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렌스 N. 윔스, 양화진외국인묘지>

클라렌스 N. 윔스(Weems)선교사 가족
클라렌스 N. 윔스(Weems, Clarence Norwood)는 1875년 2월 18일 미국 조지아 주 우스타놀라에서 출생했다. 1899년 아칸소 대학과 에모리 대학원을 졸업하고 아칸소와 켄터키에서 10년간 교직(敎職)에 있다가 선교사가 되었다. 클라렌스와 낸시(Nancy)부부는 큰 아들 데이비드, 둘째 아들 클라렌스 Jr.와 함께 미국 남 감리회 선교사로 1909년 내한하였다. 첫 부임지는 개성이었으며 동부교회와 서부교회 목사로 봉직하였고, 송도고등보통학교 교장과 개성지방 감리사 등으로 23년간 활동 하였다. 이때 윔스 부부는 셋째 아들 벤자민과 넷째 아들 빌을 낳았다. 그 후 선교지역을 원산으로 옮겨 원산성경학원, 농촌교회사역자 양성회, 광명소학교 등을 설립하고 운영하면서 7년간 봉직하였다. 원산 선교활동 중 1939년 9월 22일, 원산 중앙교회에서 “한국 선교 30주년 기념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그의 주요 업적은 교역자 양성에 힘썼으며 유능한 학생을 선발 미국 유학을 주선하고, 40여 교회를 건축하는데 크게 이바지 했다. 또한 1930년 남 감리회 조선연회 대표자로서 남, 북 감리회 통합에도 공로가 있다. 낸시 윔스는 남편의 선교사역을 내조하면서 선교센터에서 독자적으로 재봉(裁縫)과 요리를 가르치기도 했다. 윔스 가족은 1940년 안식 휴가를 미국으로 떠나면서 다음해 다시 돌아올 것을 계획하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윔스 선교사는 1952년 2월 26일 조지아 주에서 별세했다. 그의 네 아들들은 성장하면서 모두 한국에서 외국인학교에 다녔고, 한국선교사, 미 군정청 고문, 주한 미국대사관 담당관 등으로 한국에서 봉직하였다. 장남 데이비드는 예일 대학을 졸업하고 헬렌과 결혼하여 1930년부터 1934년까지 철원에서 선교사로 있었으며, 2남 클라렌스 Jr.(Clarence N. Weems Jr.)는 2차대전 때 장교로 복무하다가 미 군정청 고문관으로 한국에 다시 돌아왔다. 그는 특히 헐버트 선교사의 한국 역사책 두 권(뉴욕 힐러리 하우스, 1962)을 편집하므로 한국역사 연구에 공헌하였다. 양화진 어린이 묘역에는 그의 아들 존(Jon Jordan)이 1947년 출생하여 같은 해 6월 1일 사망하여 묻혀있다. 3남 벤자민 B. 윔스는 서울에서 한국학 전문가로서 많은 활동을 하다가 부인과 함께 양화진에 묻혔다. 4남 빌은 조지아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MIT와 국제협동기구에서 1958년부터 1963년까지 5년간 한국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글 참조- http://blog.empas.com/graced/16816142, 신호철 장로(양화진 선교회장)
2남 클라렌스 Jr.(Clarence N. Weems Jr.)

벤자민 B. 윔스(1914-1986) 묘 (3남)
클라렌스 윔스(한국명: 魏任世)의 3남 벤자민 B. 윔스(Weems, Benjamin Burch)는 1914년 5월 14일 개성에서 출생하여 한국에서 중등교육을 마치고 미국에서 듀크 대학을 졸업했다. 북 캐롤라이나에서 교사로 있다가 1939년 내한하여 서울외국인학교 교장으로 1940년까지 활동했다. 1940년 가족과 함께 귀국하여 1942년 미국에서 룻 코브렌츠와 결혼하였다. 그는 한국에서 중요한 요직으로 1947년 미-소공동위원회(US-USSR Joint Commission) 활동과, 1948년 ‘미국의 소리’ 방송을 담당하고, 1965년부터 1972년까지 UN군 사령부(Community Relation Officer)에서 활동했다. 그는 1974년 은퇴 할 때까지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한국학 공로를 인정받아 1970년에는 단국대학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정신문화연구원 교수, 서울외국인학교에서도 활동하였다. 벤자민 윔스의 아내 코브렌츠가 서울에서 암으로 앓다가 1966년 6월 23일 세브란스 병원에서 별세하여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이 후 벤자민 윔스는 1969년 신윤희(현재 미국에 거주)와 재혼하였으며, 1986년 1월 31일 세브란스 병원에서 별세하여 양화진에 부인과 함께 안장되었다. 묘비에는 'Beloved husband and father' 라 쓰여 있다.

벤자민 B. 윔스(1914-1986) 묘

벤자민 윔스의 아내 룻 코브렌츠(Ruth Coblentz) 묘
룻 코브렌츠(Ruth Coblentz)는 1916년 5월 2일 출생하여 미국 펜실베이니아 에리(Erie)에서 성장하여 오버린 대학을 졸업했다. 독신 여성으로 1938년 서울외국인학교 교사로 내한하여 1940년까지 활동하다가 미국으로 돌아가 1942년 벤자민과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버지니아 주 알링턴에 정착하며 딸 셋을 낳았다. 1963년 남편을 따라 다시 내한하였다. 코브렌츠는 서울에서 암으로 앓다가 1966년 6월 23일 세브란스 병원에서 별세하여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묘비에는 Lord make me an instrument of thy peace(St. Francis)라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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