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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네세바르 성당 유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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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세바르  부주교좌 성당       (출처- http://blog.naver.com/notredam)

 

네세바르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은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 세운 옛 부주교좌 성당이다. 원래는 삼랑식 바실리카 성당이었지만, 10세기경에 대대적으로 개축된 듯하다. 지금은 천장도 없이 깨진 창이 많고 아치가 늘어서 있어 폐허나 다름없지만, 더운 여름날 밤에는 콘서트를 개최하는 매력적인 무대로 바뀐다

 

네세바르 성스테판 성당 

 

11~12세기에 건설해 성스테판에게 바친 성당은 그 후에도 여러 차례 개수되었는데, 마지막 개수 공사가 이루어진 16세기에는 부주교좌가 놓이고 목조 현관랑이 덧붙여졌다. 아이코노스타시스가 프레스비테리움과 신랑을 구분하는 구조는 정교회 성당의 전형적인 구조이지만, 건물 정면에 조각된 롬바르드 띠와 조형적인 도기 장식은 네세바르 종교 건축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성당에는 아토스에서 전해진 양식으로 그려진 많은 프레스코화가 남아 있다. 초상화 1000점을 포함해 243개의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안타깝게도 심하게 손상되어 오래된 부분의 그림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네세바르  성요한 성당          (출처- http://blog.naver.com/notredam)

 

10~11세기에 건설해 세례자 성요한에게 바친 성당은 중앙에 둥근 지붕을 얹은 그리스 십자형 평면에 삼랑식 바실리카 평면을 짜맞춘 것 같다. 창과 아치 등이 적은 벽돌 성당은 소박한 인상을 준다. 현재는 그리스 조각품이나 도자기, 아이콘 등을 전시하는 고고학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네세바르 판토크라토르 성당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판토크라토르 성당도 같은 시기에 창건되었다. 역시 외벽은 유약을 입힌 채색 도기나 니치(niche:벽면을 파내 조각품 등을 놓도록 한 것)를 모방한 장식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당시 지어진 성당 중에서는 보존 상태가 매우 좋다

 

네세바르 해변의 성당 

 

흔히 ‘해변의 성당’이라고 불리는 삼랑식 성모 성당은 엘레우사 수도원의 주성당으로, 옛 부주교좌 성당과 거의 같은 시기에 세워졌다. 지금은 지진 때문에 아치와 외벽만 남아 있는데, 원래의 유적은 대부분 바닷속에 잠겨 있다고 한다

 

네세바르 요새             (출처- http://blog.naver.com/notredam)

 

그리스의 식민 도시 메셈브리아 시대에 건축된 이 견고한 요새는 육지를 잇는 유일한 길을 감시해 왔다

 

네세바르 구(舊) 도시 ( Old City of Nessebar )


1983년에 지정된 세계문화유산으로 흑해의 로키 반도에 위치한 3000년전 유적으로 초기 트라키아인들의 정착지이다. 비잔틴 제국의 가장 중요한 요새 중의 하나로서, 이 도시 유적들의 연대는 고대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아폴로 신전을 포함한 헬레니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네세바르의 역사 도시


3000년 전, 흑해 연안의 곶에 건설된 트라키아인의 도시는 메나브리아에서 메셈브리아, 네세바르로 이름이 바뀌면서 번영을 누려 왔다. 군사적 거점이자 문화와 상업의 중심지였던 이 도시는 많은 권력자들이 쟁탈전을 벌이던 땅이었다. 이 땅의 지배자 중에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당을 잇달아 짓기도 했다. 다양한 건축 양식으로 지은 건물이 미묘한 조화를 이루며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네세바르는 중세 불가리아의 모습을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전해주는 박물관 도시이다. 3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항구 도시-  흑해 연안의 항구 도시 네세바르는 길이 850m, 폭 300m의 바위투성이인 곶에 건설된 도시로, 길이 400m의 좁은 모래톱으로 육지와 이어져 있다. 이 독특한 지형은 바다로 둘러싸인 천연 요새를 이루었기 때문에, 예로부터 이 시를 둘러싼 쟁탈전이 수없이 되풀이 되었다. 전략적 거점이자 문화와 상업에서 중요한 이 도시는 권력자들이 몹시 탐내는 도시였다.  이 도시를 정복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승리를 과사하기 위해 전임자가 세운 성당보다 더 큰 성당을 지으려고 했다. 네세바르는 3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불가리아 어느 곳에서도 이처럼 다양한 시대에 건립된 성당이 많은 곳은 없다. 최성기에는 40개나 되는 성당이 위용을 자랑했으며, 지금도 성당 10개가 지난날의 번영을 대변하고 있다. 대부분의 성당은 꽤 오래전에 폐허가 되었지만, 응회암과 벽돌로 만든 건물 정면에 도기를 박아 놓은 독특한 장식이 지금까지 남아 있어, 흑해에 비친 햇빛을 받아 화려한 자수처럼 빛나고 있다.  1453년에 오스만투르크에 정복당한 뒤에도 네세바르에서는 그리스도교가 인정되어, 귀중한 건축 유산이 소중히 다루어졌다. 더욱이 18세기 후반부터는 불가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플로브디프 양식의 주택이 많이 건설되어 이 도시의 표정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이 도시의 기원은 기원전 1000년경 트라키아인의 취락에서 시작되었다. 그리스의 지리학자이자 역사학자였던 스트라보에 따르면, 당시 이 곳은 메나브리아라고 불렀다고 한다. 육지와 연결된 모래톱 양쪽의 해저에서는 당시의 성채 흔적과 함께 돌로 만든 많은 닻, 그리고 조각이 새겨진 토기가 발견되었다. 기원전 6세기에는 도리아계 그리스인이 이 곳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메셈브리아라고 불렀다. 그들은 곶 동쪽 끝에 아폴론 신전을 지었다. 그 밖에 아고라와 극장 유적도 발굴되었다. 이 도시는 기원전 4~3세기에 최성기를 맞이했다. 많은 예술적인 출토품과 함께 발견된 이 곳의 중요행사 모습을 새진 대리석 판과 청동 그릇을 주조하던 화로, 도기를 굽던 가마를 통해 그리스를 비롯한 소아시아나 이집트 등과도 활발한 무역 활동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은 대부분 바닷속에 잠겨버렸지만, 기원전 5세기에는 튼튼한 성벽이 도시를 에워싸고 있었다. 기원후 71년경에는 로마 제국이 이 땅을 정복했지만, 로마인은 이 도시에 화폐를 주조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로마 제국의 동서 분열 후에는 비잔틴 제국(동로마제국)의 중요한 흑해의 항구가 되었다.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이 건국되자, 이 도시를 둘러싼 쟁탈전은 한층 격렬해졌다. 812년에는 크룸 한이 세력을 넓히는 과정에서 이 땅을 차지했지만, 다시 비잔틴에게 빼앗겨, 그 후 14세기까지 양국 사이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이 도시는 번영하여 각각 불가리아, 비잔틴 두 나라의 수도인 타르노보와 콘스탄티노플을 비롯해, 멀리 베네치아와 제노바와도 활발하게 교역을 했다. 그리고 13세기 이후, 이 도시는 네세바르라고 불리게 되었다. 유적이 본격적으로 복원되기 시작하자, 네세바르는 고고학자나 사적 보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황금향’이 되었다. 그러나 사적 보존이 항상 시민의 이해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1970년대 말에는 청소년 센터 공사 현장에서 제단의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공사가 계속되자 고고학자들의 맹렬한 반대가 있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합의가 이루어져 제단은 새로운 건물 속에 편입되어 콘크리트 원주로 둘러싸였다.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중세 불가리아 최고의 걸작품 가운데 하나를 우리 너머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불가리아의 르네상스-  발칸 반도의 어떤 민족도 ‘보스포루스 해협의 강자’로 불렸던 오스만투르크의 진군을 저지할 수 없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 오스만투르크의 힘이 쇠퇴하면서 상인이나 직인을 중심으로 민족 의식이 고양되고, 문화 부흥 운동이 일어나, 투르크의 지배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했다. 흑해에 맞닿아 있는 도시 네세바르에도 불가리아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이 시대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돌이 깔린 좁은 골목에 세워진 상인 주거지는 대부분 르네상스 시대에 지어졌는데, 이 곳은 플로브디프 양식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주거지이다. 돌로 만든 1층은 일 년 내내 시원해서 식료품이나 야채, 쌀 등을 저장하는데에 적합했다. 나무로 만든 2층은 1층보다 돌출되어 있기 때문에, 지붕들은 이웃집과 닿을 듯이 가깝게 붙어 있었다. 주된 거주 공간은 2층으로, 거실과 난로가 있는 식당이 있고, 부잣집에는 베란다와 응접실도 있었다. 장식적인 돌출창과 모퉁이에 기둥이 있던 집들은 세월이 가면서 낡았지만 젯빛 담에 둘러싸인 안뜰에서는 포도와 토마토가 자라고, 아름다운 꽃밭에서는 때때로 늙은 무화과나무를 볼 수 있다. 네세바르의 종교적인 건축 유산은 지금 콘서트 장소나 박물관으로 가끔 이용될 뿐이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집들 덕분에 흑해 근처의 이 역사 도시는 여전히 활기를 띠고 있다14세기에 창건된 성이반 알리투르게토스 성당은 네세바르의 전형적인 양식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원래 그리스 십자형 평면을 가진 삼랑식 성당으로, 대형 둥근 지붕 3개와 소형 둥근 지붕 6개를 갖추고 있었다. 제2차 불가리아 제국의 번영은 풍부한 지방 양식을 낳아, 이 성당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구성과 장식을 탄생시켰다. 1913년에 있었던 지진으로 윗부분의 구조는 거의 무너져 버렸지만, 흰 돌과 선명한 붉은 색 벽돌을 조합해 쌓아올린 외벽은 힘차고 화려한 장식 효과가 있다. 한편 아래쪽은 개구부가 없는 아치 윗부분에 다양한 색깔의 도기를 박아 넣어 생동감 넘치는 문양을 표현했다.        (출처- http://blog.naver.com/notre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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