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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민족들의 어머니 성당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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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민족들의 어머니 성당            (출처 - http://cafe.naver.com/panzer31)


성모님은 1945년에서 1959년 사이에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의 이다 페르데만(Ida Peerdeman)에서 발현하셨다. 그 때 성모님은 “지금 이 시대에 ‘당신을’ 공동 구속자, 중개자, 변호자”로 공식적으로 인정할 것을 요청하시고 그렇게 될 때에 비로소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는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 하셨다. 1961년 2월 11일에는 당신 자신을 “나는 모든 민족들의 여인이며 어머니인 마리아이다.”라는 새로운 호칭으로 소개했다. 성모님은 이 발현에서 분리될 수 없이 고통스럽게 연결된 십자가 앞에 서있는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당신의 펼쳐진 손으로부터 나오는 세 가지 빛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은총과 구원과 평화를 뜻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성모님은 위의 기도문을 가르쳐 주시면서 이 기도를 십자가 앞에서나 이 성화 앞에서 매일 바치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은총과 구원과 평화”의 선물들을 약속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마리아로 알고 있었으나 이제 나는 새로이 시작되는 이 시대에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가 되기를 원한다.”고 하셨다. 1996년 5월 31일 암스테르담의 보메스(Bomers)주교는 성모님을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공경하는 것을 허락했다. 2002년 3월 31일, 암스테르담의 푼트(Punt)주교는 이 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 성당            (출처- http://www.paxkorea.co.kr)

 

1945년 3월 25일이래 14년 동안 54번의 암스테르담에서 성모님의 발현은 이렇게 시작된다. 주님의 탄생 예고 대축일, 그 날 이다 페르데만(Ida Peerdeman) 부인과 그녀의 세 자매들은 방문차 잠시 들른 절친한 한 사제와 함께 난로 주위에 둘러 앉아 활기찬 대화가 오가던 중 갑자기 특별한 일이 발생했다. 네 자매 중 막내인 이다는 함께 모여 있는 그 방안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형용할 수 없는 빛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는데, 자기 주변의 것들이 끝없는 구렁텅이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 빛에서 흰 옷을 입은 한 여인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는데, 그 여인은 그녀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발현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메시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 성당 제대 

 

1945년부터 1950년 중의 첫 번째 스물 다섯 가지의 메시지들은 일반적 성격을 띠고 있는데 20세기 후반의 정치적, 영신적 혼란을 반영하는 장면들과 경고와 예언들이다.

- 성모님은 교회와 세상을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할 위협적인 위험들과 크나큰 영신적 투쟁에 대해 인류에게 경고하신다. 거듭 거듭 성모님은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지적하신다.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라, 그럴 때에만 진정한 평화가 있을 것이다.]

- 사랑과 진리와 정의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박힐 때까지 지상에는 아무런 평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모님은 또한 새 시대의 여명, 성령의 시대를 약속하신다.

- 1950년 성모 승천 교의 선포 후에 성모님은 지구 위에 서 계신 모습으로 나타나시어 이 시대에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로서 오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그 새로운 호칭으로 먼저 알려 주셨다.

- 성모님은 인류에게 [하느님 나라가 그 어느 때보다 더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에] 당신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아주 긴급히 요청하신다. 성모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치하고 그들의 손에 십자가를 지고 세상과 맞닥뜨리라고 호소하신다. 교회는 모든 백성들의 하나의 큰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암스테르담은 이 운동의 중심지가 될 것이며, 이곳에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를 위한 특별한 교회가 건립될 것이다.

- 성모님은 당신의 마지막 메시지에서 [매일, 매시간, 매순간의 위대한 기적, 위대한 신비]인 성체에 대한 강조를 점증시키고 계신다. 1959년 5월 31일에 일련의 여러 발현들이 장엄한 환시로 끝나는데 여기서 성모님은 천상 영광 중에 나타나시고 하얀 불의 성체로부터 온갖 광채와 장엄함 안에서 주님의 형상이 나타났다. 이때부터 발현 목격자들은 미사 중에 많은 체험과 환시를 보게 되었으며 이 체험들은 성체적 체험이라고 불린다. 이것은 1980년까지 계속되었다.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 성당 제대 성모화(좌), 성당입구 벽 성모화(우)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 성당 구유 장식 

 

<성체기적의 성당>

 

성체기적의 성당 내부


암스테르담은 성모님께서 오시기 정확히 600년 전인 1345년 당시는 네델란드의 작은 항구 도시였다. 이 작은 도시에서 성체 기적이 일어났는데, 그때부터 암스테르담은 네델란드의 수도로서 유명해지고 경제적으로도 도약하고 부강하게 되었다. 여러 문헌과 그리고 약간의 이본이 있는 옛 연대기 기사들에 적혀 있는 이 기적적인 사건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당시 우트레트(Utrechter) 교구에 속했던 암스테르담에서 어떤 사제가 종부성사의 부름을 받고 병으로 죽아가고 있는 도마라고 하는 남자를 방문하러 칼버 거리로 갔다. 고해성사를 마친 후 임종을 앞둔 그 남자는 성체를 영했지만 바로 토해내었다. 그를 간호하던 여인이 구토물을 쓸어담아 토해낸 성체와 함께 화로 집어 넣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 불을 다시 지폈을 때, 그 성체가 하나도 훼손되지 않은채 불길 위를 떠도는 것을 보았다. 깜짝 놀란 그 여인은 불에 데이지 않고 맨손으로 그 하얀 성체를 불길에서 끄집어 낼 수 있었다. 그 여인은 경외심으로 가득 차서 성체를 깨끗한 모시 수건에 싸서 옷함에 보관해 두었다. 그리고 나서 전갈을 듣고 달려온 사제가 이 성체를 성합에 모셔 성 니콜라스 본당으로 가져갔다. 그러나 그 다음날 아침 성체가 다시 칼버 거리에 있는 자신의 옷함에 있는 것을 보고 그 여인은 깜짝 놀랐다. 신부가 다시 이 성체를 교회로 가져 갔지만 그 다음날 성체는 다시 옷함 안에 있었다. 이 희귀한 사건을 보고 사제은 결국 하느님께서 성체의 기적을 숨기지 않으려고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제는 교회의 주교관의 신부들과 이 문제를 의논한 뒤, 그 집에서 본당까지 같은 길을 따라 주님의 성체를 모셨으며, 이번에는 교회 성직자들과 민중들이 참여한 가운데 성대한 행렬을 이루었다.

 

성체기적의 성당 내부 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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