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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바뇌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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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뇌 성지 대성당   (이하 사진 글, 출처- http://cafe.daum.net/Coreansanctus/조안나


벨기에의 작은 시골마을 바뇌에서 1933년 성모님께서 열두살 된 마리에뜨 소녀에게 나타나셨다. 성모님께서는 마리에뜨 소녀 통해 여덟번 나타나시면서 특히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특히 말씀하셨다. 오늘날 벨기에는 국민의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로서 명실상부한 가톨릭 국가이지만 성모님이 발현하셨던 당시엔 공산주의 사상에 물든 무신론이 벨기에 전체에 만연해 있었다. 그리하여 보랭에서 성모님이 발현하셨다는 사실을 비웃는 이들이 많은 가운데 성모님은 바뇌를 통해 다시금 벨기에 국민들, 나아가 전 세계인의 마음을 두드리셨다. 벨기에는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수중에 들어갔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히틀러가 이끄는 독일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 성모님이 발현하신 당시 독일은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있었으며 벨기에는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성모님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소홀히 할 수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성모님은 당신 자신을 "구세주의 어머니, 하느님의 어머니,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라고 칭하셨다. 성모님은 "나는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왔다." 라며 구체적으로 언급하셨다.  "많이 기도하여라."는 당부는 발현 때마다 강조되는 사항이다. 기도와 회개의 요청은 발현의 핵심 목적인 것이다.  "성당을 지으라."며 요청하신 것은 바뇌에서 뿐만 아니라 과달루페에서, 루르드에서, 파티마에서, 보랭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를 통해 우리 신앙생활의 중심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간접적으로 시사하셨다.

 

바뇌의 성모

 

성지 내부

 

성모님께서 발현하시어 마리에뜨와 만난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장소 

 

성모님께서 마리에뜨에게 발현하심

  

바뇌의 성모 

 

마리에뜨가 무릎을 끓었던 자리

 

보이는 지팡이들은 바뇌의 성수를 마시고 나음을 받은 이들이 두고 간 것이다.

 

성모님이 세 번을 멈췄다 가신곳, 가정성화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모님이 세 번을 멈췄다 가신곳

 

바뇌성지 샘터

 

바뇌성지 샘터

 

샘터,  순례자들이 손을 담구고 영육간의 강건과 치유를 기도한다.

 

바뇌성지 샘터

 

바뇌의 성모, 샘터

 

샘터 옆에는 수도꼭지를 이용해서 순례객들이 성수를 받아갈 수 있다.

 

바뇌성지,  기념처가 보이는 곳에는 기도할 수 있는 곳과 뒤에는 초봉헌 하는 곳이 있다. 

 

바뇌성지, 초 봉헌소  

 

야외 미사장소 

 

바뇌성지,  마리에뜨네 가족이 살던 자그마한 집으로 성모님께서 가정으로 찾아오심

 

<십자가의 길>

 

2처          (이하 출처- http://cafe.daum.net/Coreansanctus/조안나

 

3처

 

4처

 

5처

 

6처

 

7처

 

8처

 

9처

 

10처

 

11처

 

12처

 

13처

 

14처

 

15처 부활

 

<바뇌의 동정녀 발현>    (이하 사진 글, 출처- http://cafe.daum.net/Coreansanctus/조안나

 

 

 

 


 

바뇌의 성모발현   (글, 출처- http://cafe.daum.net/Coreansanctus/조안나


 ○ 첫번째 나타나심-1933년 1월 15일 주일

주위가 깜깜하고 추웠던 밤 7시경, 마리에뜨는 남동생을 기다리고 있으면서 창밖을 내다 보고 있었다. 갑자기 광채가 나타나더니 정원에 아름다운 부인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부인은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갸우뚱하면서 합장한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있었다. 너무 멋진 부인이 나타났다고 어머니께 말했지만 어머니는 허튼소리 말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무 감격한 마리에뜨는 성모 마리아이심을 느끼고는 모든 행동이 급작스럽게 변했다. 교리반에도 열심히 나갔다. 오로지 성모님 마음에 들기를 원하였다. 첫번째 나타나신 성모 마리아

께서는 한마디의 말씀도 주시지 않으셨다. 마리에뜨에게 미소만 지으셨다.


○ 두번째 나타나심-1933년 1월 18일 수요일 저녁 7시경이었다.

영하 12도가 되는 강추위에서도 마리에드는 집 근처 큰 길 옆, 3일 전에 성모님을 보았다고 하던 그 곳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성모님께서 하늘 저 멀리에서 점점 가까이 오시면서 전나무 사이를 통하여 내려오셨다. 마리에뜨 앞 약 1m50cm 정면에서 계셨다. 마리에뜨는 미소짓는 성모님을 바라보면서 뒷걸을질로 가시는 성모님을 따라가다가 성모님께서 멈추시자 무릎을 꿇었다. 작은 샘이 있는 길 옆에 서신 성모님께서는 마리에뜨에게 처음으로 말씀하셨다. "네 손을 물에 담가라" "이 샘은 나를 위하여 보존되어 왔단다."

성모님께서는 떠나시면서 마리에뜨에게 말씀하셨다. "잘 있거라. 다시 볼 때까지"  


○ 세번째 나타나심-1933년 1월 19일 목요일

저녁 7시쯤에 매우 나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마리에뜨는 로사리오 기도를 하였다. 성모님께서 나타나셨다. 마리에뜨가 '아름다운 부인이시여, 당신은 누구십니까'하고 여쭈었다. "나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이다" 이렇게 성모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밝히셨다. 마리에뜨가 묻는 말에 성모님께서 대답하셨다. "이 샘물은 모든 백성들과 병자들을 위해서 보존되어 왔단다." 성모님께서 떠나시면서 마리에뜨에게 말씀하셨다.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 잘 있거라. 다시 볼 때까지"


○ 네번째 나타나심-1933년 1월 20일 금요일

마리에뜨는 피곤한 몸은 일으켜 저녁 7시 45분경에 정원으로 나갔다. 무릎을 꿇고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기 시작하였다. 성모님께서 또 오셨다. 무엇을 원하시느냐고 여쭙는 마리에뜨에게 성모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작은 성당을 하나 원한단다"


○ 다섯번째 나타나심-1933년 2월 11일 토요일

이 날은 성교회가 성모님께서 루르드에 발현하신지 75주년 기념하는 행사를 거행하였지만 산골 소녀 마리에뜨는 이런 사실을 알 리 없었다. 밤7시경 마리에뜨는 밖에 나가 로사리오를 바치기 시작하였다. 성모님께서는 마리에뜨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왔다." "다시 볼 때까지 안녕"


○ 여섯번째 나타나심-1933년 2월 15일 수요일

저녁 7시에 마리에뜨는 다른 때와 같이 무릎 꿇고 기도하였다. 본당 신부가 증거를 요청한다고 말씀 드리니까 성모님께서는 아무 말씀 하시지 않다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는 떠나셨다. "나를 믿어라. 나도 너희를 믿겠다." "기도 많이 하여라. 다시 볼 때까지 안녕"


○ 일곱번째 나타나심-1933년 2월 20일 월요일

이날 밤에는 눈바람이 불었다. 마리에뜨는 무릎 꿇고 기도하였다. 성모님께서 미소 지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딸아, 기도 많이 하여라. 다시 볼 때까지 안녕"


○ 마지막 나타나심-1933년 3월 2일 목요일

비가 쏟아지는 밤이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마리에뜨에게 슬픈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천주의 모친이며, 구세주의 어머니이다." "기도 많이 하여라" 그리고 성모님께서는 "잘 있거라(Adieu)"하시면서 마리에뜨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성호를 그어 축복을 하신 다음 떠나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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