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50미터에 가까운 사각추의 고탑의 정사는 12∼13세기와 19세기에 대폭으로 보수되기는 했지만, 굽타왕조에서부터 파라왕조에 있어서의 불교 특유의 다층고탑의 형식을 보인 것이다. 외벽은 大窓, 불감(佛龕), 벽주(壁柱)등의 장식 모티브로 덮여, 단조로우면서 리드미컬한 반복이 탑의 上昇性을 높이고 있다. 매일 각국에서 참배자가 끊이지 않는다.
굽타왕조 양식
굽타제국의 번영에 수반한 인도 국민문화의 흥륭과 전인도적인 확산은 미술에서도 새로운 예술이념과 세련된 기법에 의한 황금기를 맞이하였다. 인도미술 사상으로 본다면, 굽타 시대에 성립한 미술이 굽타왕조가 붕괴한 이후 하르샤왕 1대까지 이른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약 350∼650년의 기간으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우선 조각에 있어 쿠샨 왕조 시대를 대표한 3가지 미술에서 시작하여 불상 ·보살 등의 조상(彫像)제작이 중심이 되었다. 먼저 굽타 세력권 밖에 있던 북서지방에서는 간다라의 헬레니즘계 미술이 전시대의 석조(石彫)를 대신하여 소조미술(塑造美術)로서, 4세기 말부터 단기간이나마 번영하여, 스타코 및 점토로써 하는 소조분야에서 일단 기법상으로 완성되었다. 이것은 굽타왕조 미술과 직접적인 교섭은 없었으나, 그 서양적인 사실(寫實)과 불상 표현에서의 불교적 이념의 구상화와의 조화로 보아, 굽타미술의 형성과 결코 무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굽타 초기에는 여전히 전시대의 양식과 수법을 답습하고 있었으나, 5세기가 되자 야샤딘나 봉헌(奉獻) 불입상(佛立像)이 대표하는 바와 같이, 종전과는 일변한 새로운 양식의 조상(彫像)을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기법이 세련되고 익숙해진 점과 새로운 기준의 균제미(均齊美)가 뚜렷이 엿보인다. 이 굽타 양식을 갠지스강 유역에 도입하여 다시 발전시킨 사르나트의 미술은 5세기 후기에서 6세기에 걸쳐 번영하여, 전법륜불(轉法輪佛)과 그 밖의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이 사실로부터 추상(抽象)하여 이상화시킨 조형 표현은 불교사상이 요청하는 원만 ·정적의 경지와도 합치하는 것이며, 인도의 환경에서 나온 불상의 최고봉을 차지한다. 이렇게 완성된 아름답고 투명할 만큼 엷은 법의를 걸친 모양의 불상은 서인도의 아잔타 석굴 등에도 조형되었다. 그리고 6세기 이후에도 그와 같은 양식의 전통은 중부 인도의 불적지(佛蹟地:나란다 등지)에 보존되어 있고, 석조(石彫)뿐 아니라 주조(鑄造)도 술탄간쥬가 발견한 거대한 동상을 제작할 정도로 당시의 기술은 높은 수준이었음을 보여준다. 조각과 더불어 회화도 발전하였을 것이지만, 유품은 아잔타 석굴의 벽화뿐이다. 그러나 가장 융성했던 당대의 회화가 인도 문화의 태반을 차지하고, 그 분량도 적지 않다. 아잔타 벽화 중에서 굽타 시대에 속한 것은 500년 전후의 바카타카왕조가 굽타 세력 아래서 이 지방을 지배하던 당시의 제16·17 두 굴과, 그보다 조금 뒤의 제1·2 두 굴의 벽화로서, 아잔타벽화로서는 최후기에 해당하며, 비교적 보존도 잘 되어 있다. 주제는 그 이전의 벽화와 마찬가지로 본생도(本生圖) 및 불전도(佛傳圖)가 주이고, 조각이 존상(尊像) 중심의 표현이었던 것과 대조적이지만, 여러 자태를 취한 불상이나 관음의 그림 등, 시대의 풍조를 좇은 묘화(描畵)도 상당히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구도가 번잡한 흠이 있으나 윤곽은 뚜렷한 선으로 훌륭하게 처리되었고, 충전법(充塡法)에 의한 채색도 선명하며, 선염법(渲染法)과 하이라이트로 명암을 강조하였다. 모두가 전아한 표현 속에 인도의 정취가 넘치고, 종교화이면서 세속적인 묘사가 많은 것도 하나의 특색이다. 그 중에서도 제16굴이 뛰어나고, 제17과 제1의 양굴(兩窟)이 그 다음이며, 제2굴은 마지막 작품으로 다소 딱딱하다. 이 아잔타와 거의 같은 시대의 것으로 버그 석굴 벽화가 있으나, 대부분이 벗겨져 있다. 또한 실론의 시기리아에도 구름 위에서 산화(散華)하는 귀부인과 시녀의 반신을 그린 벽화가 몇 개 있는데, 이것도 굽타양식으로 5세기 말의 작품이다. 이 시대의 건축은 석굴을 제외하면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몇 개의 석조 가구건축(架構建築)의 유례(遺例)를 볼 수 있고, 불교의 것 외에 힌두교의 사당(祠堂)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당건축은 중후하여 안정감을 강조하고, 평지붕과 문광(門뵙)의 장식이 특색이다. 산치 제17호 사당(5세기), 아이호리의 라드칸사(寺:5세기), 데오가리의 사당(7세기) 등이 그것이다. 중세에 들어와 보급된 고탑상(高塔狀)의 시카라건축은 그 시대 또는 조금 이전에 시작된 듯하며, 5∼6세기 초기 양식의 유구(遺構)가 남북에 산재해 있다. 유명한 부다가야의 대정사(大精舍)도 이 무렵에 조영한 것으로, 후세에 보수했으나, 여전히 굽타 시대의 건축미를 간직하고 있다. 이 시대의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교의 석굴사원이고, 힌두교 석굴도 처음으로 조성하였다(우다야기리 및 바더미). 불교의 석굴은 고대기 이래의 배경을 가지고 개굴기술(開掘技術)도 그 장식의장(裝飾意匠)도 가장 발전한 시대이다. 주요한 것은 서인도의 산악지대에 몰려 있으며, 아잔타 ·버그 ·칸헤리 ·에로라 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당시 차이토야굴과 비하라(승원)굴의 두 굴이 있고, 모두가 종전의 목조건축적 요소가 적어지고, 그 대신에 정면과 기둥 및 작은 벽에 너무 많을 정도로 풍부한 부조장식이 있다. 그리고 주로 승원굴의 경우에는 다시 전랑(前廊)이나 좌우랑(左右廊)의 벽을 채화(彩畵)로 채우고 실내장식을 가일층 강조하였다. 차이토야굴의 경우 정면창(正面窓)이 점차 작아지고, 본존의 불탑 정면에 불상을 조각하며, 또 승원굴에서는 오전(奧殿)을 두어 불상을 모신 일 등은 이 시대 석굴사의 특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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