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노르웨이 오슬로 대성당

본문

오슬로 대성당 (Oslo Domkidrken)    블로그 > 푸른숲


카를 요한스 거리 동쪽 끝에 있는 역사적인 건물로, 복음주의 루터 교회파의 총본산이기도 하다. 1694년에 착공되고 그 후 몇 번의 보수공사를 거쳐 오늘날과 같이 청록색 탑이 있는 고전양식풍의 모습이 되었다. 청동제 문, 스테인드 글라스, 천장화 등 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이 많고, 특히 6000개의 파이프와 음계가 104단인 파이프 오르간 (18세기 제작) 이 유명하다. 성당 앞 광장에는 꽃시장이 서며, 일요일과 축제일에는 신도들이 줄을 선다. 1968년 8월 29일 이 대성당에서 노르웨이 하랄 왕세자와 소냐 하랄센의 결혼예식이 있었다

 

 

오슬로 대성당    블로그 > 아직도 착하게 살기에는 힘든 세상인가?

 

오슬로 대성당

 

                  

       1968년 8월 29일 이 대성당에서 노르웨이 하랄 왕세자와 소냐 하랄센의 결혼예식

       오슬로 대성당의 내부 모습을 보여준다     ( 블로그 > Thyra's Fun)

 

 

 

<오슬로>  

 

 

 

오슬로 시청           (이하 사진출처- http://kr.blog.yahoo.com/lee1004gg)


9백여년전 북유럽을 주름잡던 바이킹들이 가장 사랑했던 도시 오슬로는 8세기이후로 바이킹의 활동이 두드러져 바이킹의 수도라는 별명을 얻었다. 피요르드의 북쪽 안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면적의 3/4이 삼림과 전원 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여름과 겨울 내내 수영과 스키를 즐기고자 하는 많은 방문객들이 찾아드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인구는 50만 7467(2000)이다.  북위 60˚에 있기 때문에 여름의 일조시간이 길어 6월에는 낮이 18.5시간이나 계속된다. 평균기온은 7월 17.3℃, 1월 -4.7℃이다. 고위도에 있으나 비교적 온화한 기후이고 해마다 변동이 크다.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철도건설은 배후의 땅을 넓혀 도시의 성장을 촉진하였다. 오슬로항은 금속·섬유·유지 등을 수입하고, 목재·펄프·종이·어류 등을 수출하는 무역항이다. 동부에 있는 아케르강 연안에는 수력을 이용해 입지한 제분·섬유·주물·기계·인쇄 등의 공장이 모여 공업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조선·전기기기·종이·화학 등의 공업도 활발하다. 아름다운 도시 오슬로의 중심시가는 동역(東驛)과 왕궁을 잇는 칼 요한스로인데 그곳에는 오슬로대성당, 국회의사당, 국립극장, 오슬로대학이 있고, 북쪽 거리에는 국립미술관과 역사박물관이 있다. 부두 바로 뒤에 갈색 건물의 시청사가 있고, 그 안에는 노르웨이 제 1급 예술가의 회화나 조각이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북서부에는 북유럽의 로댕으로 칭송되는 A.G. 비겔란의 조각을 모아 놓은 프로그나공원이 있다. 남서부의 비그되위 반도에는 발굴된 바이킹 배를 전시한 바이킹박물관, 민속박물관이 있다. 북쪽 교외 구릉지대에는 1952년 동계올림픽에 사용되었던 홀멘콜렌 스키점프대가 있으며, 인근 트리반 타워에서의 전망은 꽤 아름답다  

 

 

 

 

<오슬로 바이킹 박물관(Vikinghuset)>    

바이킹 박물관(Vikinghuset)  

 

오슬로의 피오르에서 발견된 오세베르그호, 고크스타호, 투네호등 3척의 바이킹선을 복원해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이중 가장 크고 우아한 오세베르그호는 9세기초에 건조된 것으로 35명의 노젓는 사람과 돛을 이용해 항해하였다. 오세비르그호에서는 각종 장식품과 부엌용품과 가구류가 발견되었으며 50년 정도 사용된 후 오사 여왕의 관으로 사용되었다. 9세기에 만들어진 고크스타호는 32명의 노젓는 사람과 돛으로 항해한 전형적인 바이킹 선으로 12두의 말과 6두의 개, 짐승머리로 장식된 침대, 3척의 보트 등이 발견되었다. 투네호는 배밑바닥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대부준 부패된 채 발견됐는데 원거리 항해용으로 이용된 것으로 보이며, 배들의 이름은 발견된 지명을 따서 붙여졌다

 

 

 

 

 

 

 

<오슬로 뭉크미술관>

 

 

 뭉크 미술관

뭉크 미술관(Munch Mesuem)

 

뭉크 미술관(Munch Mesuem)은 1863년에 태어나 1944년에 사망한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화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관했다. 뭉크의 사후 그는 그가 소장하고 있던 1,200점의 그림과 4,500여점의 데생, 18,000여점의 인쇄물, 6개의 조각 작품 등을 조건없이 오슬로 시에 기증했고, 오슬로 시는 1946년 뭉크 미술관을 개관하기로 결정하고, 1951년 박물관 건축공모전을 열어 당선작으로 공사를 시작해 뭉크 탄생 100주년이 되는 1963년 5월 29일에 일반인에게 그 모습을 공개했다. 현재 뭉크 미술관은 뭉크의 작품과 편지, 저서 등 2만여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중 500여점만이 상설 전시관에서 볼 수 있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교체 전시해 계속해서 몇번이고 이곳을 방문하고 싶게 만든다.  대표작품으로 《병상의 소녀》 《마리의 죽음》《죽음과 소녀》《병실에서의 죽음》과 같은 질병 및 죽음에 대한 작품이 있고, 《사춘기》《마돈나》 《입맞춤》과 같은 사랑과 관능에 대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대담한 생략과 상징적 표현으로 제작한 판화도 있다. 지하층에는 뭉크 가족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이채로움을 더한다. 뭉크는 주로 독일을 중심으로 작품활동을 하면서 1892년 베를린미술협회 초대전에 '생명의 동결(凍結)'을 주제로 55점을 출품하였다. 1주일 만에 막을 내린 이 전시회는 유동적인 곡선과 단순하고 강렬한 색채로 그려진 《외침》 《마돈나》《질투》 등의 작품에 내재된 불안과 사랑과 죽음의 모티프로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뭉크는 어린시절 부모님과 남동생과 누이의 죽음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는데, 그 당시에 느꼈던 쓸쓸함과 염세주의적인 성향이 그의 작품들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1885년 프랑스로 떠난 뭉크는 프랑스 화단, 처음에는 인상파 화가들, 다음으로 후기 인상파 화가들의 영향을 받은 작품활동을 하게 되었다. 파리와 베를린에서 생활한 1892년과 1908년 동안 그는 동판화(에칭), 석판화, 목판화 작품으로 유명해 졌다. 1910년 노르웨이로 돌아와 1944년 6월 23일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그림을 그리며 생활했다. 이때의 작품에는 자연에 대한 관심과 이전보다는 덜 염세적인 밝은 색상의 작품들을 그려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