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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 단(Tel Dan, 이스라엘)

성지순례/이스라엘

by baesungsoo 2016. 4. 4.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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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 단 이정표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7)

 

텔 단 이정표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7)

 

텔 단 가는 길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7)

 

텔 단 가는 길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7)

 

텔 단 가는 길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7)

 

텔 단         (출처- http://oldtestament.maru.net

 

텔 단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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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 단           (출처- http://blog.daum.net/wonsunbe

 

단은 고대 이스라엘 북단에 있던 도시로 헬몬선 남쪽 기슭에 있으며 두로에서 다메섹으로 가는 길중 남북으로 갈라지는 지점으로 텔 단(T. Da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경의 나라 이스라엘을 생각하면서 메마르고 척박한 광야가 먼저 떠오르는 이들에게 '텔단'(Tel Dan)은 마치 에덴동산을 연상케 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탈출 3,8)이 마치 이곳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것들이 풍요로워 보이는 곳이다. 헤르몬 산의 눈과 물이 모여 흘러나오는 샘들로 인하여 정글 숲을 연상하게끔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이로 인해 숲속은 뜨거운 한 여름에도 14.5도를 유지할 만큼 시원한 곳이다. 텔단은 대략 260km의 요르단 강의 시발점이자 가장 큰 수원지이며 ‘요르단 강’의 어원이기도 하다. ‘요르단’이란 말은 ‘단에서 흐르다’, 즉 ‘단 지방에서 흘러내린다’는 뜻이다. 텔단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223km, 티베리아로부터는 약 65km 북쪽에 있으며 레바논 국경 가까이에 있다.

 

텔단 유적지                 (글, 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텔단’은 고고학적인 용어인 ‘텔’과 지명인 ‘단’이 합성된 단어이다. 도시의 언덕들은 수 세기 동안 도시 위에 도시가 다시 지어지면서 형성된 언덕을 텔(tell)이라고 부르는데 셈어로 “고대 폐허의 흙무더기” 또는 “토총”을 의미한다. 이 언덕들은 동일한 장소에서 거주지들이 계속 건설되고 파괴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도시가 파괴될 때 건물들이 무너지며 파편들이 또 다른 층을 이루어 그 언덕 위에 쌓이게 된다. 텔단의 발굴 작업은 1966년도에 이루어졌는데 성문과 벽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성경에서 언급되는 예식의 장소들을 발굴해 낸 것이었다. 텔단에서 발견된 최초의 물품들은 기원 전 5천년경의 신석기시대의 도자기들이다. 최초의 텔 단은 기원전 2700년에서 2400년 사이에 정착된 가나안 초기 시대에 이루어졌다.  

  

텔단 토층       (이하 사진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단 지파 분배지역 이동 지도 

 

‘단’은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한 지파로 단 지파의 이름은 야곱(이스라엘이라고도 함)과 야곱의 두 번째 아내 라헬의 여종인 ‘빌하’를 통해 낳은 야곱의 다섯 번째 아들 이름을 딴 것이다. 창세 30,4-6 이렇게 해서 라헬이 야곱에게 자기의 몸종 빌하를 아내로 주자, 야곱이 그와 한자리에 들었다. 빌하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 라헬은 “하느님께서 내 권리를 되찾아 주셨구나. 그분께서는 내 호소도 들으셔서 나에게 아들을 주셨다네.” 하면서 그 이름을 단이라 하였다.  오늘날의 텔단 지역은 구약성경에서 처음으로 등장할 때의 이름은 ‘라이스’였고, 이스라엘 지파에게 분배되지 않은 가나안 원주민들의 땅이었다. 그러나 지중해 해안 지역을 분배 받았던 단 지파 사람들이 필리스티인들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분배 받은 땅을 포기하고 대신 북쪽으로 이동하여 이곳 라이스를 정복하였고 조상 단의 이름을 따서 ‘단’이라고 부른데서 도시의 유래를 찾을 수 있다(판관 18,1-31 참조). 단 지파의 위대한 영웅은 삼손이다. 그러나 삼손과 같은 위대한 판관이 등장하였을 때는 필리스티아인들과의 경쟁이 가능했지만 이후 월등히 앞선 문명을 보유하고 있었던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밀려 처음 단지파에게 분할된 땅은 베냐민 지파의 왼쪽 해안가 지역이었지만 분배받은 땅을 빼앗기고 북쪽 ‘라이스’ 지역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당시 북쪽 지역은 이스라엘 영토로 확정되지 않았고 가나안 사람들이 거주하였던 많은 장소들이 있었는데 단 지파 사람들은 이들 가나안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던 라이스를 정복하고 자신들의 조상 이름을 따서 단이라 하였다. 단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의 최북단의 경계도시였는데, 구약시대에서 이스라엘 영토를 표시할 때 '단에서 브에르 세바까지'(판관 20,1; 1사무 3,20; 2사무 3,10; 17,11; 24,2; 24,15; 1열왕 5,5)라는 문구가 여기에서 유래했다. 역대기서에서는 ‘브에르 세바에서 단에 이르기까지’(1역대 21,2; 2역대 30,5)라고 거꾸로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텔 단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7)

 

텔 단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7)

 

요르단 강물의 발원지인 텔단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7)

 

텔 단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7)

 

텔 단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7)

 

텔 단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7)

 

텔단(TelDan)           (이하 사진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1. 주차장  2.텔단 숲으로 들어가는 출입구  3. 텔단(고대 신전자리)  4.고대 이스라엘 성문  5.가나안시대 유적, 텔단 샘들을 둘러보는 짧은 코스는 대략 1시간 그리고 샘들과 텔단 유적지들을 모두 둘러보는데 걸리는 소요 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

 

텔단 석비


텔단은 이스라엘 북단 경계 지점으로 예로보암이 세웠던 금송아지 신전이 있었던 장소라는 점보다도 더욱 매혹적인 것은 1993년 7월 21에 발견된 ‘텔단 석비’ 때문이다. 한 발굴자가 성문 밖 광장의 나지막한 돌담을 파헤치던 중 잘 다듬어진 새카만 돌 조각 하나를 발견했다. 대부분 구조물들이 냇물에 다듬어진 매끈한 석회암이기 때문에 이 조각은 쉽게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 돌을 들쳐낸 순간 지금까지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그 뒷면에는 히브리어와 모양이 비슷한 고대 아람어 기록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기록문화가 발달했던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발굴에서도 이러한 기념비의 발견은 대단한 일인데 기록물이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이스라엘에서 그것도 석비의 형태이기 때문에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이전까지 성서학계에서는 다윗의 역사성이 문제시 되었었다. 왜냐하면 다윗이 성서에서 언급 되는대로 탁월한 왕이었다면 동시대 고대 근동의 문헌에서 다윗의 이름이 거론되어야 하는데 단 한 번도 언급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 다행히 텔단 석비가 발견되었다. 아람어로 기록된 길이 32cm 폭 22cm의 이 석비 조각에는 당시 다마스커스의 왕 하자엘(1열왕 19,15-18)의 비문이 13줄로 새겨져 있는데, 이 비문 8째 줄에 ‘다윗왕조’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어 다윗의 역사성에 대한 의문은 풀린 셈이다. 비록 부숴진 조각이기 때문에 전체 내용을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아람의 한 왕이 이스라엘의 왕을 죽이고 정복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발굴자들은 곧 아람의 왕 벤하닷이 단을 정복했다는 열왕기상 15:16-22의 사건을 떠 올렸다.서기전 9세기 초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치열한 세력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두 왕국의 끊임없는 전쟁은 유다의 아사왕이 아람 세력을 끌어들임으로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아사는 자신의 적 북 이스라엘을 징벌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의 금고에 보관된 은과 금을 모두 끌어 모아 다메섹 아람왕에게 조공으로 바쳤다. 아람의 왕 벤하닷은 아사의 부탁을 받고 단을 비롯해서 이스라엘 북부지역을 유린했고 그 결과가 바로 단에 세운 승전비에 기록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석비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아홉번째 줄에 새겨져 있는 ‘베잇트 다비드’, 즉 ‘다윗 왕조’라는 단어 때문이다. 구약성서 외의 기록에서 다윗이 처음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이때부터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에 관심 있는 고고학자, 역사학자, 성서학자들 사이에 ‘역사적 다윗에 관한 논쟁이 오늘날까지 뜨겁게 이어진다. 이 비문은 성서 밖에서 다윗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첫 번째 문헌이며 현재 이스라엘 국립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텔단 신전 자리>

텔 단 입구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9

 

텔 단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8)

 

텔 단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8)

 

텔 단 신전 자리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9

 

단은 솔로몬 왕 이후 남북으로 갈라졌을 때 북왕국 이스라엘의 첫 왕인 예로보암은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예배드리지 못하도록 베텔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게 하는 사건으로 다시 역사에 등장한다. 예로보암은 성벽(두께 3.6m, 높이 12m)을 웅장하게 쌓았고 성문도 건축하였다. 그리고 가로 18.7m 세로 18.2m 그리고 제단으로 오르는 계단의 폭이 8m나 되는 제단을 만들었다. 단은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때까지 북이스라엘의 중요 성소 역할을 담당하지만 철저한 중앙 성소를 강조하고 있는 신명기 역사가에 의해 베텔과 더불어 멸망할 부정적인 장소로 평가를 받았다. 이후 단은 북쪽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아시리아의 침입을 빈번하게 받았고 기원전 721년에 이스라엘 왕국(2열왕 17,1-6)이 아시리아에 의해 정복당한 뒤에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버렸다. 단을 두고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단은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 새끼다.” (신명 33,22)

 

텔 단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8)

 

텔 단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8)

 

희생제사를 드리는 모습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8)

 

희생제사를 드리는 모습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8)

 

텔 단 여로보암 산당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8)

 

텔 단   여로보암 산당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8)

 

텔 단  신전 자리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8)

 

텔 단  신전 자리 물두멍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8)

 

예로보암이 만든 제단 자리에 네 뿔이 달린 제단을 만들어 놓은것이다.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8)

 

텔 단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8)

 

텔 단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8)  

 

텔 단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9

 

텔 단

 

텔 단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9)   

 

<성문>

 

성문                 (이하 사진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성문의 방들은 협정 체결이나 상거래, 원로와 재판관, 예언자, 비상시에는 왕의 자리로 사용되었다. 성문은 도시의 사회적, 종교적, 군사적 중심 역할을 하였다. 성문은 본래적인 방어 기능 외에도 시장, 방어, 재판장소, 제의장소, 회의장소 등으로 사용되었다. 성문의 구조에서 특징적인 것은 부속 방들의 변화이다. 대체로 6개에서 4개, 2개로 변화되었는데 그 까닭은 평화시기의 이용도에 따른 것으로 보여 진다. 성문이 열리면 맨 앞의 두 개의 방은 성문에 의해 대부분 차지되며, 4개의 방 성문에서는 나머지 2개 방에서 상거래나 시민 활동이 이루어지게 되고 6개의 방의 성문은 보다 이용도가 높게 된다. 므깃도, 하솔, 게셀, 아스돗, 라기스 등은 6개 방의 성문 형태를 취하고 있고, 브에르 세바와 텔단은 4개 방의 성문 형태이다.

 

이스라엘의 성문들을 복원해 놓은 것

 

이스라엘의 성문들을 복원해 놓은 것

 

므깃도, 하솔, 게셀, 아스돗, 라기스 등은 6개 방의 성문 형태를 취하고 있고, 브에르 세바와 텔단은 4개 방의 성문 형태이다.

 

성문

 

성문

 

성문

 

성문

 

텔 단  왕의 자리                             (출처- http://blog.daum.net/namvianny/17171298

 

왕의 자리

 

가나안 시대의 성문

 

복원 작업 중인 가나안 시대의 성문

 

<이스라엘 성벽>

 

이스라엘 성벽

 

 이스라엘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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