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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몬신 (Rimmon a god of Syria, 아람의 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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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4-12세기 바알신상. 고대 우가릿에서 발견    (출처- http://blog.naver.com/world700/90071082738)

림몬신 (Rimmon)- 아람의 바알신


림몬신은 '사납게 외친다, 포효한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아람의 신이다. 폭풍과 비, 번개의 신 하닷,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 신(제우스는 천공을 지배하는 신으로 천둥과 번개를 뜻대로 구사한다고 생각되어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는 ‘구름을 모으는 자’ ‘번갯불을 던지는 자’ 등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제우스는 단순히 천공을 지배하는 신만이 아니었다. 하늘을 지배하는 자인 동시에 전세계를 통치하는 자이기도 하다.) 과 동일한 풍요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림몬 신은 한 손에 번개를 쥐고 소의 등 위에 서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바알은 가나안 우가릿 신화에 나오는 엘( 엘신은 우가릿 만신전의 으뜸가는 신으로 인격화된 신이며 “힘있는 신, 황소, 신과 인간의 아버지, 해(年)의 아버지, 거룩한 신, 자비로운 신, 가장 슬기로운 신 이라 한다)의 70자녀 중 한 아들이다. 우가릿 시대에 그는 가나안 만신전의 주신이었고, 모든 신을 다스리는 실권자였다. 그를 다간(곡식)신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떼도 있었으나 그 말이 무슨 뜻이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바알의 본명은 하닷(폭풍우의 신)이었다. 그에게는 “구름을 타고 다니는 신, 땅의 왕자, 힘쎈 신, 주권자”등 여러 별명이 붙어 있었고, “알리얀”이라는 이름도 붙어 있었다. 바알은 풍요의 원천과 원리이며, 땅의 풍요를 가져다 주는 비와 폭풍우를 주관하는 신이다. 그의 목소리는 뇌성으로 나타난다. 그는 오른손에 망치를 치켜들고, 왼손에는 창살 모양을 하고 길게 생긴 번개를 들고 잔뜩 일어서 있는 모습으로 표현 되었다. 바알의 서사시에서 얌(바다의 신)과 못(죽음의 신)은 바알의 대적이 되어 싸웠다. 광야의 신(메마름의 신)도 바알의 대적이었다. 우가릿(라스 삼라)에서 번개와 곤봉을 든 바알신의 형상이 새겨진 돌판이 발견되었다. 이는 바알신이 지역에 따라 각각 자기들의 바알을 섬겼다는 증거이다. 곧 바알은 서부 셈족의 폭풍의 신인 하닷에 해당하며 기후와 농사를 주관하는 신이다. 아람에서는 바알신을 림몬신으로 섬겼다고 볼 수 있다. 

 

나아만과 림몬신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왕하5:18)”

 

Stele of Baal with Thunderbolt, 15th-13th century BC. Found at the acropolis in Ras Shamra (ancient city of Ugarit).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File:Baal_thunderbolt_Louvre_AO15775.jpg)

 

우가릿은 현재명 라스 삼라(Ras Shamra) 로 시리아의 서북쪽 끝, 동지중해의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작은 시골마을이다.  라스 삼라 교외의 우가리트(Ugarit) 유적지에서 1929년 봄, 프랑스 고고학자 클로드 셰페르가 점토판을 발견하였다. 또한 이곳에서 그들이 섬겼던 바알신(림몬신)이 발견되었다.

 

Torah with rimmonim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File:V11p129001_Torah.jpg)

 

우가릿 유적지 바알신전 터             (출처- http://oldtestament.maru.net)  

 

우가릿 유적지          (출처- http://oldtestament.maru.net)

 

우가릿은 기원전 1200년경 해양족이 침략에 멸망 당한 후 1928년 우연히 발견된 곳이다. 이곳은 기원전 이천년기에 가나안의 주요도시중 하나였다. 이곳에는 토판이 발굴되어 현재 번역과 해독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우가릿 유적지  

 

이곳은 당시 토판을 기록하던 서기관의 집무실로서 그곳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우가릿(라스 삼라) 유적- 알파벳의 조상     (글 출처- http://cafe.naver.com/anyquestion/5259)


“만약 알파벳이 발명되지 않았더라면 인간은 아직 달에 가지 못했을 것이다.” 우가리트 유적지 관리인의 말이다. 우가릿은 현재명 라스 삼라(Ras Shamra) 로 시리아의 서북쪽 끝, 동지중해의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작은 시골마을이다.  라스 삼라 교외의 우가리트(Ugarit) 유적지에서 1929년 봄, 프랑스 고고학자 클로드 셰페르가 점토판을 발견하였다. 거기에는 30개의 부호가 새겨져 있었는데 부호 하나하나는 각기 하나의 음가(音價)를 갖는 문자였던 것이다. 이는 그전 오리엔트 지역(지금의 서아시아 일대)에서 사용되던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楔形文字·쐐기문자)나 이집트의 히에로글리프(Hieroglyph·神聖文字)와는 전혀 다른 표음문자 체계였다. 설형문자나 히에로글리프는 음절문자로서 하나의 단어나 구절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부호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아 서기(書記·Scribe)라는 특수한 전문직업인이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우가리트인들은 농경이 주업이 아니라 지중해 상권과 오리엔트 상권을 이어 주는 해상상업 민족이었다. 따라서 매우 효과적인 의사소통 수단을 필요로 했다. ‘상업거래’에는 반드시 ‘의사(意思)의 거래’가 수반되었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의사거래 수단이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정확·신속·편이성, 곧 실용성을 갖추는 것이다. 표음문자는 이같은 요구를 충족시키고자 고안된 것으로 ‘우가리트 알파벳’은 그 첫 작품이었다. 그때가 기원전 15세기, 우가리트의 전성기였다. 지금 우가릿 유적지는 허물어진 석축의 벽체와 웃자란 잡초들로 뒤덮여 있을 뿐이었다. 우가리트는 기원전 14세기, 대지진으로 멸망했기 때문이다. 우가리트인들의 뛰어난 장사솜씨와 효율적인 문자체계는 이웃 페니키아인들에게 상속되었다. 페니키아인들은 우가리트인들과 같은 가나안인들로 해상상업에 종사했다. 페니키아(Phoenicia)란 말이 그리스어로 자색(紫色)을 뜻하는 포에니(Poeni)에서 유래된 데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이 살았던 지금의 레바논 땅은 실크의 염색에 없어서는 안되는 고급 자색 염료의 생산지이자 왕궁이나 신전의 건축에 최고급 목재로 사용되었던 백향목(Cedar·흔히 ‘레바논 삼나무’라고도 불림)의 수출항이었다. 이들 페니키아인들은 우가리트 문자를 개량하여 22개 자모(子母)로 된 ‘페니키아 알파벳’을 만들어 해상상업활동을 벌였는데, 그 과정에서 이 문자체계는 자연 그리스·로마 등지로 퍼져나갔다. 지금 유럽과 서아시아·중앙아시아의 여러 민족들이 페니키아 알파벳을 차용하거나 변형시켜 자기네 언어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을 만큼 페니키아 알파벳의 위력은 대단했다. 페니키아는 단지 페니키아 알파벳의 고향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곳은 ‘바이블’(Bible)의 고향이기도 하다. 페니키아의 중심항구 레바논의 비블로스(Byblos)는 이집트에서 생산된 파피루스(Papyrus) 종이를 수입하여 그리스 등지로 수출함으로써 ‘파피루스 책’, 즉 바이블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우가릿          (출처-http://eureka0000.tistory.com/3532)

 

우가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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