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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뮤스테르 성요한 베네딕트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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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뮈슈타이르 수도원

 

1983년에 지정된 세계문화유산이다. 카롤링거 왕조 시대의 그리스도교 수도원 쇄신의 특징적인 것으로, 그리슨 계곡에 위치하고 있으며 A.D 800년경에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 시리즈가 유명하다. 스위스 동쪽 끝, 알프스의 웅대한 자연의 품에 안긴 뮈슈타이르 골짜기에 있는 수도원. 검소하면서도 견고한 건축에서는 우아함마저 느껴진다

 

성당 내부

 

성당 안 사방의 벽면은 프레스코화로 뒤덮여 있다. 19세기에 그려진 벽화 밑에 감추어져 있던 이 중세의 벽화는 20세기에 들어 우연한 기회에 발견되었다. 신랑 벽에는 성서 이야기를 묘사한 카롤링거 왕조 시대의 그림이 잠들어 있었다

 

수도원 중정부분

 

뮈슈타이르 수도원의 북쪽 외관. 중세 초기 이후 베네딕투스회 수도원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다. 사진 앞쪽은 북쪽 안뜰이고, 뒤편 왼쪽에는 수녀의 거실, 오른쪽에는 종탑이 달린 성당이 보인다

 

카롤루스 대제상

 

성당의 중앙 예배당 기둥에는 수도원을 창건하라고 지시한 카롤루스 대제의 실물 크기의 조각상이 있다. 약 12세기 중반부터 이 자리에 서서 수도원의 역사를 지키고 있다

 

카롤루스 대제의 야망

780년에 크루의 주교는 카롤링거 왕조의 프랑크 왕인 카롤루스 대제의 요청에 따라 멀리 떨어진 동쪽 땅 뮈슈타이르 계곡에 수도월을 지었다. 수도원 성당의 중앙 예배실 남쪽 지주에는 권력의 상징인 십자가가 붙어 있는 지구를 오른손에 들고, 왕관을 쓰고 있는 카롤루스 대제의 실물 크기 조각상이 남아 있다. 카롤루스 대제가 이 곳에 수도원을 지으라고 지시한 이유는 물론 돈독한 신앙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알프스 산맥 너머에 있는 북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 지방으로 진출하기 위한 길을 확보하려는 정치와 군사의 2가지 목적 때문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뮈슈타이르는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이다. 원래 수도원은 이 곳을 오가는 사람들의 숙박처로 이용되었다. 군대는 물론이고 알프스를 넘어 남쪽의 주교구로 향하는 성직자에게도 뮈슈타이르는 고마운 존재였다. 인간의 침입을 꺼리는 뮈슈타이르 계곡 일대와 아디제 강 상류 지역은 중세에는 하나의 주교구였다. 그러나 현재 아디제 강 유역은 이탈리아 영토이며, 뮈슈타이르 계곡은 스위스의 영토이다. 뮈슈타이르에 수도원을 창설한 사람은 뮈슈타이르 서쪽에 위치한 크루 근처의 베네딕투스회 푸페퍼스 수도원에서 온 수도자였다. 그리고 건설 당시에는 투베리스 수도원이라고 불렀다. 11세기에는 크루의 주교 노르베르투스가 뮈슈타이르의 수도원에 둥근 탑을 세우고 주교관으로 삼았다. 또 수도원 부지 동쪽 끝에는 성울리쿠스와 성니콜라오스에게 바쳐진 2층 건물의 예배당이 세워졌다. 2층은 주교의 전용 공간이었다. 여기서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석조 궁륭, 각종 장식, 천사 스터코 흉상 등이 주목할 만하다

 

주교전용방

 

성울리쿠스와 성니콜라오스에게 바쳐진 뮈슈타이르 수도원의 예배당. 11세기에 창건되었다. 사진은 지난날 주교의 전용 공간이었던 2층 방

 

수도원 성당 북쪽 벽에 그려진 9세기 카롤링거 왕조 시대의 프레스코화
 
[성서]에 나오는 ‘귀머거리와 벙어리의 치료’ 장면이다. 당시로서는 아주 드문 예로서,
웅장한 구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벽화의 보전과 복원에는 섬세한 주의가 필요하다
 

거대한 프레스코화

 

수도원 성당은 원래 목조 천장으로 덮인 넓은 단신랑과 예배실 3개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15세기에 측랑과 2개의 첨두형 궁륭을 가진 후기 고딕 양식으로 개조되었다. 이 때 석조 궁륭을 떠받치기 위한 열주도 덧붙여졌다. 성당 내부에 있는 예배실과 신랑의 벽은 온통 벽화로 뒤덮여 있다. 이 오래된 프레스코화는 9세기 초 카롤링거 왕조 시대의 것으로 19세기에 덧그려진 벽화 밑에 감추어져 있었는데, 1894년과 1947~1951년에 이루어졌던 보수 공사 때 우연히 발견되었다. 벽면 일부에는 12세기 로마네스크 시대의 프레스코화도 그려져 있었다. 성당의 동쪽 예배실에도 12세기에 그려진 프레스코화가 남아 있다. 9세기에 제작된 벽화는 성서 이야기가 웅장한 구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경우였다. 가로로 긴 틀이 설치된 신랑의 벽에는 위아래 5단으로 나뉘어 각각의 단에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소재로 한 82개의 장면이 그려져 있다. 그 중 제일 위쪽에만 [구약성서] 장면이 그려져 있고, 나머지 62개 장면에는 [신약성서]에서 제재를 취한 것이다. 성당 안에 이렇게 많은 성서 장면이 그려진 예는 어떤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붉은 색을 위주로 황색, 적갈색, 자주색, 진홍색, 청색 등을 사용한 이 그림은 처음 그려졌을 당시에는 색깔이 선명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인물의 얼굴, 손발, 옷 등에는 검은 테두리를 그려 놓았는데, 사실적인 느낌이 약하다. 인물은 뚱뚱하고 머리가 크며 이마가 좁고 턱은 뾰족하며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다. 9세기에 제작된 이 벽화는 심하게 손상되어, 그 일부는 벽에서 떼어져 취리히 국립 민족 박물관에서 보존되고 있다. 이에 비해 12세기에 제작된 작품은 표현력이 훨씬 풍부하고 아름답다. 이 작품에는 로마네스크와 이탈리아를 거쳐 전해진 비잔틴 양식이 섞여 있다. 이 프레스코화에는 가느다란 몸에 궁정풍의 의상을 두른 각 인물들의 동작이 생동감 넘치게 표현되어 있어, 당시 세속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전해 준다. 하프를 뜯고 나팔을 부는 악사들, 경쾌하게 춤을 추며 세례자 요한의 목을 받아드는 살로메, 처참하게 표현된 요한의 목을 제외한다면 그림 전체에는 세속적이며 궁정적인 분위기기 넘친다. 이것은 [마르코 복음서]에 서술되어 있는 중세 베네딕투스회 여자 수도원의 생활과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동떨어진 모습이다. 이처럼 극단적일 만큼 사실적인 표현은 오히려 그것을 거부하고 신의 나라를 희망하는 수도자의 마음에 더욱 강하게 와 닿았는지도 모른다

 

 

성당 동쪽에 위치한 예배실 3개에는 12세기 후반에 그려진 프레스코화가 남아 있다. 신랑 벽에 그려진 카롤링거 왕조 시대의 벽화와 비교하면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처음 그렸을 때는 색채가 훨씬 선명했을 것이다. 이것은 [살로메의 춤] 장면이다

 

스위스 뮈슈타이르(산타마리아 근교)의 수도원


티롤 산악 지대의 남쪽 끝에 위치한 뮈슈타이르 계곡에는 베네딕투스회의 성요한 수도원이 있다. 이 수도원은 8세기에 카롤루스 대제(샤를마뉴)가 알프스 이남으로 진출하는 길목의 요새로 건설한데서 기원한다. 이 수도원 성당의 벽면을 뒤덮은 프레스코화는 9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현재 남아 있는 카롤링거 왕조 양식의 작품 중에서 가장 오래된 귀중한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일부는 취리히의 국립 민족 박물관으로 옮겨져 보관되어 있다.

계곡의 수도원

해발 2400m에 있는 평온하고 맑은 호수는 항상 선명하게 하늘을 비춰 주고 있다. 중세의 수녀 카트리나 필리는 이 호수를 ‘너의 푸른 잔물결은 바람의 부드러운 애무’라고 노래했다. 뮈슈타이르 계곡의 고요한 호수와 그 주위는 성요한 수도원의 소유지였다. 이 수도원은 8세기에 베네딕투스회의 수도사가 창건했으며, 나중에 여자 수도원이 되었다. 그 후로 이 계곡 일대와 주변 마을은 뮈슈타이르라고 불리게 되었다. 원래 ‘뮈슈타이르’라는 말은 라틴어의 모나스테리움에서 나온 말로 로만시어로 ‘수도원’을 의미한다. 로만시어는 성요한 수도원이 창설되던 시대인 8세기에 이 지방 일대에서 사용하던 언어를 말한다. 현재는 점점 잊혀지고 있지만, 지금도 스위스의 네 번째 공용어이다. 알프스 산맥 남쪽의 험준한 경사면에 위치한 뮈슈타이르 계곡은 해발 2149m의 오펜 고개를 넘어 가는 유일한 도로를 통해 스위스의 여러 곳과 연결된다. 그러나 겨울에는 이 도로도 폐쇄될 때가 있다

기도와 노동의 나날

수녀들은 하루에 7번씩 기도를 올린다. 그리고 마지막 기도와 함께 하루의 노동도 끝이 난다. 중세 이후로 성베네딕투스의 계율을 지키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수녀들은 지금도 밭을 경작하고 밀이나 목초 수확에 힘쓴다. ‘기도하고 일하라’ 이것이야말로 성베네딕투스가 주장한 궁극적인 신앙의 정신이었다. 사실 수녀에게 노동은 빠뜨릴 수 없이 중요한 일과였다. 겨울에는 모포나 의복에 자수를 놓고 마을 사람들을 위한 유치원도 운영한다. 츠빙글리나 칼뱅의 종교 개혁 사상이 퍼져 프로테스탄트가 뿌리를 내린지 오래지만, 뮈슈타이르 계곡에는 성요한 수도원의 막강한 영향력 덕분에 가톨릭 신앙이 유지되고 있다

 

출처 블로그 >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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