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순교자 기념성당
광주대교구 소속 본당. 전남 나주시 산정동 18 소재. 1935년 5월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로사리오의 성모. 관할 구역은 나주시 송월동, 남외동, 남내동, 중앙동, 성북동, 금성동, 토계동, 교통, 과원동, 산정동, 서내동, 금계동, 죽림동, 보산동, 석현동, 청동, 송촌동, 경현동, 대호동, 나주군 금천면 등이다. 1872년 나주 무학당(武學堂)에서 순교한 강영원(바오로), 유치성(안드레아), 유문보(안드레아) 등 세 사람의 순교로 나주와 천주교의 관계는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순교는 이웃에의 전교로 이어지지 못했고, 그 후 나주에서 처음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유학자였던 손정우(孫禎佑, 베드로)였다. 어느 날 친척집에서 한문으로 된 성서를 보게 된 손정우는 3-4년 동안 홀로 성서를 연구하다가 계량 본당(현 나주군 노안 본당)의 카닥스(Cadars, 姜達淳) 신부와 박재수(朴在秀, 요한) 신부에게 교리를 배워 1927년 영세하였다. 그는 계량 본당의 주일 미사에 참여하고 계량 본당의 신자들과 교리 토론회를 갖기도 하였다. 나주 지역의 본격적인 전교는 1933년 5월 나주에 설립된 십팔은행(十八銀行)의 지점장 임태길(任太吉, 마태오)의 부인 이 루시아와 계량 본당의 복사 이응범(李應範, 아우구스티노)에 의해서였다. 이 루시아의 공소 설립 제안에 이응범이 계량 본당의 박재수 신부와 나주 공소 설립을 의논, 1933년 9월 임태길의 사택에 나주 공소를 개설하였다. 그 후 열심한 전교활동으로 공소 시작 당시 17명이었던 신자수가 2년 후 100여 명으로 증가하였다. 이어 1935년 골롬반 외방전교회에서 나주읍 박정리(현 성당 자리)에 3,000평의 부지를 마련하고 50평 규모의 성당과 사제관, 35평의 교사를 신축하였다. 이로써 나주 성당은 골롬반 외방전교회가 한국에서 건립한 첫 성당이 되었다. 1937년 신자수의 증가로 성당 부지 500여 평을 추가 매입하여 80평의 콘크리트 성당을 건립하였다. 또한 함평군 함평읍 내교리 340번지에 500평의 교회 부지를 마련, 1938년 함평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 · 분리시켰다. 1953년 휴전 후 유치원을 설립하고, 이듬해 4월에는 영산포를 본당으로 승격 · 분리시켰다. 그리고 김창현(金昌鉉) 신부 재임 중 남평에 공소 건물과 부지 1,000평을 매입하고 전교사를 파견하였으며, 나주읍 대호리에 665평의 교회 묘지를 조성하였다. 1956년 까리따스 수녀회 분원을 개설하고, 1958년 2월 12일 산포면 덕례리에 공소 건물과 사제관을 마련하였으며, 이듬해 7월 13일 나주시 청동 81번지에 3,120평의 교회 묘지를 조성하였다. 1961년 3월 성당을 증축하였고, 1970년 5월 헨리 대주교의 후원으로 ‘현해 도서관’을 개관하였으며, 1971년 5월 강당을 신축하고 성당 조경 공사를 하였다. 또한 가톨릭 구제회의 원조로 공동 하수도 공사를 하고, 가난한 교우 12세대에 돈사(豚舍) 12동을 만들어 주었으며, 농수로 공사를 보조하였다. 그 해 12월 5일 남평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 · 분리시켰고, 1974년 5월 사제관을 보수하고 성당 앞 보도 블록 공사를 하였으며, 1982년 12월 사제관을 신축하고, 1984년 12월 성당 이층의 칸막이 공사를 하였다. (글 참조- http://www.njcatholic.or.kr/ 홈피)
나주 순교자 기념성당
천주교 나주 성당은 설립 70주년을(2004년) 맞아 그 기념사업으로 본당 성역화를 추진하여 나주 순교자 기념 경당, 현 하롤드 대주교 기념관과 한국 까리따스 수녀회 첫 본원을 건립 복원하였다. 천주교 전래 초기의 박해시대에 나주에서 순교하신 이춘화(베드로), 강영원(바오로), 유치성(안드레아), 유문보(바오로) 네 분 순교자들의 위대한 신앙과 삶을 기리기 위한 기념 경당이 자리한 곳이다. 그 중 세 분의 순교자는 흥선대원군의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계속되던 해인 1871년에 나주에 잡혀와 온갖 고통 중에서도 끝까지 천주신앙을 증거하다가 마침내 그 다음 해인 1872년에 무학당(진영의 군사 훈련장, 현 나주초등학교 정원) 앞에서 석침과 백지사형으로 장렬히 순교하기에 이른다. 그분들이 순교한 곳에는 무학당 주춧돌로 추정되는 10개의 돌이 거친 풍상 속에 130 여 년 동안이나 방치되어 오다 현재는 우리 신자들의 노력과 나주초등학교 당국의 협조로 나주성당으로 옮겨 와서, 이렇게 그 주춧돌 위에 무학당을 상징하는 구조물을 건립하여 그 분들의 간절했던 신앙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더불어 이 곳은 초대 나주 본당 신부로, 5대 광주 교구장으로, 초대 제주 교구장으로서 신앙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적으로 많은 업적을 남기신 고 현 하롤드 대주교의 기념관과 교육, 의료 등 자선을 통해 복음화에 앞장 선 까리따스 수녀회 한국 첫 본원이 자리 잡은 곳이다.
[출처 : 윤선자, 한국가톨릭대사전 제2권]
나주 순교자 기념성당
나주 순교자 기념성당
나주 순교자 기념성당
나주 순교자 기념성당
나주 순교자 기념성당
성모상
성모상
성모상
김대건 신부 상
김대건 신부 상
김대건 신부 상
나주 순교자 기념성당
나주 순교자 기념성당 종탑
나주 순교자 기념성당
나주 순교자 기념성당
나주 순교자 기념성당
나주 순교자 기념성당
성당내부
제대
성당 내부 후면
감실
감실
예수성심상
성모자상
나주 순교자 기념성당 무학관(교육관)
나주 순교자 기념성당 무학관(교육관)
나주 순교자 기념성당 무학관(교육관)
나주 순교자 기념성당과 무학관(교육관)
나주 무학당
지금은 그 위치조차 희미한 나주 무학당은 광주 대교구 내에서는 유일하게 순교터가 있었던 곳이다. 무학당의 확실한 위치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현재 나주 초등 학교 안의 한쪽 화단이 박해 당시 사형 터로 쓰였던 무학당의 원래 터였다고 전해질 뿐이다. 더구나 지금은 그나마 주춧돌 외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아 무상한 세월과 함께 후손들의 못난 신앙을 돌이켜보게 한다. 나주(羅州)는 전라 남도의 주읍(主邑)으로 옛날부터 크게 번창한 고장이었다. 여기에 정식으로 본당이 설정된 것은 1935년 5월의 일이다. 하지만 나주 본당의 뿌리는 1866년 병인박해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무학당에서 얼마나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모진 고문 끝에 순교했는지 그 정확한 수나 사연은 알 길이 없다. 다만 「치명 일기」에 이곳에서 치명한 세 분 순교자에 대한 단편적인 사연들만이 기록돼 있을 뿐이다. 그중의 한 분은 전라 복도 용담이라는 곳에서 태어나 교우가 됐다가 정읍에서 체포되어 이곳으로 압송된 것으로 알려진 강영원(바오로)이다. 그는 천주학을 버리라는 강요 속에서도 굳게 신앙을 지키다가 마침내 1872년 3월 9일 백지 사형(白紙死刑)으로 치명했다. 물에 적신 얇은 창호지를 여러 겹 얼굴에 발라 질식케 하는 백지 사형은 그 사형 방법이 간편한 반면에 극심한 고통을 주기 때문에 박해 시대에 여러 곳에서 사용되던 사형 방법이었다. 반면 전라 북도 무장, 암틔라는 곳에서 살던 유치성(안드레아)이 강영원과 함께 붙잡혀 나주읍으로 압송됐는데 그 역시 같은 날 처형됐다. 하지만 그는 강영원과는 달리 쏟아지는 돌더미 속에서 머리가 깨지고 뼈와 살이 으스러지는 혹독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기록에 남아 있는 마지막 순교자인 유문보(바오로)는 다른 두 치명자보다 며칠 늦은 3월 15일 나주에서 옥사했다. 이렇게 해서 믿음의 터를 닦은 나주에는 1933년에 와서 임시 공소가 서고 이듬해에는 대지 3천 평을 확보, 임시 성당과 사제관을 준공했으며 1935년에 들어서 비로소 본당이 설정된다.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가톨릭출판사, 1996]
나주 무학당 조형물
나주 무학당 조형물
무학당 주춧돌로 추정되는 10개의 돌이 거친 풍상 속에 130 여 년 동안이나 나주 초등학교 교정 한 구석에 방치되어 오다 현재는 나주초등학교 당국의 협조로 나주성당으로 옮겨 와서 그 주춧돌 위에 무학당을 상징하는 구조물을 건립하여 그 분들의 간절했던 신앙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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