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버트 M. 윌슨(Robert M. Wilson, 우월순, 1880.1.11.- 1963.3.27.)
우월순 선교사는 미국 워싱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08년 2월 미국 남장로교 한국 의료선교사로서 광주기독병원 2대 원장으로 의료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는 1911년에 이 지역 최초의 현대식 병원인 제중병원(Ellen Lavine Graham Hospital, 현재의 광주기독병원)을 건축하였으며 솜씨 좋은 외과의사로서 당시 미신과 주술적인 민간요법에만 의존하던 이 지역의 많은 환자들에게 수술적인 치료 등 더 발전된 현대적 의술을 시행한 이 지역 서양의학의 선구자였다. 우월순 선교사는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버림받고 무리지어 거리를 배회하는 수많은 한센병 환우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여 광주시 봉선동에 한센환자 집단 거주지인 광주나병원을 건축하고 한센병은 완치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환우들을 치료하였다. 또한 이 집단 거주지 내에 학교를 세워 환우들의 문맹을 퇴치하고 성경공부를 시켰으며 완치된 환우들에게 노동력과 적성에 맞는 각종 직업교육을 시키고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살 수 있도록 자활의 길을 열어 주었다. 우월순 선교사는 정부의 한센환자 이주정책에 따라 1926년 여수시 율촌면(현재의 애양원)에 새로운 집단 거주시를 조성하고 이주하여 한센병 환우들과 함께 생활하였다. 우월순 선교사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인격의 소유자로서 부드러운 대화, 평온한 성격, 동정적이며 심오한 영성을 지닌 인물이었으며 실천적이며 도구를 잘 다루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또한 어린아이들을 좋아하여 광주지역 주일학교 책임자를 맡아 크게 부흥시켰다. 애독 성경: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다니엘 12:3) (출처-광주기독병원)

로버트 M. 윌슨(Robert M. Wilson, 1880년 - 1963년) 혹은 우월순(禹越淳) 선교사
1880년 1월 11일 미국 아칸소주 콜럼버스 출생
1905년 세인트 루이스의 워싱톤 의과대학 졸업
( 세인트 루이스 시립병원 인턴, 뉴욕 안 이비인후과 수료, 뉴욕 성경학 수료,독일 베를린과 뉴욕에서 외과 수료,1908년 한국도 광주에 진료소 근무 )
1909년 10월 광주의 베스 녹스와 결혼 5남 2녀
1910년 엘렌 그라함 병원 설립
1926-1928 여수로 이전 애양원설립
1941년 태평양 전쟁으로 미국으로 귀국
1946년 미군 수송기를 타고 한국으로 귀환
1948년 귀국 은퇴
1963년 3월 27일 사망 (83세)
한국에 온 미국 남장로교회 의료선교사이다. 미국 아칸소주 콜럼버스에서 태어나서 의료선교를 위해 1908년 한국에 왔다. 윌슨 선교사는 1948년 미국으로 영구 귀국했으며, 그의 청춘과 인생의 절반을 한국 근대 역사 가운데 가장 어려웠던 시절 1909년부터 1948년 (일본 강점기)까지 한국에 머물며 의료 선교와 한센 선교, 교육을 위해서 공헌하였다. 전남 광주에 1908년에 와서 1905년 11월 20일 놀란 선교사가 세운 광주기독병원(당시 제중원)의 2대 원장으로 지냈다. 1909년부터 한센병 환자를 치료하면서 한국한센병원의 기초가 되었다. 또한 봉선리교회에서 목회사역도 하였다. 1912년 최흥종 소록도 한센병원에서 기증한 땅이 1,000평 이상으로 점점 많아지자 일반인들의 핍박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되면서, 광주 봉선리의 역사는 1928년에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당시 나병환자 치료 시설을 열었던 윌슨을 도와 이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가르쳐 준 사람은 쉐핑 선교사(Ms. Elizabeth Shepping)였다. 1945년 광복 이후 미 군정청은 그를 소록도, 애양원 등 한센인 시설을 총괄하는 군정 자문관에 임명했고, 그의 아들 존 윌슨도 아버지의 사역을 이어 한국 땅에서 젊음을 불살랐다. 1948년 귀국 후 미국에서 신학공부로 목사 안수를 받기도 했던 로버트 윌슨은 1963년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서 8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윌슨 선교사는 병원, 교회에 이어 학교를 세워 글을 읽지 못하는 환자들이 읽고 쓸 수 있도록 가르쳤고, 그들의 자녀들에게 정규 교육을 실시했다. 이어 자활할 수 있도록 목공, 미장공, 제화공, 벽돌 제조공, 의료 기술 등을 습득할 수 있도록 교육했고,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농장을 개간했다. 교회 설립 1909년 첫해 신자는 6명이었으나, 1922년에 600명이 되었고, 1928년에는 800명이 넘게 되었다.
(출처- 로버트 M. 윌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우월순 선교사 사택 (광주 양림동)

우월순 선교사 사택 (광주 양림동)
<광주기독병원>

광주기독병원
광주기독병원은 1905년, 미국 남장로교에서 파송한 놀란(J.W.Nolan) 선교사에 의해 세워졌다. 그는 1904년에 한국에 도착해 목포시에서 의료선교를 하다가, 1905년 11월 8일 광주로 넘어와 유진 벨(배유지) 선교사의 임시사택에서 진료소 시설을 준비한 후 11월 20일 오후에 제중원이라는 이름으로 진료소 문을 열고 9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이 후 우월순(Dr. R. M. Wilson; 2대원장)가 광주기독병원(제중병원)을 건축하고, 부란도(Dr. L. C. Brand; 3대원장), 고허번(Dr. H. A. Codington; 5대원장), 이철원(Dr. R. B. Dietrick; 7대원장), 여계남(Dr. J. K. Levie; 치과의사), 유수만(Dr. D. H. Nieusma; 치과의사), 서서평(Miss E. J. Shepping; 간호사), 변마지(Miss M. F. Pritchard; 간호사) …… 등 광주기독병원에서 봉사했던 수많은 외국인 선교사들의 열정과 헌신적 삶이 녹아 있으며 이러한 선교사들의 사랑으로 나누고 섬기며 희생하는 밀알정신과 선한 사마리아인 정신은 오늘의 광주기독병원에 고스란히 전해져 있으며 계속 이어지고 있다. 광주기독병원은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한 지역사회를 지키면서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였고 지역민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최선을 다하면서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였다. 개원초기부터 광주제중병원을 통해서는 일반적인 질병을 치료하였고 광주나병원을 통해서는 한센병 환자를 치료하면서 치료 후 자활할 수 있도록 직업교육과 함께 그들의 생활터전을 제공해 주었다. 1927년 우월순 선교사가 나환자들과 함께 여수 애양원으로 집단이주한 후 1930년부터 3대 원장인 부란도(L.C.Brand) 선교사는 결핵퇴치 사업으로 밀알정신을 이어가게 되었으며 과로로 인해 쓰러져 순교할 때까지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돌보았다. 1940년 신사참배 문제로 일제에 의해 선교사들이 추방되고 병원이 강제 폐쇄되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출처-광주기독병원)
<봉선리교회, 광주나병원교회>
한센인을 치료하기 위한 광주나병원과 함께 설립된 교회이다. 우월순(Robert M. Wilson) 선교사, 오방 최흥종 등이 1912년에 광주 봉선리(현재의 봉선동)에 나환자 진료소인 광주나병원을 설립하고 그 이름을 따서 나환자교회를 창설하였다. 이 교회 명칭이 봉선리교회이다. 봉선리교회는 광주나병원과 함께 1928년 여수시 율천면 신풍리로 이전하였고, 후에 애양원이란 이름으로 변경하였다.
<여수 애양 병원>

여수애양원 병원
한국 최초의 나병원인 광주나병원(우월순 선교사 설립)은 1925년 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1번지에 터를 마련하고 1928년 한센병자 600여 명이 옮겨와 지금의 애양원을 이루게 되었다. 이어 1936년 여수 애양원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여수 애양원 시대가 시작되었다.

여수애양원 병원

여수애양원 병원


역대 원장 기념비 (왼쪽에서 두 번째 우월순 원장 기념비)

초대 고 포사이트 원장 기념비(우), 2대 우월순 원장 기념비(좌)

초기 애양병원
애양원은 미국 남장로교 한국 선교회 소속 선교사들의 선교 활동으로 부터 비롯되었다. 1904년 2월 목포 선교부에서 광주 선교부를 개설하기로 하고 유진 벨 목사와 오웬목사를 파송하여 광주 선교부를 만드면서 1904.12.25. 성탄절 예배와 함께 광주 선교가 시작되었다. 오웬목사는 이 후 전남 동부지역의 능주, 남평, 화순, 장흥 등지를 맡아 선교하였다. 오웬은 1909.4.3. 급성 폐럼으로 순교하게 되는데 당시 오웬을 치료하기위해 목포에서 활동중이던 의사 포사이트(Wiley H. Forsythe) 는 급히 광주로 떠났다. 광주로 오던 포사이트는 남평 부근에서 길가에 버려진 여자 한센병 환자를 발견하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말에 태우고 광주까지 걸어왔다. 이 한센병 여인은 1908.3. 에 부임하여 선교활동을 하던 윌슨(Robert M. Wilson, 우월순) 과 선교사들에 의해 치료받게 되었다. 윌슨과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사택 건축을 위해 사용하던 벽돌 가마터를 단장하고 한센병 환자를 돌보며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것이 서양의학으로 한센병을 치료하던 우리나라 최초의 일이다. 그러나 정성된 치료에도 불구하고 여 한센병 환자는 주님을 영접하고 수 주일 후 소천하였다. 이일을 시작으로 1909년 여름 인근 봉선리에 한센병 환자를 위한 집을 짓고 20여 명을 치료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한국 최초 나병원인 광주나병원의 시작이었고 1928년 여수로 옮긴 후 1936년 여수 애양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여수애양병원
현재의 애양병원은 정형외과, 피부과, 마취통증과, 내과 진료를 하고있다. 애양원은 한센병 환자와 일반 장애인들에게 의료적, 직업적, 정신적으로 재활을 도모하고 영적 구원을 위해 설립되었다. 사회복지법인 애양원은 애양병원 이외에 애양평안요양소, 애양재활직업보도소 등도 함께 운영하고있다.

애양원 역사박물관

애양원 역사박물관

애양원 역사박물관
역사박물관은 애양원이 여수로 이주한 후 현재의 현대식 병원이 세워지기 전까지 한센 환우들을 치료했던 병원 본관 건물이었다. 한동안 양로원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그 후 개보수하여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박물관에는 애양원의 역사를 한 눈에 볼수 있도록 당시 사용하던 의료기구들, 의료진들의 활동, 환우들의 생활상 등을 생생하게 전시하고 있다.

역사박물관과 손양원목사 순교기념비, 박물관은 성산교회 건너편에 위치해있다.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여수애양재활병원 현판

옛 교회 종

의료기구

애양병원 역대 원장, 우월순 원장(좌에서 2번째)

초기 애양원 사진

설립자 포싸이트 선교사

포싸이트 선교사 (1대 원장)

윌슨(우월순) 2대 원장

윌슨 원장

윌슨에게 내려진 훈포장

윌슨 선교사 관련 기사

대한민국문화훈장

훈포장

1941년 윌슨 병원장 환영행사

여수애양병원 공원에 세워진 윌슨 동상 (출처- 윌슨 선교사 동상 - R.M. Wilson (1880-1963) 한국이름 우월순 > 여수애양병원 풍경 | 낙엽타는향기 - 정성규)
1909년 미국 남장로교에서 파송된 포사이트 의사가 한센 환자를 처음 지료한 일을 기념하여 윌슨 의사가 한센환자 전문 치료병원으로 이 병원을 세웠다. 그 후 1926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으며 1967년 토플의사는 소아마비 후유증 환자의 재활과 수술을 위하여 재활병원으로 건립하였다. 현재는 유수한 인공관절 치환센타로서의 역활을 하고 있다. 1911년 4월 25일 당신 전라도 광주군 효천면 봉선리에서 우월순(윌슨) 선교사에 의해 광주 나병원으로 시작하여 1927~1928년에 현 소재지로 단계적으로 이동하였다. 1935년 3월 15일 애양원으로 개칭하여 재원자 749명을 신앙과 진료로 돌보았다. 1952년 미감아 수용을 위한 명성보육원을 설치하였으나 폐소되었고 1955년 4월 12일 나환자를 위한 대학과정인 한성신학교를 설립하였다. 1956년 8월 21일 재단법인 애양원으로 인가를 받았다. 1962년 한성신학교가 폐교되고 1979년 간호사 기숙사, 의족실, 환자 기숙사가 준공되었다. 1985년 재활직업보도소를 신축하고 1986년에 평안양노원, 성서암송반을 신축하였다. 1988년 3월 21일 사회복지법인 애양원으로 변경하였다. 9월 29일에 여수애양평안요양소 시설 허가를 받았으며, 1989년 5월 8일에는 애양재활기술보도소 시설 허가를 받았다. 1999년 12월 역사관을 신축하고 2005년 5월 집중치료실(ICU)을 설치하였다. 2006년 12월 조각공원을 조성하고 2010년 6월 병원 신관을 신축하고 9월까지 본관 리모델링을 하였다. 2015년 4월 애양원 한센기념관을 준공하였고, 9월 병원 구관 내·외부 수리, 신관 보수공사를 실시하였다. 2017년 5월 역사관 리모델링을 하였다. 2002년 5월 31일 국가등록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등록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한성신학교 옛 건물 사진 (출처-여수 손양원목사 순교유적지 1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 3.)
1955.4.12 애양원은 나환자를 위한 대학과정 한성신학교를 설립하였다. 1962년에 폐교되었다.

한성 신학교 학적부 (출처-여수 손양원목사 순교유적지 1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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