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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 (Tallinna Aleksander Nevski katedra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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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린의 옛 시가지  문화유산     (이하 사진 출처- http://kr.blog.yahoo.com/lee1004gg


러시아화의 상징인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 고딕 양식의 성령 성당, 성니콜라이 성당,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모 돔 성당, 높이가 124m의 탑이 있는 성올라프 성당, 고딕 양식의 시청사와 시청 약국이 위치한 시청 광장, 올라프 길드의 집과 기사단의 집, 19개의 탑이 있는 옛 도시의 성문이 있다.  사람들은 이 도시의 독특한 모습을 결정짓는 것이 건축물인가 아니면 지형인가 하는 질문을 곧잘 던진다. 13세기에, 지금은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이 된 레발의 주교들이 이 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석조 교회 건물을 지었고, 지배자가 바뀔 때마다 언덕에는 성이 세워졌다. 언덕은 근처의 핀란드 만 위로 약간 솟아 있을 뿐이지만 이 남쪽 해안에는 사방을 둘러봐도 변변한 언덕이라곤 이곳밖에 없었기 때문에 여기에 도시가 들어섰다. 그리고 한자동맹 도시 가운데자연환경이 이렇게 매력적인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들쭉날쭉한 지형이 탈린의 실루엣을 결정지었다면, 교회 탑들은 도시의 윤곽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 상업도시의 맨 위쪽으로는 우선 성니콜라이 성당이 보인다.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이 성당 아래로 대성당이 솟아 있다. 그리고 거대한 올라프 성당이 다시 한번 이 두 건축물을 감싸고 있다. 유서 깊은 탈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러한 시각적인 조화 말고도 또 하나의 조화를 느낄 수 있는데, 아무리 빈틈없이 보존된 도시라 하더라도 중세 시대의 구조를 이보다 더 잘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전문적인 안내자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이를테면 법적으로 독립된 개별 도시들이 전에는 서로 나란히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것은 ‘대성당’과 ‘아래 도시’ 사이를 유일하게 연결하던 길 위에 솟은 성문 탑의 모습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탈린을 찾는 이가 사원 언덕의 테라스에서 지붕들 너머로 시청과 성령 성당의 날씬한 8각탑을 처음으로 보게 되면, 여기서도 일종의 수수께끼를 만나게 된다. 이 두 건물이 탈린의 상징으로서 값어치가 충분한 것은 이 가운데 어떤 것이 성당이고 어떤 것이 시청인지를 아주 교묘하게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의문이 들게 하는 곳은 여기서 몇 골목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파트쿨 테라스이다. 누구의 이름을 따서 생긴 테라스일까? 피의 대가를 치른 항쟁 끝에 150년간 지속된 스웨덴의 북에스토니아 지배를 끝장내고 반 스웨덴 동맹을 결성시킨 이의 이름을 딴 것일까? 아니면 1710년 도시를 계속 방어하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러시아에 양도하기로 결정했던 스웨덴의 마지막 부총독 이름을 딴 것일까? 전혀 손상되지 않은 도시의 원형 성벽의 일부를 내려다보거나, 스칸디나비아인들이 일찍이 에스토니아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것을 웅변해주는 올라프 성당을 내려다보게 되면, 도시 전체를 위험에 처하게 한 이가 아니라, 옛 도시의 앙상블이 전혀 훼손되지 않도록 도시를 그대로 양도한 바로 그 파트쿨에게 영광이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도시는 부주의한 실수로 두 번의 상처를 입어야 했다. 19세기 말 독일의 상류층이 관리하고 있던 동해 지방인 에스토니아, 리플란트 그리고 크클란트에 러시아화 물결이 밀어닥쳤고, 이 와중에 지배 상징으로 아주 적합했던 사원 언덕의 고지에 러시아 정교회의 대성당이 들어섰는데, 이 건물은 건축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 도시에서 가장 불행한 이물질이다. 더욱 가슴 아픈 일은 집들이 늘어서 있던 니콜라이 성당 주위의 몇몇 도로가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을 당해 파괴됐다는 것이다. 원형을 따르지 않고 소박하게 복원을 했지만, 그래도 그 결과 옛 시가지에는 800년의 역사가 각 시대의 양식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이 보물 같은 도시를 살리는 것이 이제 새 정부의 과제가 되었다. 하지만 복원한다는 것은 또다시 모습을 바꾼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선 산업용으로 제작한 기와가 무너질 것 같은 탈린의 지붕을 정복하기 시작했으며, 경탄이 절로 나오는  대길드 건물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1710년 항복 때와 마찬가지로 복원 수준은 전체의 형태를 그대로 계속 보존하는 역할을 했다. 에스토니아인들에게 그런 복원은 늘 그만한 가치가 있는 작업이었다. 발트 해 연안 국가들이 두 번째로 독립을 이룬 1991년 이전에 벌써 에스토니아인들은 자신들의 수도에 있는 한자동맹 시대의 건축유산을 보면서 모스크바에 의해 강요된 고립에서 벗어날 의지를 키웠던 것이다. 문서상으로 자신들의 최초의 정복자인 덴마크의 이름을 따서 ‘덴마크인들의 도시’를 뜻하는 탈린의 건물들은 마지막 점령자인 러시아인들의 존경심을 표현했다. 이를테면 높이 솟은 ‘키에크 인 데 쾨크’와 ‘뚱뚱한 마르가레테’ 대포탑은 이름부터가 벌써 하나는 위로 솟구친다는 것을, 다른 하나는 수평 방어 원칙에 따른다는 것을 나타내는데, 둘 다 용도가 변경되기는 했지만 그 영향력만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BY 안드레아스 퓔베르트         (출처- http://blog.naver.com/notredam) 

 

야경        (출처- http://cafe.naver.com/firenze/1636579)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좌)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은 19세기 말 탈린의 러시아화를 보여주는 기념물이다.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  (출처- http://blog.naver.com/jsdanmoo/50014597978 )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

 

성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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