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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네(Syene, 아스완, Aswan)

성지순례/이집트

by baesungsoo 2014. 4. 10.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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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네, 아스완 (Aswan)         (출처- http://blog.naver.com/rooneyelly2/30187856528)

 

아스완은 이집트 남부 최대의 도시로 태양의 도시이자, 고대 룩소르에서 남쪽으로 81마일 떨어진 아프리카 풍의 변경도시였다. 카이로에서는 970Km 떨어진 곳이다. 나일강의 보석이라고 부를정도로 아주 아름다운 나일강의 풍광과 누비안의 문화를 접 할 수 있는 곳이다.  파라오 시대 아주 중요한 화강암의 채석장 있어, 화강암의 주산지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누비안 지역으로 가는 국경의 도시였고, 아프리카에서 오는 특산품(상아, 향유, 흑단나무, 황금)을 매매 하였던 상업 도시이었다. 나일강 하피 신에 살았던 곳으로 나일강 제1폭포가 이곳에 있었고, 지금은 아스완 올드 댐이 세워졌다. BC 600년경 성서의 예언자 예레미아가 이곳으로 내려와 살았다고 한다. 이곳에 살았던 유대인들이 엘레판틴 섬에 "여호밧"이라는 신전을 세워 여호와를 모셨다고 한다. 성서 지명으로 "수에네(Syene)"라 부른다.  1898년~1912년에 영국인들에 의해 아스완댐이 건설된 이후 많은 유적들의 침수가 있었고, 이 댐이 관개와 홍수조절을 위한 능력이 떨어지자 이집트 정부는 좀 더 완벽한 홍수통제를 위해 1971년에 아스완 하이댐을 건설하였다. 이 때문에 다시 수위가 높아져서  많은 유적들이 사라지게 되었다. 지금은 댐을 이용한 화학비료 등의 공업이 잘 발달되어 있다. 이곳에서 누비아 박물관에서 수몰이전의 유물들을 구경할 수도 있고, 근처의 필라에섬의 이시스의 신전을 구경할 수 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나세르 호수를 따라 원래의 장소에서 200m 정도 이전된 람세스 II세의 아부심벨의 유적지를 들 수 있다. 

 

애굽에 대한 심판 (겔29:10-11)

 

"그러므로 내가 너와 네 강들을 쳐서 애굽 땅 믹돌에서부터 수에네 곧 구스 지경까지 황폐한 황무지 곧 사막이 되게 하리니 11 그 가운데로 사람의 발도 지나가지 아니하며 짐승의 발도 지나가지 아니하고 거주하는 사람이 없이 사십 년이 지날지라."

 

아스완의 나일강                 (출처- http://cafe.daum.net/drivingtour/MSsd/)

 

나일(Nile)강은 아프리카 대륙의 중부에서 발원하여 북부로 흐르는 총 길이 약 6,670km의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이다. 이 나일강이 이집트 남쪽 수단의 수도 카르툼에서 흩어졌던 강줄기가 하나로 만나 이집트로 흘러 오는데, 바로 그 관문이 아스완이다. 이집트 최남단 도시 아스완, 카이로에서는 남쪽으로 약 900km 떨어져 있다. 현재는 약 25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이집트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이며 연중 기온이 덥고 건조해 일년 동안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는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도시 중 하나이다.

 

수에네(아스완)          (출처- http://blog.naver.com/rooneyelly2/30187856528)

 

고대 이집트를 이야기 할 때 북쪽에 있는 나일 강 삼각주 동편에 있었던 믹돌에서부터 남쪽 수에네 지역까지를 애굽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미츠라임 즉 애굽을 이야기 할 때 “믹돌에서 수에네 까지”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을 “단에서부터 브엘쉐바까지”로 표현하는 것과 같다. 에스켈29:10“그러므로 내가 너와 네 강들을 쳐서 애굽 땅 믹돌에서부터 수에네 까지 곧 구스 지경까지 황폐한 황무지 곧 사막이 되게 하리니”믹돌의 뜻은 “망루”라는 뜻으로 보아 이집트 북동쪽 아시아인들의 쳐들어 오는 길목에 망루를 세워 감시를 하였던 곳으로 미루어 보아 나일 삼각주 가장 동편에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위치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남쪽의 국경은 수에네이다. 수에네가 남쪽의 국경인 된 것은 아마 지리적인 원인 때문이다. 나일 강은 석회암지대인 구스 지역을 느리게 흐르다가 화강암 지역인 수에네 지역에서는 급류가 되어 도저히 배가 운항할 수 없는 지역으로 변하기 때문에 자연적인 국경이 된 것 같다. 수에네라는 말의 뜻은 “시장 또는 교역소”의 뜻으로 이곳에서 남쪽 아프리카족들과 시장이 형성된 내륙 상업지라는 것을 추정할 수가 있다. 수에네는 고대 콥트어로 “스완”으로 바뀌었다가 아랍어인 “아스완”으로 바뀌어 오늘에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이 역사적 관심을 끌게 된 것은 5세기 경에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이 아닌 이방 지역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설하였는데, 그 자리가 엘리판티섬이다. 독일의 학자 자코 교수는 1906년 엘리판티섬에서 발견된 아랍어 파피루스를 판독하다가 이곳에 유대인들이 폐르시아 시대에 신전을 건설하였다는 내용을 발견하였다. 이 유대교 신전은 이방 땅에 세워진 최초의 신전이다. 그러나 주전410년 크놈 신전의 제사장들이 파괴함으로서 유대교 신전의 흔적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이 신전으로 인하여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 구출된 눈물의 선지라 예례미야가 이집트로 피난을 와서 여생을 보낸 것과 연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폐르시아의 캄비세스 황제가 주전525년 이집트를 점령하고 이집트를 지배하면서 유대인들을 용병으로 고용하여 엘레판티 섬에 주둔시킨 역사적 사실을 알려지게 되었다. 엘리판티섬은 아스완의 나일 강 가운데 있는 섬으로 남북의 길이가 약2km이고 동서의 폭이 약500m인 섬으로 초기 고 왕조 시대부터 애굽의 남쪽 국경 수비대의 요새가 있었던 곳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주전2800년경에 이 섬의 수호신이었던 크놈 신을 위한 신전터가 발굴되었다. 기자의 피라미드에서 본 화강암은 이곳에서 채굴되어 나일 강을 타고 카이로 까지 운반되었다. 그 이야기는 이곳이 핑크빛 화강암과 현무암과 같은 아름답고 단단한 석재를 채석하는 채석장이 있었다는 뜻이다. 아스완의 나일 강에 있는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인 엘레판틴 섬은 코끼를 닮았다고 해서 엘레판틴으로 불린다. 이 엘레판틴 섬에는 대형 신전 같은 것은 많지 않으나 이집트에서 의미 있는 역사 유적 중에 하나이다. 엘리판티 섬은 지정학적 위치가 남쪽 누비아와 경계를 이루는 지점으로 나일 강에서 배가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는 최고 끝 지점이다. 고대 이집트시대부터 이 섬은 군사적 요새로서 역할을 하면서 나일 강 상류의 누비아 민족을 비롯한 여러 민족과 교류 지점이 되었다. 이 섬에는 나일 강의 수위를 측정하는 나일미터, 크놈 신전 같은 고대 유적지가 있으며 지금은 누비아인들이 거주하는 거주지이다. 흔히들 기근이 든 것을 비가 오지 않아서 즉 가뭄 때문에 기근이 일어났다고들 한다. 그러나 원래 이집트는 비가 오진 않는 지역이다. 그러기 때문에 나일 강이 아니면 이집트란 존재할 수가 없다. 나일 강 유역의 좁은 지역을 빼면 이집트는 온통 사막뿐이다. 그리스 역사학지며 여행가였던 헤로도투스가 이집트를 여행한 후 언급했던 나일의 범람은 지금은 없다. 1902년 나일 강 상류에 영국이 아스완 댐을 만든 이후 수위가 인공적으로 조절되기 때문이다. 이집트인들은 그전까지 나일 강 수위에 목을 매달았다. 강물이 적거나 많으면 재앙이 될 수도 있고, 적당하면 풍년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나일 강의 수위를 측정하는 ‘닐로미터(Nilometer)는 아랍어로는 미키아스 알닐(Mikyas al-Nil)이라 하는데 이집트의 자연적 입장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닐로미터만 지켜보면 그 해의 작물 수확이 어떻게 될지를 미리 알 수 있수. 닐로미터는 이집트의 7000년 역사상 가장 중요한 건조물이다. 이런 닐로미터도 카이로의 로다 섬 남단에 있다. ‘올드 카이로’의 나일강변에서 보면 좁은 수로 바로 건너편에 있다. 카이로의 닐로미터는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 이집트 내 가장 오래 된 이슬람 시대 건축물이다. 로다 섬의 닐로미터는 두 종류가 있다. 강변의 축대에 검은 색 눈금을 표시한 ‘막대 자’와 같은 단순한 형태와, 강바닥을 파고 들어가 높은 돌기둥을 세운 좀 더 모양을 갖춘 닐로미터가 있다. 닐로미터 옆에 아랍어 숫자가 눈금을 표시하고 있다. 아스완의 닐로미터는 물이 바닥의 세 곳으로부터 내부로 유입되고 중앙에는 물높이를 재는 8각의 가는 돌 기둥이 한 개 서있다. 높이는 약 20m, 넓이와 폭은 약 8m이다. 돌기둥에는 눈금이 붉은 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당대의 길이 단위는 큐빗으로 그의 하부 단위인 손가락 한 개 두께이다. 닐로미터는 물이 들어오는 통로를 지금은 막아 돌 바닥이 마른 채 그대로 드러나 있어, 나선형 돌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 닐로미터의 건물 안벽 상단에는 비와 수확, 풍요에 대한 코란 구절이 고전체 아랍어로 새겨져 있다. 나일 강은 율리우스력으로 6월 20일에 수위가 오르기 시작하고, 통상 8월에 16큐빗의 높이에 이르게 된다. 14세기 여행가 이븐 바투타(1304-1368년)는 나일 강 범람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나일 강은 6월부터 물이 불기 시작하는데, 그 수위가 16큐빗만 되면 술탄의 지조(地租)는 전액 징수되며, 여기에 1 큐빗 더 높아지면 그 해는 따놓은 대풍년이다. 만일 18큐빗에 이르면 그 해 농사는 망쳐버리고 역병이 만연한다. 그런가하면 16큐빗에서 1큐빗이 낮으면 술탄의 지대(地代)는 삭감되고, 2 큐빗 낮아지면 사람들은 물 고생을 하고 큰 재난이 닥친다.” 닐로미터가 16큐빗에 이르면 강물을 내륙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수로의 입구를 트는 행사가 열렸었다. 강물은 수로로 흘러들어 갔으며 옛 카이로 성곽의 왼편에 있는 호수를 채웠다. 뜨거운 여름에 수로와 호수에는 유람선이 가득 찼고, 호수 주변에는 각종 오락장이 들어섰을 것이다. 물이 차면 수로 입구를 다시 막았다가 다음해 나일 강 범람 직전에는 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수로 청소를 한다. 수로 입구의 제방을 허무는 행사에는 당대의 최고 통치권자가 항상 참석했고, 행사는 며칠간 계속됐다고 한다. 마믈룩 왕조 시대(1250-1517년)에는 금칠을 한 술탄의 배가 이 때 나일 강에 떠 축제 분위기를 띄웠고, 나폴레옹의 카이로 점령 때(1798-1801년)도 이 행사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나일 강 수위가 16큐빗에 이르지 않을 경우 준비된 행사는 모두 취소한다. 대신 예배와 단식을 함으로써 가뭄과 기근을 막아보려고 하였다. 상 이집트로 불리는 이집트 남부 아스완의 한 섬의 돌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7년 동안 나일강 수위가 오르지 않았다. 들은 메마르고, 사람들은 그의 이웃을 매장하지 않는다. 어린 아이들은 울고 있다. 모든 이집트가 죽어가고 있다.” 나일 강 수위 만을 바라보고 있던 시대의 고통스런 기록이며 창세기의 7년 흉년에 대한 기사를 보는 것 같다. 그러나 1902년 12월 영국인들이 1900m 길이에 54m 높이의 아스완 댐(Aswan Low Dam)을 완공하면서 나일 강의 범람은 끝이 왔다. 나일 강의 중간에 자리 잡은 엘리판티 섬의 남쪽에 있는 크놈 신전이 있다. 지금 거이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 잔해만 있다. 크놈 신전을 이곳에 세우게 것은 당시 이집트 사람들이 이곳을 나일 강의 시작 지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상류 쪽은 나일 강의 협곡을 이루고 있는 폭포지대가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이집트인들은 나일 강을 단순한 수로로 여긴게 아니라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천상의 강의 분신이라고 여겼다. 이곳에서 발견된 “기근의 비석”에서 물이 부족하여 힘들었던 때의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비축해둔 식량이 바닥나고 기근이 이집트를 위협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파라오의 조세르는 시공장 임호테프에게 이같은 상황이 왜 발생하였는지를 조사하게 한다. 임호테프는 헤르모폴리스에 보존된 옛 문자 기록을 참조하여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은 전례 규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해석하고 크놈 신의 분노를 가라 않히기 위해서 성대한 봉헌식을 올려야 한다고 왕에게 고하여 봉헌식을 행하였고, 조세르 파라오는 수해를 막기 위해 크놈 신에게 제1카타락트 지방을 바쳤다고 한다. 또한 제19왕조 람세스3세도 이곳에서 제사를 드렸다. 크놈 신은 폭포지대[카타륵타]의 신으로 나일 강을 상징한다. 이 신은 다산과 창조의신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쪽 아스완 특히 누비아 지방에서는 주신으로 신앙되며, 주 신전은 상아 섬에, 아내 사티스 및 아누카스와 함께 모셔졌다. 이 신은 뿔이 난 숫양의 머리가 달린 남자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아스완은 방대한 채석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최상급 화강암뿐만 아니라 사암과 섬록암들도 채굴 하였다. 시공장들은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돌들을 찾아 이곳까지 찾아 온 것입이다. 채굴한 거대한 돌들을 적재할 수 있는 배들을 만들었고, 거대한 돌들과 오벨리스크를 그 배에 어떻게 적재하였는지 궁금하지만 조직된 노동력을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햇살이 바위들 위에서 반사하는 이곳 채석장에서는 석공들의 노동 흔적과 길이가 42m에 무게가 1200t이나 나가는 미완성 오벨리스크를 볼 수 있다. 이곳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어떻게 거대한 암석을 어떻게 매끄럽게 잘라 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어 주는 곳이다. 거대한 돌을 짤라내기 위해서는 먼저 돌에 홈을 만들어 그 홈에 세곳의 쐐기를 박아 놓고 쐐기에 물을 계속 적셔주면 돌의 내부가 팽창하여 돌이 갈라진다는 것이다. 길이가 41m의 미완성 오벨리스크는 운래 룩소의 카르낙 신전에 있는 투트모세 3세 신전 앞에 있던 오벨리스크에 붙이려고 했던 것인데 돌을 짤라내는 과정에서 결함이 발견되어 버려진 것이다. 1980년 3월10일은 물에 잠기게 될 필레 신전이 다시 태어난 날이다. 주전300년에 건설된 이시스의 성소 필레 신전이 아스완 하이댐의 완성으로 인하여 댐에서 방류하는 물로 인하여 잠기게 되었다. 이집트 정부와 유엔의 유네스코와 협력하여1972년부터 1980년까지 필레 신전을 근처의 아글라카 섬으로 옮겼다. 이 신전은 오시리스의 아내이자 호루스의 어머니인 이시스 여인을 위한 신전으로 수백 년에 걸쳐서 완공된 신전이다. 이 신전은 제30왕조의 넥타네브1세에 의하여 건설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후 이집트를 점령한 그리스 포톨레미우스 왕조에 의하여 계승되었고, 이집트를 침입한 로마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 신전은 이집트, 그리스, 로마의 건축 양식 혼합되어 있다. 그리스식 원형 기둥위에 장식된 파피루스 꽃 모양이 그것을 보여 주고 있다. (글-http://www.chtour.co.kr/ver3/Tourstory.php?)

 

수에네(아스완)          (출처- http://blog.naver.com/rooneyelly2/30187856528)

 

수에네(아스완)          (출처- http://blog.naver.com/rooneyelly2/30187856528)

 

수에네(아스완)          (출처- http://blog.naver.com/rooneyelly2/30187856528)

 

수에네(아스완)          (출처- http://blog.naver.com/rooneyelly2/30187856528)

 

호수 건너 이시스섬            (출처- http://blog.daum.net/manjaro1/37)

 

이시스섬            (출처- http://blog.daum.net/manjaro1/37)

 

나일강            (출처- http://blog.daum.net/manjaro1/37)

 

아스완 왕자 묘 유적            (출처- http://blog.daum.net/manjaro1/37)

 

아스완 왕자 묘 유적            (출처- http://blog.daum.net/manjaro1/37)

 

<아스완 올드댐>

 

아스완 올드댐                 (출처- http://blog.daum.net/jamesmar/241)

 

아스완 올드댐                 (출처- http://blog.daum.net/jamesmar/241)

 

아스완 올드댐                 (출처- http://blog.daum.net/jamesmar/241)

 

<아스완 하이댐(Assuan High Dam)>  

 

아스완 하이댐(Assuan High Dam)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File:BarragemAssu)

 

나일강에 세워진 아스완 하이 댐(Assuan High Dam)은 이집트 남동부 아스완주(州)에서 남쪽으로 약 12km 지점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의 댐이다. 길이가 3,6km, 높이가 111m이다. 담수량이 1,570억 톤으로 세계에서 가장 크다. 1899년 최초로 만들어지기 시작, 1902년 영국인이 나일강의 홍수 조절과 관개용수 확보를 위해 아스완에 댐을 만든 뒤, 1960년 러시아의 기술 원조로 공사에 착수, 1971년에 이르러 지금의 현대적 댐이 완성되었다. 이 댐이 만들어진 이후, 나일강 주변 사람들을 범람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아스완 댐은 크게 하이 댐(High Dam)과 로우 댐(Low Dam)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일강을 따라 약 6km 상류에 있는 아스완 하이댐은 세계 3대 댐 중 하나이다. 이집트 전역에 관개와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아스완 댐의 수력발전 용량은 210만kW라고 하는데 준공 당시 이집트 발전량의 50%였다고 하니, 이집트가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스완 댐이 아닌가 싶다. 이 댐 덕분에 농촌까지 전기가 들어갔고, 이집트 농경지가 33% 늘어났다. 아스완 하이 댐의 완공으로 길이 485㎞, 평균 폭 30㎞, 넓이 5,000㎢, 전체 부피가 대피라미드의 100배가 넘는 거대한 인공호수 나세르호(Nasser Lake)가 사막 속에 탄생하기도 했다. 아스완에 댐이 건설되면서 중요한 유적지들이 물속으로 사라질 위기를 겪었으나, 유네스코(UNESCO)를 중심으로 유적 보호와 관련된 활동을 열심히 해서 아부 심벨 신전(Abu Simbel Temple)과 필레 신전(Philae Temple) 같은 세계 문화유산들이 보전될 수 있었다. (글- http://blog.naver.com/PostView)

 

아스완 하이댐(Assuan High Dam)            (출처- http://blog.daum.net/duna2002/8498373)

 

아스완 하이댐(Assuan High Dam)            (출처-http://cafe.daum.net/ilovesansu/DmDo/ )

 

아스완 하이댐(Assuan High Dam) 기념탑          (출처- http://oldtestament.maru.net/)

 

아스완 하이댐(Assuan High Dam) 지도           (출처-http://cafe.daum.net/ilovesansu/DmDo/ )

 

아스완 하이댐(Assuan High Dam)            (출처- http://blog.daum.net/duna2002/8498373)

 

아스완 하이댐(Assuan High Dam)            (출처- http://cafe.daum.net/miheelover/Dq3t/)

 

아스완 하이댐(Assuan High Dam)            (출처- http://cafe.daum.net/miheelover/Dq3t/)

 

아스완 하이댐(Assuan High Dam)            (출처- http://blog.daum.net/duna2002/8498373)

 

아스완 하이댐(Assuan High Dam)            (출처- http://blog.daum.net/duna2002/8498373)

 

아스완 하이댐(Assuan High Dam)            (출처- http://blog.daum.net/duna2002/8498373)

 

아스완 하이댐(Assuan High Dam)            (출처- http://blog.daum.net/duna2002/8498373)

 

아스완 하이댐(Assuan High Dam)            (출처- http://blog.daum.net/duna2002/8498373)

 

아스완 하이댐(Assuan High Dam)            (출처- http://blog.daum.net/duna2002/8498373)

 

아스완 하이댐(Assuan High Dam)            (출처- http://blog.daum.net/duna2002/8498373)

 

아스완 하이댐(Assuan High Dam)            (출처-http://cafe.daum.net/ilovesansu/DmDo/ )

 

아스완 하이댐(Assuan High Dam)            (출처- http://cafe.daum.net/miheelover/Dq3t/)

 

아스완 댐과 섬            (출처- http://blog.daum.net/manjaro1/37)

 

아스완 댐과 섬            (출처- http://blog.daum.net/manjaro1/37)

 

<아스완 엘레판틴 섬 크눔신전>

 

엘레판틴 섬 아스완(Assuan)박물관               (출처- http://oldtestament.maru.net/)


이집트 남동부 아스완주(州)의 주도(州都) 나일강(江)의 동안(東岸) 제1폭포 바로 북쪽에 있으며, 카이로에서 철도로 950km 남쪽에 있다. 코끼리와 상아가 거래된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대상(隊商)들의 숙박지로, 수단과 에티오피아의 상업·교통 중심지를 이루었다. 나일강의 물을 조절해서 사막을 경지로 만들기 위해 축조된 ‘아스완댐’으로 유명해졌다. 댐은 1902년 완공된 후에도 몇 차례에 걸쳐 개선, 확장되었다. 70년에 남쪽 11km 지점에 아스완하이댐이 건설되었다. 따라서 그 전까지는 휴양지·관광지로 알려졌던 도시가 오늘날은 전력을 이용한 대(大)화학비료공장의 소재지로 변모하였다. 주(州) 내에 매장되어 있는 풍부한 철광을 이용하여 구리·철강·화학·시멘트 공업이 발전하고 있다. 대안(對岸)의 엘레판티네섬[島]은 고대 이집트의 남쪽 문호(門戶)로, 부근에 많은 고대 유적이 있어 겨울에 피한(避寒) 관광객이 모여든다

 

엘레판틴 섬    (출처- http://blog.daum.net/simon45/7)

 

엘레판틴 섬    (출처- http://blog.daum.net/simon45/7) 

 

크눔 신전 

 

아스완의 나일강 한가운데 길이 2km 폭 500m에 달하는 제법 큰 섬인 엘레판틴이 자리잡고 있다. 이미 초기 왕조 시대인 서기전 3000년경부터 이 섬은 이집트의 남쪽을 지키는 수비대의 요새로 개발됐다. 수양 머리를 한 크눔 신은 이집트인들에게는 인간 창조의 신인 동시에 급류의 신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집트인들은 엘레판틴에는 서기전 2800년경 크눔과 그의 배우자 사테트를 기념하는 신전을 건설했다. 또한 아스완은 나일강의 신 하피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고대 이집트 인들은 나일강의 물이 아스완에 있는 하피가 거주하는 동굴에서 흘러나온다고 여겼다. 급류 때문에 더 이상 배를 타고 상류로 거슬러 올라갈 수 없기에 생겨난 전설이다. 엘레판틴 섬에는 투트메스 3세와 4세, 람세스 2세의 신전 유적 등 고왕국시대부터 신왕국시대에 걸친 신전 유적이 산재해 있으나 어느 것이든 심한 파손으로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없다. 원형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는 것은 나일로미터(水位計)인데, 나일강으로 내려가는 계단, 수위를 측정하기 위해 새긴 눈금 등이 남아 있다. 눈금에는 그리스어와 고대 이집트어의 숫자가 새겨져 있고, 단위로는 큐비트 인치(약 52cm)가 쓰이고 있다. 1904∼1908년 발견된 파피루스에 의하면 페르시아 시대에는 유대인이 건립한 야훼의 신전이 있었다고 한다

 

크눔신전              (출처- cafe.daum.net/word-wide/3ejA/1122)

 

크눔신전              (출처- cafe.daum.net/word-wide/3ejA/1122)

 

크눔신전              (출처- cafe.daum.net/word-wide/3ejA/1122)

 

<아스완 아부심벨 신전> 

 

공중에서 내려다본 아부심벨 대소신전         (출처- http://blog.naver.com/toads/20057870298)

 

대신전과 소신전           (출처- http://oldtestament.maru.net/)  

 

아부심벨 대 신전          (출처- http://blog.naver.com/toads/20057870298)  

 

고대 이집트의 암굴신전(岩窟神殿) 이다.  이집트  애스원 남쪽 나일강 서안의 누비아 지방의 아부심벨에 있는 암굴 신전으로 고대 이집트 제 19왕조의 람세스 2세(재위 BC 1301∼BC 1235)가 천연의 사암층을 뚫어서 건립했다. 대신전 북쪽의 소신전 정면에는 왕과 왕비의 입상이 세워져 있다. 애스원 하이 댐 건설로 수몰 지역에 있던 것을 유네스코에서 1968년 현재의 지역으로 이동시켜 재건하였다. 대신전은 정면 높이 32m, 너비 38m, 안쪽 길이 63m이며 입구에 높이 22m의 람세스 2세의 상 4개가 있다. 제1실에는 람세스 2세를 오시리스 신을 본떠 만든 8체의 상과 6면의 넓은 전쟁화와 명문이 있다. 제2실과 제3실의 벽화는 종교의식에 관한 것이고 제 4 실 가장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데 지성소로서 왕이 신에게 제례를 지내며 신에게 기도하는 장소로 4개의 신상이 있는데 그건 태양신 라, 파라오 수호신 아문, 영혼의 신 프타, 그리고 자신을 신격화한 람세스 2세의 신상이 있다. 신전 내부는 항상 어두우나 람세스의 탄신일인 2월 22일과 그의 대관식인 10월 22일 에 해가 신전 제일 깊숙한 지성소 까지 비춰 신상의 전신을 비춘다 하나 죽음의 신인 프타에게는 일년 내내 빛이 비치지 않는 신비로움이 있다. 이로 인해 복원팀이 위치를 옮길때 일년에 두번씩 신전안 깊숙히 해가 비치도록하는 문제로 위치 선정에 많은 고심을 한 것이다.  람세스 2세가 100여명의 자녀를 가진것으로 알려졌지만 우리에게 알려진 자녀는 2명 뿐이다. 한명은 아버지가 죽은후 왕위에 오른 메르네프타이며, 다른 한명은 이집트 최초의 학자 또는 복구자로 알려진 카엠와세다. 카엠와세는 전대의 기념물에 새겨진 파라오의 이름을 지우고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은 것으로 유명한 아버지 - 이는 아마 최초의 역사 왜곡자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와는 달리 옛 유적을 보호하고 피해를 입은것을 복원하는 데 자신의 전생을 바쳤다. 

 

아부심벨 소신전, 네페르타리 왕비 무덤 신전 

 

대신전에서 90m 떨어진 북쪽에 있는데, 정면 높이 12m, 너비 26m, 안쪽 길이 20m이며 입구에 높이 10m의 상 6개가 있다. 4개는 왕을, 2개는 왕비를 나타낸다. 제1실에는 12개의 하트르 여신상의 기둥이 있으며, 각 기둥에는 왕과 왕비의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벽면에는 왕이 포로를 희생으로 신에게 바치며 왕비가 옆에 시립해 있는 그림이 있고, 제3실에는 공물봉헌(供物奉獻)의 그림이 있으며 안쪽 중앙에는 소의 모습을 한 하트르 신상이 있다.

 

아부심벨 소신전, 네페르타리 왕비 무덤 신전                (출처- http://blog.naver.com/ruby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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