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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원성당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유현2리)

성지순례/한국 성지(카톨릭,기타)

by baesungsoo 2013. 5. 30.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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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원성당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album.asp


1801년 신유박해 이후 1802년 혹은 1803년경 경기도 용인에서 신태보(베드로)를 중심으로 하여 40여명의 신자들이 8일 동안 피난처를 찾아 헤매다가 정착한 곳이 바로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앙촌인 풍수원이다. 1866년(고종 3년) 교회 대박해(병인년)와 1871년(고종 8년) 신미양요때 신자들이 피난처를 찾아 헤매던 중 산간벽지로서 산림이 울창하여 관헌들의 눈을 피하기에 알맞는 곳이라 사방으로 연락하여 신자들을 모아 한 촌락을 이루어 일부는 화전으로, 일부는 토기점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20년간을 지내다가 1886년 한불 조약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된 교우들은 처음 풍수원으로 찾아든 이래 무려 80여 년 동안을 목자 없이 오로지 평신도 들로만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 왔다.  (글 출처 - http://www.paxkorea.co.kr/)

 

풍수원성당           (출처- http://info.catholic.or.kr/)

 

풍수원성당

 

성당입구

 

풍수원성당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album.asp)

 

성가정상

 

성가정상

 

풍수원성당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album.asp)

 

풍수원성당 

 

풍수원성당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album.asp)

 

풍수원성당         (출처- http://info.catholic.or.kr/)

 

한국 천주교회의 특징은 첫째, 성직자의 도움 없이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창설했고 둘째, 학문 연구에서 출발한 것이 종교와 신앙으로 발전했으며 셋째, 신앙이 교우들에게 뿌리 내리면서 성직자를 영입하려 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강원도 지역에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한 것도 역시 같은 양태로 이루어지게 되며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풍수원 성당이다. 신앙의 자유가 확보된 그 이듬해 교우들은 목자가 없는 양 떼들을 위해 신부가 상주해 돌보아 주기를 열망하게 된다. 그에 대한 응답으로 1888년 당시 조선 교구장이었던 민 대주교는 풍수원 본당을 설립하고 초대 신부로 파리 외방 전교회의 르 메르(Le Merre) 이(李) 신부를 임명했다. 르 메르 신부는 이로써 춘천, 화천, 양구, 홍천, 원주, 양평 등 12개 군을 관할했고 당시 신자수는 약 2,000명에 이르렀다. 아직 서양식 성당 건물을 알지 못했던 이들은 초가집 20여 간을 성당으로 사용했었다. 그러다가 1896년 제2대 주임으로 부임한 정규하(아우구스티노) 신부는 중국인 기술자들과 함께 현재의 성당을 1905년에 착공해서 1907년에 준공했고 2년 뒤인 1909년에 낙성식을 거행했다. 이 성당은 신자들이 직접 벽돌을 굽고 아름드리 나무를 해 오는 등 건축 소재를 스스로 조달했는데 그 열성은 가히 오늘날 신자들이 본받을 만한 것이었다. 풍수원 성당의 교세는 크게 확장됐고 원주, 춘천, 양평, 횡성, 평창, 홍천 등 주위의 본당들은 모두 풍수원으로부터 분당되어 나온 것이다. 이처럼 강원 지역 전교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풍수원 성당에는 오랜 세월 성숙된 신앙의 유산을 배우고 묵상하고자 지금도 많은 신자들이 찾아오고 있다. 1888년 6월 20일 본당이 설립되어 풍수원에 세워진 현재의 성당은 한국인 신부가 지은 첫 번째 성당이고 한국에서 네 번째로 지어진 것이다. 더욱이 지난 1982년에는 강원도에 의해 지방 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된 바 있는 역사적 유물이기도 하다. 현재 풍수원에는 대강의실, 5개의 온돌방, 유물 전시관 등을 갖춘 피정의 집이 세워져 있어 개인으로나 단체로 피정을 원하는 순례자들을 도와주고 있기도 하다. 한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성체 현양 대회가 매년 열리는데 제1회 성체 대회가 1920년에 실시된 이래 6.25로 빠진 3년간을 제외하고는 매년 열려 왔다. 오랜 역사만큼 30여명이 넘는 사제를 배출한 성소의 못자리로서도 풍수원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풍수원성당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album.asp)

 

풍수원성당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album.asp)

 

풍수원성당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album.asp)

 

풍수원성당 뒷면

 

성당내부              (출처- http://info.catholic.or.kr/)

 

제대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

 

내부 예수성심상 (전면 좌편)

 

내부 성모상 (전면 우편)

 

제대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

 

제대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

 

감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

 

성당내부 출입구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

 

유물전시관 조감도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

 

유물전시관 조감도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

 

유물전시관 조감도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

 

유물전시관(2013.4. 축복식)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

 

신앙 선조들의 일상을 볼 수 있는 농기구와 민속품, 성물과 기도서 등을 전시하는 이 유물전시관은 신축되어 2013년 4월 30일 축복식을 갖고 개관했다.

 

유물전시관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

 

유물전시관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

 

유물전시관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

 

유물전시관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

 

유물전시관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

 

유물전시관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

 

유물전시관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

 

유물관 (구 사제관)            (출처- http://info.catholic.or.kr/)

 

2005년 4월 등록문화재 제163호로 지정된 옛 사제관은 성당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 왼편에 있다. 커다란 나무에 가려져 있어 얼핏 보면 잘 보이지 않는 연건평 50평 규모의 2층 벽돌 건물이다. '옛'이라는 수식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지금은 사제관이 아닌 유물 전시관이다. 이 건물은 성당보다 6년 늦은 1913년에 완공됐다. 당시 주임 정규하 신부는 1913년 10월 1일에 쓴 편지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저희 집 사제관은 이제 준공되었습니다. 지금은 새 집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썩 잘 지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100여 년 전 시골 벽촌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서양식 2층 건물을 지어놓고 왜 잘 지었다고 할 수 없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필시 현재로서는 짐작하기 힘든 곡절이 있었던 모양이다. 사연을 알아보려고 해도 옛 사제관 건축과 관련된 기록은 남아 있는 게 거의 없다. 정 신부가 건축을 진행했고, 건축에 사용된 붉은 벽돌은 인근 피미기 마을에서 구워 나른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문화재청이 이 건물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한 것은 '20세기 초 선교사들에 의해 서양 건축술이 전해지는 과정을 충분히 분석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서양식 생활방식이 반영된 주거공간이라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1층과 2층 거실을 중간에 둔 방 배치와 서재를 보면 당시 사제들의 주거생활을 이해할 수 있다. 사제관은 1997년 대대적 내부 수리를 거쳐 유물전시관으로 탈바꿈했다. 지난 4월에는 강원도와 횡성군으로부터 1억여 원을 지원받아 유물을 온전한 상태로 보존할 수 있도록 하는 항온항습 시설을 갖추고 창틀을 원형대로 복원하는 공사를 마쳤다. 

 

유물관 (구 사제관)            (출처- http://info.catholic.or.kr/)

 

유물관 (구 사제관)

 

유물관 (구 사제관)

 

유물관 (구 사제관) 

 

유물관 (구 사제관)            (출처- http://info.catholic.or.kr/)

 

유물관 전시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

 

유물관 전시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

 

유물관 전시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

 

유물관 전시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

 

유물관 전시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

 

유물관 전시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

 

유물관 전시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

 

유물관 전시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

 

유물관 전시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

 

유물관 전시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

 

유물관 전시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

 

유물관 전시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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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입구와 전시실

 

유물전시관 1층 정면에 있는 출입구로 들어가면 뒷문으로 연결된 가운데 통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3개의 방이 있다. 1층 방 3개에는 1909년부터 사용한 청동촛대, 성합(1896년), 성유통(1936년), 향그릇, 제병기(1896년), 병자성사 가방 등 앞서간 신앙 선조들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유물들이 가득하다.

 

1층 전시실

 

성작덮개

 

종부성사 가방  

 

초기 한옥성당의 기와와 벽돌

 

 

 

 

 

1층 전시실

 

 

 

미사경본

 

 

 

성경직해

 

성모성월

 

고별사

 

 

서적들

 

1층 전시실

 

성합

 

성합

 

제대 촛대

 

제대 제종

 

제작 연대가 다른 십자가

 

 

 

향로, 향그릇

 

예수성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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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오르는 계단

 

1층 왼쪽 구석에 나 있는 계단을 통해 올라가는 2층 역시 가운데 서재를 중심으로 오른쪽과 왼쪽에 방이 각각 1개씩 있다. 서재 포함 1ㆍ2층 6개 방에 전시된 유물은 320여점.  2층에는 1896년부터 1943년까지 모든 전례에서 사용한 제의와 함께 1887년부터 1915년 사이에 간행된 기도서와 박해일기, 묵상서 등을 비롯해 목판본과 활자 인쇄본을 전시하고 있다. 2층에서 특별히 눈길을 끄는 유물들이 전시된 곳은 서재다. 정규하 신부가 47년간 사용한 나무책상과 일제시대 때 구입한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야마하 오르간이 서재 양쪽 구석에서 빛바랜 세월의 정취를 머금은 채 순례객을 맞는다.

 

2층 전시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

 

2층 전시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

 

2층 전시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

 

2층 전시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

 

2층 전시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

 

2층 전시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

 

2층 전시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

 

2층 전시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

 

2층 전시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

 

2층 전시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

 

2층 전시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

 

2층 전시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

 

2층 전시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

 

2층 전시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

 

2층 전시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

 

2층 전시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

 

2층 전시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

 

연혁

 

역사 사진

 

역사사진

 

성당 신부들

 

제1대 프랑스 르메르 이신부

 

제1대 프랑스 르메르 이신부

 

1888년 당시 조선 교구장이었던 민 대주교는 풍수원 본당을 설립하고 초대 신부로 파리 외방 전교회의 르 메르(Le Merre) 이(李) 신부를 임명했다. 르 메르 신부는 이로써 춘천, 화천, 양구, 홍천, 원주, 양평 등 12개 군을 관할했고 당시 신자수는 약 2,000명에 이르렀다. 아직 서양식 성당 건물을 알지 못했던 이들은 초가집 20여 간을 성당으로 사용했었다.

 

 

 

 

 

 

 

 

 

 

 

 

 

 

 

2층 전시실

 

정규하 아오스딩 신부 책상 (1896-1943년 까지 쓰던 책상)

 

김학용 시몬 신부가 전례시 사용하던 일제 야마하 오르간

 

흙 십자가와 율무묵주

 

2층 서재 한가운데 있는 성 앵베르ㆍ모방ㆍ샤스땅 신부 성해와 박해시대 때 만든 흙십자가는 모진 핍박에서도 믿음을 지켜낸 선조들의 숭고한 신앙을 절절히 느끼게 해준다.   

 

흙 십자가

 

율무묵주

 

성수 그릇과 성인 유해

 

성수 그릇

 

성인 유해

 

2층 전시실

 

옛 제의

 

2층 전시실

 

 

 

 

 

 

 

 

 

2층 전시 도서

 

십자가의길              (출처- http://info.catholic.or.kr/)

 

 예수성심상, 야외제대

 

예수성심상

 

성모동굴 

 

성모상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길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album.asp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길

 

 

 

 

 

 

 

 

 

 

 

 

 

 

 

 

 

 

 

 

 

  

 

 

 

  

 

 

 

 

<성직자 묘역>

 

성직자 묘역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album.asp

 

성직자 묘역

 

정규하 아우구스티노 신부 묘


정규하(1863∼1943년) 신부다. 김대건ㆍ최양업 신부에 이어 1896년 서울 중림동성당에서 한국인으로 세번째 사제품을 받은 정 신부는 사제품을 받은 그 해 풍수원본당에 부임해서 선종할 때까지 무려 47년을 오로지 이곳에서만 사목했다. 성당과 사제관을 짓고 자신이 지은 사제관에서 30년을 살다가 하느님께 돌아간 것이다. 한 본당에서만 50년 가까이 사목한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본당이나 사제 수 모두 얼마 안되던 초창기 시절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옛 사제관은 정 신부 분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정규하 아우구스티노 신부님은 1896년 제2대 풍수원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여 중국인 기술자들과 함께 현재의 성당을 1905년에 착공해서 1907년에 준공하고 2년 뒤인 1909년에 낙성식을 거행했다.

 

정규하 신부 묘

 

정규하 신부 묘

 

김학용 신부 묘

 

김학용 신부 묘

 

김학용 신부 묘

 

방영석 사제 묘

 

방영석 사제 묘

 

<회개동산>

 

회개동산                     (출처-  http://info.catholic.or.kr/pds/album/album.asp

 

회개동산 야외제대

 

회개동산 십자고상

 

회개동산 십자고상

 

회개동산 십자고상

 

회개동산 성모상  

 

청소년수련원              (출처- http://info.catholic.or.kr/)

 

성당 입구 주차장, 청소년수련원

 

청소년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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