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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시라사마 (osirasama)

여성신,신화/바벨론,일본,기타

by baesungsoo 2013. 6. 21.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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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라사마는 한쌍의 인형으로 모셔지는 신격인데, 머리까지 뒤집어쓴 형태와 머리를 드러낸 형태가 있다. 다음은 머리까지 뒤집어쓴 형태[포두형].     

 

오시라사마 (おしらさま [おしら様])

 

동북 東北とうほく 지방에 걸쳐 민간에서 믿고 있는 양잠의 신. 뽕나무 막대기에 남녀의 얼굴이나 말의 얼굴을 새기거나 그려서 무명 베옷을 입힌 것  (출처- 다음 검색)

 

일본 오시라사마 신       (글, 그림 출처- http://bhang813.egloos.com/10072287)

 

오시라사마' 신앙에 대한 질문들 종교학공부 며칠 전 참석한 동아시아 종교문화학회에서 맡은 논평의 내용.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일본 신격 '오시라사마'(おしら様)에 관한 글이었다. 발표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다음은 이 글에서 소개된 오시라사마의 모습들. 발표자인 마스크 미오상이 작접 제공해준 사진이다.  

 

글에서 다루어진 A 부인의 오시라사마의 모습. 머리까지 뒤집어쓴 형태(발표자의 표현으로는 '포두형')으로 신체는 말과 여자로 이루어진 유형이라고 한다.

 

오시라사마는 남-녀 커플로 된 것이 있다.

 

글에서 다루어진 B 집안의 오시라사마의 모습. 원래는 머리까지 뒤집어쓴 형태였으나 모시는 이에 의해서 옷(오센타쿠)이 바뀌고 얼굴이 드러난 형태가 되었다.

 

 

이 글에 대한 나의 논평은 다음과 같다.

“홋카이도 오시라사마 신앙의 전개”(마스코 미오)에 대한 논평

1-1. 저는 종교 생활에서 레비스트로스가 브리콜라주(bricolage)라고 부른 능력, 다시 말하면 인간이 주어진 요소들을 창조적으로 조합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Levi-Strauss, <<야생의 사고(La Pansée Sauvage)>>, 1장.) 북해도 이주민들의 오시라사마(おしら様) 신앙이라는, 제겐 낯선 현상을 통해 이러한 능력을 확인하게 되어 흥미로웠습니다. 이주민들이 “선대에서부터 전해진 지식에 [더해져] 신앙자 개개인의 인생에 의거한 경험과 해석의 상호작용에 의해 재구성”하는 모습을 보여준 이 논문을 통해 종교적 상상력의 흥미로운 모습을 배우게 되어 기뻤습니다. 1-2. 전통의 변화를 쇠퇴나 소멸로 보기보다는 ‘발생의 이야기’(発生の語り)로 보아야 한다는 이 글의 입장에 동의하며, 이 관점을 통해 이주자와 고향의 관계를 새로 조명하려는 시도가 참신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인 논지에 동의하면서, 세부적인 부분에서 제가 의문을 느끼거나 달리 생각한 부분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2-1. 글에서는 쿠도지 참배를 통해 혼슈(本州)와의 연속성이 유지되는 사례 A가, 연속성의 상실로 인해 다른 신앙 양태를 보이는 사례 B가 제시되었습니다. B의 신앙 변화의 원인은 교류가 끊어져서 “오시라사마에 관한 지식을 전해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때의 “지식”은 제의적 장에서 습득되는 특수한 종류의 지식을 말하는 것 같은데 이에 대해 설명이 더 있었으면 합니다. 예컨대 이것은 오시라사마에 대한 웹페이지가 만들어져 지식이 제공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이 글에서 말하는 ‘지식’은 웹페이지에서 얻는 지식과는 다른 것이겠지요? 2-2. 제가 이해하기로는 글에서 사례A가 사례B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혼슈 오시라사마 신앙과 연결되어 있는 A가 근원을 잊고 변형된 B보다 정상적인 것으로 제시된 것이 아닌가요?(제 이해가 틀렸다면 지적 바랍니다.) 제 견해로는, 일반적으로 ‘이주자’의 종교에 대한 모델을 구성하고자 한다면 본토와의 교류가 유지되는 A보다는 본토와의 직접적인 연결이 상실된 B가 더 중심적인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일반적으로 인접성(contiguity)의 제거가 이주민의 보편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3. 비슷한 의미에서, ‘발생의 이야기’라는 관점이 더 적용될 수 있는 사례도 B라는 것이 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물론 글에서 사례A를 통해 [“지식의 수용이……신앙자의 신체라는 필터를 통해 취사선택”되는 모습을] 훌륭하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B의 경우에, 오센타쿠를 모자로 바꾸어 단다든지, 옛 오센다쿠를 옷에 부적으로 단다든지, ‘선생’이라는 비전통적인 매개자를 사용한다든지 하는 것은(간단히 말해 정통성이 결여된 행위들은), 지식의 부족으로 설명되기보다는 창조적인 적응으로 더 긍정적으로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저의 이견(異見)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隱し)>> 의 오시라사마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隱し)>> 의 오시라사마라

 

3. 마지막으로 한국인들을 위해 오시라사마(おしら様)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제 경우 한국에서 오시라사마라는 존재를 접한 유일한 기회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隱し)>>을 통해서였습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오시라사마의 모습은 논문에 나오는 원래의 것과는 다른 모습인 것 같습니다. 하나는 “ 포두형으로 신체는 馬-姬형”이고, 다른 하나는 “포두형, 신체는 인두형”인데 애니메이션의 오시라사마는 빨간 모자를 쓴 커다란 몸집의 무우(?) 괴물의 모습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하야오의 창작이 개입되어 있을 것 같은데, 어떤 부분이 창작이고 또 어떤 부분이 실제의 반영인지를 설명해주신다면, 한국인들도 오시라사마에 대해 친근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쉽게도 내가 한 질문들은 제대로 전달되거나 대답되지 않았다. 번역을 통한 질의응답이었기 때문에 어디서 문제가 있었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내가 보기엔 발표자가 좀 긴장한 상태에서 경직된 답변만 한 것 같다. 질문지가 발표자에게 미리 주어져 답변을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첫째 질문(2-1)은 지식의 종류, 다시 말해 종교적 지식이 지닌 일반적 지식과는 다른 특수성에 대해 부연설명을 해줄 것을 요청한 것이었다. 그러나 발표자는 '종류'라는 표현에만 주목하여 지식에는 ‘어떤 신인가?’, ‘신의 성격은 어떠한가?’, ‘제사일은 언제인가?’, ‘오센타쿠를 교환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등 그야말로 전형적인 지식을 이야기해 주었다. 둘째 질문(2-2,3)은 자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안한 성격이었는데, 발표자는 자기 글의 의도는 그런 게 아니라고 간단히 잘라버렸다. 셋째 질문(3)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는 답변. 제일 궁금한 것이었는데 아쉬웠다.

 

오시라사마   (글 출처-  http://ruliweb.daum.net/link/bbs/read.daum?bbsId=G001&articleId=1860344&itemId=1072)

 

오시라사마는 토호쿠 지방에 대대로 전해져 온 민간신앙으로, 오시라사마를 신으로 하여 기원하는 것입니다. 그 신앙은 아오모리현, 이와타현을 중심으로 지금도 계속해서 세습되고 있습니다. 그 신앙이 언제쯤에 시작되었는가는 분명하지 않지만, 현존하는 오시라사마로 가장 오래된 것은 16세기 전반으로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 오시라사마는 뒤에 이타코(무녀)와 결부되어집니다. まんのう長者로 대표되는 무녀 제문에 나오는 馬娘婚姻譚의 이야기로부터, 오시라사마가 양잠의 신이라고 말해지게 되었으나, 오시라사마는 그 신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일에 있어 이익이 있는 신이 되고 있습니다. 아오모리, 이와테의 양현에 남는 “오시라사마”신앙은 마산(馬産)과 깊이 이어져 있습니다. 야나기타 구니오 저 토오노이야기에 의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오시라사마”는, 뽕나무로 만든 남녀2체. 남자의 머리는 세운 두건, 혹은 접힌 두건을 본드고 있습니다만, 원래는 말머리였다고 말해지고 있습니다. 여자는 공주님. 馬娘婚姻譚가 모녀에 의해 얘기되어지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출처는 고대 중국의 수신기. 어떤 경로로 아오모리의 무녀에게 구전되어 졌는지는 불명이나, 중세 이후, 오우 지방에 침투한 수험도(역자 주:일본 고래의 산악 신앙에 불교와 도교 등을 가미한 종교의 한 분파)와 밀착하는 여행부(걸어다니는 무녀)가, 토착해서 남긴 것은 확실하겠지요. 그 실마리는, 무로마치 시대의 설화 문학의 영향이 느껴집니다. 혹은 쿄우나 카마쿠라 근처의 파계승이, 수신기의 기담의 여러 가지를 구어 번역해 서민에게 말해 들ㄹ주었던 것이 기원일지도 모릅니다. “오시라사마”는 평소에는 엄중한 상자 안에 거두어져, 아무도 불 수가 없습니다. 해에 1번, 소정월의 1월 15일이 되면, 일족의 여성이 어른으로부터 아이까지 모여서 “오시라사마”의 머리에 백분을 발라 오센다쿠라고 불리는 새로운 천을 감습니다. 매년 새로운 천이 감겨지기 때문에 세월이 지난 오시라사마는 몇십, 몇백의 천을 겹쳐 입고 있습니다. “오시라사마”를 손에 넣은 무녀역의 노파(대체로 장로)는, 1년의 길흉이나 잃은 물건을 점쳤습니다. 백분에 화장을 하는것과, 오센다쿠를 입히는 것은, 주로 여자아이의 역할. 겨울의 추운 시기에 난로를 둘러싸, 떡국이나 나베요리 등을 찌르며 행해지는 이 음력 정월 대보름의 행사는 오시라놀이라고 속칭되어, 상시의 여자들의 1년에 한번 있는 최대의 즐거움이었습니다.  지역에 따라 세부는 변화하지만, 명마와 공주가 주역에, 누에가 키워드가 되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시라사마”는 산의 신, 밭의 신, 집의 신, 또 사람과 말의 연모담이나 누에의 기원에서부터 여자의 신이라고도 되고 있습니다. “오시라사마”의 제문에 의해 퍼지게 된 것은, 말과 양장이라는 남부지방의 농가에 있어서, 주부의 부업과의 관계있는 이야기입니다.

오시라사마 - 대부분의 마을의 유서 깊은 집에 전해 내려오는, 신체(神)는 2체 1조, 1척 내외의 나무로 만든 봉이다. 봉의 재료에는, 뽕나무가 많이 이용되지만, 미야기현에는 대나무인 곳도 있다. 봉의 앞부분에, 남녀, 말, 닭 등의 얼굴을 조각해 먹으로 그린 2체에, 오센다쿠라고 칭하는 천을 몇 중으로 덮어씌워, 인형의 모양을 해, 신령을 모시는 제단에 바친다. 축제 때마다 천을 덮어씌워, 안에는 100매 이상의 옷을 한 것도 있다고 한다. 봄, 가을 2회의 축제일에 신내림을 해, 신찬을 올려 공양한다. 사제는, 축제에 한정해, 이타코라고 불리는 맹인의 무녀가, 부탁받아 돌아온다. 이타코는 신내림을 하는 중, 오시라제문을 영창하여, 1벌의 나무로 된 신체를 양손에 전후좌우상하로 흔든다. 이것을 오시라사마아소바세라고 한다. 제문에는 센단쿠리게(역자 주:말의 털로 점을 치는 일) 금만노인, 오시라의본지 등이 있어, 노인에 관련된 이야기, 및 그 딸과 명마의 연애이야기, 즉 일종의 이류혼설화(역자 주:다른 종의 결혼)가 말해진다. 축제는 3월, 9월(혹은 1월, 12월)의 각 16일이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장소에 따라서는 무녀가 스스로 오시라사마를 갖고 있어, 신사의 제일이 있으면, 사람들을 모아 그것을 제사 지내거나 하는 일도 있다. 이 집합제사는, 극도로 화려하게 해, 근데에 이르러 행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오시라사마는 어떤 신?

오시라사마는 여러 가지 이익을 가져다주는 신입니다.

집의 신 : 그 집의 가내안전의 신

순산의 신

농사의 신 : 작의 신이라고도 합니다. 농작에 복을 부르는 신입니다.

양잠의 신

말의 신

화재(예방, 소화)의 신 (불의 수호신 부처)

눈병의 신

병의 신

액막이의 신

아이를 지키는 신

カマド의 신

오시라사마의 기원

오시라사마의 기원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어, 정해진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ㅇ 선조의 영령(혼령)을 받드는 것.

신도나 불교가 전해져 오기 전의 선조 대의 조상예배의 신앙이 남은 것.

ㅇ 에조 시대부터의 집의 신의 신앙이 전해진 것

아이누(역자 주 : 홋카이도 근방)에도 오시라사마와 닮은 것 같은 신앙이 있는데, 고대에 당시 그곳에 살았던 에조와 공통의 신앙이 있었다고 유추하는 것

ㅇ 오시라세사마로부터 왔다고 하는 것

오시라사마를 御知らせ(가르침의 신)에서부터 왔다고 생각하는 것. 방향을 결정할 때, 오시라사마를 양손에 끼워돌려, 멈춘 쪽의 방향으로 결정하는 것을, 오시라사마(무녀가 개입한)부터의 お知らせ(오시라세)에 따르는 것

ㅇ オヒナ(오히나사마)로부터 왔다고 하는 것

아오모리현 남부지방의 토기로부터 미개인이라고 생각되는 글자가 발견되었음. 토호쿠 지방은 원래 미개인 즉 히나의 지방이었음. 이것으로부터 “오히나사마” 그리고 “오시라사마”가 되었다는 것.

ㅇ 流しひな(나가시히나)로부터 왔다고 하는 것

헤이안 시대즈음부터 3월의 절기에 종이나 식물로 만든 인형(히토카타), 위패(카타시로)에 신체를 스치게 해 더러움을 쫓아버리는, 그것을 없었던 것으로 해, 신에게 보내는 행사가 있었음. (일본대백과전서). 톳토리 지방에서는 지금까지도 ながし雛(ひな)의 행사가 남아있음. 이 인형(히토카타)의 풍습이 토호쿠 지방에 퍼져서 오시라사마가 되었다고 함

ㅇ 양잠본원설

まんのう長者의 이야기에서 보여지는 馬娘婚姻譚가 그 지역의 오시라사마의 전설에 꾸며져서, 양잠의 신이 되었다는 것

ㅇ 신도설

고헤이(불제에 쓰는 막대기 끝에 흰 종이나 천을 끼운 것)나 구슬꼬치의 1 형태인 것

ㅇ 칠복신의 신앙이 전해졌다고 하는 것

칠복신의 중에도 여신인 弁才天(벤자이텐, 변재천)이 신앙의 대상이 된 것. 변재천은 칠복신의 유일한 여신(사라스바테이-라고 말해지며, 사라스=물,바테이-=가지다)이며, 수신, 음악의신, 재물의 신이라고도 함. 이 칠복신신앙이 시작한 것은 무로마치 시대이후로 여겨지고 있으며, 오시라사마 신앙이 시작된 것이 거의 덴쇼의 무렵의 무로마치 시대의 마지막에 가까운 것. 칠복신 중 변재천의 신앙이 퍼져서 오시라사마 신앙이 되어 갔다고 함.

ㅇ 하쿠산 신앙으로부터 왔다고 하는 것

하쿠산 신앙(헤이센지:泰澄 대사)의 신자가 펼친 것. 오시라사마의 안에는 침목에 하쿠산대권현이라고 묵서된 것을 볼 수 있음

ㅇ 쿠마노 신앙으로부터 왔다고 하는 것

쿠마노 신앙의 구두문학이 무녀에 의해 퍼지게 된 것. 중세초기에 칸사이에서 활발하게 된 쿠마노신앙이 무녀(우타 비구니)에 의해 홍보되어, 이 무녀가 연로해 그 땅에 정착해서 토착되었던 것이 시작. 그리고, 이 무녀는 손에 오시라사마를 가지고 있었다고 함. 이 무녀를 시로(白)비구니라고 불렀다고 하므로 오시로사마라고 불렀다는 것?

오시라사마와 무녀, 누에, 말의 관계

오시라사마와 무녀의 관계

오시라사마놀이(오시라보로키) 때에는 무녀를 불러 행하는 일이 많은 듯 합니다. 무녀는 먼저 신내림을 하게되어, 제문을 영창하며 오시라사마를 가지고 휘두릅니다.(이것을 오시라놀이(오시라보로키)라고 합니다) 이와테현의 중부에는 무녀는 아래와 같은 주문을 영창해 오시라사마를 휘두릅니다. 코; 코노 카미와 도다리모나이. 나나다이메쿠라니나라바나레(7손 대대로 장님이 될려면 되라지.(시와군 지) 코는 묘음강(아름다운 목소리의 강독)으로, 자신의 신앙의 신의 이름을 말합니다. 도다리모나이는 고귀하지도, 크지도 않다의 의미로 신을 화나게 해, 강한 영험을 얻기 위한 것인 것 같습니다.

오시라사마와 누에의 관계

양잠과 그 기술은 벌써 4세기 무렵에 본국에 들어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괄했던 것이 秦(진)씨라고 합니다.하지만, 이 무렵은 토호쿠 일본은 다른 나라였습니다. 토호쿠 지방에 양잠이 전해진 것은 꽤 뒤의 일이라 생각됩니다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오시라사마는 오래된 것은 16세기 전반에 인정됩니다. 그 후인지 전인지는 이것도 확실치 않으나 무녀가 馬娘婚姻譚을 끌어들여 토호쿠 지방을 순회해 걸어갔었습니다. 그 결과, 무녀의 신앙이 합체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토호쿠 지방은 말을 소중히 하는 풍조가 있어서, 말과 양잠의 이야기가 잘 받아들여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시라사마와 말의 관계

오시라사마 신앙이 번성한 지방은 이와테 현과 아오모리 현입니다만, 양현 모두 고대로부터 말의 산지였습니다. 남부의 구부러진 집으로 대표되듯이, 사람과 말은 한 지붕에 살고 있었습니다. 말은 매우 소중히 대해졌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시라사마의 어신체에 말도 있습니다.

오시라제문(祭文)

오시라제문은 무녀에 의해 영창됩니다. 오시라제문에는 マンノウ, マン, シマン(만노우.키만.시만) 등의 노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말과 소녀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오시라제문 (민간신앙의 연구로부터) - 이것이 馬娘婚姻譚 의 유래이지만, 고어이므로 해석이 어려워 일단 생략합니다.

다만, 馬娘婚姻譚의 현대식 풀이를 아래에 해석합니다.

馬娘婚姻譚 - 옛날옛날 まんのう長者라는 노인에게 아름다운 딸이 있었습니다. 단 하나뿐인 외동딸이어서, 소중하게 키웠습니다.

그런데, まんのう長者의 공주님이(역자 주:딸을 지칭), 16세가 되던 해, 아버지(역자 주:まんのう長者를 지칭)가 소중히 여기던 명마를 보고 연심을 안게 되었으나, 상대가 짐승인지라 부부가 되는 일도 이루어지지 않으니, 마음을 전하는 노래를 읊었습니다.

짐승이라고 해도 명마라고 말해지는 말, 딸의 마음에 응해,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마치 무거운 병에 걸린 것처럼, 마굿간의 사람들이 여물통을 내려놔도 먹질 않고, 매일 쇠약해져갔습니다.

まんのう長者가 기도승을 불러 점을 치게하니, 이 짐승이 딸을 사랑하고 있다는 대답. 이것에 격노한 노인이 마굿간으로 곧장 가서 외동딸을 짐승에게 넘기겠냐며 말을 하자, 말은 세 번 혓바닥을 씹었습니다. 말을 돌보던 사람들은 말을 강부근에 데려가 사개의 뽕나무 가지에 널어두었습니다.

그것을 들은 딸은, 말의 뒤를 아 강변에 갔으나, 뽕나무에 걸린 말의 시체를 보고 슬파하여 6만번의 불경을 외자, 분명 죽었을 말이 춤추며 내려와, 딸을 데리고 천축으로 날아갔습니다.

まんのう長者는 팔방으로 수소문을 해서 딸의 행방을 찾습니다만,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무녀를 불러 묻자 3월 16일에 하얀 벌레와 검은 벌레가 내릴 것입니다. 하얀 벌레는 딸의, 검은 벌레는 명마의 화신입니다. 이것을 뽕나무의 잎으로 기르도록 하십시오.라고 했다.

이 하얗고 검은 벌레가 지금에 일컫는 누에라는 것으로, 이래, 양잠이 시작했다고 합니다.

* 누에와 말의 관계 - 누에의 유충은 머리가 작아서, 머리에 달린 몸의 일부가 이마와 같이 나오고 있습니다. 탈피가 가까워지면, 상반신을 일으켜 이마의 부분을 높이 걸어,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잠을 자는 것처럼 됩니다. 이것을 잠이라 하며, 이 때의 모습이 말의 머리를 닮아 누에의 전설에는 말이 관계하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수신기 - 중국의 오시라사마 기원 설화

마두랑((바토우죠우) - 옛날, 어떤 남자가 전쟁에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 아내가 남편을 대려오는 자에겐 나의 딸을 시집보내겠다고 선언하자, 집에서 키우던 말이 갑자기 어딘가에 달려가더니, 남자를 태워서 돌아왔다. 일의 자초지종을 들은 남자는, 말이 딸을 원한다는 것을 보고 격노해, 말을 죽여서 가죽을 벗겨버렸다. 그러자 그 가죽이 딸을 감싸서 딸을 어딘가에 데려가 버렸다. 얼마 후 뽕나무에 걸린 말의 가죽이 발견되었으나, 딸의 모습은 없었고, 뽕나무에 흰 유충이 붙어있어, 뽕의 잎을 먹으며 실을 토해내었다. 이것이 양잠의 시작으로, 사람들은 이 딸을 양잠의 신으로 모시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오시라사마의 모습

오시라사마의 머리 - 오시라사마의 머리는 남성, 여성으로 조각되어 있어, 이것이 1조가 됩니다.

말에 조각되어 있는 것도 있어, 이것은 공주머리와 함께 1조가 됩니다.

공주머리(메시라)

수컷머리(오시라)

말머리(마시라)

남자두건머리(오보시시라)

닭머리(토리시라)

오센다쿠 (오시라사마의 의상)

오센다쿠라는 것은 오시라사마에게 입히는 의상의 것을 말합니다. 세로로 찢어진 천을 매년 오시라사마에 입힙니다. 점점 두꺼워집니다만 겹쳐지는 곳의 오센다쿠는 냇가에 흘려버립니다. 대부분은 100매 이상이 됩니다. 천은 무명, 견, 마 등의 여러 가지 옷감의 것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옷 대신에 종이가 사용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오시라사마의 심목

오시라사마의 신체는 1개의 나무로 되어 있습니다. 뽕나무로 되어 있는 것이 많습니다. 길이는 20-30cm정도, 폭은 2-3cm 정도의 환봉이 되어 있습니다. 이와테현 겐난 지방에서는 뽕나무 대신에 삼나무, 견나무, 밤나무, 박나무, 대나무 등이 사용됩니다.

오시라보로키(오시라아소바세)

오시라사마의 축제는 정월 16일에 행합니다.(연 2회 행하는 곳도 있습니다.) 오시라사마를 놀린다는 것을 오시라보로키라고 합니다. 이 축제는 여성의 축제로 되어, 이타코가 없는 때에는 그 집의 주부가 오시라아소바세를 행합니다. 오시라아소바세의 때는 친족들로만 구성하여, 타지 사람은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오시라보로키의 때에는 오시라사마에 새로운 소센타쿠(의상)을 입힙니다. 그리고, 한사람 한사람이 오시라사마의 머리를 쳐서 능숙한 사람이 되길이라고 기원합니다. 또 오시라사마를 여자아이가 떠맡아 흔들면 기쁘다고 말하는 것도 있습니다. 이 축제의 사이에는 육식은 금지되고 있습니다. 이타코가 있던 경우에는 이타코는 오시라제문을 영창하며 어신체(신의 몸을 본다 만든 것)를 양손에 가지고 흔듭니다. 오시라놀이가 끝면 아가씨들이 오시라사마를 맡아 양손에 빙글빙글 돌립니다.

カマド - 카마드는 한 집의 주부가 지켜온 것입니다. 불에 의해 살아난 것은 죽어서, 새로운 생명을 위해 형태를 변화하는 장소이며, 그것이 태어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힘은 카마드의 불의 신에 의한 것으로 불의 모시는 것은, 그 집에 있어서도 여성에 있어서도 소중한 역할이었다고 합니다. 카마드는 옛날에는 단지 카마라고 말해졌습니다. 원래는 일본어라고 생각했으나, 한국어의 “가마”가 유입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한 것 같습니다. 5-6세기 경에 대륙의 형식의 카마드가 일본에 퍼졌을 때부터, 카마라고 불려졌습니다. 그 이전의 일본에는 호로의 중심에 3개의 돌 등을 놓아 위에 병을 놓아 취사했다고 말해져, 불의 열기가 도망가지 않게 돌의 사이를 점토로 매꾸거나, 돌의 모형에 점토의 울타리를 만든다거나의 발단은 있었으나, 상부의 구멍에 병을 실어 틈새가 없는 카마드 형식이 수입되어 단번에 퍼졌다고 하는 것이 고고학에서도 정설 같습니다.

출처 :

http://maoda.hp.infoseek.co.jp/osirasama.html

http://www.chinjuh.mydns.jp/hakubutu/kuirejo/kaiko_a.htm

http://www.tabiken.com/history/doc/D/D036L100.HTM

http://www.jtng.com/~syhtms61/p70nanbu/p70-21.html

http://plaza.rakuten.co.jp/hatopia/diary/2005031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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