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이교도에 대한 축복 (기도문) ברכת המינים | Biblia)
1896년 이집트 카이로에 있는 벤 에스라 회당에서 대규모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게니자의 문을 열였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지 않나 싶습니다. 게니자(גניזא, 원어의 기본 의미는 “숨김”)는 회당의 창고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잡동사니들을 넣어두는 창고들을 게니자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회당에는 그동안 잘 사용하였지만 너무 오래되어서 이제 사람들이 읽기에는 낡아버린 거룩한 책들과 두루마리들이 있게 마련인데요. 하나님의 이야기와 공동체가 값어치 있게 여기는 책들과 두루마리들이기에 함부로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책들을 보관하는 일종의 책과 두루마리들의 무덤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1896년에 케임브리지대학의 교수이자 랍비인 솔로몬 셰흐터(Solomon Schechter)가 이 게니자(이하. “카이로 게니자”라 함)를 조사하자 40만개의 먼서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 중에서 1만 개 정도는 중세 이집트에서 지켜왔던 유대교의 전통과 이집트와 지중해 동편 지역의 유대교 공동체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문서들이었습니다. 오래된 성경도 있었고요.
카이로 게니자에는 대략 870CE부터 19세기의 것까지 1000년 여간에 기록된 문서들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기독교인들이 매우 흥미로와할 글이 있는데요. 바로 “이교도에 대한 축복(기도문)“입니다.
“유대교를 떠나간 배교자들에게는 어떤 희망도 없게하라. 그리고 우리 때에 빨리 사악한 왕국을 뿌리 뽑을 지니라. 기독교인들과 이교도들은 즉시 멸망할 지어다. 그들은 생명책에서 지워질 것이다. 그리고 의로운 이들과 함께 기록되지 못할 것이다. 여호와여! 당신은 찬양받으실 분이십니다. 악한 이들을 굴복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에레츠 이스라엘 ארץ ישראל 버전)
“이교도에 대한 축복”은 정말 축복이라기 보다는 이교도에 대해서 비꼬는 저주입니다. “이교도인 너희들이 받을 ‘복’이라는 것은 이것 뿐이야!”라는 뜻으로 말이지요.
유대인들이 공식적인 회당 예배 때에 기독교인들을 저주하는 기도를 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초대 교회의 교부들의 글들에 소개되었더랬습니다(Justin Martyr ca 165 CE, Epiphanius ca 403 CE, Jerome ca. 420 CE). 그러나 유대교인들이 어떤 기도를 하는지 그 내용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카이로 게니자에서 “이교도에 대한 축복”이 발견되면서 현재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읽고 있는 “이교도에 대한 축복”이 고대 유대교의 산물이며 고대의 원형을 조금 변형시킨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교도에 대한 축복”이 유대인들의 회당 예배에 공식적으로 낭송된 것은 얌니아 공의회(대략 90 CE) 때 부터입니다. 탈무드 전통에서는 그보다도 더 일찌기 가말리엘(?-52CE, 바울의 선생님 라반 가말리엘 רבן גמליאל הזקן)의 요청에 따라서 사무엘(שׁמואל הקטן)이라는 유대교 율법학자가 만들었다고 말합니다(BT. Ber. 28b). 그러다가 70년에 로마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후, 얌니아(또는 “야브네”)에서 유대교를 대표하는 종교 지도자들이 모여서 구약 성서의 정경화 작업을 하는 동시에 회당 예배의 기준을 만들었습니다. 이 때 회당에서 주중 예배 때 해야하는 18개의 표준 기도문을 채택합니다(שמונה עשרה).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30여년 전부터 회당들에서 기도문으로 읽던 “이교도에 대한 축복”을 공식 표준 기도문 중의 하나로 덧붙여 채택했던 것이지요(결국 열아홉개의 기도문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것도 이스라엘 버전과 바벨론 버전이 조금 다릅니다).
“이교도에 대한 축복”을 만든 이유는 기독교인들을 유대교 회당 공동체에서 내쫓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내적으로는 소위 정통파 유대교인들이 기독교인들에게 대항하여 자기 정체성을 더 단단히 하기 위해서 이기도 합니다. 이러던 것이 중세 시대로 넘어오면서 기도문의 내용에 변화를 겪에 됩니다. 원래부터 일치된 하나의 정형적인 “이교도에 대한 축복”이 있었겠지만, 회당과 지역의 전통에 따라서 내용이 조금 달라지게 되었는데, 중세 시대 이후에는 기독교 사회 속에서 유대교 공동체가 살아가야 했기 때문에 기독교인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과 이교도들은 즉시 멸망할 지어다” 부분에서 “기독교인들”이 슬며시 빠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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