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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히바 회교사원

타종교신전/이슬람교사원

by baesungsoo 2008. 11. 10.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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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히바    (이하 사진, 글 출처- http://blog.naver.com/mvl56428)


히바는 기원전 2000년경부터 인류가 살기 시작하여 호레즘인이 터전을 잡았던 곳이다. 9세기부터 13세기까지 호레즘 왕국은 동서교역의 중계지로 번창하여 한때는 수도인 쿤야 우루겐치의 인구가 1백5십만을 넘었었다. 히바는 바로 호레즘 왕국의 두 번째 수도가 히바이다. 호레즘(Khorezm) 왕국은 1210년 사마르칸트로 천도할 때 까지 히바를 수도로 하여 번창하였다. 히바는 엷은 벽돌색 모래에 메말라 보이는 풀들이 뒤덮고 있는 붉은 사막이라는 키질쿰 사막의 한가운데 아무다리야강 하류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이다. 지금도 남쪽과 서쪽에서는 모래바람이 계속 불어오고 있단다. 중국 장안에서 출발한 대상들은 우루무치를 거쳐 북쪽으로 천산산맥을 넘어 오투라를 거쳐 시르다리아 강을 건너 히바로 들어오거나, 카슈가르를 거처 천산산맥을 넘어 사마르칸트, 부하라를 거쳐 히바에 도착한다. 부하라에서 히바까지는 키질쿰(붉은) 사막을 500km나 통과해야 한다. 이러한 악조건을 극복해 가면서 동서에 문물을 실어 날으는 대상들과 함께 번영을 구가한 Khorezm 왕국은 13세기에 초원을 통일한 칭기즈칸이 대상로의 안전확보를 위해 협력하자는 제의를 묵살하고 사신들을 처형하므로서 징기스 칸의 침략을 받아 멸망한다. 실크로드의 동서양의 접점에 있는 히바는 한동안 번영을 구가하며 화려하게 인류문화에 한 장을 장식하였으나 그에 못지않은 수난의 역사도 함께하고 있었다. 티무르제국이 멸망한 후 3개의 한국으로 분할되었던 호레즘 지역에 샤이바니 왕조의 한 왕후인 일바르스가 1512년 우루겐치를 수도로 독립왕국을 건설하고 히바 왕국을 세웠다. 17세기에는 히바로 수도를 옮겨 번성하였고 1920년 러시아에 멸망당할 때까지도 실크로드 통로중 하나로 중요한 역할을 이어온 곳이었다.

 

구 왕궁

 

히바성 외벽


둘레가 2.3km이고 동, 서, 남, 북에 문이 있단다. 동서간의 거리는 400m, 남북간의 거리는 700m 이고 동서 문을 잇는 거리가 메인 스트리트이고 거의 일직선으로 뻗어 있다. 히바성안에는(이촌킬라) 현재 두개의 왕궁, 6개의 모스크, 43개의 메드레사(학교), 그리고 몇 개의 마오슬레움(묘지) 건물을 가지고 있고, 16세기부터 19세기에 지어진 많은 건축물들을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곽은 부하라성과 같은 외형이 특이한 축성 형태를 갖추고 있고 흙벽돌로 쌓고 볏짚과 흙을 이겨서 겉에 발라 축성하여 수많은 세월을 늠름한 모습으로 굳건히 이겨 내고 있다.

 

히바성 내벽

 

미완성 미나렛(칼타 미노르 미나렛)    (이하 사진, 글 출처- http://blog.naver.com/mvl56428)


히바성 서문을 들어서면서 눈에 확 띠는 짙은 청색 타일로 감싸 돌린 아름다운 미완성 미나렛은 20여m 쌓아 올라가다 중지 되었다. 부하라를 바라 볼 수 있게 120m을 쌓아 올리도록 설계된 이 미나렛이 중단된 사연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추진하던 왕이 죽은 후 다음 왕이 건축을 포기했다는 이야기와, 설계자가 완공 후에 부하라가 안보이면 처벌 받을까봐 중도에 도망을 쳤다는 설 등등이다.

 

미완성 미나렛(칼타 미노르 미나렛)

 

이슬롬 후자 메드레사 첨탑


푸른색 타일을 주로 사용하여 색동옷처럼 층층이 넓고 좁은 띠를 둘러 올린 외관이 아름답고 높이도 부하라의 칼리얀 첨탑보다 10m가 높은 56m이다. 그리고 일반 첨탑의 기능에 전망대와 야간에는 사막의 등대 기능까지 하고 있다.

 

이슬롬 후자 메드레사 첨탑

 

주마모스크      (이하 사진, 글 출처- http://blog.naver.com/mvl56428)


주마 모스크는 10세기에 처음 건축된 이슬람 사원이다. 주마는 금요일 이라는 뜻이다. 무슬림들이 사원에 나와서 기도드리는 날 이다. 이 사원은 212개의 나무기둥이 천정을 떠받치고 있는 평면 지붕의 사원이다. 13세기 칭기즈칸이 이곳을 침략했을 때 모든 건물이 파괴 되었지만 이 주마 모스크만은 온전했다. 기둥이 많아서 마구간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4세기말 티무르의 침공으로 파괴 되었다가 다시 복구되었으나 18세기에 대화재로 많이 소실된 것을 복원하였고 1990년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대대적인 복원작업을 하였다. 천년된 기둥은 두세 개 밖엔 남아 있지 않다. 모든 기둥에는 아름다운 문양이 조각되어 있고 오래 보존 되도록 목화씨 기름을 듬뿍 먹여 놓아 묵직하면서도 아름다운 색조를 띄고 있다. 원래는 지붕에 여럿의 창문을 내어서 햇빛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아름다운 색조와 분위기를 보여주어 왔었는데 대대적인 복원 작업을 할 때 중앙의 창문만 남기고 모두 막아버려서 지금은 옛날의 분위기를 볼 수 없다.

 

복원된 주마 모스크

 

조로아스터교 무덤


히바는 이슬람에 정복되기 전에는 조로아스터교와 불교를 믿고 있었다. 조로아스터교에서는 태양, 불 ,공기, 땅을 신성시하고 인체는 불결한 것으로 여겨서 사람이 죽으면 땅속에 묻지 않고 밖에 두어 육탈된 후 지상의 석관에 뼈만 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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