:21,수 13:5비교) 에블라 문헌에서는 에마투(Ematu)로,시리아-히타이트 설형문자 비문에서는 아마투(Amtu)로 표기되고 셀루시드 왕조 때(BC175∼164년)에는 에피파네이아로 개칭되었는데 현재 지명은 하마(Hama)이다. 시리아의 북부 알렙포에서 출발하여 하맛까지는 146㎞지만 시리아에서 고속도로로 연결되어있다. 성서시대에 하맛은 오랫동안 독립 왕국의 중심지였다. 이곳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지경을 정탐할 때 최북단의 정탐도시였다(민 13:21). 다윗 때에는 하맛 왕국의 수도였으며 다윗은 이 왕국과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그래서 소바 왕 하닷에셀을 물리칠 때 하맛 왕 도이(Toi)의 도움을 받았으며 다윗은 소바와 동맹을 맺었다(삼하 8:3∼12 참조). 이후 솔로몬은 이곳까지 진출하여 요새를 세웠는데 성전 낙성식 때는 이곳 사람들까지 참여했다(왕상 8:65). 여로보암 2세는 이를 자신의 지배하에 두었다(왕하 14:28).그러나 하맛은 이 디글랏 빌레셋 3세와 사르곤 2세에게 점령되고, 시민은 앗수르로 사로잡혀 끌려 갔다. 이 점령은 예언자의 문서에 인용되고 있다(사 10:9,렘 49:23,왕하 18:34,사 36:19,왕하 19:13참조). 하맛은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서 이송될 땅으로서(사 11:11), 또 그 곳의 백성이 사마리아 함락에 즈음하여 이스라엘의 지역으로 이송될 것을 기록하고 있다(왕하 17:24,30). 요나단은 데메트리오스(Demetrius)를 하맛에서 쳤다(마카비 1서 12:25). 하맛은 헬레니즘 시대에도 융성하였으며, 안티오코스 Ⅳ세 에피파네스(Antiochus Ⅳ Epiphanes)는 하맛을 `에피파니아'( jEpifavneia, Epiphania)로 개명하였다.오늘날의 풍요로운 모습을 보면서 솔로몬이 국고성을 세울 만한 입지적 조건을 일찍부터 갖추고 있었음을 짐직할 수 있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맛에 남아 있는 백성들까지 돌아올 것이라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했다(사 11:11). 하맛에 대한 발굴은 1931∼38년에 인골트(H Ingholt)가 이끈 덴마크 발굴단에 의해 이루어졌다. 발굴 결과 12개의 주거층이 드러났는데 최초의 거주시기는 신석기 시대까지 거슬러올라 간다. 가장 오래된 지역은 왼쪽 강둑이며 그 규모는 높이 45m,넓이 12㎢의 성채 마운드이다. 그리고 3세기쯤 골짜기에 세워진 신전터에서 출토된 유물은 현재 대사원에 보존돼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곳에서는 여호와 신앙과 관련된 특별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글 출처- [이원희 목사의 성서 속 도시 이야기], 국민일보 생활/문화 | 2005.07.25

 

고대 수차  


오늘날 직물산업의 주요 도시인 하맛은 오론테스 강이 시작되는 곳에 위치해 있는데 시내 중심가에 고대 수차가 있는 아름다운 도시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물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은 생존에 관계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고대에는 물을 도시로 끌어오기 위해 지하터널을 만들기도 하고 로마의 수도교처럼 공중에 수로를 건설하기도 했으며 하맛에서는 수차를 이용하였다.

 

오론테스 강과 고대 수차  

 

 오론테스 강과 고대 수차

 

고대 수차 

 

고대 수차 

 

고대 수차 

 

고대 수차

 

오론테스 강 

 

수차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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