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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교 사원(몽골, 중국)

타종교신전/불교사원(티벳 라마교사원)

by baesungsoo 2005. 4. 19.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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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교 송판 촨주스(천주사)

 

촨주스는 송판 일대에서 가장 큰 라마교 사원으로 17세기에 창건됐다. 라마교는 우리가 익히 들어왔던 14대 달라이 라마가 우두머리로 있는 거루(格魯·Gelug)파를 비롯, 닝마(寧瑪·Nyingma)파 거쥐(喝擧·Kagyu)파 사가(薩迦·Sakya)파 등 4대 종파가 있다. 촨주스는 이 가운데 황교라 불리는 거루파에 속하는 사찰이다. 청대 건립된 촨주스는 한때 서른 칸이 넘는 큰 절간으로 200명에 달하는 라마승들이 거주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쓰촨내 라마교 사원이 걸었던 운명처럼, 1966년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의 방화로 사찰은 잿더미로 변했고 그 많던 라마승들은 모두 쫓겨났다. 1988년에야 대웅전을 중심으로 중건된 사찰은 이전의 영화를 되찾기에는 너무 초라할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라마교 오당소

 

내몽고 바오토우에서 북쪽 54km 대청산 산속 오지에 티벳의 사원양식을 오리지날 그대로 본떠 세워진 라마교사원. 사원의 역사는 250여년으로 본래의 이름은 광각사 1200여명의 승려가 체재하면서 불교이론을 학습하고 있다
 


라마교 미대소, 후허하오터

 

미대소는 높이 6m의 성벽이 둘러싸고 있는 사원/성곽 일체의 독특한 양식의 사원일 뿐만이 아니라 건축양식도 티벳/중국/몽고의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스타일이다.

  


라마교 미대소, 후허하오터

 

후허하오터로 가는 길목에 있는 라마교사원으로 앞으로는 평원 뒤로는 험준한 산을 끼고 자리잡고 있다. 현재 사원이 있는 위치는 내몽고에 처음으로 라마교가 전파된 지역으로 1575년 징기스칸의 7대후손인 알라탄칸의 지원하에 세워져 내몽고지역에 라마교가 전파되는데 중심지 역할을 했다. 

 


북경 라마교 옹화궁 

 

베이징 시내 최대의 라마교 사원이다. 구내성의 동북부에 있다. 원래는 청조의 황제 옹정이 즉위 이전에 살고 있던 저택이었다. 옹정이 즉위 후에 절반을 황교사원으로 만들고, 나머지는 별궁으로 만들었다. 그후 옹정 3년(1725)에 옹화궁으로 개칭되었다. 청조는 중국 각지의 소수민족 회유정책을 여러 가지로 취했는데, 라마교사원의 축조도 그 하나이다. 라마교 신앙이 두터운 티베트족이나 몽골족에 대하여 옹화궁을 라마교 사원으로 만드는 것으로친선적인 태도를 표명한 것이다. 옹정황제가 죽은(1735년) 뒤에는 그 시체를 일시 옹화궁에 안치하였다. 그때까지의 초록 유리기와에서 황제에게만 사용을 허용하는 황금색 유리기와로 바꿔었다. 그렇게 옹화궁은 궁전으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그 후 건륭9년(1744)에 옹화궁은 정식으로 라마묘가 되었다. 옹화궁 내의 주요 건물은 남쪽부터 천주전, 옹화문, 옹화궁의 정전인 옹화전, 영우전, 법륜전,만복각 등의 다섯 개이다. 이 중에서 만복각이 최대의 건물로 대불루라고도 한다. 중국의 목조건축으로서는 신기한 양식이다. 내부에는 전장 3m의 백참빗살나무 한 개로 만든 미륵상이 안치되어 있다. 이것은 지름 3m의 백참빗살나무의 원목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티베트의 달라이라마 7세가 건륭황제에게 바친 것이다.

 


옹화궁

 


옹화궁

 


옹화궁

 

 


 옹화궁

 

내몽고 후허하오터 라마교 대소사     (출처- http://www.e-worldphoto.com/china/)

 

 '소'(召;쟈오)는 몽골어로 '사원'이라는 의미. 도시의 역사와 함께한 라마교사원으로 도시의 심볼적인 존재. 1579년 당시 부족장이 처음 세운 이래 청의 강희康熙연간에 증축되면서 사진처럼 명대에 세워진 대전大殿에는 황색 유리기와가 얻혀졌다. 후허하오터는 몽골어로 '푸른 성'이라는 의미. 16세기 도시가 처음 세워졌을 당시 도시를 둘러싼 성벽에 푸른 벽돌을 사용한데서 유래한다. 내몽고자치구의 수도로 전체인구의 13%가 몽고족. 시내에서 한발짝만 벗어나도 광활한 초원과 평원이 펼쳐진다.
 


내몽고 라마교 대소사 내부 

 


내몽고 대소사 입구

 

오탑사, 내몽고 후허하오터 라마교  (출처- http://www.e-worldphoto.com/china/)

 

정식명칭은 금강좌사리보탑金剛座舍利寶塔, 속칭 오탑사로 불리운다. 청의 강희연간 1727년 건립. 건립당시에는 자등사慈燈寺 라는 라마교사원이었지만 현재 사원은 흔적도 없고 탑만 달랑 남아있는 형국이다. 탑의 높이는 16.5m.

 

오탑사

 

상부에는 이런 작은 탑이 5개가 있어서 오탑사라는 명칭이 붙게된것이다.

 

오탑사

 

탑에는 1560여개의 불상을 중심으로 보살, 천왕, 나한, 천녀, 신조, 금강역사등이 몽골어/티벳어로 된 불경과 함께 조각되있다.

 

석력도소,  내몽고 후허하오터 라마교  (출처- http://www.e-worldphoto.com/china/)

 

'석력도'는 몽골어로 '법좌'를 의미. 1585년에 세워진 라마교사원. 사진의 대전은 티벳양식으로 금색의 지붕장식, 적색의 기둥과 처마, 녹&청색의 타일을 사용한 칼러풀한 외관이 특징으로 티벳건축의 걸작.

 

석력도소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티벳양식의 장수탑(높이 15m)은 화려하게 장식되어있다.

 

백탑,  내몽고 후허하오터교외  (출처- http://www.e-worldphoto.com/china/)

 

요遼의 성종연간에 창건. 팔각7층전탑. 높이 50여m로 아파트 15층과 맞먹는 높이이다. 탑의 내부에는 나선식으로 계단이 나있어서 맨위층까지 올라가 볼 수가 있으며 주위 평원이 한눈에 펼쳐진다. 각층에는 대대로 이 탑을 방문했던 사람들의 리스트가 한자를 중심으로 몽골, 만주, 위구르, 파스파, 산크리스트, 고대아랍, 고대페르시아의 각 문자등으로 새겨져 있어서 당시 이곳은 지역과 민족을 초월하여 다양한 사람들이 교류하던 장소였음을 알게해준다.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이 금의 대정大定 2년이었던 1162년에 새겨진 한자이다.

 

백탑

 

제1, 제2층의 외벽에는 석가, 보살, 사천왕, 금강역사의 상을 조각해 놓았다. 1층에는 한자 현판이, 3층에는 몽골어 현판이 걸려있다. 한자 현판과 같이 탑의 본래이름은 '만부화엄경탑'萬部華嚴經塔 이나 외벽을 허옇게 회칠을 해놓아 속칭으로 '백탑'이라 불리우게 된 것이다. 

  

 

 

 

 

 

 

 

 

 

 

 

 

 

 

 

 

 

 

 

 

 

 몽고의 카라코룸

 

거북모양의 기념비석이 16세기에 사라진 라마교 사원을 지키고 있다. 칭키스칸은 타고난 유목민으로서 사원안에서는 사치스러운 장식보다는 검소함과 전통을 지키려는노력의 흔적이 강력하게 남아 있다.

 

 

티베트와 몽골의 불교(라마교)


티베트 ·몽골의 불교는 라마교라고도 한다. 티베트에는 일찍이 네팔 등의 불교가 들어온 것으로 생각되는데 토속적 샤머니즘인 분교(笨敎)가 성행하여 교세를 넓히지 못하였다. 6∼7세기 인도에서 공식적으로 불교가 들어왔고, 8세기경에는 다시 인도로부터 밀교와 중관계(中觀系) 대승불교가 전해졌고, 경전의 티베트어 번역도 진척되면서 불교는 널리 전파되었다. 10세기에 한때 쇠퇴하였으나 11세기에 다시 일어나 밀교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15세기 초 종객파(宗喀巴)가 나와 종풍(宗風)을 쇄신, 교세를 크게 높였으며, 이후 그 법계(法系)는 대대로 다라이라마(‘큰 라마’라는 뜻)가 되어 종교와 정치의 실권을 잡았다. 한편 몽골에는 13세기 파스파(’Pags-pa:八思巴)가 티베트불교를 원(元)나라 조정으로 전해왔고, 그 후 각지로 퍼져 청(淸)나라 때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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