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드몰(팔미라)
Palmyra, Tadmor (출처- http://bibleatlas.org/full/tadmor.htm)
다드몰은 성경의 명칭으로 오론테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중간의 시리아 사막에 있는, 종려나무가 무성한 오아시스에 솔로몬이 세운 도시이다. 대하 8: 1-4에 보면 "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과 자기의 궁궐을 이십년 동안에 건축하기를 마치고 2 후람이 자기에게 준 성읍들을 다시 건축하여 이스라엘 자손으로 거기 거하게 하니라 3 솔로몬이 가서 하맛소바를 쳐서 취하고 4 또 광야에서 다드몰을 건축하고 하맛에서 모든 국고성을 건축하고" 라고 쓰여있다. 이 지역의 현재 아랍 명칭은 타드모르이고 신약시대에는 팔미라(Palmyra)로 불렸다. 왕상 9:18 히브리어 원문 병행 구절에는 다몰로 되어 있다. 다드몰과 다몰은 같은 의미이기 때문에 둘을 구별할 필요는 없다. 고대에는 다메섹(다마스쿠스)에서 하란으로 갈 경우 다드몰을 경유해야 했는데 이 길은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른다. 다메섹에서 다드몰까지는 240㎞나 되는 장거리이다. 다른 사막과는 달리 시리아 사막은 모래가 아닌 검은 색을 띤 자갈이 깔린 준스탭지역이다. 이스라엘 멸망 후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 때 학사 겸 제사장이던 에스라는 하루라도 빨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위해 1차 귀환 때 스룹바벨이 이용한 북쪽의 안전한 길보다 위험하지만 빠른 길인 바로 이 길을 이용했다. 그래서 에스라는 이 길을 평탄하게 가게 해달라고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기도를 했다(스 8:15∼23). 고대에 다드몰은 군사기지였으며 무역 중심지였고 좋은 광천과 기름진 땅,우거진 대추야자나무 숲을 지니고 있던 오아시스였다. 다드몰의 언어는 아람어였다. 동방과 서방을 이어주는 도시의 위치를 반영하듯 문서체와 메소포타미아 흘림체 등의 문자 체계가 있었다. 다드몰 사람들은 페르시아만을 통해 인도와 교역했으며 이집트 로마 시리아의 도시들과 교역했다. 이곳은 고대나 오늘이나 사막을 횡단하는 이들에게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시리아 사막의 오아시스에 건설된 다드몰은 이미 BC 19∼18세기에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다윗은 북쪽으로 다드몰과 딥사에 이르는 중요한 무역로들을 포함하여 다메섹과 시리아 지역을 포함한 지경까지 국경을 넓혔다. 그리고 솔로몬은 이곳에 성읍을 건설하였으며 이후 사막을 횡단하며 무역하던 대상들을 위해 확장됐다. 로마 점령시기에는 가장 번창하던 남쪽의 페트라(요르단)를 제치고 가장 중요한 중개무역지가 되었다. 그러나 세력이 강해지자 로마로부터 완전 독립을 선언하고 터키의 앙카라까지 정복했으나, 네노비아 왕비가 로마의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토벌작전으로 생포돼 로마로 압송됨으로써 팔미라 왕국은 멸망하였다. 다드몰 유적지는 지금은 파괴되었지만 잔해만으로도 다드몰의 규모가 매우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다드몰의 유적지는 고대 도시계획이 매우 뛰어났음을 보여준다. 동서로 뻗은 중심거리에는 거대한 진입로 시설과 분수 조각 화단 등이 설치된 3개의 공원이 있으며 남쪽에는 광장 원로원 극장 등이 배치돼 있으며 디오클레시아누스의 진지라고 불리는 거대한 복합건물과 다드몰 성전이 있었다. 대부분의 시설은 로마시대의 유적들이다. 그중에서도 벨신전은 성경과 관련이 깊어 더욱 눈길을 끌었다. 본래 히브리어로 벨은 주인을 뜻하며 후에 후에 바벨론의 최고신인 말두크로 바뀐 수메르의 엔릴과 유사한 신으로 추정된다. 다드몰 사람들도 바벨론의 영향을 받아 이 신을 섬겼음을 신전을 통해 알 수 있다. 다드몰의 아람족들이 섬겼던 주요한 신은 별들의 운행을 주관하는 볼이었으며 별의 운행과 관련이 있는 바빌로니아의 벨마르두크 신과 동일시됨으로써 벨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개선문을 지나 우편쪽에는 벨 신의 아들이었던 나부신을 섬기던 신전 터가 남아잇다. 벨 신전 가까운 거리에는 바알 신전이 있다. 바알은 이스라엘이 범한 가장 대표적인 이방신이었다. 이곳은 아직도 외관이 그대로 남아있어 밖에서는 내부를 볼 수 없다. 입장료를 내고 안에 들어가보면 바알 신전의 위용을 아직도 느낄 수 있다. (출처- 국민일보 이원희목사 photobible.co.kr )
대추야자 숲 (출처- http://oldtestament.maru.net)
고대에 다드몰은 군사기지였으며 무역 중심지였고 좋은 광천과 기름진 땅,우거진 대추야자나무 숲을 지니고 있던 오아시스였다. 팔미라는 사막 한 가운데 이지만 대추야자숲이 우거져 있다. 팔미라라는 이름도 야자수라는 뜻이다.
팔미라 유적도
팔미라 유적지의 중요성은 실크로드사에서 찾게된다. 1877년 독일 학자 리히트호펜이 중국~중앙아시아~서북 인도 사이의 교역로 연변에서 고대 중국의 비단 유물이 발견된 사실을 중시해 이 길을 독일어로 ‘자이덴슈트라센’ 곧 ‘실크로드’라고 지었다. 뒤이어 독일의 동양학자 헤르만은 중앙아시아에서 지중해 동쪽 해안의 팔미라까지 이어지는 오아시스 곳곳에서 중국 비단 유물이 발견된 사실을 중시해 비단교역로를 팔미라까지 연장하고 ‘실크로드’(일명 오아시스로)를 재천명했다. 요컨대, 팔미라에서 비단이 발견됐으므로 실크로드는 오늘날처럼 지중해 동안까지 연장되었던 것이다.
아랍 성체에서 내려다본 팔미라(다드몰) 전경
아랍성 (출처- http://oldtestament.maru.net)
아랍성은 팔미라 유적지에서 차로 혹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이곳은 팔미라를 한눈에 볼수 있는 멋진 장소로 아랍성은 오래전 건축되어 사용되었지만 현재 남아있는 것은 로마시대의 것이다.
팔미라 안쪽으로 신 도시 마을이 건설되어 있다. 오늘날 팔미라는 인구 3만에 10여㎢의 유적지가 있는 관광명소다. |
팔미라 안쪽으로 신 도시 마을이 건설되어 있다
팔미라 유적지
팔미라, 멀리 우측으로 아랍 성체가 희미하게 보인다.
팔미라 유적지
팔미라 유적지
개선문과 열주도로
개선문과 열주도로
동서로 뻗은 너비 11m의 열주도로는 길이가 1100m나 되며, 양쪽에는 높이 9., 지름 95cm의 코린트식 석주가 750개나 늘어서 숲을 방불케 한다. 기둥의 위쪽 끝에는 대상무역 유공자들의 석상을 얹으려고 만든 대좌(받침대)가 약간 튀어나와 있다. 대좌 밑에 공덕을 찬양하는 명문이 그리스·팔미라어로 새겨져 있다. 팔미라인들이 얼마나 교역을 중시했는가 하는 단적인 증거다. 이 도로의 기점은 200년께 세웠다가 1930년 복원한 아치형 개선문이다. 개선문은 주후 193년에서 211년까지 이지역을 통치했던 세베루스의 기념아치이다. 양쪽에 출입문 달린 개선문에 들어서서 열주 도로를 따라 나가다 보면, 오른쪽(북쪽)에 293~303년 지은 목욕탕이 나타난다. 좀 더 나가면 왼쪽(남쪽)으로 원형 야외극장에 이르게 된다. 전형적인 로마식 극장이다. 양옆에는 소음 차단벽도 설치했다고 한다. 극장 바로 곁에는 원로원 의사당이 붙어 있으며, 그 남쪽에 폭 84m, 길이 71m의 세관 건물이 있었다.
열주도로, 개선문에서 사거리로 가는 중앙로, 우측 뒤편으로 아랍성체가 보인다.
테트라필론 (四面門 : Tetrapylon), 뒷편
테트라필론 (四面門 : Tetrapylon)
로마시대 때의 팔미라의 거주지구는 신전이나 중요한 공공기관이 위치한 중심가와는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중심부와 거주지구의 경계인 열주 대로에는 테트라필론이 세워졌고 대로는 이 지점에서 교차하도록 설계되었다. 테트라필론은 4개의 塔門으로 이루어 졌으며, 각각의 기단 위에 세워진 이집트 산의 붉은색 화강암으로 만든 기둥 4개가 지붕을 받치고 있다. 2세기초에 세워진 테트라필론의 초석에는 당시의 지배자를 찬미하는 글이 새겨있다.
테트라필론 (四面門 : Tetrapylon)
님프신전
목욕시설
기둥의 헬라어와 아람어
수로
<원형극장>
주전 2세기 경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원형극장이다.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원형극장
원형극장
원형극장
원형극장
원형극장
원형극장
<벨 신전>
벨 신전(중앙)
벨 신전
벨신전은 성경과 관련이 깊다. 본래 히브리어로 벨은 주인을 뜻하며 후에 바벨론의 최고신인 말두크(니므롯)로 바뀐 수메르의 엔릴과 유사한 신으로 추정된다. 다드몰 사람들도 바벨론의 영향을 받아 벨 신을 섬겼음을 신전을 통해 알 수 있다. 다드몰의 아람족들이 섬겼던 주요한 신은 별들의 운행을 주관하는 볼이었으며 별의 운행과 관련이 있는 바빌로니아의 벨마르두크 신과 동일시됨으로써 벨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벨 신전은 서기 32년 본전을 짓기 시작해 2세기 중엽까지 주랑, 정문, 주벽 등 부속 건물들을 완성했다. 이 그리스식 신전은 동서 길이 210m, 남북 20m의 정방형이며, 가운데 본전은 동서 30m, 남북 5m의 직사각형 석조 건물이다. 주위는 코린트식 열주가 에워싸고 있다. 본전 좌우 벽 감실에는 주신 벨을 중심으로 양옆에 월신인 아그리볼과 태양신 야르히볼이 있다. 본전은 4세기 이후 기독교회로, 7세기 뒤에는 이슬람 사원으로 썼는데, 흔적들이 남아 있다.
벨 신전 입구
벨 신전
벨 신전
입구 안내소 전시물
벨 신전 복원 모형도
벨 신전 광장
벨 신전 광장
벨 신전 광장
벨 신전 광장
벨 신전 광장
벨 신전 광장
벨 신전 광장
벨 신전 광장 희생제물 잡는 곳
희생 제물 잡고 피를 흘려보낸 장소인데 당시 이 외에도 벨 신전 옥상위에서도 제물을 잡던 장소가 있었다고 한다.
희생 제물을 잡고 피를 흘려보내던 수로
벨 신전 광장
벨 신전
벨 신전
벨 신전
벨 신전 입구 문, 벨신전의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입구이다.
신전 부조
벨 신전 부조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는 팔미라의 문화는 그 미술에서 특히 조각에서 확실히 엿볼 수 있다. 많은 팔미라의 정적이고 양식화된 조각에서 서아시아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유적의 이곳저곳에 나뒹굴고 있는 건물 파편에서 풍요의 여신, 많은 인물상 등이 조각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며, 당시 이곳의 풍요로운 생활상을 보게된다.
신전 내부 부조
신전 내부, 벨신전 중앙에 있는 벨신을 놓았던 장소이다.
신전 내부
신전 내부
신전 내부 천장
벨 신전 내부 천장
신전의 내실은 사제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신성한 장소였다. 내실도 로마의 티벨리우스 통치 때인 32년에 봉헌된 것으로 태양의 신인 아르히볼과 달의 신인 아글리볼의 신상이 안치되어 있었다. 내실의 남쪽과 북쪽에는 천정이 하나의 돌로 덮인 방이 있는데 각각의 천장에는 12궁과 낙타, 베일을 쓴 여인, 다산의 신을 둘러싼 7개의 행성 등이 조각되어 있어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내부 부조
내부 부조
내부 글자
내부 조각물
<나부, 느보 신전>
나부(느보)신전 터
벨 신전 건너편으로 유적지가 시작되는 입구에는 아치형의 기념문(Monumental Gateway)이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는데 다시 복원된 것이라도 매우 아름답다. 이곳을 지나게 되면 대 주랑(The great colonnade)이 길게 이어지며 도시의 동맥과 같은 곳이었던 이 길을 따라 왼편으로 나부신전(Temple Nebo), 원형 극장, 시장(아고라), 법원과 의회가 있던 자리가 남아있다. 나부신은 ㅏ벨론의 최고 신 벨(마르둑)신의 아들로 학문과 저술의 신이다. 팔미라에는 벨 신전과 함께 나부 신전, 바알 신전등이 있다.
개선문(기념문) 뒤 좌측으로 나부 신전 터가 있다.
나부 신전 터
나부 신전 터
나부 신전 터
< 바알 샤멘 신전 >
바알 샤멘 신전(Temple of Baal Shamin)
바알 샤멘 신전(Temple of Baal Shamin), 중앙
바알 샤멘 신전(Temple of Baal Shamin)
바알 샤멘 신전(Temple of Baal Shamin)
열주대로 북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 신전은 69년에 건설되어 그 뒤 2차례에 걸친 개축 끝에 150년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치세기에 완성된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건물의 양식도 로마양식으로 지어졌으며, 팔미라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달의 신과 태양의 신 위에 날개를 펼친 독수리가 표현된 석재문미(門眉)는 바알 샤멘이 세계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의 지배자로 가장 중요한 신이었음을 의미한다. 바알은 이스라엘이 범한 가장 대표적인 이방신이다. 이곳은 아직도 외벽이 그대로 남아있어 밖에서는 내부를 볼 수 없다. 입장료를 내고 안에 들어가보면 바알 신전의 위용을 아직도 느낄 수 있다.
바알 샤멘 신전(Temple of Baal Shamin)
<에라벨 탑묘>
에라벨 탑묘
‘무덤 골짜기’의 탑묘군에 있는 이 묘는 부호 에라벨 일가가 103년 지은 탑 모양 무덤이다. 지하실과 지상 4층을 합쳐 높이가 20m에 이르며, 약 300구의 주검이 묻혀 있었다고 한다. 입구 윗면 바깥에 아치형 노대가 튀어나왔는데, 그 밑 석판에 무덤에 대한 설명문이 새겨져 있다. 층층마다 가로로 벽감을 파고 주검을 안치했으며, 동쪽 벽면에 사자 흉상을 그렸다. 한나라 때의 비단, 즉 한금(漢錦) 조각 여러 점들은 바로 이곳의 주검을 감싼 수의 속에서 나왔다. 탑묘는 1-2 세기부터 시작하여 팔미라가 멸망할 때 까지 사용되었다.
에라벨 탑묘내부
에라벨 탑묘
이 탑묘를 만든 에라벨 조각
천장 사형제 조각
네 사람의 조각은 이 묘의 주인인 사형제들이다. 청색은 당시 이 지역에서 아주 귀한 색이었는데 이는 이 무덤의 주인이 부유한 가문이었음을 말해준다.
내부 사형제 조긱물
천장 사형제 조긱물
위의 4 사람은 사형제이며, 아래는 이들의 부인들의 조각이다.
아내들 조각 밑에는 당시 사용하던 아람어로 아내들에 대해 기록하였다.
아파트 식 주검 안치대
코린드 양식으로 되어있다.
아파트 식 주검 안치대
2층 묘로 오르는 계단
2층 묘 내부
2층 묘
주변의 탑묘들
주변의 탑묘들
<삼형제 지하 묘소>
삼형제 묘소 입구
삼형제 묘소 입구
삼형제 묘소 입구
삼형제 묘소 입구
삼형제 묘 내부
삼형제 묘 내부
삼형제 묘 내부
삼형제 묘는 128년에 건조 된 것으로 내부에는 많은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다. 삼형제 조각상도 있다. 널방 안쪽은 ㄷ자 형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이 무덤을 건조한 삼형제의 모습이 원형안에 그려져 있다. 돌널 두껑 위에는 가족의 연회를 나타내는 등신대의 조각이 장식되어 있다.
묘 내부 천장
내부 조각상
내부 벽화 설명 책자
내부 벽화 설명 책자
내부 벽화 설명 책자
내부 벽화 설명 책자
내부 벽화 설명 책자
내부 벽화 설명 책자
내부 벽화 설명 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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