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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벨레(키벨레, Cybele, Kyveli)

여성신,신화/그리스,로마

by baesungsoo 2014. 1. 2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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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bele enthroned, with lion, cornucopia and Mural crown. Roman marble, c. 50 CE. Getty Museum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File:Cybele_Getty_Villa_57.AA.19.jpg)

 

키벨레(Cybele)프리기아의 여신이었다. 억지로 그리스신화에 끼여들었으나.그녀에 대한 기록은 모순된 많은 요소를 포함하고있다. 일반적으로 제우스 등 그리스 최대의 신들의 어머니인 레아와 동일시 되어 어머니인 대지를 나타낸다. 그러나 프리기아에 전해지는 키벨레 신화는 다음과 같다.

1.『제우스가 프리기에의 딘디몬 산에 누워 잠자고 있을 때 그의 정액이 지상에 흘러, 그곳에서 남녀 양성의 기관을 가진 불가사의한것이 태어났다. 신들은 이러한 신이 존재하게 될 것에 놀라. 그 남근을 절단해버렸다,이리하여 그 아이는 성장하여 키벨레 여신이 되었다. 한편 절단된 남근은 땅에 떨어져 아몬드 나무가 되고 어느날 그 나무 에서 열린 아몬드열매 하나가 산가리오스 하신의 딸인 나나의 무릎에 떨어졌다. 이 열매가 다시 그녀의 태내에 들어가 아들 아티스를 출산했는데, 나나는 곧 그를 산에 버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숫산양이 그에게 젖을 먹여 미남으로 성장했다, 키벨레가 그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아티스는 연정에 냉담했거나 또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페시누스 왕의 딸과 결혼 하려 했다. 이에 키벨레는 몹시 화가나서 아티스와 그녀의 아버지를 발광하게 만들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스스로 거세했는데,아티스는 그 상처로 인해 죽고 말았다. 키벨레는 자신의 잔인한 행위를 후회하고, 제우스 에게 아티스의 시체를 절대로 썩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아티스는 페이누스(이곳에서는 키벨라가 아그디스티스로 알려져있었다.)에 장사지내졌는데,손가락만을 계속 움직이고 머리카락도 자랐다.』

2.『또다른 절설에 의하면,  키벨레는 프리기아 왕 메이온과 그의 아내인 딘디메의 딸이라고 한다. 그녀는 후에 그이름을 따서 지어진 산에 버려져, 사자와 표범의 젖을 먹고 자랐다. 그녀는 산중에서 경기와 춤을 시작하고,하인인 코리바스들에게 심벌즈와 북을 주어 제사의 반주를 시켰다. 또 그녀는 의술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린이와 야생동물의 수호자이기도 했다. 어느 날 그녀는 아티스를 보고 사랑하게 되어, 그를 자신의 신관으로 삼고 절대적은 충성을 요구했다. 그리나 아티스는 강의 님프인 시가리티스 와 밀통하여 키벨레와의 약속을 어겼다. 이에 키벨라가 아티스를 발광케 만들자. 그는 자신을 거세하고 이 상처 때문에 죽고 말았다.』

3.『또 다른 설에 따르면, 키벨레와 아티스 사이에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 사실을 키벨레의 아버지인 메이노이 알고 아기와 아티스를 죽였다고 한다. 그래서 키벨레는 절망 끝에 북을 치고 연인의 죽음을 탄식하면서 온 나라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후 질병이 만연하자 프리기아인들은 신탁에 따라 키벨레를 여신으로 모시고 아티스의 성대한 장례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그는 페시누스 근처의 키벨레 신전에 묻혔으나,키벨레가 그를 다시 살렸다.』

4.『그러나 어떤 설에 따르면, 아티스는 어느 왕으로부터 동성애를 요구 받았으나 이를 거절했기 때문에 거세당한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소나무 밑에 누워 빈사 상태에 있는 아티스를 키벨레의 하인들이 발견하여 그녀의 신전에 옮겨놓았는데, 거기서 그는 숨을 거두었다. 키벨레는 그를 신으로 모시고, 거세된 남자만이 그 신관이 되도록 했다. 그는 해마다 키벨레의 숭배자들에 의해 그의 죽음을 애도 하였다.』 키벨레는 로마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서 그녀는 보나데아와 동일시되어 사람들에게 친애의 정을 받았다. 기원전 205년에 이르러 그녀에 관한 신화가 만들어 졌다. 그것은 제 2차 폼페이 전쟁 중의 일로서, 이때 그녀에 대한 신앙이 로마에 전해  졌다. 이는 '시벨레의 글'에 ,만일 로미인이 승리하려면 로마에 대지의 여신을 데려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쓰에 있었기 때문이다. 델포이의 신탁은 로마인에게 페시누스로 가도록 지시하고, 그땅에서 로마인들은 키벨레를 상징한다는 거룩한 돌을 입수했다. 그러나 이 돌을 로마로 운반할때 배가 티베리스 강 하구에서 좌초 하고 말았다. 이때 오해로 인해 불륜의 죄를 뒤집어 쓰고 있던 클라우디아 퀸타라는 여성이 키벨레에게  기도드리고 배에 있던 밧줄을 가볍게 끌어당겼다. 그러자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여, 이로써 클라우디아의 무죄가 입증되었다.

 

Cybele with in the shape of city walls).    (출처-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Cybele_Getty_Villa_57.AA.19_n3.jpg)

 

Cornucopia, traditional attributes      (출처-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Cybele_Getty_Villa_57.AA.19_n4.jpg)

 

Lion, a traditional attribute of Cybele. The face is an individualized portrait of Roman woman, probably of a high status. Roman marble, ca. 50 AD   (출처-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Cybele_Getty_Villa_57.AA.19_n5.jpg)

 

Gravestone of Pollis.     (출처-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Gravestone_of_Pollis_(c._480_BCE,_Getty_Villa_Collection)

 

Marble statuette of Cybele from Nicaea in Bithynia. (Istanbul Archaeology Museum)

 (출처- http://www.newworldencyclopedia.org/entry/File:Cybele_Bithynia_Nicaea.jpg)

 

1st century BCE marble statue of Cybele from Formia, Lazio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File:Cybele_formiae.jpg)

 

Roman Imperial Attis wearing a Phrygian cap and performing a cult dance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File:Attis_Altieri_Chiaramonti_Inv1656.jpg)

 

Seated Cybele within a naiskos (4th century BCE, Ancient Agora Museum, Athens)

(출처-http://en.wikipedia.org/wiki/File:AGMA_Cyb%C3%A8le.jpg )

 

Seated Woman of Çatalhöyük c. 6,000 BCE

(출처-http://en.wikipedia.org/wiki/File:Ankara_Muzeum_B19-36.jpg )

 

 

(출처- )

 

The eroded rock-statue of Cybele at Mount Sipylus, in an early 20th-century French postcard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File:KybeleStatue19thCenturyPostcardMountSipylusManisaTurkey.jpg)

 

Cybele and Attis (seated right, with Phrygian cap and shepherd's crook) in a chariot drawn by four lions, surrounded by dancing Corybantes (detail from the Parabiago plate; embossed silver, c. 200–400 CE, found in Milan, now at the Archaeological Museum of Milan)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File:9595_-_Milano_-_Museo_archeologico_-_Patera_di_Parabiago_-_Foto_Giovanni)

 

Cybele drawn in her chariot by lions towards a votive sacrifice (right). Above are the Sun God and heavenly objects. Plaque from Ai Khanoum, Bactria (Afghanistan), 2nd century BCE    (출처-http://en.wikipedia.org/wiki/File:AiKhanoumPlateSharp.jpg )

 

Eroded inscription from Lugdunum (modern Lyon, in France) commemorating a taurobolium for the Mother of the Gods under the title Augusta          (출처-http://en.wikipedia.org/wiki/File:Lyon-Autel-CIL-XIII-1756.jpg )

 

마드리드 시벨레스 광장 시벨레 여신   (출처- http://cafe.daum.net/bpguide/FbqL/7631) 

 

마드리드 시벨레스 광장은 카스테야나 거리와 알칼라 거리의 교차점에 위치한 여러 명소 중의 하나다. 광장의 명칭은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자연의 신 시벨레의 이름을 딴 것으로, 광장의 중앙 분수대에는 시벨레 여신이 두 마리의 사자가 이끄는 수레를 타고 있는 조각상이 주목을 끌고 있다. 이것은 18세기 후반에 호세 에르모시야(JoseHermosilla)와 벤투라 로드리게스(Ventura Rodriuez)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현재까지 마드리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기념물로 통한다. 하늘과 땅의 여신 시벨레스 (the Phrygian goddess of fertility, who is seen sitting on a chariot and being pulled by two lions) 의 이름을 따 온 시벨레스분수는 마드리드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이다. 분수대는 대리석으로 만든 사자가 이끄는 수레를 타고 있는 시벨레스의 모습을 조각해 놓았다. 낮에는 그 웅장함이 볼 만하고, 밤에는 아름다운 조명 속의 분수가 볼 만하다. 시벨레스광장 주변에는 멋있는 건물들이 늘어 서 있어 더 유명하다. 광장 주변에는 중앙 우체국, 카사 데 아메리카 건물, 스페인 중앙은행, 현재 군 본부로 사용되는 궁전 등 4개의 기념비적인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 건물들뿐 아니라 나머지 주위의 건물들도 구도심의 기존 도시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거나 지역의 역사성이 훼손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고층 빌딩의 신축은 허가되어 있지 않다.

 

마드리드 시벨레스 광장 시벨레 여신   (출처- http://cafe.daum.net/bpguide/FbqL/7631)  

 

Cybele "수많은 탑으로 머리를 장식하고 여러 신들을 낳은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전차에 몸을 실은 베르생티엔 여신이여!" 프랑스 시인 벨레는 키벨레를 이렇게 묘사했다. 프리기아 지방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키벨레 여신은 크로노스의 아내인 레아와 동일시되면서 '신들의 어머니'로 일컬어진다. 이 여신은 벨레의 시가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렬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키벨레 여신제가 있을때 숭배자들은 사지를 자르고 집단 성교를 벌이기 예사였다. 중앙 아시아에서 시작된 키벨레 숭배 의식은 로마로 흘러들었는데, 이곳에서는 여신을 상징하는 '검은 돌'을 섬기며 다산을 빌었다. 예술 작품속에서 키벨레 여신은 사자들이 호위하는 여신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키벨레는 디오니소스가 광기에 사로잡혀 헤매고 다닐때 자신이 주관하던 비의에 입문시키면서 그를 치유한 바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키벨레 여신은 광기에 휩싸여 자신의 남근을 스스로 잘라버린 아름다운 청년 아티스와의 사랑으로 유명하다.

 

Cybele fountain in Madrid             (출처-https://landofgoddesses.files.wordpress.com/2013/02/tweet201215.jpg )

 

Cybele fountain in Madrid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File:Cybele_fountain_IMG_0669.JPG)

 

The famous fountain in Madrid depicting Cybele in a chariot drawn by lions, in the Plaza de Cibeles.

(출처- http://www.newworldencyclopedia.org/entry/File:Cibeles_con_Palacio_de_Linares_closeup.jpg)

 

1920년 이탈리아 50 상시티미   

 

키벨레 여신 동전, 1920년 이탈리아 50 상시티미   (출처- http://blog.naver.com/liebemilch )

 

위 사진을 보면 한 손에 횃불을 든 여신이 네마리의 사자가 이끄는 전차를 타고 있다. 로마의 시인 루크레티우스에 의하면 키벨레 숭배의 의례로서 길들인 사자가 이끄는 전차에 키벨레 여신의 동상을 태우고 실제로 로마의 거리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러한 점에 미루어 볼 때 위 주화에 나타난 인물이 키벨레 여신이라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더구나 그녀의 손에는 횃불이 들여 있는데 이는 데메테르와 같이 죽음과 부활을 담당하는 여신의 상징이며, 키벨레 역시 그러한 역할을 가진 여신이다. 로마에 키벨레 여신이 도입 된 것은 카르타고의 한니발의 군대가 이탈리아 내에서 로마를 위협하던 기원전 204년의 일이다. 그 해에 연거푸 폭풍우가 치고 우박이 내리자 사람들은 그 원인을 '신탁'을 통해 알아보았다. 그리고 신탁은 프리기아이 도시 페시누스의 위대한 여신 숭배를 로마에 도입하여야만 적을 물리칠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이 위대한 여신이 늘 죽고 부활하는 구세주 아티스의 어머니이자 신부인 키벨레였다. 처음 로마에 등장한 키벨레 여신은 커다란 검은 돌의 모습이었으며, 팔라틴 언덕의 신전에 안치되었다. 거기에 이난나와 두무지, 이슈타르와 탐무즈 그리고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의 신화적 외피가 입혀서 위 사진에서와 같은 구체적인 모습의 키벨레 여신의 모습이 등장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키벨레 여신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즉 자연, 사람, 심지어 신들의 부모이자 주인으로 여겨졌다. 키벨레는 땅에 사는 모든 것을 생산할 수도, 죽일 수도 있었다. 때문에 로마 인들은 그녀를 '마그나 마테르(Magna Mater/Great Mother)라는 칭호로 불렀다. 그런 의미에서 주화에 나타난 AEQVITAS 즉, 정의, 공평함이라는 글자는 조금 무시무시하게 다가온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법적인 '정의'를 나타낼 경우에는 한 손에는 검을 한 손에는 천칭을 든 여신의 모습과 'JVSTITIA'라고 표기한다. 때문에 키벨레 여신과 함께 적혀 있는 AEQVITAS라는 말은 도덕경에 나오는 '천지불인 (天地不仁)'이라는 말을 연상케 한다. 하늘과 땅은 인자하지 않다는 의미로 직역할 수있는 이 말은 우주의 모든 생명을 주관하는 신은 인간과 사물을 가리지 않고 똑같이 생명을 주고, 또 거두어 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에겐 서글픈 일이지만 자연재해를 생각해 보면 그 위대한 존재 앞에서는 인간 역시 작은 피라마와 다를 것이 없는 존재임을 알수 있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고대인들이 키벨레 여신에게 품었던 마음이기도 하다. 그녀에게는 5월 1일을 축일로 헌사하였다. 5월 1일에는 기둥을 푸른 나뭇가지와 꽃, 천 조각들로 장식하여 '5월의 나무 (Maypole)'를 만들었고, 이 때 그녀의 동상을 전차에 태우고 다니기도 했던 것이다. 5월 (May)이 봄의 여신이자 헤르메스의 어머니인 '마이아 Maia'에게 헌사된 달이었다. 그 달의 첫 날 (May day)을 키벨레에게 헌사하였다는 것은 생명의 주관자로서의 키벨레의 역할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하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 그녀의 손에는 북이 들려 있기도 한다. 이것은 소아시아에서 온 키벨레가 그러했듯이 모든 신들의 어머니인 '레아'의 징표였다. 또한 그녀에게 역시 키벨레와 마찬가지로 사자가 헌사되어 있었다. 이는 로마인들이 키벨레를 '레아'와 동일시 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1965년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5 프랑

 

 키벨레 여신 동전, 1965년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5 프랑     (출처- http://blog.naver.com/liebemilch )

 

가벼운 소재로 된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주화의 한 면에는 풍요롭고 아름다운 폴리네시아의 전경이 담겨 있고, 다른 한 면에는 의자에 앉은 여신이 나타나 있다. 그런데 이 여신의 모습이 좀 특이하다. 오른 손에는 과일 등이 넘쳐흐르고 있는 풍요의 뿔 ‘코르누코피아’가 마치 그녀의 아기 마냥 안겨 있고, 왼손에는 ‘세계를 계몽하는’ 횃불이 들려 있다. 그녀의 머리에는 자유의 모자 또는 키벨레 여신의 상징물인 ‘프리기아’의 모자가 쓰여 있고, 모자에는 날개가 달린 둥근 표장이 달려 있다. 이것 역시 혁명의 상징으로 볼 수도 있고, 날개 달린 원반이 이시스 여신의 상징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역시 이시스-키벨레 여신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은 그녀가 앉은 의자 손잡이 양쪽에 새겨진 사자 머리의 모양이다. 양 옆에 사자나 표범과 같은 고양이과 동물을 품고 있거나 사자를 거느린 여신상의 모습은 기원전 7000년 경의 소아시아에서부터 이시스-키벨레까지 이어져 온 ‘위대한 어머니’의 전형이다. 한 마디로 이 주화에는 ‘위대한 어머니’ 여신에 대해 표현 할 수 있는 모든 도상들이 아낌없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여신의 모습은 1793년 프랑스 혁명 기간 중 바스티유 광장에 세워진 이시스 여신의 조상과 상당 부분 닮아 있다. 이 조상은 양 옆에 두 마리의 사자가 호위하고 있는 왕좌에 앉은 이집트 여신을 묘사했으며 여신의 발 앞에는 고대 이집트의 날개 달린 태양 원반으로 장식된 대형 물통이 설치되어 있었다. 또한 상반신이 나체인 바스티유의 이시스는 가슴이 컸는데, 새 프랑스 공화국의 다산 및 재생의 기념을 일깨운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두 마리의 사자, 날개 달린 원반, 풍요를 기원하는 젖가슴. 물론 주화에서는 여신의 가슴이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그를 대신해 풍요의 뿔이 들려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에는 큰 변화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여신의 등 뒤로 살짝 보이는 비문은 반 쯤 가려져 있지만 분명 두 개가 한 조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형태로 미루어 보건데 이것이 1789년 발표된 인권선언문을 나타낸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왼손에 들린 횃불이다. 횃불은 전통적인 신화적 견지에서는 그녀가 페르세포네와 같은 지하세계의 여왕임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하지만 자유의 여신상에 분명 ‘세계를 계몽하는 자유의 여신상’이라는 이름과 함께 한 손에 횃불이 들려 있듯이 여기에서의 횃불 역시 여신으로서의 상징과 더불어 영지주의적 의미의 ‘계몽’ ‘깨달음’의 의미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프리메이슨의 모토이기도 하다. 영지주의 종교에서 빛의 모티브를 즐겨 사용하는 것은 우선 그들이 섬기는 (구약의 신이 아닌) 진짜 신이 빛의 형태로 지혜를 방사하고 있다는 믿음에 그 첫 번째 이유가 있다. 그리고 선택받은 사람들의 내면에 역시 먼 옛날 세상을 창조한 구약의 악한 신에 의해 유한한 육신 안에 유폐된 ‘빛’이 내재해 있다고 주장한다. 영지주의에서 그 빛이 해방 될 수 있는 방법은 믿음이나 선행을 통해서가 아니다. 바로 신이 방사하는 지혜의 빛을 감지하고 그에 감응하여 우주의 비밀에 대한 영적 깨달음을 얻는 것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그리스어로 인식, 앎 또는 깨달음 이라는 의미의 영지주의/ 그노시스(Gnosis)라는 이름은 그들의 이러한 신앙관에서 생겨난 것이다. 16세기 헤르메스 문서의 등장과 함께 르네상스의 불길이 타오른 것은 그 안에 담겨 있던 이러한 그노시스적 사상이 세상으로 ‘방사’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8세기에 들어서면 프랑스를 중심으로 루소나 몽테스키외, 볼테르와 같은 사람들의 계몽주의 사상이 잉태하게 된다. 프랑스 혁명의 토대는 이렇게 마련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을 글로써만이 아닌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조직이 필요한 법이다. 그것도 감시의 눈길을 피해 은밀히 행동할 수 있는 비밀결사 조직이면 더욱 좋다. 그 일을 프리메이슨이 맡게 된 것이다. 영지주의와 계몽주의의 영향을 깊이 받은 프리메이슨의 입장에서 볼 때 대중을 탄압하고 무지몽매한 상태에 방치 하는 것은 구원에 이르는 길을 막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에게는 두 번의 쓰라린 탄압의 아픔이 있었다. 혁명을 통해 새로운 왕국을 건설할 수만 있다면 그러한 공포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이미 10년 전 신대륙에서 성공한 일을 유럽대륙에서도 실행에 옮긴 것이다.  

 

키벨레 여신 동전, 1996년 이탈리아 100리라     (출처- http://blog.naver.com/liebemilch )

 

 1996년 이탈리아 100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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