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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대성당 (서울)

성지순례/한국 성지(카톨릭,기타)

by baesungsoo 2013. 5. 27.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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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대성당, 2009년 개축한 종탑          (아래출처-  http://info.catholic.or.kr/)  

 

명동성당 건립은 1883년 무렵 김 가밀로의 명의로 종현(鍾峴) 일대의 대지를 구입하며 시작된다. 당시의 교구장 블랑(Blanc) 주교는 우선 신학생 교육을 위한 종현서당을 설립, 운영하였으며, 이후 풍수지리설과 관련하여 한국 정부와 토지 분쟁이 있었으나, 1890년 이를 마무리지었다. 블랑 주교의 뒤를 이은 뮈텔(Mutel) 주교는 1892년 8월 5일 기공식을 갖고 한국 교회를 위해 일했던 주교와 선교사, 은인들의 명단을 머릿돌 밑에 묻고 머릿돌을 축성하여 고정시켰다. 성당의 설계와 공사의 감독은 코스트(Eugene Coste) 신부가 맡아 진행하였다. 그러나 1896년 2월 코스트 신부가 선종함에 따라 프와넬(Poisnel) 신부가 업무를 이어받아 성당 건축을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1898년 5월 29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성당 축성식을 갖고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봉헌하였다. 역사적으로는 한국 근대 건축사에서 가장 규모가 큰 첫 고딕 양식 건축물(사적 제258호)로 기록되어 있다. 성당의 건축 과정에서 많은 신자가 무료로 노력 봉사를 하였으며, 성당의 건축에 쓰인 벽돌은 청나라의 벽돌공을 데려다가 만들었다. 1945년 광복을 기점으로 하여 성당 명칭은 종현성당에서 명동성당으로 바뀌었다.

 

 

명동 대성당 

 

 

명동 대성당

 

 

 명동 대성당, 교구청

 

 

명동 대성당

 

 

 명동 대성당

 

 

명동 대성당

 

 

명동 대성당 예수상  

 

 

명동 대성당 측면 

 

 

명동 대성당 후면  

 

 

명동성당 안내비  

 

 

중앙문

 

 

중앙문, 최의순(1934년 - )

1985-1987년 제작(2009년 설치), 청동(bronze), 110x250x9cm, 명동대성당, 서울

 

명동대성당의 정문 부조에는 우리나라 신앙 선조들의 철저한 하느님 사랑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이웃 사랑이 함께 묘사되어 있다. 왼쪽 부분의 상단부터 하단에는 최초로 미사봉헌을 하는 순교자 중국인 주문모 신부(1752-1801), 평북 의주의 국경 관문, 삿갓을 쓰고 복음 전파하는 성직자, 박해를 피해 떠나는 행렬, 고아를 돌보는 모습, 박해받던 신자들의 생활 수단이었던 옹기가 묘사되어 있다. 오른쪽 문에는 ‘주교요지’를 읽고 있는 명도회 초대회장이었던 순교자 정약종(1760-1801), 서학을 연구하던 학자들, 박해를 피해 떠나는 사람들, 노약자를 돕는 신자와 약탕관이 새겨져 있다. (글 출처-http://info.catholic.or.kr/)

 

 

명동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옛날사진      (출처- http://www.mdsd.or.kr/)

 

옛날사진 

 

옛날사진 

 

1898년 성당모습

 

 옛날사진

 

1957년도 사진, 성모상이 전면에 있었다.    (출처- http://www.photolic.com

 

 

 

사제관  

 

 

성당내부

 

 

성당내부

 

 

 

성당내부 2층에서

 

 

성당내부

 

 성모자상, 사도화, 석조 주제대, 목조제대              (출처- http://www.photolic.com

 

 

 

제대

 

 

석조 주 제대

 

석조 주 제대는 명동대성당 건축 당시 성당 설계자요 주임 신부였던 꼬스트 신부의 요청에 따라 프랑스의 한 귀족이 "석조 주 제대"

와 천사상을 기증 하였다.

 

 

석조 주 제대 하단의 기록          (출처- http://cafe.naver.com/ArticlePrint.nhn)

 

명동대성당 축성 연도인 " Anno Domini 1898" 약자인 "Ano Dni 1898" , 서울대교구의 "Seoul" , 당시 서울대목구장이던

" 뮈텔 주교의 서명" 이 새겨져 있다.

 

 

감실

 

감실문은 이중문인데 바�쪽 문은 좌우 미닫이식으로 열리고 안쪽 문은 좌우 앞쪽으로 열리게 된다. 1997-1998년경 새롭게

교체 되었다.  

 

제대 성인화                   (출처- http://info.catholic.or.kr) 

 

제대

 

성모상과 대리석 제대

 

중앙 제대 뒷편에는 성모자상이 있고 아래로는 고 장발 화백이 그린 14 사도 성화가 있는데 14 사도란 12사도에 사도 바울과 사도 바나바(바르바나)이다.  

 

목조 제대,  목조제대는 예전에 사용하던 강론대(기둥 위)를 개조하여 만든 것이다.

 

 

로사리오 기도 15단 스테인드글라스

 

 

제대

 

 

제대 

 

 

석조제대

 

 

석조제대

 

 

성모상과 성인화

 

 

제대 성모상

 

 

석조제대

 

 

제대 왼쪽 천사상

 

 

감실 

 

 

석조제대 오른쪽면

 

 

제대 오른쪽 천사상과 독서대

 

 

 

석조, 목조제대

 

 

목조제대

 

 

목조제대

 

 

목조제대 

 

 

제대 주교단 

 

 

제대 주교단

 

 

제대 주교단  

 

 

제대 주교단  

 

 

예수와 12사도 스테인드글라스

 

 

제대 왼쪽 성 김대건 안드레아 상과 부제대

 

 

제대 왼쪽 성 김대건 안드레아 상과 부제대, 예전에 이곳에는 파리외방전교회에서 기증한 예수성심상이 있었다.  

 

 

제대 왼쪽 성 김대건 안드레아 상

 

 

성 김대건 안드레아 상 

 

 

본당 김대건 신부 성화 

 

 

왼쪽 벽에 있는 79위 복자화와 기념 제대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read.asp)

 

 

왼쪽 벽에 있는 79위 복자화와 기념 제대 

 

 

왼쪽 벽에 있는 79위 복자화

 

그림속에 등장하는 79위 복자들은 모두 1984년에 한국 천주교 전래 200주년을 기념하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여의도 광장에서 시성되어 성인품에 올랐다. 그때 성인품에 오르신 분들은 모두 103위입니다.

 

왼쪽 79위 복자들을 기념해 만든 제대

 

 

왼쪽 벽에 있는 79위 복자화 위 스테인드글라스

 

 

왼쪽 벽에 있는 79위 복자화 위 스테인드글라스

 

 

복자화 아래 성수대

 

 

제대 오른쪽에 있는 성 분도 베네딕토상

 

 

제대 오른쪽에 있는 성 분도 베네딕토상과 부제대

 

 

제대 오른쪽에 있는 성 분도 베네딕토상과 부제대

 

 

제대 오른쪽 이벽 성화

 

 

이벽

 

이벽

 

 

제대 오른쪽 김범우 성화 

 

김범우는 세례명 토마스로 역관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1784년(정조 8) 이벽(李蘗)의 권고로 천주교에 입교, 이승훈(李承薰)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두 동생을 입교시키고, 자신의 집에서 천주교 집회를 자주 가지는 등 열렬한 신자가 되었다. 1785년 이벽 ·이승훈 ·정약전(丁若銓) ·정약용(丁若鏞) ·정약종(丁若鍾) ·권일신(權日身) 등 남인(南人) 학자 수십 명이 명례방 그의 집에 모여 예배를 보다 당국에 발각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양반·명문 출신이었므로 성명을 밝히지 않은 채 방면되었으나, 중인(中人)인 그는 혹독한 고문을 받고 단양(丹陽)으로 유배되었다. 이 사건이 1785년에 일어난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이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1년 만에 죽음으로써 조선 최초의 천주교 희생자가 되었다. 이때부터 천주교가 사학(邪學)으로 규정되어 금지되었다. 한국 천주교의 첫 순교자는 윤지충(尹持忠)이다. 

 

 

오른쪽 벽에 있는 명례방 공동체 그림      (출처- http://info.catholic.or.kr)

 

1785년초 서울 명례방 김범우 토마스의 집 사랑 대청에서 정약전, 정약용, 정약종 형제와 이벽, 권일신, 이승훈 등이 모여 주일 집회를 갖고 있다. 경상 위에는 '천주실의'나 '칠극' 같은 천주교 교리서가 펼쳐져 있고,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수난상도 눈에 띈다.

 

영성체 난간, 예전에 영성체를 받을 때 사용하던 것으로 지금은 제대 난간으로 사용된다. 

 

 

본당 앞의 오른쪽 성세대 

 

성체 등

 

독서대

 

 

2층 성가대석과 파이프오르간

 

 

2층 파이프오르간 

 

 

2층 파이프오르간 

 

 

내부 교황 요한 바오로2세 청동부조상, 1984년 임송자 작

 

1처 ,  내부 십자가의 길은 최종태 작품이다.    

 

2처

 

3처

 

4처

 

5처

 

6처

 

7처

 

 

8처 

 

9처

 

10처  

 

11처

 

12처

 

 

13처

 

 

14처

 

 

15처

 

본당 내 입구 성수대

 

 

본당 출입구 안쪽

 

 

창문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스테인드글라스

 

 

지하 소성당 제대 

 

 

지하 소성당 제대 

 

 

지하 소성당 제대 감실  

 

 

지하 소성당 제대 

 

 

 

지하 소성당 제대 성인유해 

 

 

지하 소성당 유해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read.asp)

 

명동 성당이 준공된 후 그 지하 묘역에는 기해·병인박해 당시 믿음을 지킨 순교자들의 유해를 안치해 왔다. 1900년 9월 5일에는, 1899년에 왜고개(瓦峴, 현 용산 군종 교구청 인근)에서 발굴되어 용산 예수 성심 신학교에 안치되어 있던 베르뇌(Berneux, 張) 주교 등 7명의 순교자 유해와, 1882년에 남포 서들골(현 충남 보령군 미산면 평라리의 서짓골)에서 발굴되어 일본으로 보내졌다가 1894년에 용산 신학교로 옮겨진 성 다블뤼(Daveluy, 安) 주교 등 4명의 순교자 유해를 대성당 지하 묘지로 옮겨 안치하였다. 이어 1901년 11월 2일에는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첫 입국해 기해년 1839년 9월 12일 순교한 앵베르 주교와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가 새남터에서 군문 효수의 형을 받은 후 한강변 모래밭에 매장된것을 순교한지 약 20일 후 칠팔 명의 신자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세 분의 유해를 거두어 지금의 서강대학교가 소재한 노고산에 4년간 매장했다가 그 후 유해는 1843년에 삼성산으로 이장됐다가 다시 1901년에 이곳 명동성당 지하 묘지로 모셔졌다. 1909년 5월 28일에는 남종삼(요한)과 최형(베드로)의 시신을 왜고개에서 발굴하여 지하 묘지로 옮겨 안치하였다. 이들 중 훗날 복자, 성인품에 오른 이들의 유해는 1967년에 절두산 순교 기념관으로 다시 옮겨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대성당 지하 묘지는 성인들의 유해가 안치되었던 성스러운 곳이다. 또 지금까지 지하 묘지에 안치되어 있는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의 순교자 푸르티에(Pourthie, 申) 신부, 프티니콜라(Petitnicolas, 朴) 신부의 유해가 순례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지하 소성당 유해실       (아래 사진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read.asp, 2012.5)

 

 

지하 소성당 유해실

 

 

지하 소성당 유해실

 

 

지하 소성당 유해실

 

 

지하 소성당 유해실

 

 

지하 소성당 유해실

 

 

지하 소성당 유해실

 

 

지하 소성당 유해실

 

 

지하 소성당 유해실

 

 

지하 소성당 유해실

 

 

지하 소성당 성인화

 

 

순교자 푸르티에

 

 

성인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 앵베르

 

 

성인 샤스탕

 

 

성인 모방 

 

 

성인 김성우 안토니오  

 

이승훈 

 

성 바오로

 

성 베드로

 

성 요한

 

성 야고보

 

종,  1967년에 제작된 것             (출처- http://info.catholic.or.kr)

 

 

2001년 부활절에 새로 제작해서 교체한 종 

 

 

성모동산, 대성당 후정

 

 

성모무염사태 상, 명동대성당 주보 성인으로 1948년 명동대성당 축성 50주년 기념으로 프랑스에서 제작하여 봉헌하였다.

 

 

성모무염사태 상       (아래출처- http://info.catholic.or.kr/)

 

 

성 바오로 부조상

 

 

성 바오로 부조상

 

 

 

성 김대건 상

 

 

성 김대건 상 

 

 

 사형선고 받으심 조각물

 

 

사형선고 받으심 조각물

 

 

루르드 성모동굴, 카톨릭회관 광장, 1960.8.27. 노기남 주교 때 봉헌되었다.

 

 

루르드 성모동굴

 

 

카톨릭회관 마리아상 

 

십자가 문양

 

2021.6.7.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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