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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톰 사원, 서 메본사원 (고대 크메르, 캄보디아)

타종교신전/힌두교사원

by baesungsoo 2005. 6. 2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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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유적 

 

세계 최대의 종교건축물인 앙코르 유적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860년이다. 희귀 동식물을 조사하던 프랑스 학자 앙리 무오에 의해 이 유적이 알려지자 서구는 경악했다. 캄보디아인이 건설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알렉산더 대왕이 만든 것이다" "로마인의 솜씨다" "중국 유대인들의 작품이다"는 의견이 속출했다. 놀랍게도 20세기 들어서도 이 설을 믿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만큼 캄보디아인을 우습게 보았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이 유적은 9세기부터 600년 간 이어져 왔던 앙코르 왕조의 도성. 사원을 포함하여 910개의 유적은 앙코르 톰, 앙코르와트로 대분된다. 앙코르 톰 유적의 특색은 불교와 힌두교가 혼합돼 있다는 점과 사원 회랑을 장식한 조각이 모두 고대 인도 서사시라는 점이다.  13세기 중국인 주달관은 그의 캄보디아 체류기인 <진랍풍토기>에서 '왕은 왕국의 번영을 위해 밤마다 여자로 변신한 머리가 아홉인 뱀의 신과 동침을 해야 한다. 하루라도 거르면 재앙이 온다고 믿는다'고 쓰고 있다.   힌두교의 우주관을 바탕으로 건축된 것이기 때문에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독특하다. 첨탑은 힌두교의 거룩한 산인 메일을, 회랑은 육지와 산맥, 주변의 헤자는 바다를 표현한 것이라고. 앙코르와트 남동쪽에 위치한 뱅그로사원은 동지 때 일출과 일몰을 잇는 직선상에 배치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앙코르와트가 서쪽을 향해 있다는 점이다. 해가 지는 서쪽은 불교나 힌두교 모두 '죽음의 방향'으로 보는데도 '왕궁'이 굳이 서쪽을 향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여러 설이 있지만 이 '왕궁'이 실은 앙코르 유적의 건설자인 스루야바르만 2세의 영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 이처럼 뛰어난 건축물을 남긴 왕조가 하루아침에 모래성 무너지듯 멸망한 것이나, 이 건축물의 도면 하나 남기지 않은 점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빡쎄이 참끄롱 사원>

 

빡세이 참끄롱             (출처- http://cafe.daum.net/touralone)


앙코르 톰 입구의 다리를 건너기 직전의 좌측에 있다. 캄보디아의 전설에 앙코르 제국이 적에게 침략을 받아 왕이 적에게 잡힐 뻔하였는데, 이 때 큰 새가 나타나 날개를 펼쳐서 왕을 보호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사원의 이름은 거기서 따 온 것이다. 왕 부모의 장례 사원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빡세이 참끄롱

 

빡세이 참끄롱

 

빡세이 참끄롱

 

빡세이 참끄롱 

 

<앙코르 톰 남문>

 

앙코르 톰  남문                 (출처- http://cafe.daum.net/touralone)

 

앙코르 톰은 ‘큰 도시’를 의미하며 사원이 아닌 해자로 둘러싸인 지역 전체에 약 100만 이상의 주민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앙코르 톰은 12세기말 자야바르만7세가 왕국의 수도로 조성한 것으로 한 변이 3km나 되는 정사각형의 성벽과 해자로 둘러싸고 그 중앙에 우주의 중심을 상징하는 바이욘 사원을 건축했다. 사방 3Km의 정사각형에 홍토(빨간색 흙이며 용암처럼 구멍이 숭숭 나고 철성분이 많아 단단함)와 사암(Sand ston)으로 둘러싸인 성이다. 성벽의 높이는 8m이고 사방에 약 20m 정도의 해자가 성벽 외곽에 있다. 동서남북으로는 2개의 대로가 도시를 4분하도록하고 두 추축이 성벽과 만나는 지점에는 왕도의 문이 4개, 그리고 왕국에서 동쪽으로 뻗은 대로 위에 1개 모두 5개의 문이 있다. 이 대왕도의 동쪽과 서쪽에 논과 밭에 물을 대기 위한 거대한 인공 저수지를 만들었다. 앙코르 톰의 유적지는 바이욘 사원, 코끼리 테라스, 문둥이왕의 테라스, 피메아나키스, 바푸욘 사원, 프레아 칸 사원, 닉펜 사원, 타 솜 사원, 프레아 피투 사원, 크레앙, 프라삿 수오르 프랏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관광객들이 거쳐가는 곳은 바이욘 사원에서 바푸욘 사원까지이다. 

 

앙코르 톰 남문 양쪽 조각 불상들

 

앙코르 톰 남문 입구의 해자를 가로 지르는 출입교. 좌우로 거대한 Naga(머리가 9개 달린 코브라)상의 몸통을 붙잡고 있는 선신 54명과 악신 54명의 모습이 각각 편을 나누어 조각되어 있다. 함부로 범접하기 어려운 형상이다. 수만 개의 사암을 쌓아 올려 성문 위쪽의 사면에는 큰 얼굴을 새기고 그 아래쪽에도 21명의 신상, 코끼리 상 등이 일정한 형식으로 새겨져 있다. 

 

앙코르 톰 남문

 

앙코르 톰 남문 

 

앙코르 톰 남문

 

앙코르 톰 남문

 

앙코르 톰 남문

 

앙코르 톰 남문 입구 코끼리상

 

앙코르 톰 남문 입구 조각 불상

 


앙코르 톰 왕궁

 


앙코르톰 왕궁

 

<닉펜(Neak Pean) >

 

 

닉펜(Neak Pean)


관세음보살에 의한 자비의 힘으로 국내가 평정되길 기원한 자야바르만 7세 왕은 신비의 치유력이 있다고 믿어지는 신들의 성스러운 연못을 재생, 현세계에 재현하기 위하여 이 목욕지를 조성하였다고 한다.

 

닉펜(Neak Pean)

 

닉펜(Neak Pean)

 

닉펜(Neak Pean)

 

닉펜(Neak Pean)

 

닉펜(Neak Pean)

 

닉펜(Neak Pean)  

 

 

<바이욘 사원>

 

앙코르 톰, 바이욘사원     (출처- http://cafe.daum.net/touralone )

 

바이욘 사원은 4개의 대문으로부터 대략 1.5km 정도 떨어진 앙코르 톰의 정중앙에 높이 45m의 주탑이 세워졌고 그 주변에 54개의 탑이 있었다는데, 현재는 40여개 정도만 남아있는 중앙사원이다. 지리적으로 왕도의 중심에 있는 중앙사원일 뿐만 아니라 신들이 사는 천상계의 중앙에 있는 메루산(수미산)을 상징하기도 한다. 기록에 의하면 바이욘 사원은 12세기 말 자야바르만 7세(1181-1201년)에 의해 건축되었다고 한다. 자야바르만 7세는 앙코르 왕국의 전성시대를 연 크메르의 영웅이다.

 

바이욘 사원

 

바이욘 사원

 

바이욘 사원 회랑

 

사원의 중앙에 있는 내부 회랑 부분은 2차 건축 공사때 만들어 졌으며, 꼭대기 층 가운데의 커다란 사당 부분은 앙코르 후기 양식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아 13세기 3차 공사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바이욘에는 미소짓는 사면상과 외부, 내부 회랑에 나타난 부조들이 볼 만하다.

 

바이욘 사원

 

바이욘은 전체적으로 3개 층을 이루고 있다. 첫 번째 층과 두 번째 층은 벽에 부조가 조각된 회랑이 있는 사각형 구조이고, 세 번째 층은 16면의 십자형 구조에 둥근 모양의 중앙 사당이 있다. 이 곳은 처음 건축된 이후 여러 번 개축되어서 회랑과 통로와 계단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실제로는 층간의 구별이 조금 어렵다.

 

바이욘 사원  미소짓는 사면상              (출처- http://jeunglee2.blog.me/30033812863)

 

3층 바이욘의 미소라고 불리우는 사면상이다. 바이욘사원은 특히 사원에 조각되어 있는 54개의 4면불이 유명하다. 얼굴의 숲이라고도 할 바이욘 사원은 탑이 모두 54기나 된다. 탑마다 4개의 얼굴이 조각되어있어 총 조각상 숫자는 216개가 된다. 탑마다 조각된 큰 얼굴은 200여개로 사방에 조각된 사면상은 사원을 위엄있게 보이게 한다. 사면상은 불교 사원인 것과 연관해 관세음보살(아발로키테스바라)의 얼굴이자 그의 화신인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바이욘 사원  미소짓는 사면상              (출처- http://jeunglee2.blog.me/30033812863)

 

바이욘 사원  미소짓는 사면상              (출처- http://jeunglee2.blog.me/30033812863)

 

바이욘 사원  미소짓는 사면상              (출처- http://jeunglee2.blog.me/30033812863)

 

바이욘 사원  미소짓는 사면상              (출처- http://jeunglee2.blog.me/30033812863)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자 관세음보살의 얼굴이라는 앙코르의 미소이다. 아주 잔잔한 미소, 투툼한 입술에 넓은 볼, 조금 짧은 듯한 얼굴의 바이욘의 미소는 앙코르와트 탑과 함께 앙코르 유적 중에서도 압권이다. 자야바르만 7세는 캄보디아에서 최초로 마하야나 불교(대승 불교)를 들여 온 왕으로 자신을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로 믿고 대승 불교를 장려하기 위하여 갖가지 사원과 빈민구제 시설 등을 많이 지었다고 한다.

 

바이욘 사원  미소짓는 사면상              (출처- http://jeunglee2.blog.me/30033812863)

 

바이욘사원 회랑 부조            (출처- http://jeunglee2.blog.me/30033812863)

 

이 사원은 동쪽이 정문이며 제1회랑으로 들어선다. 천장은 무너져 기둥만 남아있으며 당시 크메르인들의 생활상과 자야바르만 7세의 전투 장면이 부조되어 있는데 벽면에는 부처님 조각상, 왕의 행차, 당시의 생활모습, 전쟁에서의 승리, 각국의 병사들과 보리수나무, 연꽃 등등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큰 돌에 얇은 판돌을 붙인 다음 조각을 했는데 돌에 생명을 불어 넣은 듯 생동감이 있어 석공들의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듯하다. 일부분 미완성인 부분이 있는데 태국 아유타야 왕조의 침략으로 인해 조각을 담당했던 기술자들이 미처 완성을 못한 부분이다.

 

바이욘사원 회랑 부조              (출처- http://jeunglee2.blog.me/30033812863)

 

바이욘사원 회랑 부조               (출처- http://jeunglee2.blog.me/30033812863)

 

바이욘사원 회랑 부조              (출처- http://jeunglee2.blog.me/30033812863)

 

바이욘사원 회랑 부조               (출처- http://jeunglee2.blog.me/30033812863)

 

 바이욘사원 제2회랑 부조   (출처- http://blog.paran.com/guamcafe)

 

제2회랑은 제1회랑과는 달리 힌두교의 신화와 관련된 내용들이 조각되어 있다. 불가사의한 점은 쌓아진 돌의 규격이 모두 틀리고 접착제 없이 지그재그로 빈틈없이 정교하게 조립한 후에 조각을 했다고 한다. 회랑의 벽 뿐만 아니라 사원 안의 모든 기둥과 문틀에 압살라상과 각종 동물들과 다양한 문양이 새겨져 있어 멀리에서 온 이방인을 감동하게 한다

 

바이욘사원 제2회랑 부조

 

바이욘사원 제2회랑 부조

 


바이욘사원 제2회랑 부조 , 압사라의 춤

 


바이욘 사원 부조, 압사라의 춤

 

바이욘 사원 부조, 압사라의 춤           (출처- http://jeunglee2.blog.me/30033812863)

 

바이욘 사원 압사라의 춤

 

<바푸욘 사원>

 

앙코르 톰, 바푸욘            (출처- http://cafe.daum.net/touralone )

 

바푸욘 사원은 바이욘 사원에서 북서쪽으로 20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바푸온은 11세기 중엽 앙코르 톰 이전의 도성에 지어진 힌두교사원이다. 비록 시바신에게 봉헌한 사원이지만 많은 비슈누의 그림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사원의 중심 높이는 약 43m로 바이욘보다 높고, 가로 125m, 세로 425m 크기로 동쪽 입구에서 길을 따라 200m 가량에는 피라밋 형태의 탑이 솟아 있다. 진입로가 많이 훼손되었지만 나가상과 사자상이 위엄있게 버티고 있으며  양옆으로 물이 거의 없는 연못이 있고 길게 뻗은 진입로 주변엔 사원으로 들어가는 많은 문과 기둥, 회랑이 있지만 거의 훼손된 상태다.  이곳은 힌두교 우주관의 중심인 메루(Meru)산을 상징하고 있는 앙코르 지역에서 세번째로 지어진 힌두교사원이다. 또한, 우다야디티야바르만(Udayadityavarman) 2세에 의하여 시바신에게 봉헌된 힌두교 탑이기도 하다. 옛날 샴의 왕과 크메르의 왕은 형제였는데 샴의 왕이 자신의 왕자를 크메르의 왕에게 맡기자 크메르의 신하들은 이것을 모략으로 여기고 왕자를 살해한다. 이에 화가 난 샴의 왕은 크메르 정벌에 나서는데, 이때 크메르의 왕비가 이 사원에 그들의 왕자를 숨겼다고 하여 "숨긴 아이" 라는 뜻을 갖는 "바푸온"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앙코르 톰, 바푸욘 

 

이 사원은 훼손이 너무 심해 1950년대 초반 프랑스 유적팀에 의해 복원이 시작되었다. 당시 유적팀은 돌에 번호를 붙여 놓았는데, 당시 돌만 해도 30만개에 달했다고 한다. 그런데 1970년 폴포트 정권이 들어서면서 모든 복원공사는 중단되었고, 1990년대 들어 다시 복원공사를 위해 유적팀이 현장을 찾았을 때는 돌이 상당수 없어졌다고 한다. 바푸욘 사원뿐만 아니라 바이욘 사원 등 유적지 곳곳에서는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피미야나카스> 

 

앙코르 톰, 피미야나카스             (출처- http://cafe.daum.net/touralone)


앙코르 톰이 건설되기 전인 11세기 초반 무렵에 왕궁 중심에 세워진 힌두교 사원으로 "천상의 궁전"이라고 불린다. 건립 당시에는 천상계의 중심에 있는 수미산을 본뜬 피라미드 형이었지만 중앙 사당이 대부분 붕괴되었다. 이 사원에도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에 중앙 사당에 머리가 아홉달린 아름다운 뱀신의 정령이 살았는데 국왕은 매일 밤 거르지 않고 이 정령과 밤을 보내야만 했단다. 만일 하룻밤이라도 지나치면 반드시 재앙이 닥쳤다고 한다. 바푸온의 크기에 비하면 매우 작지만 그래도 사진에서 보이는 윗부분 중앙의 문의 크기를 보면 그렇게 작지만도 않은 크기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계단은 매우 좁고 가파르고 미끄러워 보인다. 계단에는 다른 곳에서도 많이 본 사자상과 코끼리 조각상이 남아있다. 

 

피미야나카스

 

피미야나카스

 

피미야나카스         (출처- http://blog.daum.net/antiright)

 

피미야나카스

 

피미야나카스

 

피미야나카스 

 

피미야나카스

 

<프놈바켄 사원>

 

프놈바켄 부처의 발자국        (출처- http://blog.daum.net/antiright)

 

프놈바켄은 야소바르만 1세가 9세기 말엽에 지어서 10세기 초에 완공하였다.  시바신에게 바친 사원으로  높이 60m, 108개의 탑을 세웠다. 사원은 메추산으로 일몰을 볼 수 있다. 앙코르와트와 톤레샵 호수가 보인다.

 

프놈바켄 부처의 발자국

 

프놈바껜

 

프놈바껜

 

프놈바껜

 

프놈바껜

 

프놈바껜

 

프놈바껜

 

프놈바껜

 

프놈바켄 사원에서 바라본 일몰             (출처- http://cafe.naver.com/suhyang5) 

 

<코끼리 테라스>

 

앙코르 톰, 코끼리 테라스                    (출처- http://cafe.daum.net/touralone )

 

바푸온과 피미야나카스에서 동쪽으로 쭈욱 걸어오다보면 거대한 석조 테라스를 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일명 "코끼리 테라스" 벽면에 코끼리 부조가 새겨져있고, 곳곳에 머리가 세 개 달린 코끼리 신인 에라완이 긴 코르 연꽃을 들어올리는 모습도 조각되어 있어서 "코끼리 테라스"라 불린다. 열병식 때 사용하던 테라스이고, 동쪽의 "승리의 문"을 향해 행군용 도로가 쭈욱 뻗어있다.

 

코끼리 테라스  

 

코끼리 테라스

 

전면 광장 앞에는 12개의 탑이 세워져 있는데 탑의 용도는 탑과 탑 사이에 줄을 매서 줄타기 묘기를 벌리고, 작은 나라 사신의 숙소로서 머물게 했으며 직접 죄인을 심판한 장소였다고 추정한다. 12개의 탑은 율동감이 있어 ‘로프 댄서의 탑’이라 불린다.  

 

코끼리 테라스  

 

<문둥이 라이왕 테라스>

 

앙코르 톰, 라이왕의 테라스                (출처- http://cafe.daum.net/touralone)

 

코끼리 테라스 옆쪽에 있는 라이 왕의 테라스. 크메르 신화인 "라이 왕의 전설"에 나오는 라이 왕이 조각상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라이 왕이 테라스"라고 불리운다. 옛날 어느 왕이 밀림에서 독사와 싸우게 되었는데 그 뱀을 죽일 때 피가 튀어 나병(라이)에 걸렸다는 신화란다. 그래서 왕 이름도 "라이" , 벽면은 높이 6미터의 이중으로 되어 있는데, 이중 벽면인 이유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와 사원 건립을 위해 토대를 크게 만들기 위해서라는 두 가지의 의견이 있는데, 정확한 것은 모른다. 어쨌든 이중 벽면 구조는 꽤 특이하여 안쪽의 벽면에 들어가 볼 수 있고, 안쪽의 벽면에도 조각이 되어있는데, 바깥쪽보다 그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라이왕의 테라스

 

 라이왕 복제품        (출처- http://blog.naver.com/itsnorn)

 

테라스 위에 올라가면 있는 라이 왕의 조각상. 진품은 프놈펜 국립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라이왕의 테라스

 

 

문둥이 왕 테라스의 기단 길이는 25m이며, 외부에는 사암으로 덮어 쌓아 조각을 하였다. 외벽의 부조는 주로 신화의 주제들인 나가(뱀), 가루다, 팔이 여러 개인 거인들, 칼이나 몽둥이를 들고 있는 모습들, 반라의 여인상 등의 조각이 매우 깊게 양각되어 있다.

 

라이왕의 테라스

 

라이왕의 테라스

 

<쁘레아 칸 사원>

 

 쁘레아 칸                (출처- http://cafe.daum.net/touralone)


자야바르만 7세가 왕 위에 오른지 10년이 지난 1191년 승하란 자신의 아버지 토르닌드라바르만 2세를 기리기 위해서 건립하였다. 중앙 사당에는 그의 아버지를 상징하는 로케스와라(관세음보살)가 모셔졌는데 로케스와라는 마라야나 불교(대승 불교)에서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자비의 보살로서 자야바르만 7세의 치세 동안 높은 숭배를 받았다. 쁘레아 칸은 건축 당시의 명칭을 그대로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몇 안되는 사원 중 하나로 선립의 유래르 새긴 비석에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원 명을 '자야스리'로 표기하고 있다. 자야스리 또는 쁘레아 칸은 '신성한 검'을 의미하는 사원 명인 동시에 자야바르만 7세의 즉위 당시의 존명이기도 하다. 창건 당시 쁘레아 칸은 단순한 사원이라가 보다는 다양한 직종과 계층의 사람들이 거주하는 하나의 시가지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또한, 고승이나 그들의 제자들이 불교의 교리를 배우고 수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중세(앙코르 시대 이후)에 들어와 로케스와라(관세음보살)가 모셔진 중앙 사당에는 1기의 스투파(석조 소불탑)가 건립되었는데, 이는 불교의 교리를 각각의 불상의 모습으로 구현하는 것보다 탑을 통해서 보다 상징적으로 표현하려고 한 것이다.

 

쁘레아 칸

 

쁘레아 칸

 

쁘레아 칸 뱀의 신인 나가신

 

쁘레아 칸

 

쁘레아 칸 

 

 

 

쁘레아 칸 

 

 

<니악 뽀안 사원>

 

 

니악 뽀안(Neak Pean)            (출처- http://cafe.daum.net/touralone)


12세기 말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해 세워진 니악 뽀안(Neak Pean, 휘감긴 큰 뱀)은 한 변이 350m에 달하는 사각형의 인공 섬으로 거대한 인공호수의 중앙에 세워졌다. 오늘 날 사원의 이름인 니악 뽀안은 중앙 사당의 원형 기단을 둘러싸고 있는 두 마리의 큰 뱀의 형상에서 유래되었다. 비문에는 "이 사원은 경내의 연못으로부터 은총이 솟아나와 섬에 접근하는 사람들의 죄를 정화해 주는 신성한 섬"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연못은 모두 4군데이며, 연못의 물은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본 떠 만든 분수에서 공급되는 복잡한 배수 시설로 구성되어 있다. 성수(聖水)가 지닌 불가사의한 치료 효능이란 항해 도중 조난당한 신앙심 깊은 선원들이 로케스와라(관세음보살)의 화신인 신마(神馬) 발라하에 의해 구조되었다는 설화를 구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유적을 둘러싸고 있는 3,500mx900m 면적의 인공호수는 원래 자야 따다까 또는 '자야[바르만 7세]의 연못'이라고 불려졌다. 근대 이후의 지명인 '위을리옷다(왕가의 호수 들판)'이라는 지명은 이 지역의 광대한 평지가 지금은 완전히 말라 초원이 되어 있긴 하지만, 원래는 바라이(왕이 건축한 인공호수)였다는 것, 그리고 이 사실이 시대를 초월해 앙코르 지역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분명히 남아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니악 뽀안

 

니악 뽀안

 

니악 뽀안

 

<따 프롬 사원>

 

따 프롬 사원            (출처- http://cafe.daum.net/touralone)


따 프롬이란 '브라마의 조상'이라는 뜻으로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원이다. 폐허가 된 채로 방치된 인상적인 사원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이 어떻게 사원을 무너지게 했는지 그 과정과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따 프롬은 앙코르왓 유적 중에서는 비교적 큰 사원이다. 이 곳에서 발견된 산스크리트어 비문에 의하면 3천여 마을을 관할하고 8만 여명이 사원을 관리하였으며, 고승 18명과 관리, 인부, 무희가 5천 여명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사원의 재산 중에는 500kg이 넘는 황금 접시 한 쌍과 다이아몬드, 진주 등 귀한 보석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따 프롬 사원  

 

따 프롬 사원 

 

따 프롬의 담은 700mx1,000m 길이의 라테라이트로 되어 있다. 담 안쪽에는 단층으로 된 길고 낮은 건물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중앙 성소에는 회랑이 있다. 이 곳 역시, 크메르 건축의 특징인 좌우 대칭과 반복적인 배치로 되어 있는데, 일부는 계획성 없이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따 프롬 사원  

 

따 프롬 사원  

 

따 프롬 사원 

 

따 프롬은 안쪽으로 들어 갈수록 파괴된 정도가 심하며, 통행이 불가능한 곳도 많다. 때문에 좁은 통로를 따라 돌아서 이동해야 되는 경우도 종종있다. 원래 동쪽이 정문이었으나 지금은 대부분의 관광객이 차량 이용 등의 문제로 서쪽부터 관람한다. 이때는 서쪽 입구로 들어가서 파괴된 사원을 둘러보며, 동쪽 입구까지 갔다가 다시 서쪽으로 나가면 된다. 

 

따 프롬 사원   

 

따 프롬 사원  

 

따 프롬 사원  

 

<롤레이 사원>

 

롤레이 사원      (출처- http://cafe.daum.net/touralone)


롤레이 사원은 현재 4기의 탑이 남아있을 뿐이지만, 창건 당시는 훨씬 복잡한 구성이었다. 서기 893년, 예아싸오바르만 1세는 왕의 선조, 특히 부왕에게 공양함을 목적으로 이 롤레이 사원을 건립하여 봉헌하였다. 이 사원은 예아싸오르만 1세의 부왕인 인드라바르만에 의해 건조되기 시작한 인더라따까 호수의 중앙에 위치한 인공 섬이다. 이 거대한 호수는 면적이 3,800mx800m에 달하며, 건조를 명한 인드라바르만의 이름을 빌어와 인더라따까로 불리어지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그 크기를 견줄 만한 호수가 없었다. 탑의 문설주 4군데에 새겨진 고대 크메르어는 서체 자체가 아름답고 극히 예술적인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은 이 사원의 봉헌이 결정된 경위, 각 탑에 봉헌된 선조의 이름, 작업을 분담하여 탑 제작에 수고한 신하 수백 명의 이름과 작업 내용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귀중한 문한 자료로 간주되고 있다.

 

롤레이 사원

 

사원 명인 '롤레이'는 '하레하라+알라이'라는 두 단어가 하나로 합쳐진 말이다. '하레하랄라이'는 9세기 경, 현재의 로루어 지역에 건설된 앙코르 제국 최초의 수도 명칭이었다. 예아싸오바르만 1세는 왕도에 인공 섬으로 된 이 사원을 준공한 후, 거기에서 북서쪽에 위치한 프놈 바겡산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으로 수도를 이전하였다. 이 천도에 의해 탄생한 도성이 '예아싸오테아라(현재 우치은엉꼬 지역)'이다. 롤레이를 건설함과 동시에 천도를 도모한다는 왕의 계획은 일견 의아스럽게 여겨질지 모르나 반대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다. 즉, 천도에 앞서 선조의 땅에 대한 숭배를 잊지 않고, 인더라따까의 중앙에 롤레이 건설을 결단한 것이다. 부왕을 애도하기 위한 공물로서의 롤레이 사원을 부왕 인드라바르만 1세에 의해 건조된 인더라따까의 중앙에 봉헌함으로써 이 곳이 가지는 의미 및 상징성이 더욱 깊어졌다고 할 수 있다.

 

 

< 쁘레아 꼬 사원>

 

 쁘레아 꼬 사원        (출처- http://cafe.daum.net/touralone)


양쪽에 연못이 있는 쁘레아 꼬 사원은 바꽁과 롤레이의 중간에 위치해 있으며, 원래 500mx400m의 큰 대지 안에 건립되었다. 다양한 목재로 지어진 최초의 건축물은 전혀 남아있지 않고 석조 건물 부분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 사원의 명칭은 힌두교의 <성스러운 '소'>에서 유래하며, 현대 크메르어로는 '쁘레아 꼬'라고 불려진다. 쁘레아 꼬 사원은 879년 인드라바르만 1세에 의해 축조되었다. 직사각형으로 되어있는 기단 위에는 6개의 탑이 2줄로 서 있는데, 이는 모두 인드라바르만 1세가 그의 선조들을 위해 봉헌한 사당으로, 당시에는 역대 선조들의 조각상이 봉안되어 있었다. 특히, 앞쪽의 중앙 사당에는 크메르 민족을 하나의 왕국으로 통일시킨 자야바르만 2세의 상이 모셔져 있다. 이러한 이유로 쁘레아 꼬 사원의 원래 명칭은 자야바르만 2세의 사후 존명인 '바럼머 메이 쏘(산스크리트어 바러메아스와라)'이며, 이후 대대로 앙코르 제국의 왕들은 이 전통에 준하여 사원의 건립을 반복하였다. 왕이 자신이 신봉하는 종파를 위해 사원을 건립하게 된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이다.

 

레아 꼬 사원 

 

6개의 탑은 창건 당초에는 가늘고 새하얀 치장 벽토로 덮혀 있었으며, 훌륭한 장식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현재에는 부분적으로는 이 조각이 남아있어 예전의 조각이 얼마나 섬세하게 이루어졌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레아 꼬 사원       

 

레아 꼬 사원        

 

 쁘레아 꼬 사원

 

<빠꽁 사원>

 

빠꽁 사원           (출처- http://cafe.daum.net/touralone)


캄보디아 종교 건축사에서 바꽁은 확실한 층 단 형식으로 건립된 최초의 피라미드 사원이다. 그 형상 때문에 건축사학에서 '산형사원'이라고도 불려진다. 바꽁 사원은 쁘레아 꼬 건립으로부터 2년 후인 881년, 인드라바르만 1세가 스스로 신봉하는 힌두교의 신들에게 봉헌하기 위해 건립하엿다고 전해진다. 이 사원은 400mx300m에 이르는 라테라이트 벽과 해자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해자의 바깥쪽은 900mx700m에 이르는 또 다른 외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토벽과 석벽 사이에는 22개의 벽돌로 지은 탑이 있는데, 대부분은 식물과 가옥에 의해 가려져 있다. 이들 벽돌탑 중 일부는 건립 당시의 목제 상인방 창건 이래 오랜 세월을 견디며 잘 보존되어 있다.

 

빠꽁 사원

 

빠꽁 사원 

 

빠꽁 사원  

 

 빠꽁 사원

 

해자를 빠져 나오면 5단으로 되어있는 큰 중앙 사원 주위에 위치한 여러 종류의 건축물들을 볼 수 있는데 중앙 입구로 향하는 길 양쪽에는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나가>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앙코르에서는 이 길이 난간에다 나가의 모습을 장식한 치초의 건축 구조물이다.

 

빠꽁 사원 

 

빠꽁 사원

 

피라미드형 중앙 사원의 상부 기단 벽에는 설화에서 따 온 장면들의 부조가 새겨져 있는데, 본래에는 전면에 새겨져 있었으나 현재는 남쪽의 중앙 계단 근처 한 군데에서만 아수라의 일군을 묘사한 장면을 겨우 볼 수 있다. 한편, 사원 꼭대기에 축조된 당시의 중앙 탑은 전부 소실되었으며, 현재 남아있는 건축물은 12세기 이후의 건물이다.

  

빠꽁 사원

 

< 왓 트마이 사원 >

 

 왓 트마이 사원                (출처- http://cafe.daum.net/touralone)


왓 트마이는 사원 자체의 볼거리보다 해골을 모아놓은 탑 때문에 유명한 사원이다. 씨엠립 시내에서 북쪽으로 1.5km 정도의 거리로 앙코르 유적 입구 서쪽에 있다. 크메루 루즈에 의한 킬링필드 대학살 당시 씨엠립과 앙코르 유적 인근에서 학살된 사람들의 해골을 모아 놓았다고 한다.

 

 왓 트마이 사원, 해골을 모아놓은 탑

 

 왓 트마이 사원, 해골을 모아놓은 탑

 

왓 트마이 사원

 

 왓 트마이 사원

 

 왓 트마이 사원 

 

<프레 앙 토 사원>

 

사원 입구 상점들                   (출처- http://cafe.daum.net/touralone)

 

프레아 앙 토 사원


끄발 스피언에서 차로 조금 더 들어가면 프레아 앙 토라는 곳에 다다릅니다. 앙 토는 "잠든 부처"를 의미하며 비스듬히 누운 채 열반에 드신 부처의 와상이 모셔진 곳이라고 한다.

 

프레아 앙 토 사원

 

부처의 발자국이 있는 사원

 

 

부처의 발자국이 있는 사원

 

부처의 발자국이 있는 사원

 

 

프레아 앙 토 사원

 

조각상들이 있는 입구 계단을 오르면 좌측에 작은 사원 건물이 하나 보인다다. 이 사원에 큰 부처님 발자국이 있으며, 그 앞의 큰 바위 좌우로 계단이 있으며, 4층 정도의 계단을 오르면 맨 위에 와불이 있다. 

        

프레아 앙 토 사원 와불 전

 

 

프레아 앙 토 사원 와불  

 

프레아 앙 토 사원 와불 

 

< 반띠아이 쓰레이 사원 >

 

반띠아이 쓰레이 사원                   (출처- http://cafe.daum.net/touralone)

 

반띠아이 쓰레이 사원은 앙코르 톰에서 북쪽으로 25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시바에게 바쳐진 사원이다. 이 사원은 1914년 프랑스가 발견하였지만, 1924년까지는 밀림이 울창하여 접근하지 못하는 곳이었다. 앙코르 유적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꼽힌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부조가 매우 훌륭하다. 앙코르에서 복원 작업을 했던 프랑스 건축가들 역시, 이 사원을 보석에 비유하며, '크메르 예술의 극치'라는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반띠아이 쓰레이 사원

 

반띠아이 쓰레이 사원

 

반띠아이 쓰레이는 앙코르에서 처음으로 아나스티로시스 공법(원래의 자재를 이용해 복구)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완벽히 보수해 놓은 사원이다. 앙코르의 다른 사원에 비하면 반띠아이 쓰레이의 규모는 매우 작고, 중앙 탑의 문도 좁다. 하지만 건축물과 치장의 수준은 이러한 점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다.

 

반띠아이 쓰레이 사원

 

붉은 색의 단단한 사암을 이용하여 나무에 조각하듯 정교하게 새겨놓은 기술이 탁월하며, 다른 앙코르 사원들보다 건축술과 장식, 조각 기법 등이 인도의 것에 매우 가깝다고 한다. 이 곳 건축물의 특징은 상인방 위쪽에 삼각형으로 된 박공벽에 부조된 조각들과 끝머리 장식 부조, 벽감에 등장한 입상 부조 등이다.박공벽에는 인도 서사시의 장면이 조각되어 있는데, 주로 라마야나 이야기의 한 장면이다.  

 

 

 

 

반띠아이 쓰레이 사원

 

반띠아이 쓰레이 사원

 

반띠아이 쓰레이 사원  

 

반띠아이 쓰레이 사원

 

반띠아이 쓰레이는 3중으로 된 외부 벽과 해자로 둘러 쌓인 직사각형 내부 구조로 되어 있다. 사원은 동쪽과 서쪽의 고푸라가 있는데, 보통 동쪽으로 출입한다.동쪽 고푸라의 박공벽에는 머리가 3개인 코끼리가 앉아 있는 인드라 부조가 있다.

 

반띠아이 쓰레이 사원 문 위 조각

 

반띠아이 쓰레이

 

반띠아이 쓰레이

 

반띠아이 쓰레이

 

반띠아이 쓰레이       (출처- http://blog.empas.com/hgm0424/) 

 

반띠아이 쓰레이         (출처- http://blog.empas.com/hgm0424/)

 


 반띠아이 쓰레이(Banteay Srei) 사원
 

 


반띠아이 쓰레이(Banteay Srei) 사원



반띠아이 쓰레이(Banteay Srei) 사원

 

<등메본 사원>

  


동메본, 10세기 중반 라젠드라바르만 2세가 부모를 위해 건축한 사원

 


동메본

 

<쁘레 룹 사원>

 

쁘레룹(PreRup)           (출처- http://cafe.daum.net/monol4)

 

화장터, 죽은 육신의 그림자(화장한 후에 나오는 재)를 뜻한다     

 

 

쁘레룹

 

쁘레룹

 

쁘레룹

 

쁘레룹

 

쁘레룹

 

 

 

쁘레룹

 

쁘레룹

 

쁘레룹 

 

쁘레룹

 

쁘레룹

 

쁘레룹 

 

<톰 마논 사원>

  


톰마논(Thommanon), 11세기말-12세기초 수리야바르만 2세에 의해 건축된 사각형의 사원

 


차우 싸이 떼보다 사원

 

<따께우 사원> 

 


따께우(Ta Keo) 사원 

 

<쁘라삿 끄라반 사원>

 

 쁘라삿 끄라반 사원 중앙탑

 

이 사원은 앙코르 왓 동쪽, 반띠아이 끄데이 남쪽에 있으며 규모도 작다. 크메르의 사원들이 왕의 명령으로 건립되는데 반해 이 크라반은 당시 어느 귀족이 개별적으로 축조한 사원이란 점이 특이하다. 기둥은 8각형으로써 사면은 평면이며 사암으로 둘레를 쌌다. 이 탑의 중앙에는 '링가'가 있다. 기둥에 세워진 글귀는 이 탑이 921년에 내부에 '비슈누' 상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이 사원은 특이하게 5개의 탑이 같은 층의 테라스에 세워져 있다. 건축자재는 거의 벽돌이며, 사암으로 기둥을 만들었다. 중앙사원의 입구 좌우에는 수문장이 조각되어 있고, 벽기둥에는 갈매기 같은 무늬와 틀 안에 조각한 무늬들이 보인다. 상인방에는 사람머리 모양을 새겼다.  이 사원에서 주목할 것은 내부에 있는 '비슈누'와 '락슈미'의 조각이다. 내부의 벽돌조각은 크메르 예술의 독특한 것으로 다른 곳에서 발견하기 어렵다. 이 사원은 프랑스가 복구하였는데, 내부 벽과 배수로 등을 새로이 시설하였다. 그리고 복구에 사용한 돌은 CA 표식이 있는데, Conservancy Angkor(앙코르 관리위원회)의 약자이다. 남쪽 탑의 내부 벽에는 장식이 없다. 외부의 상인 방 내부의 벽에는 비슈누와 가루다의 부조가 매우 정교하게 조각되어있는데 일출 때 문을 통해서 햇빛이 들어올 때 보아야 가장 보기가 좋다. 다른 시간에는 좀 어두운 편이다.

 

쁘라삿 끄라반 사원 

 

쁘라삿 끄라반 사원 

 

쁘라삿 끄라반 사원 

 

 쁘라삿 끄라반 사원 

 

쁘라삿 끄라반 사원 남쪽탑 비슈누 부조   (출처- http://blog.daum.net/chanellee 

 

비슈누가 2명의 추종자 사이에서 '가루다'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쁘라삿 끄라반 사원 남쪽탑 비슈누 부조

 

 

8개의 팔을 가진 비슈누가 6명의 묵상 중인 사람들 사이에 서 있다. 이 벽돌에 조각된 것들은 원래 벽토로 덮어져서 채색이

되었다.

 

쁘라삿 끄라반 사원  북쪽 탑

 

이 탑은 시바의 아내인 락슈미에게 제사 지내던 곳이다. 락슈미는 자신의 상징물들을 각각 네 손에 들고 주변에는 숭배자들이 꿇어앉아 있다. 이 사원의 주 조각은 내부 왼쪽 편에 있는데 비슈누가 세상을 통치하는 신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우주를 향해 세 걸음을 내 딛는 모양이 보인다. 비슈누의 4개의 팔에는 법륜, 법라패, 공 그리고 막대기를 들고 있다. 그의 한 발은 통로에 내려딛고 있다. 옆에는 묵상 중인 사람이 하나 있고, 여인이 연꽃을 들고 있으며, 그 연꽃 위에 비슈누의 발 하나가 올라가 있다. 배경은 파도 같은 곡선으로 처리하였다.

 

쁘라삿 끄라반 사원  

 

쁘라삿 끄라반 사원  

 

쁘라삿 끄라반 사원  

 

쁘라삿 끄라반 사원  

 

<웨스트 메본 사원>  

 

 

웨스트 메본 사원   (출처- http://blog.empas.com/jh41kim)


앙크로톰을 기준으로 동쪽에는 이스트메본 사원, 서쪽으로 공항 북부에 웨스트 메본 사원이 자리잡고 있다. 프라삿 메본은 앙크로톰에서 서쪽으로 약 4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서 바레이(West Baray)의 남쪽 제방을 따라 중앙의 섬으로 배를 타고, 사원의 동쪽입구로 걸어서 들어가야 한다. 웨스트 메본은 인공호수의 중앙 원형의 직경 150미터 정도되는 섬에 위치해 있다. 11세기 후반 유다야디타바르만 2세(Udayadityavarman II)에 의해 바퓨욘 양식으로 건립되었고 비슈누신에게 봉헌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 사원의 기반은 사각형으로 만들어져 있고, 중앙의 사암으로 만들어진 플래폼은 홍토로된 제방과 동쪽 제방으로 길이난 사암과 연결되어 있다. 웨스트 메본은 원래 삼각형의 사암 입구탑를 가진 사각형의 담장으로 둘러쌓여 있었고, 동쪽으로 훼손되지 않은 사당이 있다. 탑의 양측으로는 바퓨욘에서나 볼 수 있는 장식을 한 작은 사각형의 생생한 동물상들이 조각되어 있다.

 

 웨스트 메본 사원 

 

웨스트메본 사원 유적이 있는 인공호수의 섬   (http://blog.naver.com/sub_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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