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터랭글
사각형을 뜻하는 쿼터랭글은 이름대로 성벽에 둘러싸인 사각형 정원에 12개의 건축물이 모여 있던곳이다. 싱할라 왕조때 불치사가 있던 곳으로 보리수의 흔적이 있다.
갈비하라
폴로나루와에서의 주목거리는 단연 파라크라마 바후 1세 때 세워진 갈 비하라 불교사원이었다. 이 곳에는 열반상·입상·좌상 등 3기의 불상이 한 자리에 모여 있다. 길이가 14m나 되는 열반상은 오른팔로 머리를 괴고 왼팔은 몸을 따라 쭉 뻗은 형상이었다. 열반상 특유의 좌우 크기가 다른 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발 밑에 자잘하게 뻗친 연꽃의 뿌리는 땅을, 꽃은 하늘을 향했다. 입상의 높이는 7m, 좌불상은 5m에 달했다. 팔짱을 끼고 있는 입상은 석가의 수제자인 아난 존자라고 한다. 하지만 연꽃대좌에 서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석가의 제자가 아니라 깨달음을 얻은 석가라는 설도 있다. 좌불상은 진리를 터득한 석존을 나타낸 것이다. 볼거리로는 이외에 당시 7층짜리로 화려한 용모를 자랑했다는 왕궁터, 12개 사원 등이 있는 성역 콰드랭글(4각형 의미), 높이 75m에 이르는 압하야기리 대탑 (Abhayagiri Dagoba) 등이 있다.
좌불상은 진리를 터득한 석존을 나타낸다
입석불(7m)
팔짱을 끼고 있는 입상은 석가의 수제자인 아난 존자라고 한다. 하지만 연꽃대좌에 서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석가의 제자가 아니라 깨달음을 얻은 석가라는 설도 있다.
와불(14m)
언뜻 보면 여러개의 다른 돌들로 조각된듯 하지만 실은 같은 종류의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길이가 14m나 되는 열반상은 오른팔로 머리를 괴고 왼팔은 몸을 따라 쭉 뻗은 형상이다. 열반상 특유의 좌우 크기가 다른 발 모습도 볼 수 있다
담불라석굴
기원전 1세기경에 건조된 동굴사원으로 현지인들이 담블라가라 라고 부르는 높이 약 180m의 바위산의 중턱에 있다.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동굴을 따라 복도가 있고 5개의 동굴이 나란히 있다.이 동굴은 인도의 아잔타 처럼 동굴을 파내고 만든것이 아니라 자연동굴에 스님들이 머무르면서 고쳐 나간것으로 추정된다. 암벽에 홈을 파서 빗물이스며들지 못하게 하고 바닥을 고르게 정비하여 하얀 옻칠을 하고 그위에 그림을 그려 나갔다. 불상을 포함하여 벽도 전면을 채색하였으며 그 선명하고 아름다운 색조는 지금도 거의 변치않고 있다.
불치사
캔디의 불치사 [Temple of Tooth, 佛齒寺]
부처의 진신치아사리를 모신 불치사는 콜롬보에서 북동쪽으로 116km 떨어져 있는 도시 캔디에 있다. 분홍빛 벽에 붉은 기와를 엊은 전형적인 싱힐라 건축양식의 사원으로 내부에 부처의 치아를 담은 금빛 사리함이 있다. 탑 모양의 사리함은 루비와 사파이어 다이아몬드 등으로 장식되어 있고, 둘레에 7겹의 황금띠를 둘렀다. 이곳에 모셔진 부처의 치아는 362년 인도 남부 칼링가왕국에서 보내온 것이다. 당시 칼링가왕국은 대기근과 전쟁이 그치질 않았는데, 어느날 국왕의 꿈에 부처가 불치(佛齒)를 스리랑카로 보내면 기근과 전쟁이 없어질 것이라 하였다. 왕은 신통력이 있는 헤마말라공주를 시켜 불치를 스리랑카로 보냈다고 한다. 이 때 불치는 아누라다푸라의 담마찻카에 모셔졌으며, 매년 무외산사(無畏山寺)에서 불치제를 올렸다. 불치는 이후 왕위 계승의 상징이 되었으며, 스리랑카인들의 확고한 신앙대상으로 자리잡았다. 지금도 매년 여름 11일 동안 페라헤라(불치) 축제가 열린다.
스리랑카 폴로나루와 고대도시
993년 아누라드하프라가 파괴된 이후 건설된 스리랑카의 두 번째 수도이다. 이곳에는 Cholas가 세운 브라만교의 기념물 뿐 아니라 12C경 파라크라마바후 1세가 창조한 훌륭한 정원도시의 기념비적인 유적이 산재해 있다. 폴로나루와의 인구는 2만 명(1990)이다. 9세기경, 인도 타밀족(族)의 침입으로 수도가 아누라 다푸라에서 이 곳으로 옮겨졌다. 13세기 후반까지 수도로서 번영하였으나 타밀족의 침공을 피하여 다시 천도(遷都)했기 때문에 폐허가 되었다. 12세기경의 대규모 불교유적이 복구 중이며 옛 관개용 저수지가 마을 주변에 남아 있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11세기초 남인도 타밀족의 침입으로 타격을 받은 스리랑카는 수도를 아누라 다푸라에서 폴로나루와로 옮겼다. 밀림 속의 고대도시 폴로나루와의 유적은 남북으로 나란히 자리잡고 있어 둘러보기 편하다. 이 옛 도읍에 남아 있는 유적들은 대부분 비자야 바후 1세와 파라크라마 바후 1세 두 왕 시대의 것이다. 이처럼 폴로나루와는 10~12세기에 아누라다푸라에 이어 싱하라 왕조 두 번째 수도였다. 12세기에는 바라크라마하프 1세에 의하여 전성기를 누렸다. 놀랍게도 폴로나루와는 거대한 저수지와 관개수로가 있고 튼튼한 성벽이 있었으며 사원 등 많은 건축물이 있었던 정원 도시였다. 남아시아를 대표하는 불교 도시여서 멀리 미얀마와 타이에서도 승려가 찾아왔다고 한다.
남방의 불교(스리랑카, 타이)
스리랑카, 미얀마, 타이 등 동남아시아에 전파된 불교를 남방불교라 한다. 이 지역으로 불교를 전파하는 기지가 된 곳은 스리랑카이며 BC 3세기 중엽, 아소카왕의 왕자 마힌다(Mahinda)가 파견되어 상좌부 불교를 전한 것이 효시가 된다. 이 불교는 팔리어(語) 경전을 믿기 때문에 팔리불교라고도 한다. 5세기에는 불음(佛音)이 인도로부터 건너와 팔리어 경전의 주석(注釋)을 집대성함으로써 상좌부 불교의 기초가 굳어지고 활기를 띠게 되었다. 미얀마와 타이에는 이 스리랑카의 상좌부 불교가 전해졌다. 5세기에 미얀마로 건너간 상좌부 불교는 그 후 밀교[大乘]로 바뀌었다가 11세기 파간조(朝)의 전(全)국토통일과 함께 재흥되었고, 후에 본가인 스리랑카불교가 쇠퇴하자 상좌부 불교가 스리랑카로 역수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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