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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희, 여와(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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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아스타나 고분군의 복희와 여와상           (출처- http://blog.daum.net/ds3goj/15851202)

 

투르아스타나 고분군의 복희와 여와상           (출처- http://blog.daum.net/ds3goj/15851202)

 

투르아스타나 고분군의 복희와 여와상           (출처- http://blog.daum.net/ds3goj/15851202)

 

투르아스타나 고분군의 복희와 여와상           (출처- http://blog.daum.net/ds3goj/15851202)

 

투르아스타나 고분군                  (출처- http://blog.daum.net/ds3goj/15851202)

 

창조신 복희와 여와(伏羲女媧圖), 투르판 아스타나 묘실, 마본 채색, 높이 189cm, 폭 79cm, 7세기

 

사기(史記)를 비롯한 중국의 낡은 역사책에는 삼황오제 후에 하, 은, 주라는 3개의 세습왕조가 교체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는 어디까지가 신화시대이고 어느때 부터가 역사시대인지 그 경계가 아직도 분명치 않다. 그러나 3황 5제는 틀림없이 신화시대일 것이다 3황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며 복희, 여와, 신농의 세 사람을 3황으로 삼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 복희는 8괘(卦)를 만들고 글자도 만들었으며 혼인제도를 정하고 그물을 꼬아서 어업을 가르치고 소·양·돼지등 가축을 길렀고 35줄로된 '슬'이란 악기를 만들었다. 인류가 자연적으로 습득한 모든 것을 어느 고대 성인이 가르쳤다고 하는 소위 인간주의의 발로라고 생각할 수가 있을 것이다. 여와는 복희의 제도를 고치지 않고 단지 생황이라고 하는 악기를 만들기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손에 컴퍼스와 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토지 창조의 신이기도 하다. 복희의 제도를 고치지 않았던 것은 당연하며, 여와와 복희는 부부 신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많다. 신농은 우수인신으로 나무를 잘라서 쟁기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농경 방법을 가르쳤다. 또한 백가지 나물을 맛보아 의약을 발견하고 시장을 열어서 물물교환 하는 일도 가르쳤다. 일본에서도 신농은 의학의 신이며 또한 노점상인의 수호신이 되어 있다. 중국인은 황제를 민족의 시조로 삼고 있으며 아직도 자기들을 황제의 자손이라고 칭하고 있다. 사기(史記)의 오제본기는 황제로부터 시작된다. 황제 뒤에 전욱 고양제(高陽帝), 곡 고신제(高辛帝), 요제, 순제로 이어진다. 중국인들이 시조로 삼고 있는 황제에 의한 건국 신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황제는 판천의 들과 탁록의 들과 두 번에 걸친 큰 싸움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황제는 곰과 호랑이 군대와 힘을 합쳐 요슁(有態) 지방에 통일국가를 건설한다. 황제는 쿤륜산에서 300살까지 살다가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가 되었다.

 

<복희> 포락과 문자를 만든 신으로 인두용신이다. 수인씨는 화식하는 방법의 발명자로서 알려져 있으나, 복희씨 또한 그와 무연하지는 않다. 그의 이름은 포희(暑羲) 또는 포희(敍羲)라고 쓴다. 이런 이름은 [희생을 길러서 포주(敍廚)에 가득 채운다]라든가 [희생을 포락(暑烙 - 굽고 지짐)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곧 인간들에게 동물의 고기를 지지고 볶고 익혀서 먹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화서씨와 뇌신의 아들로서 역(易)의 8괘를 만들어 인간사회의 길흉을 점치고 문자를 발명했으며 그물을 짜서 생선이나 짐승을 잡는 기술을 고안했고 다시 여와를 아내로 삼아 둘이서 혼인의 예를 정했다고도 전한다.  

 

<여와> 인간창조의 신. 천지가 개벽한 이래, 산과 냇물 초목, 새와 짐승들 벌레와 물고기까지 생겨났지만, 아직 인류만은 없었다. 그래서 대신 여와는 생각 끝에 몸을 굽혀 땅에서 황토를 파내었다. 그리고 그것을 물과 섞어 둥글게 빚어 인형과 같은 작은 모양을 만들었다. 이것을 땅에 내려놓자 곧 살아 움직였는데 이것이 인간이다. 인간의 체구는 비록 작았지만 신의 모습을 닮았다. 여와는 자신의 창조물에 만족해하며, 계속해서 손으로 물을 섞어 황토를 반죽하여 수없이 많은 남자와 여자를 만들어냈다. 그녀는 인간들을 대지에 가득 차게 하고 싶었지만 대지가 너무 넓어 뜻을 이루기도 전에 지쳐버렸다. 만들다가 싫증이 난 그녀는 인간창조를 좀더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 한가지 꾀를 생각해냈다. 우선 물렁물렁하게 반죽이 잘 된 흙 속에 거칠게 꼬인 새끼를 집어 넣고 그것을 뒤죽박죽이 되도록 잘 휘저은 다음 적당한 때를 보아서 새끼를 획 잡아 당겼다. 그리고 그 새끼 끝에서 뚝뚝 지상에 떨어져 내리는 진흙덩이는 모두 그대로 인간을 만들어 버렸다. 이렇게 귀찮다고 대량생산한 인간은 역시 하나하나 손끝으로 정성들여 만든 인간보다는 자연히 그 작품이 좋지 못했다. 그래서 인간 가운데 부귀한 자와 빈천한 자가 생겨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인 것이다. 기나긴 중국의 역사를 특색 짓는 사회계급의 분화와 인구과잉의 현상을 설명하는데 있어 이 얼마나 기발한 인간창조의 설화인가. 인간창조와 함께 여와가 이룩한 대사업은 보천(補天), 즉 천공을 보수하는 사업이다. 어느 날 수신(水神)인 공공(共工)과 화신(化神)인 축융(祝融)이 큰 싸움을 한 끝에 싸움에 진 공공이 너무나 속이 상해서 그만 자기 머리를 부주산 (不周山)에 부딪쳤다. 부주산 꼭대기에는 하늘을 떠받드는 하늘기둥과 대지를 이어 매는 땅 줄이 있었는데 공공이 난폭한 짓을 한 덕분에 하늘기둥이 부러지고 땅 줄이 끊어져서 하늘은 서북으로 땅은 동남으로 기울어져 버렸다. 구멍이 뚫린 하늘로부터는 큰비가 쉴새 없이 쏟아지고 하천은 대홍수로 범람하여 산림이 서식하고 맹수와 흉조들이 발악을 하며 뛰쳐나와 인간을 마구 잡아먹으려는 등 큰 소동이 벌어졌다. 그것을 본 여와는 급히 강 속에서 오색 돌을 따서 불에 녹여 반죽을 한 다음, 하늘에 뚫린 큰 구멍을 막았다. 그리고 바다 가운데 사는 거대한 거북의 네 발을 잘라 부러진 천주의 대신으로 삼고 또 물가에 난 갈대를 베어 모아서, 그것을 태워 그 재를 쌓아 범람한 강물을 막았다. 맹수와 흉조도 모두 때려잡아 겨우 지상의 평온을 되찾았다. 그러나 천지가 기울어진 것은 완전히 고치지 못했으므로, 지금도 중국 대륙은 서북과 동남으로 기울어진 그대로이며, 홍수가 또한 때때로 사람을 괴롭힌다고 한다. 또 그녀는 인류를 위하여 혼인제도를 만들어 내고, 생황(笙篁)이라는 악기를 만들었다고도 한다.

 

<중국 감숙성 천수 복희 묘>

 

중국 감숙성 천수 복희 묘          (출처-  blog.naver.com/handukhyun/140148302999)

 

복희 사당                  (출처-  blog.naver.com/handukhyun/140148302999)

 

복희 시대 생활                (출처-  blog.naver.com/handukhyun/140148302999)

 

중국 감숙성 천수 복희 묘의 복희 그림

 

중국 감숙성 천수 복희 묘의 복희 그림

 

 

천수 박물관, 하늘엔 별자리, 땅에는 복희씨            (출처-  blog.naver.com/handukhyun/140148302999)

 

중국 감숙성 천수 복희 묘의 복희 그림        (출처- www.cheramia.net/board/zboard.php?id=bbs9&no=353)

 

석관에 새겨진 복희와 여와도, 중국 사천성의 한 석굴 묘에 있는 석관     출처- (블로그 > 너에게로 가는 길)

 

석관에 새겨진 복희와 여와도, 중국 사천성의 한 석굴 묘에 있는 석관    출처- (블로그 > 너에게로 가는 길) 

 

석관에 새겨진 복희와 여와도, 중국 사천성의 한 석굴 묘에 있는 석관     출처- (블로그 > 너에게로 가는 길) 

 

석관에 새겨진 복희와 여와도, 중국 사천성의 한 석굴 묘에 있는 석관     출처- (블로그 > 너에게로 가는 길)

 

 

 

 

 

 

 

 

 

 

 

 

 

 

 

 

 

 

 

 

 

 

투르판(吐魯番) 아스타나(阿斯塔那). 마(麻)에 채색. 폭 79cm 높이 189cm. 7세기.

 

중국의 천지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남신인 복희와 여신인 여와를 주제로 한 그림이다. 아스타나 무덤에서 이와 같은 그림은 주로 천정이나 시신 옆에서 발견된다. 복희와 여와는 상반신은 사람 모습을 하고, 각각 손에는 창조의 상징물인 구부러진 자(曲尺)과 컴퍼스를 들고 있다. 뱀과 같이 생긴 하반신은 서로 꼬여 있어 조화로운 결합을 보여준다. 배경에는 해, 달, 여러 별들이 표현되어 있어 세계 또는 우주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물의 얼굴이나 손 등을 음영법(陰影法)을 사용한 것이 눈에 띤다. 아스타나에서 발견되는 복희와 여와의 그림은 대체로 비단에 그려져 있으나, 이 작품은 마에 그려져 있어 주목된다. 또한 선명한 색과 균형 잡힌 구도가 돋보인다. 중국의 전통적인 소재가 중앙아시아에 전해져 이 지역 특유의 표현 방식 속으로 재구성된 모습을 잘 보여준다.

 


복희와 여와, 돈황석굴 

 

복희와 여와

인두용신인 복희와 여와

 

 

화상전의 복희와 여와, 국립중앙박물관

    

복희(일 신) 와 여와신(월 신), 고구려 고분, 지안 5괴분 제5호묘, 6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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