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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카미로 콘스탄츠오신부 순교비 (야이자)

성지순례/필리핀,중국,아시아,일본 등

by baesungsoo 2011. 2. 26.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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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로 콘스탄츠오신부 순교비       (이하출처- http://cafe.daum.net/Coreansanctus)

 

가톨릭 선교가 시작된 히라도 섬 좁은 해협 위로는 히라도대교가 있고, 해협을 바로 앞에 둔 야이자 사적공원엔 일본의 ‘순교’역사를 상징하는 카미로 콘스탄츠오 신부의 순교비가 세워져 있다. 카미로 신부는 1605년부터 일본에서 복음을 전했다. 1614년 금교령 발령 이후 마카오로 추방됐지만 그는 1621년 다시 일본으로 잠입해 선교활동을 벌이다가 체포돼 타비라에서 화형을 당해 순교했다고 한다. 죽는 순간까지 일본어와 포르투갈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카미로 콘스탄츠오신부 순교비

 

카미로 콘스탄츠오신부 순교비

 

카미로 콘스탄츠오신부 순교비

 

카미로 콘스탄츠오신부 순교비 

 

카미로 콘스탄츠오신부의 화형 장면을 묘사한다. 

 

카미로 콘스탄츠오신부의 화형 장면을 묘사한다. 

 

일본 가쿠레키리스탄(숨은 그리스도인)    (아래 글,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hyojasaint1/247)

 

‘가쿠레’는 일본어로 ‘숨다’, ‘키리스탄’은 포르투갈어로 ‘그리스도인’을 뜻한다. 일본 가톨릭신앙의 역사는 ‘순교’의 길을 택했던 순교자들과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희망하며 겉으로는 ‘배교’의 길을 택해야만 했던 가쿠레키리스탄의 삶 위에 쓰였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의 피만큼,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십자가를 밟아야 했던 가쿠레키리스탄들의 그늘진 삶 또한 값지다. 1614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금교령이 내려진 이후 1873년 신앙의 자유를 찾기까지 259년간 일본의 가톨릭 신자들은 비밀공동체를 만들어 신앙을 지켰다. 이들의 오랜 잠복신앙은 그대로 일본의 가톨릭 역사가 됐고, 그 역사의 현장은 일본 정부의 지정 문화재와 현 지정 문화재, 국보 등으로 보존되고 있다.  후쿠오카 공항에 서 자동차로 2시간 남짓 작은 섬 히라도. 이곳은 1549년 일본에 와 1550년 히라도를 찾은 예수회 선교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일본에 최초의 복음의 씨앗을 뿌린 곳이다. 일본의 가톨릭 선교가 시작된 히라도 섬 좁은 해협 위로는 히라도대교가 지나고 있다. 그리고 거센 파도가 철썩이는 해협을 바로 앞에 둔 야이자 사적공원엔 일본의 ‘순교’역사를 상징하는 카미로 콘스탄츠오 신부의 순교비가 세워져 있다. 순교비는 1605년 일본에 입국해 선교활동을 하다 1614년 금교령으로 마카오로 추방된 카미로 신부가 1621년 다시 잠입해 선교활동을 벌이다 다음해 우쿠섬에서 체포돼 화형당했다고 기록한다. 가톨릭 신자들이 신앙으로 결속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87년 바테렌(선교사) 추방령을 내린 후 1597년 프란치스코회 선교사와 예수회 수도사, 신자 등 26명을 나가사키의 니시자카에서 처형하는 등 가톨릭교회에 대한 탄압을 자행했다. 1603년 정권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역시 신앙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후 1614년엔 전국에 금교령을 내렸다. 그로부터 금교령이 해제되기까지 259년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철저히 자신을 숨겨야 했던 가쿠레키리스탄, 그들의 흔적을 인근에 위치한 타비라교회당에서 찾을 수 있다. 타비라교회는 1886년 이후 라게 신부와 도로 신부의 지도로 구로시마, 소토메에서 이주해온 가쿠레키리스탄들이 개척한 교회다. 이곳 공원묘지에는 구로시마의 가쿠레키리스탄 히자카야 일가의 무덤이 안장돼 있다. 박해를 피해 구로시마로 이주해갔던 히자카야 일가는 구로시마의 척박한 땅과 원주민의 텃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라게 신부를 따라 이곳 타비라로 이주해왔던 것이다. 히라도대교를 건너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호오키교회당에 다다랐다. 1898년(메이지31년) 마타라 선교사 지도아래 세워진 이 교회당은 고토섬 우쿠시마 출신 목수 노모토 쇼이치가 지었다. 교회당 안에는 고토지역 성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백꽃 모양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눈길을 끌었다. 장미꽃이 없어 동백꽃을 꺾어 성모님께 바쳤다던 고토 신자들의 신심이 이곳 호오키교회당에도 꽃을 피웠다. 호오키교회당에선 일채모금(一菜募金)운동이 진행 중이었다. 매주 금요일 한끼 식사는 채식으로 해 아낀 돈을 모아 좋은 일에 쓰자는 취지의 모금운동을 벌이는 일본 신자들이 친근했다. 바다를 왼편으로 끼고 30여분 달렸을까. 뉘엿뉘엿 해가 지는 이키츠키대교를 건너 쿠로세의 쯔지 순교비와 순교자 가스파르 니시의 묘가 있는 이키츠키섬으로 향한다. 1609년 처형돼 이키츠키 최초의 순교자가 된 가스파르 니시의 묘지 앞엔 십자가를 높이 세운 쿠로세의 쯔지 순교비가 있다. 가스파르 니시의 아들 토마스 니시 또한 마카오에서 신학을 배워 돌아온 뒤 1634년 나가사키에서 순교해 나가사키 16성인의 반열에 들었다. 이키츠키섬은 마츠우라 영주에 의해 박해받았던 가쿠레키리스탄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이곳 이키츠키섬 박물관에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신분을 숨긴채 불교도로 가장하고 살아야 했던 가쿠레키리스탄의 슬픈 역사가 재현돼 있다. 금교령이 내려졌을 당시, 가쿠레키리스탄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후미에(신자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십자가를 밟는 것)를 해야 했으며, 집에 돌아와선 죄책감에 시달리며 채찍으로 자신의 몸을 때리기도 했다. 하얀 종이를 오려 만든 십자가를 통에 넣어 다니기도 했고, 신앙을 속이기 위해 불상 뒤에 십자가를 그린 것으로 예수상, 성모상을 대신했다. 탱화로 가장한 성모자상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전시실에 들어서니 어두운 방에 숨어 신자들이 함께 바쳤다던 ‘오라쇼’ 소리가 들린다. ‘오라쇼’는 가쿠레키리스탄들이 구전으로 전해듣고 외우던 라틴어 기도문이다. 259년을 전해내려오면서 발음도 의미도 달라진 이상한 노래, 알지도 못하는 낱말의 조합을 전해들은대로 무조건 외운 것은 보이지 않는 신에 대한 가쿠레키리스탄들의 간절한 희망의 소리가 아니었을까. 뜻도 알지 못한 채 가슴 졸이며 오라쇼를 읊는 그들의 모습을 그날 밤 꿈속에서 만났다. 이튿날, 구로시마행 쾌속선에 올라탔다. 히라도 영주의 방목지였던 구로시마는 소나 말을 관리하던 불교도 외엔 달리 취락지가 형성돼 있지 않던 척박한 땅이다. 그곳에 사람의 눈을 피해 섬 뒤쪽으로 몰래 숨어들어가 지내던 구로시마의 가쿠레키리스탄의 흔적이 있다. 인구 85%가 가톨릭 신자라는 신앙의 섬 구로시마의 베일을 벗기려는 듯, 쾌속선은 바다를 반쪽으로 가르며 달렸다. 40분쯤 달렸을까. 눈앞에 섬이 나타났다.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듯 습한 바닷공기에 구로시마(黑島)의 검은 화강암 내음이 실려왔다. (포항 효자성당 시복시성 위원회   이태웅 바오로 옮김)

 

가쿠레키리스탄(기리시단) 성화, 19세기 일본 성화 (이천 대월면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전시물)

 

일본의 기독교 역사는 16세기 예수회 신부인 에스파냐 선교사 프란시스코 사비에르의 전도로 시작 되었다. 기리시단은 일본의 카톨릭 신자를 부르는 이름이다. 처음 50년 동안은 번성 하였으나 도요토미, 도쿠가와 시대에 핍박으로 수천 명의 순교자를 낳았다. 이후 19세기까지 숨은 기리시단들에 의해 명맥을 유지하는데 이때 지방의 기리시단들은 불교도로 위장하여 혼합적 종교로 살아남게 되었다. 이 그림 역시 불교의 보현 보살(십자가 바로 아래 그림)에다 십자가와 예수의 라틴어 머리글자 "IHS" 를 새겨 놓고 예배시 사용 하였다. 십자가 부분에 그리스도의 모습이 숨겨져 있다. 이 그림은 일본 남부 시고쿠 지방 츠시마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호오키교회당의 동백꽃무늬 스테인드글라스. 이는 고토열도 성당에서 자주 보이는 무늬다.  

(아래 글,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hyojasaint1/247)

 

가쿠레키리스탄들이 구전으로 전해듣고 외우던 라틴어 기도문 ‘오라쇼’를 바치고 있는 모습. 

 

 타비라교회당. 1918년 구로시마, 소토메 등지에서 이주해온 신자들이 나카다 후지요시 신부의 도움을 받아 벽돌로 지었다.

 

하얀 종이를 오려 만든 십자가 ‘오마부리’. 가쿠레키리스탄들은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통에 넣어온 십자모양의 종이를 뿌려 축하했다고 한다.

 

가쿠레 키리스탄의 묘지에는 조약돌이 놓여있다. (출처- http://sungje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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