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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왕신사 (오사카)

타종교신전/일본신사

by baesungsoo 2007. 4. 2.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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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blog.naver.com/hyssjang/140011389966

 

백제왕신사의 정문에는 그 옛날 백제왕족의 위엄을 보여주듯 도리이(鳥居·솟대)가 우뚝 서있다.

출처- http://blog.naver.com/jsdanmoo/50012746112 

 

백제왕족이 조상을 제사지내기 위해 세운 사당인 백제왕신사의 배전(拜殿).

 

백제왕신사의 경내

 

백제왕신사의 후원자들의 석패(石牌)가 줄지어 섰다

 

 

 

 

오사카 백제왕신사

 

오사카부 히라카타(枚方)시 니시노초 나카노미야(西之町中宮 1-68) 언덕에 올라서면 ‘백제왕신사’(百濟王神社)라는 큰 간판이 우뚝 서 있다. 백제왕신사는 백제사 사적공원 경내와 서쪽으로 잇대어서 함께 자리 잡고 있다. 백제왕신사는 그 옛날 구다라스(百濟洲) 땅에서 백제 왕족이 조상을 제사지내기 위해 세운 사당으로 백제사 터전 사적과 함께 매우 유서 깊은 명소이다. 따져 보면 우리나라에는 없는 백제 뿌리의 백제왕족 사당이 오히려 여기 오사카땅에는 엄존하고 있지 않은가. 그만큼 중요한 이 구다라스, 오늘의 오사카땅 난파진 앞바다는 본국 백제와의 직통 항로가 되었던 곳. 그러기에 백제인이 일본 본토에서 최초로 개척한 구다라스땅에 가장 먼저 백제왕족 사당이 섰다는 것은 지정학적으로도 설득력이 있다. 현재 백제왕신사에 전해지는 고문서들을 중심으로 이곳의 역사를 캐 보자. 우선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은 ‘미마쓰가계도’(三松家系圖)다. 이 고문서에는 “비다쓰천황(敏達天皇·572∼585 재위) 어대에, 백제왕족 왕진이(王辰爾·6C)가 이곳에다 사당을 세우고 그의 조상을 제사지냈다”고 왕진이의 직계 후손인 미마쓰 가문의 가계도가 밝히고 있다. ‘비다쓰천황은 백제 왕족’이라는 사실은 일본 고대의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서기 815년 일본왕실 편찬)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비다쓰왕 당시의 조정은 나라(奈良)땅 백제(百濟)의 ‘백제대정궁’(百濟大井宮)에 있었다.(‘부상략기’ 13C경 편찬) 바로 그 무렵 백제왕족 왕진이의 직책은 난파진 앞바다를 관장하는 선사(船使·해무청장)였으며, 그의 행적은 ‘일본서기’에 다음처럼 특필되어 있다. “비다쓰천황 원년(572) 5월 15일. 천황은 고구려왕(평원왕·559∼590 재위)의 국서를 받아 대신(소아마자 최고대신)에게 건네주었다. 조신(문서담당 고관)들을 소집하여 해독시켰다. 고관들은 사흘이나 걸렸으나 아무도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 이때에 선사 왕진이를 불러들이자 그가 국서 내용을 완벽하게 풀어냈다. 이에 천황과 대신은 함께 칭찬해 마지않으며, ‘잘했소, 왕진이. 훌륭한 일이오. 만약 그대가 한문에 통달하지 않았다면 과연 누가 이 문장을 풀 수 있었겠소. 이제부터는 이 왕실에서 근무하여 주기 바라오’라고 명을 내렸다. 그러면서 동서(야마토 지방과 난파진 구다라스 지방)의 고관들에게 ‘그대들의 학문은 아직 멀었어. 그대들은 숫자가 많지만 왕진이 한 사람만도 못하구먼’ 하고 말했다. 또 고구려의 다른 문서는 까마귀 날개였다. 검은 색 날개에 검은 색으로 씌어져 누구도 해독할 수 없었다. 왕진이는 날개를 밥솥에서 뜸들이던 밥의 김을 쐬게 하더니 그것을 흰 비단에다 꾹 눌러서 문자들을 고스란히 찍어냈다. 조정 신하들은 이 광경에 모두 경탄했다.”(‘일본서기’) 슬기로운 왕진이는 백제 계열 비다쓰왕과 소아마자 대신의 후광 속에 정사에 힘썼고, 그의 역량은 곧 구다라스의 백제왕족 터전에 백제왕신사라는 사당을 지어 이국 땅에서도 당당하게 조상신들의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 미마쓰 가문은 왕진이의 직계 후손 백제왕경복(百濟王敬福·궁내경 등 대신·698∼766)의 뒤를 이어 장장 1240년이나 계속됐다. 그동안 번창하여 오늘날까지 줄기차게 대를 이어오고 있다. 현재 본종가의 후손 미마쓰 도시쓰네(三松俊經·이바라키현 도리데·1932∼)는 필자에게 “지난해 10월(14∼15일)에도 백제의 왕도 부여에 가서 조상님 큰 제사에 참석했습니다. 저의 두 번째 모국 방문이며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히라카타의 백제왕신사로 한국에서도 많이들 참례해 주셔서 고맙게 여기고 있습니다. 저희 집안의 묘소는 긴야(禁野)에 있습니다”(2006.12.24)라고 역시 구다라스의 히라카타 지역이 백제 왕족의 본 터전임을 밝혔다. 현재 그의 슬하에 두 아들(俊典 42세, 俊裕 40세)이 백제 왕족의 가문을 계승하고 있다. 그는 직계 선조 백제왕경복에 관하여는 후일 상세하게 쓰겠다고 다짐했다. 백제왕경복은 백제 계열 제45대 쇼무천황(724∼749 재위)대부터 역대 왕의 총애를 받았던 명재상이며 외위대장(外衛大將)이라는 왕실 최고 장군으로서 무공도 컸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675년 쇼토쿠여왕(764∼770 재위)이 구다라스의 “유게사(弓削寺)에 거동했을 때 천황 앞에서 ‘백제 춤’을 추었다”(‘속일본기’ 796년 왕실 편찬 역사서)는 내용은 유명한 역사 기사다. 미마쓰 가문 직계 후손인 미마쓰 미요코(三松みよこ·55·나라시 호렌초)는 “미마쓰가문과 백제왕신사에 관해서 현재 2년째 연구서를 쓰고 있으며 내년에 탈고하면 교수님에게 전해드리겠다”(2006.12.7)고 필자에게 밝힌 바 있다. “저희 집안의 가계를 올바르게 써서 백제 왕실에 관한 일반의 역사 인식을 드높이고 싶다”는 의욕 속에 집필에 골몰하고 있다. 물론 백제의 순수한 핏줄을 이어오는 이들은 오늘날 완벽한 일본인들이다. “현재(1972) 일본 동부 지역에는 미마쓰 가문이 약 4000명 정도 살고 있다”(‘日本人の姓’ 1972)고 발표한 사쿠마 에이(佐久間英·1913∼ )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일본인 20대 성씨 중의 태반이 한국계 성씨이기도 하다. 도쿄대학 인류학과 하니와라 가즈로 교수의 연구(‘日本人の成り立ち’ 1995)는 고대(BC 3∼AD 7)의 한반도 등 도래인은 150만명이며, 선주 일본인(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지역 이주 정착민들) 1 대 8.6명이라는 압도적인 시뮬레이션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받고 있다. 백제왕신사에는 현재 ‘백제왕영사묘유서’(百濟王靈祠廟由緖)라는 것이 있음을 후지쓰 유키코(藤津由己子) 궁사가 공개했다.(2006.12.7) 이 고문서는 지금부터 560년 전인 1446년 우누카네(宇努勘彌)가 썼다. 고문서의 주요 대목은 다음 같다. “백제왕신사는 백제왕족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사당이다. 일본에 문자를 전해 준 것은 백제인 왕인이며 오진왕 시대였다. 스이코여왕 시대에 백제왕자 아좌태자가 성덕태자에게 석가모니 불상과 경전 3600권을 주었다. 성덕태자는 기뻐하며 아좌태자에게 가도노(현재의 백제왕신사 일대)에 토지와 주택을 주고, 왕실의 벼슬(位階)을 주었다. 쇼무천황 시대에는 왕인과 아좌태자의 후손인 백제왕남전, 자경, 효충, 경복 등을 조정에서 중용했다.” 또 “이 중요한 고문서의 집필자 우누카네는 성명으로 살필 때 백제왕족의 자손이며, 이 사당의 궁사 집안 사람이 아닌가 본다”(야마노 마키오 ‘백제왕신사―창립 연혁과 본전과 배전에 관한 고찰’ 1975)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백제왕신사 설계 대표건축가이며 문화재보존기술협회 야마노 마키오(山野滿喜夫) 위원은 “백제 의자왕의 왕자 선광(禪光)왕자가 지토여왕(持統·686∼697 재위)시대 일본으로 건너왔을 때, 여왕으로부터 ‘백제왕’이라는 사성(賜姓)을 받아 ‘백제왕’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난바(難波)에 살면서 모름지기 옛날 구다라군(百濟郡)에서 거주하며 조정으로부터 후대 받았다. 아들은 창성(昌成)이며 증손자가 종3위 백제왕경복이다”(앞 연구론)라고 역사를 밝힌다. 그런데 이 사당의 편액을 보면 거기에는 제신(祭神)의 이름 두 개가 세로로 나란히 새겨져 있다. ‘백제대왕’과 ‘우두천왕’(牛頭天王)이 그것이다. 백제대왕은 당연한데 신라 신인 우두천왕을 합사하고 있는 것을 주목해 보자. 일찍이 1891년 도쿄대학 사학과 구메 구니다케(久米邦武·1839∼1931) 교수는 “우두천왕은 신라신 ‘스사노오노미코토’(素盞吾尊)”(‘神道は祭天の古俗’)라고 단정해 뒷날 국수주의자들의 탄압 대상이 돼 끝내 도쿄대학에서 추방당했다.(‘산세이판 인명사전’ 1978) 여하간 백제 신과 신라 신을 합사한 것은 뜻깊은 일이며, 이는 아마도 일본 왕실 제사의 신라 신인 ‘원신’(園神)과 백제 신인 ‘한신’(韓神) 합동 제사(‘延喜式’ 서기 927년 일본왕실 편찬)에 기인하는 게 아닌가 한다. 이와 같이 백제왕신사는 일본에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왕실 사당이며 신라 신도 합사하고 있으므로 주목받는 것은 당연하다. “많은 일본인 유지들이 막대한 헌금을 하여 이 사당은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는 후지쓰 유키코 궁사는 협조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채 백제왕신사 어귀 도로변을 길게 장식하며 줄지어 서 있는 석재 돌기둥들을 가리키며 밝게 미소지었다.


출처- 홍윤기의 역사기행 일본 속의 한류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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