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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아코 베네딕토 수도원 (St. Benedict's Monastery at Subiaco, 수비아코)

성지순례/서유럽(이탈리아,로마)

by baesungsoo 2013. 8. 29.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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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토 수도원              (출처- http://ash7885.blog.me/100189837288)

 

수비아코는 로마에서 동쪽으로 약 73km 떨어진 아니에네 강변에 위치한 해발 410m의 마을로 성 베네딕토가 수도생활을 시작한 곳이다. 이탈리아 중부 누르시아의 자유 시민 가정에서 출생한 베네딕토는 청년이 되어 로마로 유학을 떠났다. 문학에 심취했던 그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당시 로마에 회의를 느끼고 23살 무렵 이곳 수비아코 산중으로 들어와 가파른 절벽 중앙에 나 있는 동굴에 들어가 3년간 기도와 묵상으로 은수생활을 했다. 이 동굴을 '사크로 스페코'(Sacro Speco) 즉 '거룩한 동굴'이라고 부른다.  절벽을 따라 올라가면서 지은 수도원 건물은 말 그대로 사크로 스페코였다. 성당 안쪽에는 성 베네딕토가 기도하던 동굴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좁은 동굴 안에는 흰 대리석으로 조각한 청년 베네딕토상과 돌로 만든 십자가, 빵 바구니, 그리고 장궤틀 하나가 놓여 있다. 성당 내부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성 베네딕토의 일생을 그린 프레스코 벽화로 온통 장식돼 있다. 동굴 밖에는 베네딕토가 이곳에서 은수생활을 하던 중 육정을 이기기 위해 알몸으로 딩굴었던 장미 정원이 그대로 있다.

 

베네딕토 수도원              (출처- http://ash7885.blog.me/100189837288)

 

베네딕토 수도원              (출처- http://ash7885.blog.me/100189837288)

 

수도원에 올라가기 위해 기차를 타고       (출처-cafe.daum.net/bohansol/4lS0/15)

 

베네딕토 수도원              (출처- http://ash7885.blog.me/100189837288) 

 

베네딕토 수도원              (출처- http://blog.daum.net/andreah4/2131458) 

 

베네딕토 수도원              (출처- http://ash7885.blog.me/100189837288)

 

베네딕토 수도원              (출처- http://ash7885.blog.me/100189837288)

 

베네딕토 수도원              (출처- http://ash7885.blog.me/100189837288)

 

베네딕토 수도원              (출처- http://ash7885.blog.me/100189837288)

 

베네딕토 수도원              (출처- http://ash7885.blog.me/100189837288)

 

성 베네딕투스는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동로마제국이 세워지는 시기의 혼란한 시기인 AD 480년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지방의 누르시아의 명문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로마에서 수학하였으나 도시생활의 혼란과 방종이 그로 하여금 광야로 가게 만들었다. 세상학문을 포기한 베네딕도는 아필레로 유모와 함께 이사하였다. 아필레에서 한가지 일화가 있다. 하루는 유모가 이웃집에서 점토로 만든 체를 빌려 왔다.그런데 사용하다가 탁자에서 떨어뜨려 두 동강이로 깨지고 말았다. 유모는 자신의 부주의를 탓하며 몹시 울었다. 유모에 대해 불쌍한 마음이 들은 베네딕도는 깨어진 체를 집어 들고 기도하러 갔다. 잠시 후, 베네딕도는 온전한 체를 들고 돌아왔다. 이 일은 동네에 놀라운 사건으로 소문이 났고, 사람들은 그 체를 갖다가 교회 문에 걸어 놓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한 기적을 갖고 떠들썩 하는 것에 대해 몹시 불쾌해했다. 그리하여 500년경에 그는 그곳에서 30마일 떨어진 엔피데로 갔다가 은수자의 생활을 하기로 결심하고 수비아코에 정착하였다. 여기서 그는 3년 동안을 동굴에서 살았는데, 로마누스라는 은수자에 의하여 음식을 공급받았다. 독수자가 되는 것이 그의 소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성덕과 엄격함이 널리 알려져서, 그는 비코바로에 있는 한 수도자의 공동체로부터 그들의 원장이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를 수락하였으나, 그들이 그의 엄격한 규칙에 반대하여 마침내 그를 독살하려고 시도하자 수비아코로 되돌아왔다. 그 후 곧 수많은 제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는 자신이 임명한 원장의 지도하에 있는 12개의 수도원을 조직하고 일과표의 일부로서 노동을 실시하였다. 수비아코는 영성과 학문의 중심이 되었다. 그는 인근의 본당사제이던 플로렌티우스가 자신의 활동을 시기해 죽이려 하자, 다른 수도자들의 안전을 위해 그곳을 떠나 529년경에 몬테카시노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아폴로에게 헌정된 이방인 신전을 파괴하고 인근의 주민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으며, 530년경에는 서방 수도원의 발생지가 되는 몬테카시노 수도원을 건립하였다. 그의 성덕과 지혜 그리고 기적에 대한 명성이 수없이 퍼져나가 또다시 많은 제자들이 몰려왔다. 그는 수도자들을 단일 수도원 공동체로 조직하고, 상식을 존중하면서도 올바른 금욕생활, 기도, 공부 그리고 일 및 한 명의 원장 아래 있는 공동체 생활을 규정하는 저 유명한 규칙을 썼다. 이 규칙은 순종과 정주 그리고 신심을 강조하였으며, 수도생활의 기초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수도자들을 지도하면서도 통치자와 교황의 고문을 담당하였고, 가난한 이들을 돕고, 도틸라의 침공으로 황폐해진 롬바르디아를 재건하는데 정열을 쏟았다. 그는 547년경 3월 21일 몬테카시노에서 운명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성 베네딕투스는 1964년 10월 24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하여 유럽 전체의 수호성인으로 선언되었다.

 

베네딕토 수도원              (출처- http://ash7885.blog.me/100189837288) 

 

베네딕토 수도원              (출처- http://blog.daum.net/andreah4/2131457)

 

베네딕토 수도원              (출처- http://blog.daum.net/andreah4/2131458)

 

베네딕토 수도원              (출처- http://ash7885.blog.me/100189837288)

 

베네딕토 수도원              (출처- http://ash7885.blog.me/100189837288)

 

베네딕토 수도원              (출처-cafe.daum.net/bohansol/4lS0/15)

 

베네딕토 수도원              (출처- http://ash7885.blog.me/100189837288)

 

베네딕토 수도원              (출처- http://blog.daum.net/andreah4/2131457)

 

베네딕토 수도원              (출처- http://ash7885.blog.me/100189837288)

 

베네딕토 수도원              (출처- http://blog.daum.net/andreah4/2131457)

 

성 베네딕토 상                  (출처-cafe.daum.net/bohansol/4lS0/15)

 

베네딕토 수도원              (출처- http://ash7885.blog.me/100189837288)

 

베네딕토 수도원              (출처- http://ash7885.blog.me/100189837288)

 

베네딕토 수도원              (출처- http://blog.daum.net/andreah4/2131458)

 

베네딕토 수도원                (출처- cafe.daum.net/GWANGPAN1943/Ctxt/701)

 

 수도원에는 두 개의 성당이 있다. 윗 성당에는 14세기 시에너 계파의 프레스코 벽화와 15세기 움브리아 계파의 프레스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아래 성당에는 13세기 중반의 마지스터 콘솔루스가 그린 벽화가 있다. 또한 그레고리오 경당에는 익명의 화가가 그린 프란체스코 성인의 최초의 초상화가 있는데 이는 1244년 프란체스코 성인의 방문 기념으로 그려졌다. 동굴의 베네딕토 성인상은 1657년 안토니오 라키의 작품이며 앞의 코스마풍의 제대는 1920년대 후반 쿠스타프 죠반니의 작품이다.  

 

베네딕토 수도원              (출처- http://blog.daum.net/andreah4/2131457)

 

베네딕토 수도원              (출처- http://blog.daum.net/andreah4/2131457)

 

프레스코화                  (출처- http://blog.daum.net/andreah4/2131458)

 

프레스코화                (출처- http://blog.daum.net/andreah4/2131457)

 

프레스코화                (출처- http://blog.daum.net/andreah4/2131457)

 

프레스코화                (출처- http://blog.daum.net/andreah4/2131458)

 

프레스코화                 (출처- http://blog.daum.net/andreah4/2131457)

 

프레스코화                (출처- http://blog.daum.net/andreah4/2131457)

 

프레스코화                 (출처- http://blog.daum.net/andreah4/2131457)

 

성 베네딕토           (출처-cafe.daum.net/bohansol/4lS0/15)

 

베네딕토 수도원 동굴             (출처- http://blog.daum.net/andreah4/2131458)

 

베네딕토 수도원 동굴             (출처- http://blog.daum.net/andreah4/2131458)

 

<산타 스콜라스티카 수녀원>

 

산타 스콜라스티카 수녀원              (출처- http://ash7885.blog.me/100189837288)

 

산타 스콜라스티카 수녀원은 1770년 부터 3년간 새 성당이 건축 되었다. 특히 11세기에 건축된 로마테스코 양식의 종탑과 3개의 회랑이 유명하다. 처음것은 1580년에 지어졌다. 다음은 고딕식,세번째것은 13세기의 것이다. 

 

산타 스콜라스티카 수녀원              (출처- cafe.daum.net/Country-Father/KmfR/646) 

 

산타 스콜라스티카 수녀원

 

산타 스콜라스티카 수녀원              (출처- http://ash7885.blog.me/100189837288)

 

성녀 스콜라스티카


성녀 스콜라스티카는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7월 11일)의 쌍둥이 누이동생이다. 어릴 때부터 하느님께 봉헌한 사람으로 살아 왔으나 아마도 부모의 집에서 기거한 듯 보인다. 그 후 그녀는 몬테카시노(Monte Cassino)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았는데, 혼자인지 아니면 공동체 생활을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 당시에 그녀는 일 년에 한 두 번 정도 성 베네딕투스를 만난 것 같다. 교황 성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가 쓴 “이탈리아 교부들의 생활과 기적에 관한 대화집” 33장에 의하면, 성 베네딕투스가 몬테카시노의 대수도원을 설립한 뒤 그곳에서 남쪽으로 약 8km 정도 떨어진 피우마롤라(Piumarola)에 베네딕토 수녀원을 설립하여 누이동생인 성녀 스콜라스티카에게 맡겼다. 그로 인해 성녀는 베네딕토 수녀회의 첫 번째 수녀이자 원장이 되었다.  그리고 "대화집" 33장에는 이들 남매의 유명한 일화가 하나 전해 온다. 성녀 스콜라스티카가 마지막으로 성 베네딕투스를 방문했을 때 성녀는 예년과 같이 수도원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베네딕투스 성인이 몇몇 수사들을 데리고 나와 수도원에서 약간 떨어진 어느 집에서 만났다. 그들은 만나서 늘 하던 대로 함께 기도하고 영적 담화를 나누었다. 밤이 되자 성녀는 오빠에게 다음날 아침까지 함께 있기를 간청했으나 베네딕투스 성인은 수도회 규칙에 충실해야 한다며 거절하였다. 이에 성녀가 눈물을 흘리며 잠시 기도를 하자 곧 세찬 비바람이 몰아쳐서 베네딕투스 성인과 수사들은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대로 머물게 된 베네딕투스 성인은 “누이야,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너의 뜻을 허락하셨구나. 대체 네가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고, 성녀는 “당신은 저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으나, 주님은 제 말을 귀담아들으셨습니다. 자, 이제 나가서 수도원으로 돌아가 보시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이렇게 해서 남매는 밤새도록 영적인 생활과 천상 생활의 기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마지막 만남이 있은 지 3일 후 성녀 스콜라스티카는 운명하였다. 베네딕투스 성인은 누이동생의 시신을 자신을 위해 몬테카시노 수도원 내에 마련해 두었던 무덤에 안장하였다고 한다. 몬테카시노가 붕괴된 후 8세기경에 베네딕투스 성인의 유해와 성녀의 유해는 플뢰리(Fleury) 수도원으로 옮겨졌다. 이로써 이탈리아 밖의 지역에서 성녀의 공경이 확산되기 시작하였고, 8세기 말에는 베네딕토회의 시간전례에 성녀의 축일이 수록되었고, 9세기경에는 전세계 수도원에서 이 축일을 기념하였다. 성녀 스콜라스티카에 대한 공경 예절이 전세계의 교회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11-13세기에 이르러서였지만, 로마 전례력에 정식으로 축일이 수록된 것은 18세기경이었다. 성녀 스콜라스티카는 베네딕토 수녀회의 주보성녀로 공경받고 있다.

(글 출처- http://blog.daum.net/lovetina)

 

성녀 스콜라스티카

 

산타 스콜라스티카 수녀원              (출처- http://ash7885.blog.me/100189837288)

 

산타 스콜라스티카 수녀원              (출처- http://ash7885.blog.me/100189837288)

 

산타 스콜라스티카 수녀원              (출처- http://ash7885.blog.me/100189837288)

 

산타 스콜라스티카 수녀원              (출처- http://ash7885.blog.me/100189837288)

 

산타 스콜라스티카 수녀원              (출처- http://ash7885.blog.me/100189837288)

 

산타 스콜라스티카 수녀원              (출처- http://ash7885.blog.me/100189837288)

 

산타 스콜라스티카 수녀원              (출처- http://ash7885.blog.me/100189837288)

 

산타 스콜라스티카 수녀원              (출처- http://ash7885.blog.me/100189837288)

 

산타 스콜라스티카 수녀원              (출처- http://ash7885.blog.me/100189837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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