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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찬찬 잉카신전 유적지

타종교신전/잉카,마야신전

by baesungsoo 2007. 4. 21.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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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지금으로부터 약 3000여년 전 북부 안데스의 산악지방, 지금의 우아라스(Huaras)부근에서 차빈(Chavin)문명이 탄생하여 그때까지 수렵어로 생활을 영위하던 페루 전역으로 순식간에 확산되었다. 그 후 차빈 문명을 기초로 모치카 - 나스카 - 치무 등의 문명으로 이어진 후 11세기 말 중부 안데스 지방에 잉카족이 나타나 새로운 문화를  꽃피웠다. 그들이 15세기 말에는 콜롬비아에서 칠레로 이어지는 약 5000km에 걸친 대제국을  형성하고 수도 쿠스코를 중심으로 영화를 누린다. 그러나 1532년 신대륙을 찾아 건너 온 스페인인 프란치스코 피사로의 간계에 빠진 잉카의 황제 아타와루파가 처형당함으로써, 400여년에 걸친 잉카 문명은 막을 내린다.

 

신전 성벽                (출처-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

 

태평양에서 분리된 안데스 사막의 좁은 줄 간격을 따라 거대한 왕국은 모래로 성을 쌓았다. 페루의 북쪽 해안을 따라 600 마일 펼쳐진 제국의 수도인 '찬찬'은 여전히 형태가 있다. 9개의 조합된 왕국의 부서진 벽들은 여전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치무 왕국은 250년동안 약 1470 년동안 떨어져서 번영했다. 콜롬버스가 도착하기 전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도시였던 찬찬은 9평방마일로 퍼져 있었고 5만명의 거주지를 보호했다.  왕의 궁전과 사후의 무덤들은 복잡하게 지어졌다. 건축가들은 마린신전의 복잡한 띠 장식을 황갈색의 벽 표면으로 바꿨다. 왕은 음악가와 무희, 재담꾼에 둘러 쌓여 중세 유럽의 최고만큼 좋은 옷을 입고 잘 살았다. 왕이 죽었을 때 왕들은 수 백명의 여성들과 금, 은과 함께 묻혀졌다.  고고학자들은 '찬찬'을 보호하기 위해 서둘러야 하고 국왕의 인격을 세밀히 표현한 초상화를 완성해야 한다. 많은 약탈에도 불구하고 아직 단서인 보석과 직물, 도기, 금장식, 구리 상감된 껍질이 남아있다. (출저:http://ynucc.yeungnam.ac.kr/~history)

 

신전 의식의 광장

 

신전 벽

 

신전

 

흑벽돌 격자무늬 통풍문 

 

1억 5000만개의 아도베(흙벽돌)로, 5 C 무렵 건축되었으며 기저부의 규모 = 223 x 138 m x 높이 23 m, 스페인군의 파괴로 1/3만 남아있다.

 

흑벽돌 격자무늬 통풍문 

 

해양식물 부조

 

훔볼트 해류(남극의 해류가 갈라파고스까지 올라오는 해류)와 물고기, 새 등 다양한 해양생물이 부조되어있다.

 

태양의 신전과 달의 신전 가운데 사라진 도시 유적 

 

태양의 피라미드                (출처-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

 

달의 피라미드 


규모 : 기저부 = 60 x 80 m, 엘니뇨 현상을 신의 진노로 여기고, 전쟁을 일으켜 희생의 제물을 획득하여 산의 신전(달의 피라미드 뒷편)에서 아이야빠야(창조의 신)에게 바쳤으나 비가 그치지 않으므로(엘니뇨 현상이 상당기간 계속), 사람들이 이 도시를 떠났다. 

 

달의 신에게 희생제물을 드리는 저수조

 

달의 신전 내부

 

달의 신전 내 모치카 그림

 

달의 신전 내 모치카 그림

 

달력                  (출처-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

 

승리의 전사상 

 

일반거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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