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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라 베르나 성지 (폰테콜롬보, Fonte colombo)

성지순례/서유럽(이탈리아,로마)

by baesungsoo 2013. 1. 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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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베르나 성당, 오른쪽에 해시계 광장, 왼쪽에 오상경당이 있다.      (출처- http://blog.daum.net/dlrudgml47)


대성당은 유일한 외부장식인 작고 우아한 회랑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재건되어진 것이다. 좀 낮은 종탑은 정방형이며 견고하며, 그 유일한 장식은 종소리가 울려 나오는 아치들이다. 성당 내부는 라틴 십자가 형태로 설계되었으나 여러 가지 이유 툭히 경제적인 이유로 애당초 계획을 실행하는데 장애가 있었고 일련이 단순화가 불가피하였다. 후대의 만들어진 경당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경당들은 통일성을 잃게 하였다. 대리석으로 세공한 중앙제대는 성 프란치스코와 성 안토니오의 상들로 둘러싸여 있다. 1772년에 제단 조각물들과 현재 왼쪽 첫 번째 제대에 있는 숭천에 관한 커다란 도자기품을 바꾸는 공사가 있었다. 승리의 아치 양쪽에는 도자기로 된 두개의 부조가 있다. 왼편에 성 프란치스코 오른편에 성 안토니오 아빠스 ,성당 중심 부근에 로비아의 안드레아의 두개의 값진 작품[왼편이 그의 걸작 "주님탄생예고"  "오른편은 성탄이 있는두개의 작은 경당이 있다. 둥근천장의 아치들의 첫 번째 교차점에 이 성당 공사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양모 조합[Arte della Lana]의 문장이 있다.

 

라 베르나 대성당 

 

라베르다 대성당 측면에 있는 해시계

 

폰테콜롬보 성당 


폰테콜롬보는 프란치스칸들에게는 프란치스칸 시나이라고 불리어 지고 있다. 시나이라고 불리는 것은 이 곳에서 성인이 회칙을 쓰셨다는 사실이 모세가 시나이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던 것에 비유되어 붙여진 것이다. 폰테 콜롬보라는 지명은 말 그대로 해석하면 비둘기의 샘이란 뜻이다. 이 지명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성인이 1217년 처음 이곳에 오셨을 때 숲 속에 있는 샘물가에 비둘기가 목을 축이고 있는 것을 보시고 우리의 갈증을 없애 주시는 생명의 샘이신 그리스도와 그를 둘러싼 영혼들을 연상하시고는 폰테 콜롬보라고 명하셨다고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이 산이 골롬바라고 불렀던 한 부인이 그에게 선물한 것이라고도 한다. 프란치스코와 그의 동료들이 이 곳에 처음 온 것은 1217년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인준 받은 회규를 쓰셨던 1222년 12월부터 1223년 2월 사이와 눈 수술을 위해 이곳에 머무셨던 1225년 말 또는 1226년 초에 이 곳에 머무셨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네 개의 회칙을 쓰셨다. 첫째 회칙은 원회규(Proto Regula)라고 불리는 회칙으로서 복음에서 발췌한 가난과 단순성과 사도적 열성의 길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강조하는 간단한 생활 규범 같은 것들이라 추정되는 회칙이다. 이것이 1210년 4월 16일 프란치스코가 동료들과 로마로 가서 인노첸시오 3세로부터 구두로 인준 받은 바로 그 회칙을 일컫는다. 두 번째가 인준 받지 않은 회칙으로 1221년 성서 전문가인 스피라의 체사레아 형제의 도움으로 작성된 것으로서 1221년 성령강림 총회에 상정되었을 것이다. 이 회칙은 상당히 길고 성서 인용이 많지만 법적 제도적 요소들이 부족한 것으로 보완이 필요한 것으로 밝혀진 회칙이다. 세 번째 회칙은 엘리아 형제에게 주었으나 며칠 후 그의 부주의로 분실되었다는(완덕1) 회칙을 말한다. 네 번째 회칙은 인준 받은 회칙으로서(1223년 11월 29일) 바로 이 곳 폰테콜롬보에서 40일 동안 단식하시며 기도하시며 작성하신 회칙이다.  

 

폰테콜롬보 성당 제대와 십자가, 독서대

 

폰테콜롬보 성당의 제대와 십자가

 

구세주 그리스도-폰테콜롬보 성당의 독서대.

 

폰테콜롬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라 베르나 [La Verna]산 십자가


아펜니노 산맥의 한 부분인 고립된 한나의 둔덕이다. 최고 높이가 1,283미터에 이르나 성지는 해발 1,128미터이다. 그 일단은 작은 계곡을 중심으로 깍아지른 듯한 암벽들과 드러난 바위들을 보여주고 있다. 성지와 수도원은 특�나 중요성을 갖는 두세 개의 장소들을 중심으로 여러 세기에 걸쳐 확장되어진 불규칙한 형태의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라 베르나 산의 역사는 13세기에 시작 된다고 말한다. 13세기 초에 키우시의 오를란도 카타니[Orlando Catani] 백작의 소유였다. 오를란도는 이 지방의 지주였으며 군사적 정치적인 수완으로서보다는 성 프란치스코와의 우정을 통하여 역사에 알려진 사람이다. 사부님은 1213년 모로코를 향해 가던 도중 어느 축제가 한창인 몬테펠트로라는 마을에서 설교를 할 기회가 있었다. 이에 감명을 받은 그 올란도 백작이 프란치스코 사부님에게 선물하였고, 사부님은 심사숙고한 뒤 그 곳이 속죄와 기도생활에 적합한 산이라고 판단하여 형제들을 보내어 그 곳을 답사하게 한 후 받아들였다고 한다.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도 이곳을 거쳐간 형제들 중 하나이고, 보나벤투라 성인이 유명한 “하느님께 나아가는 영혼의 여정”과 “삼중도”를 저술한 곳도 바로 이곳이다.

 

폰테콜롬보 성당 마당의 십자가

 

성 프란시스코 상     (출처- http://info.catholic.or.kr/)

 

프란치스코회의 갈바리아라고 불리는 이탈리아 라 베르나 성지 입구에 있는 프란치스코 성인상 모습이다. 이 청동상은 "성 프란치스코의 잔꽃송이" 제22장의 내용을 표현한 것으로 아마 시에나에서 있었던 일 같다. 한 소년이 비둘기들을 팔려고 하다가 동물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갖고 있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말을 듣고 팔지 않고 성인에게 건네주었고, 그 비둘기들은 성인과 형제들과 친해져 성인에게 순종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 소년은 후에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거룩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이 청동상은 1902년 빈첸소 로시뇰리가 만든 작품으로, 처음에는 '해시계 광장'에 있다가 1935년 '새들의 경당' 근처로 옮겨 세워졌고, 1985년부터 현재의 위치에 세워졌다.

 

성 프란시스코 상 

 

라베르나 성당에 있는 피에따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피에따는 로마의 성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이지만

여기 계신느 피에따의 성모님과 예수님의 모습은 더욱 슬프게 보인다.

 

성프란치스코의 목각상-눈을 치료하던 화덕이 있는 곳에 있는 목각상. (출처 : 블로그 > 세포네)

 

프란치스코 성인이 눈을 치료할 때 불을 붙이던 화덕. 그을음 자국이 남아 있다.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예수님께서 발현 하셨다는 자리에 나무 십자가를 만들어 갔다 놓았다.-폰테콜롬보 

 

예수님께서 발현 하셨다고 전해지는 바위- 폰테콜롬보

 

예수님과 프란치스코 성인-폰테콜롬보

 

시에나의 성베르나르디노의 십자가 - 베르나르도 성인의 독방

 

라베르나 성당의 유물관

 

프란치스코 성인의 친필 편지(복사본)

 

성인께서 쓰신 글, 편지중에 두 개만이 프란치스코의 친필로 되어 있는데, 하나는 프란치스코가 레오 형제에게 주신 양피지 축복문이고(왼쪽) 다른 하나는 같은 레오 형제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 두 개의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아주 소중한 보물로 보존되고 있는데, 원본 하나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에 소장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Spoleto 대성당에 소장되어 있다.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성당[우물 바로 옆]         (출처- http://blog.daum.net/dlrudgml47)


프란치스코가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환시를 본 뒤에 오를란도 백작에게 천주의 성모께 봉헌할 성당을 지어줄 것을 청하여 포르치웅쿨라와 같은  크기로 천사들의 성모를 위한 성당이1216-1218년에 지어졌다. 이 장소와 성당의 규모는 성모님 친히 알려주신 것이라한다. 이 성지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의 하나이다. 프란치스코는 1224년 9월 30일 라 베르나를 떠나면서 이곳에 형제들을 불러모아 형제들과 이 거룩한 산에 마지막 인사를 하였다. 1260년 8월 23일 알렉산제르 4세 교황의 주례로 성 보나벤투라와 레오 형제 그리고 피렌체,피에솔레, 아레쏘, 페루지아, 아시시 치타  이 카스텔로 그리고 우르비노 등 인근 지역의 7명의 주교들이 참석한 가운데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성당의 축성이 있었다. 1262년[또는1263년]6월 30일 오를란도 백작은 세상을 떠났다. 나중에 오를란도 백작은 이 성당에 묻혔다

 

라베르나의 뽀르지웅쿨라-천사들의 성마리아 성당

 

라베르나의 뽀르지웅쿨라 내부 (도자기)

 

라베르나 오상경당으로 올라 가는 길

 

오른쪽 산위로 올라가면 관상의 특은을 입으신 베르나의 복자 요한의 움막이 있다.

 

오상경당으로 가는 입구에 있는 피에타 경당

 

OUR LADY OF THE STAIRS

 

성모자를 중심으로 왼쪽은 성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축일:8월10일), 오른쪽은 성녀글라라(축일:8월11일) 성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는 부제복을 입으시고 석쇠를 들고 계시며, 성녀글라라는 성체현시대를 들고 계신다. 오상경당으로 가는 곳의 계단 근처에 있는 벽화이다.

 

오상경당으로 가는 길에 그려진 성인의 일생을 담은 벽화

 

매일 오후3시에 라베르나 대성당에서  이 벽화가 그려진 길을 따라 오상경당까지 예절이 있는데 14세기에 시작된 이후 한번도 끊긴 날이 없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거처하던 바위 굴.

 

피에따 경당을 지나 오상경당 으로 가는 중간에 성인의 일생을 담은 벽화 중간에 있었다.

 

거룩한 바위로 가는 길

 

거룩한 바위로 가는 길

 

내적으로 십자가를 입은 데에 대한 왹적인 드러남, 그것이 바로 오상이다.

 

거룩한 바위 앞에 있는 십자가

 

오상경당의 입구

 

도자기로 된 제대멱화와 그리고 성인께서 오상을 받으신 장소를 표시한 기름등잔불이 보인다.

그리고 입구 문 위에는 오상을 받으시는 장면을 묘사한 부조가 있다. 

 

오상경당 제대 벽화

 

도자기로 만들어져 있있는데 십자가상의 예수님과 성모님(고통의 성모마리아축일:9월15일), 사도 성요한(축일:12월27일),성프란치스코(축일:10월4일, 거푹한상흔축일:9월17일), 성예로니모(축일:9월30일), 슬퍼하는 천사들과 해와 달이 있고, 십자가 위에는 성령의 비둘기가 있었다.  테두리는 올리브나무를 표현한것 같다. 제대에는 나의 하느님, 나의 전부시여! 라틴말로 씌여 있다

 

성모자-오상경당의 제대 맞은편 벽(도자기)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오상을 받으신 곳(1224년9월17일) -오상경당.

 

육각형으로 테를 두러 유리를 씌워 보호하고 있었는데 기름 등잔불을 켜 놓았다. 장소가 주는 거룩함, 성지이다. 십자가상의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몸에 오상을 받으신 프란치스코 성인

 

16세기에 만들어진 오상경당의 가대에는 성프란치스코의 초기 형제들을 음각으로 표현한 것 같았다.

 

오상경당의 가대는 양옆으로 12개씩 24개의 초상이 있었는데 아쉬웠지만 형제들의 이름을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성녀 막달레나 경당

 

프란치스코성인께서 처음 거처하시던 곳은 막달레나(축일:7월22일) 경당이 되어 있었다.

 

성녀 막달레나 경당 제대        (출처 : 블로그 > 세포네)

 

제대 뒤의 스테인드글라스( T 타우)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축일:7월22일) 폰테콜롬보 ,막달레나 경당 벽화, 왼쪽 밑에 향유가 든 옥합이 있다.

 

성녀 구네군다 (축일:7월23일)-성녀 막달레나경당 벽화, 구네군다 성녀의 성화(벽화)는 여기에서 처음 보는 것 같다.

 

성체현시대를 들고 계신 성녀 글라라(축일:8월11일) 막달레나 경당 벽화

 

프란치스코 성인이 직접 썼다고 전해지는 T  타우- 막달레나 경당 창문.

 

구세주 그리스도-성녀 막달레나 경당 제대 천장화          (출처 : 블로그 > 세포네)

 

십자가 경당(프란치스코의 두 번째 거처, 성 미카엘 대천사 경당)


1224년 여름 성인은 40일간의 재를 지키며 성 미카엘 대천사 축일을 맞이하기 위하여 허름한 움막을 짓기를 형제들에게 원하였고, 좀더 고요하고 은밀하게 지냈다. 이 곳이 첼라노 전기가 전하는 매와 프란치스코 성인의 우정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는 곳이다. 기도시간이 되면 매가 소리를 내어 기도 시간을 알려주니 프란치스코 성인은 기도시간을 놓치지 않고 열심히 기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곳에서 성인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와 ‘레오 형제에게 내리신 축복’을 작성했다고 한다. 이러한 의미 깊은 곳의 위에 세워진 것이 이 십자가 경당이다. 이 경당은 1263년 오상 경당과 동시에 건축되었다. 이 경당 안에는 요한 콜리나 그라씨아니가 만든, 성 프란치스코가 복음서를 들고 있고 그 옆에 매가 있는 정감어린 성 프란치스코의 상이 있다. 통로로부터 오상 경당으로 가는 문 위에는 상흔 자국을 표현한 대리석으로 된 부도 또한 볼 수 있다.

 

십자가 경당, 예수님께서 발현하신 바위위에 세워진 회칙경당

 

십자가 경당

 

예수께서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발현하신 모습의 성화- 성 미카엘 대천사경당(회칙경당) 프란치스코가 예수님께로 부터 회칙을 받는

장면인데 보니파시오형제와 레오형제도 같이있다.

 

성 미카엘 대천사(축일:9월29일) 경당(회칙경당

 

 

성 보나벤투라 경당 - 라베르나

 

성 보나벤투리는 1259년에 여기에 머물렀을 것이라고 한다. 제대위의 십자가는 예수님과 세라핌천사를 표현한것 같다. 라베르나에는 피에타경당을 비롯하여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경당, 성 세바스티아노 경당, 베르나의 복자 요한경당등이 있다.

 

성 세바스티아노(축일:1월20일) 경당

 

라베르나 순례자 숙소의 커튼에는 예수님손과 성프란치스코의 손, 그리고 십자가가 수놓아져 있었다.

 

<그렉치오 성당>

 

그렉치오 새 성당의 제대

 

리에티 계곡에 있는 폰테 콜롬보(비둘기들의 샘이라는 뜻) 리에띠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으며 성인이 회칙을 쓰신 폰테콜롬보를 비롯하여 베들레헴 성탄을 재현한 그렉치오, 성인이 구원체험의 은혜를 받은 뽀지오부스또네, 포도의 일화가 있는 라포레스타가 있다.

 

그렉치오의 구유동굴의 벽화

 

왼쪽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강생의 신비를 재현한 성탄 그림이고 오른쪽은 성서상의 아기예수님의 성탄 모습이다.

 

구유동굴 옆에있는 유골함은 요한벨리타의 유골함

 

성인의 거처,침실  바위굴은 너무 협소하였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십자가 깃발과 어린양- 그렉치오 성당천장화

 

천장화의 일부와 벽화

 

뽀지오부스토네성당의 십자가와 가대

 

라포레스타 성당의 제대와  타우십자가 스테인드글라스

 

제대위에 놓인 성인상은 뽀지오부스토네에도 있었으며 바래져가는 벽화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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